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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해성사 주지 월도 스님

“불교와 신도들 위한 일이라면 어느 때 어디라도 가야죠”

부친 따라 ‘구인사’와 인연
초등‧청소년 학생회 활동

천태종 제2대 종정 대충 
대종사 친견 후 출가 단행

춘천 중심 강원 복지 ‘활기’
천태복지재단 상승세 기여

삼운사‧대광사 불사 성공
해성사 불교회관도 회향

시민도 사찰 공간 활용
지역주민과 함께 ‘호흡’ 

대규모 시설 잘 활용하면 
김해 대표 도량 자리매김

“이젠 전법에 좀 더 매진”
‘개이성불도’ 진수 전할 터

법화경 강설‧교양대학 개설
‘유튜브 월도 TV’ 3만 돌파

해성사 주지 월도 스님은 “잠시 들른 사찰에서라도 법당을 지나가며 부처님을 향해 합장하면 불자”라며 “불자답게 사는 법,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해성사 주지 월도 스님은 “잠시 들른 사찰에서라도 법당을 지나가며 부처님을 향해 합장하면 불자”라며 “불자답게 사는 법,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사진=주영미 기자

김해 해성사(海星寺)는 도심 사찰이자 종합불교회관이다. 지하 2층, 지상 3층, 연 면적 8,481㎡(2570평) 규모로 조성됐다. 지하 2층은 주차장이고, 지하 1층에는 국제회의를 열 수 있는 컨벤션 센터가 갖춰져 있으며 1층에는 종무소 및 관음전, 2층에는 대법화당, 3층에는 대웅보전이 들어서 있다. 2017년 12월 해성사 종합불교회관 기공식을 가진 후 2022년 11월 대웅전에 삼존불을 봉안하며 낙성식을 봉행했으니 조성 기간만도 5년인데, 그 불사를 이끈 주인공은 지금의 해성사 주지 월도(月道) 스님이다.

부친은 신심 돈독하기로 정평 났던 천태종 신도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버지의 손을 잡고 구인사를 다녔던 소년은 청년회 활동에도 열성을 보인 후 숙연인 듯 당시 천태종 제2대 종정으로 주석하고 있던 대충(大忠‧1925∼1993)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1987)
“여름 안거를 시작하는 날이었습니다. 종정 스님의 법문을 들으려 500여 명의 불자가 운집했는데, 저는 청년이라는 ‘특혜’를 받아 마당이 아닌 법당에 앉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청법 3배를 올리는 순간 천태종 종정 대충 스님의 눈과 마주쳤다. 

“종정 큰 스님의 푸른 안광(眼光)이 제 몸에 꽂힌듯했습니다. 그 순간 형언할 수 없는 환희가 차올랐습니다.”

처음엔 우연이겠지 싶었는데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종정 스님의 눈을 떠난 푸른 안광은 청년의 온몸에 꽂혔다. 그해 부친에게 출가의 뜻을 밝히니 “하루만 생각해 보자!” 했다. 

“출가 이유를 물으셨습니다. 세속에서 성실히 사는 건 의미 있지만, 삭발염의하고 부처님 법을 전하는 게 더 가치 있는 삶이라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부친은 청년을 천태종 종정 대충 스님 앞에 앉혔다. 출가의 뜻을 들은 종정 스님은 한 마디로 허락했다.

“빨리 들어와라!”

당시 천태종으로 출가하려는 불자들은 줄을 이었더랬다. 출가 허락을 받는데 1개월은 물론 3개월 혹은 6개월도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첫 친견의 자리에서 승낙을 받았으니 월도 스님의 출가는 숙연이었을 것이다. 

부친은 40년에 이르도록 단 한 번도 구인사 안거를 빠지지 않을 만큼 정진력도 대단했던 거사였다. 또한 스님들의 안거가 여법하게 진행될 수 있다면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정성을 다해 도왔다. 하여, 1년의 다섯 달은 구인사에 머물렀는데 밭에서 풀 베고 산에서 나무해 오고 겨울이면 장작을 패곤 했다. 이런 일이 있었다. 아들이 출가한 도량에서 아버지가 힘겨운 일만 하니 은근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절에 오셔서는 정진만 하시고 일은 좀 덜면 안 되겠습니까? 제가 좀 불편합니다.”
“그게 그리 창피한 일입니까? 노력은 하지 않고 대접을 받는 게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지요. 도둑질하는 게 아니고, 부처님 가르침에 어긋나게 일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주경야선(晝耕夜禪) 실천 현장인 이곳에서 손톱이 깨지고 무릎이 좀 벗겨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날 부친의 일언은 지금도 큰 울림으로 남아 있다.

