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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의 도 넘은 공공역사 독점] 3. 기존 역사 매장하는 서울 순례길

  • 교계
  • 입력 2022.09.06 09:52
  • 수정 2022.10.16 12:59
  • 호수 1648
  • 댓글 17

“조선이 가톨릭 국가였나”…서울시, 역사유적 곳곳에 성지 조성

주요 역사 유적지와 유동 인구 많은 곳에 성지 입간판 세워
고증 거치지 않고 막연한 추정으로 가톨릭 성지로 명명
시신 통과하던 광희문은 가톨릭 신자 실려나갔다고 성지
“신앙이 공적인 영역에서 표현될 때는 제한이 돼야 마땅”

서울시가 광희문 앞에 가톨릭 성지 간판을 세워 조선의 간문  '광희문 성지'로 안내하고 있다.
서울시가 광희문 앞에 가톨릭 성지 간판을 세워 한양 도성 성곽 작은 성문인 '광희문'을 '성지'로 안내하고 있다.

서울시(시장 오세훈)가 서울의 상징인 광화문 광장에 가톨릭 중심의 역사 서술로 조선 역사를 폄하한 가운데 서울의 주요 관광지·유적지마다 가톨릭 성지 간판을 세운 것으로 나타났다. 성지 간판이 설치된 장소 가운데는 고증과 발굴 없이 추측으로만 세운 곳도 적지 않아 서울시가 앞장서 민족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500년 조선의 장구한 역사를 가톨릭 역사로 뒤덮고 있는 모양새로 조선시대가 가톨릭 국가였냐는 탄식도 흘러나온다. 

빨간색 체크는 서울시가 공공역사를 매장하고 서울 주요 유적지와 관광지에 세운 가톨릭 성지 간판.  
빨간색 체크는 서울시가 공공역사를 매장하고 서울 주요 유적지와 관광지에 세운 가톨릭 성지 간판.  

가톨릭 성지 간판이 설치된 곳은 모두 24곳으로, 서울시가 2018년 9월15일부터 운영하고 있는 ‘서울 순례길’이다. 서울 순례길로 불리지만 실상은 가톨릭 성지로만 구성됐다. 앞서 언급한 ‘서소문 역사공원’과 ‘광화문광장 124위 시복터’도 순례길의 일부다. 

서울시는 2014년 프란치스코 방한을 계기로 “서울시를 스페인 산티아고 같은 세계적인 순례 장소로 만들겠다”며 2015년부터 4년여간 서울 주요 관광지·유적지를 성지화했다.

이 중 성지 간판이 설치된 장소는 대부분 북촌 한옥마을·광화문 광장·세종문화회관 등 관광객이 많고, 지하철 종각역·종로3가역·을지로입구역 등 유동 인구가 매우 높은 장소였다. 또 서소문·광희문·형조·의금부·전옥서·포도청·경기감영 등 ‘조선시대 주요 유적지’에 설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위쪽 사진부터 서울 광화문 광장 세종문화회관 앞 가톨릭 성지 간판. 제일은행 본점 앞에 있는 가톨릭 성지간판. 종각역 6번 출구에 있는 가톨릭 성지 간판. 광화문 우체국 앞에 있는 가톨릭 성지 간판. 서대문역 3번 출구 앞에 있는 가톨릭 성지 간판. [천주교 서울대교구 순교자 현양위원회 홈페이지]
위쪽 사진부터 서울 광화문 광장 세종문화회관 앞 가톨릭 성지 간판. 제일은행 본점 앞에 있는 가톨릭 성지간판. 종각역 6번 출구에 있는 가톨릭 성지 간판. 광화문 우체국 앞에 있는 가톨릭 성지 간판. 서대문역 3번 출구 앞에 있는 가톨릭 성지 간판. [천주교 서울대교구 순교자 현양위원회 홈페이지]

서울시가 조선의 주요 유적지에 성지 간판을 세우면서 고증이나 발굴 없이 추정만으로 진행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순교자 현양위원회 홈페이지(https://martyrs.or.kr/_web/main/main.html)에 따르면 ‘이벽의 집 터’는 청계천 건너편으로 ‘추정’되지만 마땅한 자리가 없어  청계천 다리 한가운데 설치했다. ‘김범우 집 터’ 역시 "신앙 공동체 명례방을 알리는 표석은 없지만 장악원 터 표석 앞쪽을 집터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확인되지도 않은 곳을 성역이라고 내세우는 셈이다.

