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장법사 현장스님의 16년 동안의 인도 기행을 담은 『대당서역기』는 그 자체로도 뛰어난 문학적 가치를 지닐 뿐 아니라 『서유기(손오공)』라는 중국 역대 최고 문학작품의 근저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확한 묘사로 근대에 와서는 인도 불교문화유적지 발굴이나 학술탐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백마의 등에 불경을 가득 싣고 기러기의 길 안내를 받으며 파미르고원을 넘어 장안으로 돌아와 중원천지를 부처님의 자비로 물들게 하셨던 현장 스님. 그러나 그 여정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서안에 백마의 공덕을 길이고자 백마사(白馬寺)를 짓고, 탑을 높이 쌓아 절을 창건하여 대안사(大雁寺), 소안사(小雁寺)로 이름 지어 기러기의 고마움을 추모 했을까?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스님께서 직접 갖고 오신 경전보다 암송하고 돌아온 경이
출가 전 일이다.산을 즐겨 산을 오르다가 사찰입구에 가면 늘 듣게 되는 염불 소리가 있었다. 때로는 법구경 등에서 뽑아 엮은 명상의 구절을 성우가 낭송하기도 하지만 염불소리는 전국 절 어디에서나 비슷한 것 같았다. 많은 불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주지 스님 염불소리에 제일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마음으로 의지하고 존경하기 때문에 그 염불 가락도 좋아하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귀에 익다보니 편안하게 느끼게 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객관적으로는 별로 듣기에 좋아 보이지 않는데도 소위 ‘우리스님’의 염불소리를 신도들은 좋아하는 것 같다. 출가 후 한참이 지나서도 사찰 어귀 확성기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염불 소리의 주인공에 대해 별로 궁금해 하지 않았다. 만행을 하다가 그저 낯익게 들리는 염불소리에 절에 가까웠음
새해벽두에 불이 났다. 국보1호인 숭례문이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마의 재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너무나 안타깝고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동안 방화에 따른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았고 초기진압에 실패한 것이 화근이 되어 국보 1호를 잃게 되었다고 서로 책임전가하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인류는 불을 발견하여 다루면서 급격한 문화성장을 이룩했다. 하지만 이면에는 불에 의한 문화 파괴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약탈과 함께 방화는 크고 작은 모든 전쟁의 수식어처럼 되어버렸다. 비단 불뿐만 아닐 것이다. 무엇이든 다루면 양화가 되지만 잘못 다루면 악화가 되기 십상이다.「보왕삼매론」에서는 모든 장애에 대한 긍정적인 면을 정확히 알려주고 있다. 인류의 문화수준을 한층 높여준 불이 하필이면 새해를 맞은 우리들 가슴에 큰 상
출가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이다. 얼마간 노스님(일타큰스님)을 시봉하였다. 틈만 나면 어느 스님의 도력이 가장 높은지 자주 질문하곤 했다. 그럴 때 마다 스님께서는 그저 빙그레 웃고만 계셨다. 어느 날 오후 노스님께서 지극한 고요를 즐기시며 옛일들을 회고하고 계셨다. 이 틈을 타서 도력 높은 스님을 알려달라고 졸랐다. 스님께서는 지나는 말로 조용히 ‘B수좌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공부를 할려면 B수좌같이 해야 할 꺼야.’라고 하셨다. 이후 한동안 온통 B스님뿐이었다. 지족암에 선원수좌들이 오면 B스님에 관하여 여쭈어봤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스님들은 대부분 어떠한 평가도하지 않고 다만 고개만 끄떡이고 마는 것이었다. 스님들의 공부 결과를 평가하는 데에는 어떤 객관화된 시험 같은 것이 없다. 그러니 어떻
혜암 큰스님께서는 오랜 세월 해인사 원당암에 계셨다. 불사하기 전 원당암은 스님께서 머무시기에 어울리지 않게 작은 암자였다. 스님께서 법문 하실 때면 작은 법당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법문을 훔쳐듣지 말라고 하지만 스님의 수행담을 통한 법문은 첫 발심한 행자에게는 직접 체험하는 냥 온 몸으로 받아들여 질 때라 매번 법당 뒷켠에 앉아 훔쳐 들으며 구법의 갈증을 달래었다. 스님께서 막 출가했을 때 부처님께서 하루 한 끼만 공양하셨다는 것을 몰랐다고 했다. 경을 보다가 부처님 당시 모든 출가 수행자들은 하루 한 끼만 먹었고, 훗날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근기가 약해서 저녁을 약으로 여겨 약석(藥石)이라 하고 먹었다는 글을 보신 스님께서는 ‘부처님께서 일종식 하라하셨고 당시에도 한 끼로 살았는데 부처님 제자인 나도
세상사 초연했던 맨발의 조실 스님그 모습 떠올리며 출가자 본분 다져 원만한 대화를 위한 지침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들었다. 타인과 충돌을 피하고 좋은 분위기로 대화하려면 삼가야 할 주제가 종교와 정치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다. 일상의 말과 행동과 생각까지도 종교를 떠나 살 수 없는 출가자들은 이 말에 의하면 애당초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 할 수 없는 부류에 속한다. 지난해는 유난히 정치에 관한 대화가 많았다. 올해도 총선이 있고, 또 종교적 신념을 정치적 이상과 결합하여 좋은 결과를 이끌어낸 무리들이 있어 아무래도 많은 국민들이 대화 주제를 다루는데 더욱 주의가 필요 할 것 같다. 정치와 종교에 관한 이야기 나누는 것을 경계하는 이유는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티베트 스님 미소에 봇물처럼 눈물 터져손수 얼굴 닦아준 자비로움 그리워 나이가 들수록 누구를 만난다는 일이 부담스러워진다고 한다. 또 새해가 시작 되었다.싫든 좋든 올 한해도 무수한 사람들을 만나야 할 것이다. 내가 누구와의 만남에 부담을 느낀다고 생각하다가 혹 나를 만나는 상대는 나에게 어떤 부담을 느끼지는 않을까 염려스럽기도 하다. 흔히 도력 높은 스님 일수록 어린아이같이 천진해진다고 한다. 만주에서 짚신을 만들어 오가는 사람들에게 보시하면서 생을 마감한 수월스님이 그렇다고 한다. 사나운 만주 개들까지 스님 앞에서 사나움을 멈추고 함께 어울렸다고 하니 한번 뵈올 수 없음에 그리움이 사무친다. 만남에 관해 얘기하다보면 보제존자 나옹화상의 발원이 항상 생각난다. 스님의 조석발원문에는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