강원도 춘천시노인복지관을 위탁받아 운영하며 지역복지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은 장본인이 월도 스님이다. 복지관 소유의 버스가 없어 종단으로부터 ‘중고 버스’를 시주받았고, 그 버스가 노후 되자 지자체에 ‘버스 지원’을 요구했다. 당시의 지원요청 이유는 강원도 복지계에서도 회자 되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복지는 누구의 전유물이 아니다. 산간벽지에 사시는 노인분들도 혜택을 받아야 하는데 그분들 대부분은 승용차가 없으니 복지관을 이용할 기회조차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신형 버스로 외진 곳의 노인분 모두 복지관으로 모셔왔습니다. 점심값 정도는 내지 않고 편안히 복지관을 이용하도록 했습니다.”

강원도 노인복지관협회장, 노인보호전문기관장에 이어 천태종 복지재단 이사‧사무총장직을 수행했던 월도 스님은 우면‧청솔종합사회복지관장도 역임했다. 현재 천태종 복지재단과 연관된 시설의 종사자만도 5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태종 복지재단 설립(1999) 이후 이처럼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데 월도 스님의 역할은 실로 컸다. 

해성사 종합불교회관 낙성식.
해성사 종합불교회관 낙성식.

서울 명락사에 이어 마산 삼학사 주지 소임을 보았던 월도 스님이 김해 해성사 주지에 임명된 건 2018년 12월이다. 해성사 불사가 시작된 지 딱 1년째였다. 춘천 삼운사, 분당 대광사 등 종단의 대작 불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월도 스님에게 종단이 해성사를 맡긴 이유는 자명하다. ‘해성사 종합불교회관 불사 원만 회향’이다. 종단 일각에서는 종교인구 감소 추세에 비춰볼 때 원래 계획한 불사 규모가 너무 크다는 우려를 했다. 

“불교‧사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고찰을 만납니다. 자연스레 ‘언젠가 한 번 참배하겠다’라는 마음도 냅니다. 반면 천태종 소속의 사찰 역사는 그리 길지 않으니 불특정 다수와의 만남 자체가 다소 어렵습니다. 불자는 물론 시민들과도 함께하는 사찰에서 그 난제의 해결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게 제 소신이었습니다.” 

실용성에 초점을 맞춘 설계 변경은 필연이었다. 높이는 원래의 계획보다 낮아졌는데 폭은 넓어졌다. 결과적으로는 규모가 대폭 축소되지 않은 셈이다. 컨벤션 센터를 비롯해 욕실을 갖춘 템플스테이‧스님 전용 숙소, 신도단체 휴식 공간 등 지하 주차장을 제외한 전 층에 대중이 머물 방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아울러 이주노동자를 위한 법당도 조성해 그들의 불심도 지켜주려 한다.

해성사 키즈 카페.
해성사 키즈 카페.

‘카페’와 ‘키즈 카페’는 신앙 공간으로서의 사찰 역할과 시민도 찾을 수 있는 종합회관 기능을 함께 수행해 가겠다는 해성사의 원력을 잘 보여준다. 고품격 커피는 물론 절에 보시한 과일을 재료로 만든 ‘신선한 주스’를 곧 공급할 예정이다. ‘키즈 카페’를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도 그럴 게 전문가에 설계를 맡겨 철저한 안전과 ‘엄청난 재미’를 한껏 끌어냈기 때문이다. 이 시설에 투자한 정재만도 1억 5000만 원이다. 부모는 카페에 머물고 아이들은 ‘키즈 카페’에서 놀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해성사 어린이합창단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종단의 의견을 수렴하면서도 전직 주지 스님의 원력을 잇는 한편 미래지향적 전법의 방편을 고뇌한 흔적이 역력했다.

가야의 역사를 알리는데도 열성적이다.

“가야의 역사는 불교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유적지나 박물관 등을 돌아보며 현장에서 가야의 숨결을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소풍 가듯 떠나서 만나는 가야’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전설 속 이야기’가 아닌 ‘역사 속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주변 역사가 아닌 한국 역사의 중심에 가야가 서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한 가지가 궁금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한 건 2019년 12월이다. 주지 취임 1년 만에 직격탄을 맞으며 엄청난 위기에 직면했는데 어찌 극복했던 것일까?

“종단의 지원과 해성사 신도님들의 간절한 기도가 있었기에 회향할 수 있었습니다.”

50명 이상의 모임이 금지된 당시 해성사 1층에는 요사 공간이 제법 있었다. 2층 법당에서 법회를 열면 각 방에 설치된 텔레비전을 통해 보고 들을 수 있도록 했던 게 주효했다고 한다. 

“법회를 마친 후의 공양이 제일 어려웠습니다. 묘수는 없었습니다. 부족한 찬이었지만 정성을 담은 도시락을 나누어 드렸습니다. 길가나 승용차에 앉아 드셨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귀가하셔서 드셨습니다. 국수 공양 때면 육수와 면을 나누어 담아 드렸는데 참 맛나게 드셨습니다. 김해 불자님들의 불심 응집력은 대단합니다.”

