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옹선사가 창건한 운서산 장육사(주지 효상 스님)는 깊이 숨어 있었다. 영덕읍내를 빠져 나온 지 오래인데도 안내표지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창수면 신기 삼거리에 다다르자 나옹선사의 반송(盤松) 유적지가 나타났다. 선사는 영덕군 창수면 가산리 불미골(일명 佛岩골)에서 태어났다. 선사는 친구의 죽음을 보고 ‘죽음’에 대해 묻고 다녔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답을 얻지 못했고, 생각할수록 인생은 그저 무상할 뿐이었다. 마침내 선사는 스무 살 때 문경 사불산 대승사 묘적암으로 출가했다. 고향을 떠나면서 자신의 반송지팡이를 거꾸로 꽂아놓고 이렇
고성 화암사는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첫 봉우리라는 신선봉 아래 있다. 한반도의 허리가 동강났기에 남쪽에서는 건봉사와 더불어 금강산에 속해있는 유이(唯二)한 사찰이다. 그러니까 북에서 살피면 금강산 최남단에 위치한 셈이다. 통일이 되었다면 나름 처음과 마지막이란 의미를 부여받아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진표율사가 화엄대교 강론하고769년 화엄사 이름 붙여 창건동쪽 발연사·서쪽 장안사 두어금강산을 미륵부처 정토로 삼아다섯 차례 화재로 큰 손실 입어원위치서 남쪽으로 100m 이전1912년에 화암사로 공식 개칭15년째 사찰 지키는 웅산 스님높이
가을 끝에서 차를 탔다. 북으로 달릴수록 산색이 묽어지더니 오대산 속은 이미 겨울이었다. 중대사자암(감원 해량 스님) 적멸보궁을 찾아가는 길, 상원사 쯤에서 마음을 꺼내봤다. 설레는 마음을 경건하자고 다독였다. 사람들은 적멸보궁을 불국토 오대산의 심장으로 여긴다. 하지만 왠지 오대산의 마음처럼 느껴졌다. 상원사 옆길을 따라가니 키 큰 전나무와 잣나무가 어디 가느냐고 묻고 있었다. 수백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나무 밑동에는 온통 구멍 자국이다. 새들은 늙은 나무에 부리를 박아 무엇을 가져갔을까. 나무들은 그저 제 몸을 내주고 있었다
고창에서 완행버스를 타고 선운사(주지 법만 스님)를 찾아갔다. 가을은 우리보다 먼저 완행버스에서 내린 모양이다. 산도 강도 들녘도 막 가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억새들이 우리더러 함께 들어가 가을 풍경이 되자고 흰 손을 흔든다. 버스는 송창식의 노래 ‘선운사’ 가락처럼 약간 느리게 흔들렸다.백제 고승 검단 스님이 창건인근지역에 난민·도적 들끓자소금·숯·한지 등 제조법 전수은덕 보답하고자 보은염 바쳐조선시대에 6년 걸친 중창불사260명 스님 머무는 거찰 성장도솔암 보물 1200호 마애불에비결 숨겨졌다는 전설 이어지다동학혁명
동두천 소요산은 ‘경기의 소금강’이라 불린다.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화려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곱다. 소요산에는 온통 원효대사의 전설이 서려 있다. 가을 입구인 시월 첫날, 그 이야기의 진원지 자재암(주지 혜만 스님)을 찾아갔다. 가을은 산에서 아직 내려오지 않았다. 줄지어 서있는 나무들을 따라 요석공원을 지나다보니 요석공주별궁지가 나왔다. 일주문을 지나 한참을 걷다보면 왼편에 원효굴과 원효폭포가 있다. 다시 108계단을 올라 해탈문을 넘으면 원효대가 나타난다. 원효대사가 치열하게 수행했던 공간이란다. 원효대를 지나 치솟은 암벽
