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잘 살기(Well Being)와 잘 죽기 (Well Dying)가 국민들의 주요한 관심사로 부각된 것 같다. 우리가 가난하던 시절에는 한 끼라도 때우는 것이 문제였지만 이제 국가경제가 성장하여 다른 문제가 발생하였다. 국민들이 너무 잘 먹게 되어, 특히 육식을 많이 해서 비만, 당뇨, 고혈압 등 못 먹던 시절에 드물었던 성인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게 되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건강을 잘 관리하여 오래 잘 살자는 뜻에서 잘 살기, 즉 웰빙에 국민들의 관심이 고조되는 것 같다. 웰빙을 위해 음식조절, 운동, 명상 등 여러 가지 방법들이 제시되고 있다. 너무 다양한 방법들이 제시되어 갈피를 잡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잘 살기와 더불어 잘 죽기도 등장하였다. 오랫동안 병들어 고생하다가 죽는 것보다 잘
자기 PR의 핵심은 말하기 능력이다. 다른 사람보다 돋보여야 생존할 수 있는 시대다 보니 말하기는 늘 자신의 모습을 강조하고 포장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추세에서 듣기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경우가 있어 눈길을 끈다. 즉 일본 지방자치단체 중 8곳에서 새해부터 공립고등학교 입시에 국어 듣기평가를 도입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듣기를 강조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현대인들이 그만큼 듣기를 하찮게 여기고 있다는 반증이며 동시에 소통이 부재하고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주위를 둘러보면 사람사이에 얼마나 소통이 단절되어있는지를 쉽게 알 수가 있다. 가장 가깝다고 여기는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간에는 물론이고 부유층과 빈곤층, 신세대와 기성세대, 국민과 정부사이에도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경우를
불교는 역경(譯經)의 역사다. 역경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시대와 지역에서는 불교가 늘 융성했고 그렇지 못했던 지역에서 불교는 생명력을 잃고 말았다. 이러한 예는 불교사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구마라집과 현장법사가 인도말로 된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했기에 중국불교는 꽃 피울 수 있었으며, 티베트대장경이 아니었다면 티베트에서 불교는 뿌리내리지 못했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해방 후 교단의 온갖 혼돈 속에서도 불교가 제1종교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구한말 선각자들에 의해 번역된 한글 경전이 한 몫 톡톡히 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경전이 한글로 번역됐기에 올바른 불교에 대한 이해가 확산될 수 있었고, 불미스러운 교단의 다툼도 ‘본질이 아닌 현상’으로 간주할 수 있는 대
대한불교조계종이 대한민국 국회에 보기 좋게 당했다. 국회가 2월 19일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문화재관람료 인상 시 문화재청장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문화재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음에도, 조계종은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이틀이 지난 21일 오후 늦게 서야 겨우 법률안 개정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특히 19일 국회를 통과한 문화재보호법이 이미 3개월 전인 지난해 11월 20일 문화관광위원회가 법안심사소위원회의 보고를 받아 의결했던 내용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계종이 이러한 내용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조계종이 다른 부처는 몰라도 문화유산을 다루는 문화관광위원회 만큼은 불자의원들을 통해 꼼꼼하게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2500여 년 전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가르침을 전하시며 “자, 비구들이여.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떠나라. (…중략…) 비구들이여, 나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벨라로 가리라”고 선언하셨다. 사람과 하늘 모두의 이익, 행복을 위해 가르침을 전하라는 말씀과 더불어 스스로도 기꺼이 그 길을 가리라는 단호한 의지다. 여기서 가슴 서늘해짐을 느끼는 것은 오늘날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 그리고 조계종을 대표하는 총본산 조계사가 보여준 포교에 대한 근시안적 시각 때문이다. 설 연휴가 끝나갈 무렵 본지에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중국 항주 고려사의 신도회가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에게 보낸 이 편지는 조계사의 항주 고려사 운영
태고종이 남양주 도법사 뿐만 아니라 고양시 극락사를 몇 년 전에 교회 재단에 매각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불자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특히 두 사찰 모두 매각 과정에 한국불교 제2종단을 자처하는 태고종 총무원이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종단에 대한 신뢰 또한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매각 대금의 사용처까지 불분명하다 보니, 그나마 남아 있던 동정론마저도 자취를 감춰버렸다. 도법사는 절을 팔아 전승관 건립 기금으로 사용했다는 용처라도 밝혔으나, 총무원과 봉원사 일부 문중까지 연관관계가 있는 극락사는 도대체 얼마에 팔아 어디에 사용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실정이라니 어디서 신뢰를 구하고 어떻게 동정을 구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총무원을 비롯한 이해 당사자들을 향한 눈