창원 원흥사 야경.
창원 원흥사 야경.

오지 않을 것 같던 불자들의 발길은 시간이 흐를수록 잦아졌다. “복 짓는 기도 하고 마음 맑히는 법문 듣자”라며 서로서로 다독이고 불심을 키웠다. 100명에 이르더니 이내 200명을 훌쩍 넘어섰다. 현재는 대법회가 열릴 때면 400여 명에서 500여 명이 참석한다.

또 다른 불사 원력이 있는지 물으니 “마음 불사”라고 했다.

“저는 늘 ‘불교와 신도들을 위한 일이라면 어느 때 어디라도 간다’라는 소신으로 살아왔습니다. 그 소신의 인연이 닿아서였는지 돌이켜 보면 크고 작은 절 8개를 짓는 일에 매진했습니다. 모두 의미 있는 불사인 건 틀림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신도님들에게 ‘물리적 시주’를 너무 많이 강조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이제부터는 부처님 법을 좀 더 많이 말하고 싶습니다. 제 언어 속에 불법이 좀 더 깊이 스미도록 애써보려 합니다. ‘모두의 마음속에 불성이 있음’을, ‘이미 성불에 이르렀음을’ 체득할 수 있도록 돕고 싶기 때문입니다.”

삼운사 주지 당시 ‘춘천금강불교대학’을 처음으로 개설한 월도 스님은 3월 2일 ‘해성사 제1기 금강불교대학’ 입학식을 봉행했다. 그리고 매주 목요일에는 천태종 소의 경전인 ‘법화경’을 월도 스님이 직접 강설하는데 150명이 듣고 있다. 유튜브 ‘월도 스님 TV’를 통해서도 법을 전하고 있는데 2022년 초에 구독자 3만명을 돌파했다. 금강불교대학, ‘법화경’ 강설, 월도 스님 TV는 모두 ‘전법’을 향하고 있다. 전법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월도 스님은 출가 직후 구인사에서 정진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낮에 너무 많은 일을 하다 보니 저녁 수행의 시간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들면서 ‘언제 깨우치나?’ 하는 조바심이 증폭됐다. 천태종 종정 대충 스님을 시봉 하던 중에 여쭈었다.

“저는 언제 도를 이룰 수 있습니까?”
“도를 이루려는 그 마음을 놓아. 여기서(구인사) 살다 죽는 게 도(道)야!”

주경(晝耕)과 야선(夜禪)이 둘이 아니라는 뜻이다. ‘평상심이 도’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음이다. 종정 스님의 그 한 말씀에 조바심은 단박에 사라졌다. 선배 스님들이 ‘월도!’하고 불러만 주어도 행복했다고 한다.

“직무를 수행하며 여러 일을 겪다 보니 누가 ‘월도!’하고 부르면 짜증부터 났습니다. 심지어는 저도 모르게 상대를 업신여기는 말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발생했겠습니까? 맞는 말이라 해도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법인데 호되게 당했다고 생각한 사람의 상처는 얼마나 깊었겠습니까? ‘여기서 죽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을 새삼 알게 됐습니다.”

월도 스님의 강설, 법문은 아상(我相)을 깨려는 과정이자 불자들도 함께 정진해 가자는 제언이기도 하다.

“내가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해야 할 용기도 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좀 편안해졌습니다.”

종단일에 관한 한 공심에 따라 행보할 것이라는 뜻일 터다.

저서 ‘마음이 머무르는 곳에 주인이 되면’ ‘소풍가듯 가볍게’
저서 ‘마음이 머무르는 곳에 주인이 되면’ ‘소풍가듯 가볍게’

교계에 당부할 메시지를 청했다.

“법회 전에 아이들이 법당에서 뛰어놀면 어떻습니까? 적막함이 성스러움을 대변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짧은 치마 입고 참배하면 또 어떻습니까? 법문 자주 듣다 보면 알아서 편한 옷 찾습니다. 불자답게 사는 법,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잠시 들른 사찰에서라도 법당을 지나가며 부처님을 향해 합장하면 불자입니다.” 

열린 마음의 스님이 이 도량에 머무는 한 해성사는 김해지역 대표 도량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월도 스님은
1987년 대충 스님(천태종 제2대 종정)을 은사로 출가. 동국대 경찰행정학 박사(동국대). 강원도 노인복지관협회장, 우면‧청솔종합사회복지관장, 천태종복지재단‧종단협의회 사무총장, 천태종 총무부장, 대광사‧대안사‧명락사‧삼학사‧삼운사 주지와 창원불교연합회장, 서초구 사암연합회장 등을 역임했다. 경찰청장 감사장,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저서로는 ‘마음이 머무르는 곳에 주인이 되면’ ‘소풍가듯 가볍게’ 등이 있다. 현재 김해 해성사와 창원 원흥사 주지 소임을 보고 있다.

[1672호 / 2023년 3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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