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듯이 우리는 먹는다는 행위에서도 걸림이 없어야 합니다. 어떤 음식이라도 그 앞에서 탐심을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비로소 남과 나눌 수 있는 배려의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이 마음이 수행의 첫 단계이자 사찰음식이 갖는 정신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이제 연재의 마지막을 즈음해 그간 풀어 온 이야기의 맺음을 할까합니다. 사찰음식의 모호하던 정의나 잘못 인식하고 있었던 부분에 대해 연재했던 저의 소견이 조금이나마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었길 바라며 이를 바탕으로 바른 식습관을 가진 불자, 보살계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 음식문화전반에 걸쳐 사찰음식이 꾸준히 주목받고 있으며, 다양한 종류의 채식주의가 함께 소개되고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건강을 위하고 지구환경을 위해 채식을 하는 일련의 일들이 단지 유행처럼 지나가는 관심이 아니길 바랍니다. 그래서 이 소박한 음식문화가 특별식이 되거나 살을 빼기 위한 일시적인 목적이 아닌 우리의 일상식(日常食)으로써 정착됐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세상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다양해지고 광범위해지면서 선택의 폭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산만해지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몸에 좋다는 기사가 나오면 순
얼마 전에 잘 알고지내는 보살님 한 분이 연락이 왔습니다. 갑작스럽게 친구를 먼저 보냈다는 얘기를 담담히 하시면서 불교 경전공부와 마음공부를 해 오고 있던 중이라 좋은 마음으로 잘 보낼 수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올바르게 불법을 알고 공부하게 되니 큰 슬픔에도 동요됨 없이 먼저 간 친구와의 좋은 기억들을 추억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더 좋은 곳에 나기를 발원할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그러면서 말미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을 얘기하셨습니다. 장례식장의 음식문화에 대해서 얘기를 하시며 우리나라의 일생의례를 보면 기쁜 날이건 슬픈 날이건 간에 불자
사찰에서는 대중이 많이 모이는 법회나 크고 작은 행사가 있으면 으레 비빔밥을 메뉴로 선정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비빔밥은 바쁜 일상에서 생겨난 간편식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일일이 찬을 갖추지 않더라도 밥 위에 갖가지 재료를 올려 쓱쓱 비비기만 하면 한 끼 식사로도 손색없는 메뉴이기에 특히 대중이 많은 큰 행사에 제격입니다. 이는 나물의 잎, 줄기, 뿌리 부분의 영양이 골고루 잘 갖추어진 재료에 다섯 가지 오방색의 조화로움이 어우러져 한국 특유의 매운 맛인 고추장과 조화를 이룰 때 비빔밥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나물의 모양과
농사철이 되면 무엇보다 날씨에 많은 신경을 쓰게 됩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온 현상이 봄과 여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한 낮의 봄 더위가 여름과도 같은 날이 여러 날 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새들은 정겹게 지저귀며 노니고, 경내 가득히 행자들의 독송소리가 도량을 맑히며, 계곡물은 쉼 없이 흐르고 채소들은 잘 자라고 있습니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묵묵히 맡은 행을 하는 그 모습이 곧 수행인 것입니다. 사찰을 오가는 길에 채소들을 보며 눈길 한 번 보내고 잘 자라길 기원하는 마음을 보태주면 그것이 보살의 마음이며 불교에서
‘관불형상경(灌佛形像經)’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세상에는 발심하고 소원을 이루려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보시할 때 다소(多少)를 헤아리지 말고 남을 다 충족하게 하라. 그 일을 마치고 남는 음식이 있더라도 다 먹지 말고, 절을 지키고 법을 지니는 여러 스님들에게 보내어 모두 나누어 먹게 하라. 물건을 낼 때는 마땅히 복이 생기기를 바라고 다투어 그것을 나누어 가지고 집에 돌아가 처자에게 주지 말라. 그렇게 주면 이것을, 돌 위에 심은 종자가 다 말라 끝내 날 때가 없는 것이라 한다. 지금 보시하면 앞으로의 복이 많아 스님들