한가위가 지났지만 산하는 여전히 푸르다. 영광 불갑사(주지 만당 스님)를 만나기 전에 우선 법성포에 들렀다. 햇살 박힌 바닷바람은 따가웠다. 정확히 1630년 전 법성포에 내린 인도의 고승 마라난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의 법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백제인들은 그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을까. 법성포 굴비거리를 빠져나와 불갑사로 향했다. 불갑사 가는 길은 정갈하고 예뻤다. 가로수 아래 붉은 꽃들이 막 피어나고 있었다. 상사화였다. 9월에도 붉은 꽃을 보다니…. 여기저기 상사화축제를 알리는 펼침막이 걸려있었다. 그러고 보니
정읍 내장산을 넘어 백양사로 가는 산길이 있다. 산길이라지만 이제 봇짐지고 넘던 길이 아니다. 차가 콧김을 불며 오르내리는 2차선이다. 비오는 날 차를 얻어 타고 그 길로 들어섰다. 그렇게 백암산 백양사(주지 진우 스님)를 찾아갔다. 나무들은 길 쪽으로 팔을 길게 뻗고 있어 곳곳이 나뭇잎 터널이었다. 비에 묻어 녹음이 뚝뚝 떨어졌다. 한데 오를수록 비가 사납게 쏟아졌다. 산 중턱에 이르자 폭우가 내리쳤다. 승용차가 길을 더듬거렸다. 계곡마다 물 더미가 흰 이빨을 드러냈다. 푸른 숲 사이에서 튀어나오는 저 흰 물줄기는 산의 분노일까,
입추를 갓지나 계룡산 갑사(주지 화봉 스님)를 찾았다.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는 말이 있다. 봄에는 공주 마곡사, 가을에는 갑사의 정취가 빼어나다는 것이다. 갑사로 가는 길가에는 은행나무들이 아직은 푸른 잎을 흔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동요처럼 경쾌했다. 머잖아 저 계룡산에서 가을이 내려오고 이 길에도 노란 물이 들 것이다. 동요는 느린 가곡으로 바뀔 것이다. 일주문에 이르니 거대한 느티나무가 곁에 서 있다. 마치 일주문을 지키고 있는 듯했다.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문까지는 늙은 나무들이 하늘을 가린 채 사람들을 굽어보고
봉화에서 울진으로 가는, 천축산 숲 사이를 헤쳐나간 36번 국도는 구불구불하다. 폭염 아래서도 푸른 숲이 싱그럽다. 발아래 펼쳐져 있는 불영계곡은 깊고 길다. 안내판을 따라 조심스럽게 36번 국도를 벗어나니 이내 비구니 사찰 불영사(주지 일운 스님) 일주문이 나타났다. 의상대사가 동해로 가던 길에계곡에서 오색 서기 피어올라연못의 아홉 마리 용 쫓아내자부처님 형상 그림자 드리워져구룡사서 불영사로 바꿔 불려묘엄 스님 맏상좌 일운 스님어른스님 추천으로 인연 맺어대웅보전 복원에 시주 잇달아이후 20년 넘게 복원불사 진행감사의 마음 담은 음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이내 소나기가 쏟아졌다. 거센 빗줄기를 뚫고 수원 광교산에 있는 봉녕사(주지 자연 스님)를 찾아갔다.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그래서 다시 본 봉녕사는 맑고 고왔다. 봉녕사승가대학 학감 하연 스님의 미소를 따라서 경내를 돌아봤다. 능소화가 화사하게 한여름 오후를 밝히고, 잊을 만하면 꽃들이 나타나 웃었다. 비구니 사찰 봉녕사는 볼수록 예쁘고 정갈했다. 멀리서 보면 아늑해보였는데 다가가면 문득 우람했다. 넓고 높은 전각임에도 근육질이 아니었다. 부처님만을 모시겠다는 듯, 위압적인 일반 사찰과는 달랐다. 그 속에