600여년의 수명을 지녀 온 숭례문이 장렬한 불꽃을 내뿜으며 최후를 마쳤다. 임진왜란과 일제시대 6.25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신의 몸을 꿋꿋이 지켜온 숭례문이다. 최첨단의 방화 장비를 갖추고 더군다나 지척에 소방서를 두고 있는 서울 한 복판에서 숭례문은 왜 그리도 쉽게 자신의 몸을 던진 것일까? 70이 다된 한 노인의 방화, 사회적 불만이 ‘극장형 폭력’으로 표출된 사건이라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던진 사회적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방화를 미연에 차단할 수 없었던 관리부족, 방화가 난 후 수많은 소방차가 출동하고서도 화재를 진압하지 못한 점 등 우리 사회의 문화재 방재시스템의 허술함에 대한 국민들의 한숨과 분노가 극에 달해 있다. 또 그 책임 소재를 놓고 벌어지는 정치인들의 공방은 우리의 허해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제시한 정부조직개편안을 놓고 말들이 많았다. 여야협상을 통해 일부 고쳐지기도 했지만 정부조직개편안에서 드러난 새 정부의 혁신추진 방향을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정부조직개편안은 대통령 당선인의 철학과 비전이 담긴 집권 5년의 청사진일 것이다. 일 잘하는 실용정부를 만들기 위해 정부부처를 기능 중심으로 통합한다는 구상에는 동의한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추진력이 있었기에 대대적인 정부조직개편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새 정부가 추진하는 정부혁신의 방향은 잘못 잡혀 있다. 아마도 짧은 시간에 거대한 정부조직의 틀을 다시 짜다 보니 적지 않은 문제점들이 나타났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원인은 정부혁신이나 국정운영에 대한 기본 철학이 빈곤했기 때문이다. 많은 국민이 새 정부를 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 남대문은 그 정식 명칭이 숭례문이고 6백년의 역사를 간직한 국보 1호라는 것을. 양녕대군이 제액의 글씨를 썼다는 설이 있음을 아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정작 이 건물을 세운 건축가의 이름을 아는 경우는 드문 것 같으니, 역시 등잔 밑은 어두운 것 같다. 태조 5년(1396)에 시작된 숭례문 건설은 1398년 2월에 완공되었다. 1448년과 1479년 두 차례의 중수를 거치기는 했지만, 해체․수리를 했던 1962년까지 이 건물은 세월의 풍상을 굳건히 이겨냈다. 해체 시에 발견된 1396년 10월 6일자의 상량문은 당시의 대목이 법륜사의 각희(覺希)였음을 명기하고 있다. 대목이 설계로부터 시공에 이르기까지 건설 현장의 총체적인 지휘와 감독을 맡았던 점에 유의하면, 각희는 뛰
태고종 총무원이 교회 장로에게 매각한 남양주 도법사가 결국 신도들이 보는 앞에서 처참하게 헐리고 말았다. 창건주 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자신들이 직접 운영하겠다며 도법사 사수의지를 다졌던 신도들은 총무원의 냉담한 처사와 교회 측의 무자비한 법당 철거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고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속으로 머금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여야만 했다. 그러나 도법사 신도들은 그렇게 물러서거나 주저앉지 않았다. 잘못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의지를 새롭게 불태우기 시작했고, 결국 도법사가 철거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신도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마치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해 일을 처리하듯 일방통행식으로 도법사를 매각한 총무원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도법사 신도들이 자신들의 억울함을 법에 호소하고 나선 이
동국대가 로스쿨에서 탈락하면서 동국대를 비롯한 교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동국대는 교육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는 동시에 법적인 대응도 불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했고, 조계종 교구본사주지회의와 중앙종회 의장단도 이 문제에 공동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동국대와 교계의 이러한 반발은 정당하다. 여러 대학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듯 애초 선정기준이 모호해 그 결과에 대한 반발은 필연적이었을 뿐 아니라 특히 동국대의 경우 같은 수도권내에서 지역안배를 우선시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뛰어난 동국대가 예비인가에서 떨어지는 역차별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예비인가 탈락을 외부의 탓으로만 돌리기엔 아쉬움이 없지 않다. 교육부 발표가 있기 전부터 동국대가 로스쿨 선정과 탈락의 문턱을 오가고 있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부처는 항상 구족돼 있어 만족할 줄 아는 것이며, 중생은 구족돼 있어도 부족하다고 보는 것. 향을 싼 종이에는 향내가 나고, 생선을 싼 종이에는 비린내가 나듯이, 부처님을 믿으면 좋은 이웃이 된다.이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곁에는 늘 누군가 이웃이 함께 살고 있다. 그와 꼭 마찬가지로 나는 언제나 누군가의 이웃이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연 관계 속에 서로 이웃하며 살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옛 선현들은 이웃의 관계를 이와 잇몸의 관계로 비유하였다. 서로 의지하며 돕고 살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관계를 잘 표현한 말이 아닐까 할 정도로 적절하다. 그래서 ‘이웃사촌’이라고 하는 말도 일리 있는 속담으로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다.그 이웃 중에는 세 가지 부류가 있다. ‘좋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