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산문도회 대표 세민 스님과 태원 스님 등은 1월9일 아름다운 동행에 자비나눔기금 3000만원을 전달했다. 가산문도회가 지난 1월2일 원적에 든 조계종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49재를 서울 조계사에서 봉행하기로 결정했다. 가산문도회는 최근 문도회의를 열고 지관 스님의 49재 막재를 2월19일 오전 조계사 대웅전에서 봉행하기로 뜻을 모았다. 당초 문도회는 지관 스님의 49재를 초재부터 6재까지는 스님이 주석했던 서울 정릉 경국사에서, 마지막 7재는 해인사에서 지내기로 했지만 신도들의 교통편 등을 고려해 서울 조계사에서 지내기로 결정했다. 이에 앞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도 지난 1월9일 가산문도회 대표 세민·태원 스님
▲1963년 법보강원 졸업 기념사진. 앞줄 우측 두 번째가 당시 강주였던 지관 스님이다. ▲1957년 해인사 시절의 지관 스님. 사진을 보관해 놓은 앨범에는 ‘植木타가(나무를 심다가) 손가락을 다쳐 치료를 받고 오다가 一柱門 앞에서’라고 적혀 있다. 우측 사진은 해인사 법보강원 강주 시절의 지관 스님. ▲지관 스님은 2005년 11월 조계종 제32대 총무원장에 취임했다. 스님은 안정과 화합, 수행 풍토 진작을 기조로 종단을 이끌며 화합의 시대를 열어나갔다.
MB정부 종교편향 특종보도로 범불교대회 성사후 초청격려입원 직전 본지 후원전에 ‘법보대광명변조시방계’ 친필기증 ▲지관 스님 “우리 종단에도 기관지(불교신문)가 있기는 하지만 제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은 법보신문입니다.” 제32대 총무원장 재임 당시 지관 스님의 ‘법보신문’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각별했다. 종단기관지인 ‘불교신문’의 당연직 발행인임에도 지관 스님은 2008년 10월2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법보신문 창간 20주년 기념대법회’에 증명법사로 동참해 ‘법보신문’에 대한 지지의 뜻을 밝혔다. 스님은 500여명의 사부대중에게 “법보신문은 교계 유일의 독립언론으로, 불교신문은 종단이 뒤에 있고 여타 다른 언론들도 사
오랜 학문·수행서 묻어난 특유의 화법으로 가르침 전해때론 촌철살인 같은 단호함, 때론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지관 스님 조계종 제32대 총무원장을 역임한 지관 스님은 재임기간 동안 수많은 어록을 남겼다. 오랜 학문과 수행에서 묻어나는 깊은 혜안이 담긴 특유의 화법이었다. 때론 촌철살인과 같은 단호함을 보였고, 때론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따뜻함으로 대중들을 감싸 안기도 했다. “스스로 경책하며 국민들의 어려움을 바로 헤아려 공직자의 소임을 다하시길 기원한다.” (2006년 7월, 불자지방자치단체장에 죽비를 선물하며) “승가는 곧 대중을 말하는 것으로 크던 작던 전체 대중의 공의를 모아 일을 결정하는 것이 승가의 전통이다. 자
▲ 2009년 10월 총무원장 퇴임식에 함께 한 혜총 스님과 지관 스님. “지관 사숙님이 가시는 곳마다, 인연 닿는 곳마다 부처님의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부처님 꽃이 피니까 사람들도 진면목을 바르게 볼 수 있었던 겁니다. 큰스님 감사합니다.” 1월4일 지관 스님의 법체를 모신 해인사 보경당에서 조계종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을 만났다. 보경당에서 금강경 독송이 끝나가자 이내 대중 스님들 대부분이 각자의 방사로 돌아갔으나 혜총 스님은 영정을 바라보면서 말없이 앉아 있었다. 생전 유지대로 꽃 장엄 없이 흰 천으로 꾸민 소박한 영단, 큰스님을 바라보던 혜총 스님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스님이 바로 꽃이야, 사숙님의 삶 그대로가 부
▲60년만에 고향을 찾은 지관 스님이 마을주민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경북 포항시 청하면 유계리가 고향인 지관 스님은 1947년 출가 이후 친인척들의 방문에 한결같이 냉담했다. 출가자가 속가의 인연에 얽혀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 스님이 2010년 4월, 60년 만에 고향을 방문했다. 그때 문중과 마을사람들은 스님에게 ‘고향방문기념비’를 요청했고, 이에 스님은 3200여자의 비문을 썼다. 이 중 스님이 스스로 밝힌 출가 동기와 마지막 게송 부분의 일부를 게재한다. 편집자 부친께서는 유계리 678번지의 옛 집터에서 9세의 맏아들을 잃고 시름에 잠겼다가 옥녀직조형(玉女織造形)인 이 자리로 옮기면 후손이
한국불교 대표적 강백으로 ‘고승비문’ 등 수많은 저술 징계자 사면·범불교대회 등종단화합·불교자주권 수호 ▲2009년 10월30일 조계종 총무원장 퇴임식을 마치고 사부대중의 축하를 받으며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을 나서고 있는 지관 스님. 지난 1월2일 원적에 든 조계종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불학연구의 최고 권위자이자 종교지도자로 한국불교의 중흥을 견인해 온 선지식이었다. 지관 스님은 1932년 포항 청하면 유계리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16세 때인 1947년 합천 해인사에서 당대 최고의 율사로 칭송 받던 자운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1947년 성철·청담·보문·우봉 스님 등이 주도한 봉암사 결사에