누구나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합니다. 나중에 못 먹을 것을 생각해서 더 먹거나 남겨두지 말고, 이전에 못 먹은 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더 먹거나 챙겨두지 말고 지금 배고픈 만큼만 먹어야 합니다.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로 먹지 않으면 어지럽고 짜증이 나고 무기력해집니다. 이렇게 되면 먼저 내가 괴롭고 다음은 함께 있는 상대방이 괴롭습니다. 힘들어하고 무기력하게 있는 모습만으로도 옆 사람이 신경을 쓰고 염려하게 됩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짜증까지 낸다면 걷잡을 수가 없게 됩니다. 이것은 내 마음이 괴로움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 먹는 것이며
주변에서 유독 눈에 띠게 자주 아픈 사람을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스님들도 대중과 함께 소임을 맡아 살다보면 간혹 각자의 견해 차이로 무수한 시비의 경계에 치우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현재에 집중하고 일념정진하지 않으면 쉽게 괴로움 속에서 해매이게 됩니다. 괴로움은 마음을 힘들게 하고 마음은 원활히 돌아가는 내 몸의 장기들을 막히고 멈추게 하며 마지막 단계에 몸으로 고통의 신호를 보내옵니다. 실은 몸이 아프기 전 예방에 신중을 기울여야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욱 어리석은 일은 몸이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오면
연일 나라밖에서는 자연재해인 지진으로 많은 희생자가 나고 있는 안타까운 소식들이 들리고 있습니다. 또 안으로는 황사와 미세먼지, 세찬 강풍 등 예측불허의 자연환경 변화들이 건강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늘 반복되는 재해와 맞닥뜨리면 예방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이내 무뎌지고 맙니다.다시 한 번 사찰음식을 통해 수없이 반복해도 모자라지 않을 예방책은 ‘육식의 절제, 채식과 소식’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식생활의 작은 습관 하나가 나비효과처럼 인류의 큰 재앙을 불러 올 수도 있으며 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눈이 보인다. 귀가 즐겁다. 몸이 움직인다. 기분도 괜찮다. 고맙다. 인생은 참 아름답다.” ‘홍당무’의 저자 쥘 르나르의 매일 아침 기도문입니다. 몸이 허약했던 저자는 동화에서처럼 자신을 편애하는 가족 간의 갈등 속에서 늘 사랑에 목말라하면서도 이렇게 하루를 감사함으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분명 스스로 깨닫고 진정한 자유를 얻은 사람이란 생각이 듭니다.이처럼 우리도 잠에서 깨어나 매일 아침 10분 정도라도 감사의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 작은 감사함이 하루를 풍요롭게 만들고 또 시작하는 순간부터 자비행을 실천 할
불영사에서는 홍송(紅松)이 우거진 숲 사이로 울긋불긋 진달래 피어나고 개나리가 나지막이 울타리를 두르면 스님들은 포행길에 발길 드문 곳을 찾아 진달래꽃 한 바구니 소복이 채워 내려옵니다. 이런 특별한 날엔 모두가 모여 화전에 화채를 곁들여 봄빛향연을 즐기기도 하지요. 그리고 도량은 밭을 갈아 거름을 뿌리고 해마다 수확한 채소들의 밭 자리를 바꿔가며 농사지을 준비를 합니다. 그 사이 참나무 원목이 길게 늘어선 표고버섯밭에서는 종균을 넣어 둔 구멍마다 표고버섯들이 하나둘 고개를 내밀기 시작합니다. 때에 맞춰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해
신심 가득한 불자들이 깊은 산골 마다않고 성지순례를 오곤 합니다. 이들은 의지처를 찾아 부처님 전에 간절한 바람들을 쏟아내고 저는 그 바람들을 모아 세상을 밝히는 큰 희망이 되기를 두 손 모아 회향합니다. 순례단들은 공양간의 식당을 이용하게 되는데 절에서 미리 공양을 준비할 때를 제외하고는 각 사찰에서 마련한 음식이나 각자의 공양물로 공양을 하게 됩니다. 적게는 30여명에서 많게는 100여명이 넘는 불자님들이 한꺼번에 도시락과 컵라면 등을 펼치면 다양한 세간의 음식냄새가 순식간에 청정한 도량을 휘저어 버리기 일쑤입니다. 이러한 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