부처님오신날이 오고 있었다. 해인성지(海印聖地), 가야산에 들었다. 남쪽바다에서 일어난 세월호 침몰 참사에 깊은 산사도 슬픔에 잠겨 있었다. 해인사 대적광전에서는 실종 승객의 생환을 기원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목탁소리가 법당 아래 연등으로 떨어졌다. 가야산 연봉들이 바다로 달려가고, 저 연등이 바닷속을 비춘다면 봄처럼 화사했던 우리 아이들을 건져낼 수 있지 않을까.백련암(감원 원택 스님)으로 올라갔다. 가야산에서 가장 높은 암자 백련암은 가야산 제일의 절승지이다. 홀연 나타난 백련암은 단아하고 고요했다. ‘
산자락을 인간의 집터로 내주고 북한산(삼각산)은 뒤로 물러앉았다. 구불구불 골목길은 주택과 고층아파트를 헤치며 산을 오른다. 제법 가파른 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면 홀연 넓은 경내가 펼쳐진다. 북한산 남쪽 끝자락인 서울 성북구 돈암동 595번지, 그 곳에 흥천사(주지 정념 스님)가 있다. 경내에는 불사가 한창이었다. 주위를 살피니 회색 아파트들이 절을 굽어보고 있다. 개발의 끊임없는 유혹을 물리치고, 고찰의 향기를 머금고 있는 흥천사가 문득 고마웠다.흥천사는 원래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의 명으로 세워진 신덕왕후 강씨의 능찰이었다. 태조
절을 찾아가는 날, 세상은 먼지가 점령하고 있었다. 중국에서 건너온 미세먼지가 태양마저 가렸다. 먼지 묻은 햇살은 이내 묽어져 흐물거렸다. 먼지는 땅 위에 서 있는 모든 것들에게 스며들었다. 하늘도 들도 길도 희미했다. 우리 마음도 그럴 것이다. 끊임없이 날아드는 먼지에 잔뜩 때가 끼어있을 것이다. 마음의 먼지만 닦으면 자신은 물론 이 세상이 구원되었음을 알 터이지만 먼지를 둘러쓰고 무엇인가를, 그리고 누군가를 찾고 있다. 날마다 미세망상의 습격을 받으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저 흐린 세상도 결국 인간의 마음이 혼탁하기 때문이
강화도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다. 섬 전체가 유적이다. 어디를 가도 이야기가 묻혀있다. 역사 속의 강화도는 유배지이거나 쫓기는 무리의 은거지였다. 나라가 융성할 때는 숨어 있다가 누란의 위기를 맞으면 솟아올랐다. 강화도로 건너온 사람들은 외롭고 아팠다. 그래서 산마다에 많은 사찰이 세워졌고, 절마다에는 그들의 비원이 서려있다. 강화도엔 국운 따라 부침을 거듭했던 천년 고찰이 밀집해 있다. 내년이면 창건 1600년을 맞는 적석사(주지 선암스님)를 찾아갔다.마을을 빠져나오자 절로 가는 외길이 나타났다. 산등성이마다 잔설이 희다. 산길
과거를 동여매는 일은 아무래도 쓸쓸하다. 갈수록 인간들은 시간을 쪼개고 그래서 뾰쪽해진 시간에 찔린다. 허겁지겁 달려온, 아슬아슬했던 길들을 눕혀 놓고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 다시 새해가 밝았다. 따지고 보면 생성과 소멸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다. 누군가가 미래인이듯 우리도 누군가의 미래인이다. 어둠이 빛이고 빛이 어둠이다. 우리가 끌고 온 것들을 모두 어둠 속에 묻었다. 저무는 해를 보며 손을 흔드는 것은 결국 우리를, 나를 떠나보냈던 것이다. 지난 ‘나’를 떠나보내고 새해를 맞기에는 겨울 산사가 제격이다. 서울 근교의 천년