그러나 '이벽의 집 터'는 세종 23년(1441) 청계천 수량을 측정해 홍수에 대비하던 기둥인 수표(水標)가 세워진 다리이고, ‘김범우 집 터’도 조선시대 궁중에서 연주되는 음악 및 무용에 관한 모든 일을 맡아보던 왕실의 음악기관 장악원(掌樂院)이 있던 곳이다. 하지만 오늘날 가톨릭 신자들의 집 터로 둔갑했다. 

청계천 다리 한가운데 세워진 가톨릭 성지 간판.
청계천 다리 한가운데 세워진 가톨릭 성지 간판.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앞에 세워진 가톨릭 성지간판.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앞에 세워진 가톨릭 성지간판.

서울시는 조선시대 사법 기관인 의금부, 포도청, 형조 등도 가톨릭 성지로 변질되도록 앞장 섰다. 서울시가 성지화한 이유는 단순하다. 가톨릭 신자들이 문초, 형벌 당했다는 이유에서다.

조선시대 왕명에 따라 반역이나 왕실 관련 사건 등 일반적인 수사가 어려울 때 중대한 범죄를 다루는 특수기관 ‘의금부’, 서울 일대 치안 담당을 주 업무로 한 일종의 경찰 기관 ‘포도청’, 법률 관리, 범죄 심리, 소송 판결 등의 사무를 담당한 중앙 관청 ‘형조’, 조선시대 경기도 지역을 관할한 민정·군정·사업 기관 ‘경기감영’은 가톨릭 성지화에 밀려 조선의 중요 행정 기관으로서 역사는 매몰된 상태다.

광희문 앞에 세워진 가톨릭 성지 간판.
광희문 앞에 세워진 가톨릭 성지 간판.

서울시는 서소문(소의문)에 이어 광희문(光熙門)도 ‘성지’로 바꿨다. 서소문은 현재 서울시가 국유지에 세금으로 지은 서소문성지 역사공원으로 인해 서소문이라는 명칭보다 서소문 ‘성지’로 익숙하게 불리고 있다. 광희문도 서울시가 세운 성지 간판으로 인해 광희문 성지로만 인식되고 있다.

서울시는 한양 도성 성곽의 4개의 작은 성문 가운데 소덕문(서소문)과 광희문으로 가톨릭 신자의 시신이 나가 이곳을 성지화하고 있지만, 당시 사소문 가운데 장례 행렬이 통과할 수 있는 문은 소덕문(서소문)과 광희문이었기에 가톨릭 신자외에도 일반 백성과 경빈 김씨, 명온 공주, 희빈 장씨 등 수많은 왕의 친척들의 시신이 통과한 곳이기도 하다. 현재 성문 앞으로는 2014년 8월 설립된 천주교 광희문 순교자 현양관이 있어 성지화에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북촌 한옥마을에 세워진 가톨릭 성지간판. 오른쪽은 가톨릭 신자들이 우물 위에 손을 얹고 예배 드리고 있다. 
북촌 한옥마을에 세워진 가톨릭 성지간판. 오른쪽은 가톨릭 신자들이 우물 위에 손을 얹고 예배 드리고 있다. 