"무상한 육신으로 연꽃을 사바에 피우고허깨비 빈 몸으로 법신을 적멸에 드러내" -사세게 중에서 “다비식 간소하게” 당부…정부, 금관훈장 추서 ▲지관 스님 대강백으로, 종교지도자로 치열한 연구열과 넉넉한 웃음으로 세상에 큰 족
▲지난 1월2일 원적에 든 지관 스님의 49재 초재가 8일 오전 경국사에서 봉행됐다. 불학의 최고 권위자로 종교지도자로서 평생 한국불교의 중흥을 위해 헌신하다 지난 1월2일 원적에 든 조계종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49재 초재가 1월8일 오전 10시 경국사에서 봉행됐다. 가산문도회는 1월8일 오전 경국사에서 스님 50여명과 신도 100여명 등이 동참한 가운데 봉행된 초재를 봉행하고 “스님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이날 초재에서는 당초 다비식 이후 수습된 지관 스님의 사리 등이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사리 수습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1월15일 경 2재 때 공개하기로 했다. 세민 스님은 “지난 6일 다비식 직후 어제 늦게 습골
▲해인사 연화대에서 진행된 지관 대종사의 다비식. 평생 불교학과 한국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했던 지관 스님은 그렇게 세연을 마감하고 대자유인의 길에 들어섰다. 지난 1월2일 원적에 든 조계종 전 총무원장 지관 대종사의 영결식이 1월6일 오전 11시 법보종찰 해인사에서 엄수됐다. 조계종 종단장으로 진행된 영결식에는 종정 법전 스님을 비롯해 총무원장 자승 스님, 원로의원, 교구본사주지 등 종단 주요 스님과 최광식 문화관광부 장관 등 정관계 인사 등 사부대중 2만여명이 동참,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오전 11시 조계종 24개 교구본사가 일제히 명종 타종을 시작으로 진행된 영결식은 삼귀의, 어산 어장 동
방송을 통해 부음을 듣고 먼저 떠오른 지관 스님의 모습은 “홍 신부! 언제 밥 한 번 먹자”라며 바라보던 맑은 미소였다. 나는 대략 13년 전부터 8년 간 7대 종교협의체에서 천주교 실무 대표로 일한 적이 있었고 그 때 그 협의체의 상임대표이셨던 지관 스님을 지근거리에서 자주 모신 경험이 있다. 그 당시 7대 종교 대표님들은 큰 행사에나 오시고 거의 모든 일은 각 종교의 실무 대표들이 수행했다. 그 때는 남북 교류에 7대 종교가 모두 적극 참여할 때라 실무를 맡았던 나로서는 보통 일이 많은 게 아니었다. 어느 날 지관 스님은 분주하게 현장을 누비는 나를 보시곤 일부러 가던 길을 멈추시고 팔을 당겨 조용히 귀속 말을 주셨다. “홍 신부! 언제 밥 한 번 먹자.” 격려의 말씀치곤 참 따뜻하고 기분 좋은 말
▲정부가 지관 대종사에 대해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정부가 지난 1월2일 원적에 든 지관 대종사에 대해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조계종은 1월4일 “지관 대종사가 한국 문화예술발전에 공을 세워 국민문화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을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문화관계 최상급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금관문화훈장은 문화·예술발전에 공을 세워 국민 문화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것으로 최고 등급의 훈장이다. 한국불교의 대표적 학승으로 추앙받아 왔던 지관 대종사는 금석문 연구 등 뛰어난 연구와 저술활동을 해왔다. 특히 지난 1983년부터 2012년까지 진행된 불교대백사전인
▲지관 스님과 쇼겐 스님이 지난 2009년 5월 여주 신륵사에 인류화합공생기원비를 건립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관 스님과 돈독한 친분을 다져왔던 것으로 알려진 일한불교교류협의회 회장 미야바야시 쇼겐(宮林昭彦) 스님이 스님의 원적 소식을 접하고 조전을 보내왔다. 미야바야시 쇼겐 스님은 1월4일 조전을 통해 “가산 지관 스님의 입적을 슬퍼하며 마음으로부터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스님은 이어 “생전 오랜 세월에 걸친 지도와 깊은 우정을 감사한다”며 “특히 한일불교교류를 위해 진력하고 인류화합공생평화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신 것에 경의를 표한다”고 추모했다. 지관 스님과 쇼겐 스님은 같은 나이로 2006년부터 매
▲금관문화훈장. 정부가 지난 1월2일 원적에 든 지관 대종사에 대해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최광식)는 최근 “지관 스님은 한국불교 최고의 학승으로서 뛰어난 연구 업적으로 불교학 및 불교문화 발전에 탁월한 성과를 낸 분”이라며 “문화훈장의 최고 등급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문광부는 공적심사위원회를 거쳐 행정안전부에 추천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광부 관계자는 “현재 행안부에서 심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르면 5일 오후께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화훈장은 문화·예술발전에 공을 세워 국민 문화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2일 원적에 든 지관 대종사의 법체가 출가본사인 해인사로 이운됐다. 