패륜의 업 닦고자 했던세조의 간절한 발원에문수동자 화현한 도량 한국전쟁 당시 전소 위기한암스님 목숨 걸고 막아 명저 ‘선방일기’의 탄생지화두 든 선객 바뀌었어도구도의 열기는 변함 없어 ▲오대산 상원사가 눈에 잠겼다. 계곡의 물소리조차 덮었다. 시끄러운 것, 번잡한 것, 욕심으로 뒤섞인 것들은 모두 내려놓고 순백, 욕망을 털어낸 무채색이 되어 발을 들여야 할 것이다. 마침 첫 눈이 왔다. 눈길을 달려 오대산에 들었다. 법향이 그윽해서 누구라도 옷깃을 여미는 성지이다. 수정암, 사자암, 미륵암, 관음암, 지장암 등과 더불어 온갖 생명붙이들이 적멸보궁을 향해 경배하고 있다. 눈은 하염없이 내려 계곡
‘신기한 굴레’라는 이름 물살 다스린 설화서 유래 고려말 유림의 탄압으로밀양으로 향하던 나옹선사신륵사 이르러 돌연 입적선사 흠모한 이들 모이며조선 초기 명찰로 급부상 “천성산 살려라” 단식하던지율 스님 몸 의탁 하기도4대강 토목공사 강 유린에여주팔경도 수몰 될 운명 ▲신륵사는 ‘신기한 미륵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를 다스렸다’는 창건 설화가 전해질 만큼 여강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절이다. 고려 말 나옹선사가 유림의 탄압으로 낙향하다 이곳에서 입적한 후 선사를 흠모하는 사람들이 모이며 사격이 커졌다. 신륵사(주지 현담 스님)는 여강(驪江: 남한강 상류) 곁에 있다. 여강은
통일신라때 범일 국사 창건 보물 석탑서 다라니경 발견소조삼존불 동양 최대 규모 김시습이 생 마쳤던 고찰무진암 가는 언덕에 시비 문학관 조성…창작 산실로 "매월당 설잠 김시습을 3년 후 장사지내려 빈소를 여니 얼굴빛이 산 사람 같았다. 승려들이 모두 놀라‘부처’라고 탄했다." ▲시국이 수상할 때면 무량사 경내가 분주했고 이곳에서 세 번의 역모 모의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비에 젖은 무량사는 한 폭의 수묵화였다. 그 속에 안기면 누구나 풍경의 일부가 됐다. 무량사, 곱게 늙었다. 마음 속의 부여는 애틋하다. 찾을 때마다 부여는 야트막하다. 그만그만한 길에 그만그만한
100여 가람 품었던 가야산백제 최대 ‘불교문화 특구’ 최고 명당지 찾던 흥선군사찰 불 태워 부친 묘소로 최대 철불 출토 보원사도 쇠락하여 논밭으로 전락 내포가야산 성역화 불사는 마애불 미소 담는 ‘마음공사’문화재서 신행 공간으로 변모 ▲내포 가야산 자락에 남아있는 보원사는 국내 최대 규모의 철불이 출토되었을 만큼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대가람이었다. 어느 때, 어떤 이유로 쇠락하고 폐사 됐는지 정확한 기록은 알 수 없다. 서산마애삼존불은 천 년 넘게 웃고 계신다. 그 웃음이 넉넉하여 ‘백제의 미소’라 부른다. 바위는 투박한데 미소는 맑다. 미소는 아침 저녁으로, 또 계절에 따라 다르다.
광주민주항쟁 치열했던 5월부처님오신날 시위대 찾아가음식 나누며 그들과 함께해 광주시민 마음 탁발 하고자84년 ‘무등민족문화회’ 창립진보단체에 용기·영감 전해 민중 의식 일깨운 사람들이도량에 남긴 삶과 이야기는어떤 성보보다도 귀한 보물 ▲어머니산 무등의 끝자락에 서 있는 문빈정사. 1980년대 이 땅의 민주인사들은 문빈정사에 머물며 나라와 겨레의 앞날을 이야기 했다. 지금도 문빈정사에서는 '인권과 정의가 흐르는 세상이 정토'라는 원력이 성성히 살아 숨쉬고 있다. 지난 봄 한반도에 전쟁 공포가 엄습했다. 남과 북이, 또 미국이 ‘말(言) 전투’를 벌였다. 백성들은 뒷전이었다. 동족을 향해 쏟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