서울시는 조선시대 소문난 명천(名泉)이던 북촌의 석정보름 우물마저 한국판 ‘야곱의 우물’로 만들었다. 서울시는 보름은 물이 맑고 보름은 흐려져서 ‘보름 우물’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옛 전설을 애써 지우고 “천주교 박해 당시 많은 순교자가 발생하자 갑자기 물맛이 써져서 한동안 사용되지 않았다”는 얘기만 서술하고 있다. 또 최초의 외국인 사제 주문모 신부가 이 샘물을 성수(聖水)로 조선땅 첫 미사를 드린 장소라고 덧붙였다.

성지 순례 장소를 알리는 초록색 발자국 마크.
천주교 서울대교구
천주교 서울대교구 순교자 현양위원회 홈페이지에 '안내판을 설치하는 사적지, 순례지 조성'이 주요 사업으로 소개돼 있다.

특히 서울시는 도로 곳곳에 초록색 발자국 마크를 새겨 가톨릭 신자들이 성지 간판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었다.

석길암 동국대(경주) 교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울특별시가 어쩌다 역사 왜곡에 앞장서는 기관이 됐냐”며 “국가 차원에서는 중국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역사 왜곡 등 주변 국가들의 역사 왜곡을 바로 잡고자 노력하는데 정작 서울시는 역사의 객관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민족 내부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며 “이것이야 말로 우리 역사를 내부에서 무너뜨리는 행동이 아닌가. 민족의 과거를 지우면 민족의 미래도 사라진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광화문 광장 프란치스코 교황 표지석 앞에서 가톨릭 신자들이 기도하는 모습.

조성택 고려대 교수는 “우리가 딛고 서있는 땅은 여러 역사들이 중첩돼 온 건데 어떤 표층만 가지고 역사 서술을 한다는 것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가톨릭의 역사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사가 선별적으로 기록된다는 것 자체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서울시가 국사편찬위원회라든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라든가 충분한 자문을 받았는지가 궁금하다”고 했다.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이 기도회에서 통성기도하는 것을 지적하고, 피파(FIFA)가 축구 선수의 기도 세레모니를 제한하고 있는 이유는 이들이 서 있는 곳이 공적 장소기 때문이다”라며 “개인의 신앙에는 자유가 있을지라도 신앙이 공적인 영역에서 표현될 때는 제한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성철 동국대(경주) 교수는 “100~200년된 성당·교회가 있으면 성지화해도 납득이 간다. 그러나 ‘누가 어디서 목이 잘렸다’ ‘누가 다녀갔다’ 등의 무형의 사건만으로 성지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역사 안내 간판이 세워지고 역사적인 장소가 되는 것은 종교와 무관한 국민들도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선에서 진행돼야 한다. 서울 순례길은 형평성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종교 갈등을 초래하는 매우 편협한 정책임을 서울시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응철 중앙승가대 교수는 “서울시가 이성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시민들 예산으로 그런 편향적 시정을 했다는 게 용납하기 어렵다. 더 심각한 건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조차 근거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예측만으로 간판을 세웠다는 것”이라며 “서울시가 가톨릭에게 기득권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서울 곳곳에 세워진 이 간판은 또 다른 2차, 3차 성지화 사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또 “서울시가 ‘천주교 순례길’을 만들었다면 종교적 형평성을 위해서 불교계가 해온 것도 곳곳에 기록해야하는 것 아닌가. 가톨릭은 활동한지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조선이 가톨릭 국가도 아니지 않았느냐. 임란 때 조선 사람을 무참하게 학살하고 왜적의 편에 서서 그들을 위해 기도한 세스페데스 신부의 기록이나 가톨릭의 행패에 맞서 봉기한 이재수의 난은 왜 안적나”라고 지적했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도 “안명근의 고해성사를 들은 뮈텔 주교가 눈 내린 겨울 밤 남산에 있는 일본군 헌병사령부(현재 한옥마을)까지 가서 ‘안명근이 총독을 암살하려고 한다’고 밀고해 숱한 사람들이 고통을 겪은 일(105인 사건)과 안중근을 살인자로 규정하고 가톨릭에서 제명한 역사적 사실도 가톨릭 순례길에 포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48호 / 2022년 9월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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