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조사 삼조동굴 입구승찬대사 신심명 새겨이름을 딴 정자도 있어 ▲삼조 승찬대사 열반 뒤 140년 지나 세워진 각적탑. 승찬대사 무덤 자리에 선 이 탑엔 다비하고 나온 사리 300과 가운데 100과를 봉안했다고 한다. 중국의 안휘성 천주산 삼조사. 이곳의 삼조동굴은 그렇게 넓지도 깊지도 않았다. 혼자 기거하기에 좋을만한 바위굴인데 후대에 누군가가 문 입구를 거창하게 세운 것 같다. 안내문에 삼조 승찬대사가 신심명(信心銘)을 이 바위굴에서 쓰셨다니 필자는 감회가 새롭다. 신심명(信心銘)! 내용이 하도 좋아서 자주 읽기도 하지만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에서 최근 5년 동안 동안거 해제 기념으로 선방에서 나오자마자 두 달씩
혜가 스님 만나 출가복광사서 구족계 받고6년간 시봉 끝에 전법 ▲안위성 천주산에 위치한 삼조사 입구. 하늘을 향해 높게 솟은 석조 일주문이 웅장한 기운을 내뿜고 있다. 삼조사(三祖寺), 삼조선사(三祖禪寺)는 3조 승찬 스님께서 머물던 절이다. 먼저 3조 승찬 스님과 그의 스승, 2조 혜가 대사와의 첫 인연을 소개하기로 한다. 혜가 대사는 남북조시대, 북주 무제가 불교를 탄압하던 시절에 환공산이라는 산에서 속인의 복장으로 살았다. 법난을 피해 승복을 벗었다고는 하지만, 빛이 안에 있으면 겉으로 드러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스님에게는 도(道)의 티가 저절로 배어 나왔다. 숨은 도인으로 소문이 났다. 그즈음에 40대
스승 가르침 받기 위해자신의 팔마저 잘랐던혜가의 구법열정 남아 ▲혜가 스님이 주석했던 이조사는 소림사에서 도보로 2시간 걸린다. 달마대사에게 전법게를 받은 혜가 스님은 이조사를 떠나 임종 때까지 전법의 길을 걸었다. 사진은 이조사 입구. 2조 혜가대사가 계셨던 이조사는 소림사에서 도보로 두 시간 걸리는 산 능선에 위치하고 있다. 규모가 작아 이조암으로도 불린다. 지금은 관광코스로 개발이 되어 소실산 풍경구 내에 이조사로 가는 케이블카가 따로 놓여 있어 편리한데, 그 산세가 기품이 있고 듬직하다. 이조사는 발우봉에서 뻗어 내린 중간 지점의 명당으로 신기하게도 물이 풍부하다. 이조암, 소림사, 달마 동굴 등은 모두
소실봉이 품은 달마동굴은달마대사 9년 면벽했던 곳 혜가의 잘린 팔뚝조형물엔 ‘본래면목’이란 글자 남아 ▲소실봉 정상에 올랐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집채보다 더 큰 달마대사는 초조암과 달마 동굴을 굽어보고 있었다. 달마대사는 달마 동굴로 가기 전에 소림사에 얼마동안 머물렀을 것으로 본다. 그리고 달마 동굴에서 9년간 거(居)하는 동안 큰절인 소림사로부터 공양물을 제공받았을 것이다. 아마 달마대사는, 유서 깊은 소림사라 하더라도 법을 전할 제자를 찾기에는 어렵다고 판단하였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소림사는 정치 사찰이었기 때문이다. 소림사는 496년 ‘북위’의 효문제라는 황제가 당시에 고승이었
달마 대사의 전법 도량9년 면벽하며 후학양성 소림무술 등 알려지면서 참배객들 발걸음 이어져 ▲ 국 정주 숭산에 위치한 소림사. 달마대사(達磨大師)는 가히 전설적인 인물이다. 달마대사의 흔적을 찾아서 본 필자는 비 내리는 석가장(石家莊)을 떠나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정주(鄭州)에 도착하였다. 소림사를 가기 위해서이다. 소림사는 정주 비행장에서도 다시 버스로 한 시간여 달려야 했다. 날이 어두워져 숙소가 걱정되었으나 다행히 소림사 절 밑 동네에는 숙박시설이 넉넉하였다. 소림사는 달마대사와 인연이 깊은 절이다. 달마대사는 인도 향지국의 셋째 왕자로서 27대 반야다라 존자에게 출가하였다.
사찰 파괴 극복한 대가람준 군사조직 홍위병 앞장조주탑만 남고 다 사라져방장·불자 10년만에 중창 ▲발우를 들고 가는 백림선사 대중스님들. 이 무리에서 하루 묵을 방과 빈 방장실을 소개해 준 소중한 인연 명룡 스님을 만났다. 중국의 여느 사찰처럼 백림선사는 객당(客堂)이 있어서 신도들이나 스님들이 묵어갈 경우 그곳에서 접수를 받는다. 중국말을 할 줄 모르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능력 있는 통역만이 내 눈과 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애당초 두 명의 중국 교포(조선족) 통역을 대동하였다. 그래서 그 진가는 곳곳에서 여러모로 나타났는데 특히 객당에서 그러하였다. 중국 사람들에게는 급한 일이 있을 때 혼자보다는 여럿이 말을 하다보면 훨씬 더
▲조주 스님이 말년에 주석하며 40년간 전법활동을 펼쳤던 백림선사 경내. 한국불교를 제대로 알려면 중국불교 이해가 필수적이다. 사실 중국불교는 한국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한국 스님들 법문과 어록 속에는 지금까지도 중국불교와 관련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는 사실을 스님인 나부터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선종(禪宗)에 관한한 더욱 그렇다. 그래서 필자는 예전부터 중국 선종 사찰과 그와 관련된 옛 조사들 발자취를 더듬어 볼 것을 큰 원처럼 세웠었다. 그런데 마침내 그 희망을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의 칭다오도량에 거주하면서 실현할 수가 있었다. 앞으로 소개할 중국 선종 사찰은 필자가 움직인 여정에 따른 것으로 30곳 내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