지관 대종사의 법체가 해인사를 품은 가야산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대종이 울리고 법설(法雪)이 내렸다. 1월3일 오전 11시 서울 경국사를 떠난 조계종 전 총무원장 지관 대종사의 법체는 오후 4시께 가야산 해인사에 도착, 경내 보경당에 안치됐다. 대종사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금강경’ 독송이 끝날 즈음 스님의 원적을 슬퍼하기라도 하듯 새하얀 눈이 내려 가야산 전체를 하얗게 뒤덮었다. 어느 불자가 말했다. “지관 스님의 은사인 자운 큰스님의 입적 당시에도 이렇게 눈이 내렸었는데…. 그 때처럼 마치 산하대지가 지관 스님의 법체를 맑은 마음으로 맞이하고
지관 대종사의 원적과 관련해 정치권도 일제히 논평을 내고 스님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한나라당 황영철 대변인은 1월3일 논평을 통해 “한국불교의 대표적 학승이셨던 지관 스님의 입적 소식에 온 불교계가 큰 슬픔에 빠졌다”며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 황 대변인은 “지관 스님은 총무원장을 지내며 화합과 안정의 기틀을 닦았고, 사재를 털어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을 개원, 불교대사전을 편찬하는 등 일생을 불교학 연구에 열정을 다한 분이었다”며 “스님의 입적으로 또 하나의 큰 별을 잃었지만, 스님의 고귀한 가르침은 영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종식 통합민주당 대변인도 이날 논평을 내고 “사회의 분열을 치유하신 덕망 높은 큰 스님의 입적을 깊이 애도한다”며 “큰 스님이 남기신 사회분열의 치유와 통합, 자비
지관 대종사의 원적과 관련해 조계종은 물론 사회적으로 추모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청정승가를 위한 대중결사(의장 만초 스님, 이하 대중결사)가 애도문을 발표했다. 대중결사는 1월3일 애도문에서 “불교계와 사회의 원로로서 든든한 받침목이 되어주셨던 지관 대종사께서 열반에 드셨다”며 “대중결사 회원들은 시민들과 함께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대중결사는 이어 “지관 대종사께서는 1700여년의 한국불교를 연구하고 정리해 온 학승이셨다”며 “이런 스님의 노력으로 한국불교학은 역사에 걸맞은 깊이를 갖출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대중결사는 또 “지관 스님은 엄혹한 시대의 등불이었다”며 “종교편향정책으로 불교가 배척받을 때 정부를 향해 경책을 들어 무너져가는 불교의 자부심을 세웠고, 부당한 공권력
▲가톨릭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애도 메시지. 가톨릭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조계종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원적을 애도하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정 추지경은 1월3일 애도문에서 “지관 스님은 평생 학문에 정진하며 고통 받는 중생들에게 위로와 사랑을 주셨던 큰 어른이었다”며 “지관 스님의 입적을 진심으로 애도하며 불자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정 추진경은 이어 “지관 스님과의 인연을 맺었던 것에 감사를 드린다”며 “부디 극락왕생하시어 편안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바란다”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총무원장 봉직 당시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와 한국
▲지관 스님이 지난해 9월 세연이 다했음을 직감한 듯 지병인 천식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 남긴 사세게. ‘사세(辭世)를 앞두고 무상한 육신으로 연꽃을 사바에 피우고허깨비 빈 몸으로 법신을 적멸에 드러내네.팔십년 전에는 그가 바로 나이더니팔십년 후에는 내가 바로 그이로다. 2011년 9월 지관 識 無常肉身 開蓮花於娑婆幻化空身 顯法身於寂滅八十年前 渠是我八十年後 我是渠 1월2일 오후 입적한 지관 스님 친필 사세게(辭世偈)가 공개됐다. 사세게는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 남기는 글로, 이 글은 지관 스님이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인 지난해 9월께 직접 쓴 것으로 전해
▲지관 스님. 불학연구의 최고 권위자이자 종교지도자로 늘 한국불교의 한 가운데서 한국불교의 중흥을 견인해 온 조계종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적멸에 들었다. 지병인 천식이 악화돼 지난해 9월부터 서울 삼성병원에서 수면치료를 받아 온 지관 스님은 회복이 안 돼, 1월2일 오후 경국사로 긴급 이송됐으며, 이날 저녁 7시 55분 경 끝내 세연을 마감했다. 세납 80세, 법랍 66세. 지관 스님의 법체는 1월3일 오전 11시 해인사 보경당으로 이운되며, 영결식은 1월6일 오전 11시 종단장으로 엄수될 예정이다. 지관 스님은 1932년 포항 청하면 유계리의 시골마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