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차마 눈을 뗄 수 없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아베 정권의 도발적 수출규제로 시작된 두 나라의 갈등은 이제 무역전쟁을 넘어 ‘역사전쟁’이라는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느낌마저 든다. 물론 우리는 이미 이런 다툼에 익숙해져 있다. 식민사관 극복의 과정을 겪으면서, 1980년대 초반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사건을 겪으면서 우리는 한편으로 상당한 내공을 쌓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한일 양국의 지식인들이 내뱉고 있는 역사 관련 망언들을 지켜보면, 이 싸움의 양상이나 성격이 다소 변했다는 사실이 발견된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든 배움은 경험에서 나온단다. 행복이라는 것도 경험에서 나온단다. 경험은 가장 위대한 스승이다. 그러니 많은 것을 경험해라.…”아빠라면 누구나 아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한다. 성공 혹은 실패의 경험담을 들려줌으로써 아들이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것이 세상 모든 아빠의 마음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려줄라치면 삶은 언제나 버겁고 시간은 늘 부족하다. ‘아들아, 삶에 지치고 힘들 때 이 책을 읽어라’는 이러한 현실적 니즈를 충족해준다.이 책은 서울대병원 교수이자 아빠인 윤태진씨
한국종교문화연구소가 발송한 이번 주 뉴스레터(586호)는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무너져가는 영화 나랏말싸미를 애도하며’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는 종교학자들이 주축이 돼 만든 연구소로 이곳에서 매주 보내는 뉴스레터는 종교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돕고 삶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글들을 자주 싣고는 했다.이번 필자는 한신대 김윤성 인문콘텐츠학부 교수였다. 한신대는 개신교에서 설립한 대학이지만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을 정도로 진보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더욱이 김 교수는 종교학과에
최근 개봉한 ‘나랏말싸미’는 신미 스님(信眉, 1405?~1480?)이라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워 한글 창제 과정을 새롭게 접근한 영화다. 억불숭유의 시대에 가장 높은 곳의 임금과 가장 낮은 곳의 스님이 만나 협력하고 갈등하면서도 ‘모든 백성이 문자를 읽고 쓰는 나라’를 꿈꿨던 세종의 이상이 어떻게 현실로 구체화됐는지를 펼쳐낸다.그런데 뜬금없이 이 영화가 역사 왜곡 프레임에 발목을 잡히면서 흥행에 큰 차질을 빚은 것은 물론 이 영화의 상영 및 해외 보급을 금지하라는 청원까지 등장했다. 역사적 근거가 빈약할 뿐 아니라 세종대왕을 무능한
지난 한 주 동안 거의 모든 미디어 매체에서는 일본의 무역제재와 경제보복, 그리고 우리나라에서의 일본산 물건 불매운동이 뜨겁게 다루어졌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지난 G20 정상회의가 끝난 직후에 일본에서 지난 정부에서 이루어진 일들을 다시금 거론하며 무역제재를 통해 우리나라에 압박을 가하며 우리나라와 깊이 엉켜있는 문제를 악용하고 있다. 이에 대항하여 우리나라에서도 국민들이 앞장서서 ‘보이콧 재팬(BOYCOTT JAPAN)’이나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불매운동은 한다’ 등 시민운동을 일으켜 양 국가 간의 신경전이 극으로 치닫고 있는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덕을 베풀되 보답을 바라지 말라. 보답을 바라면 도모하는 생각을 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덕을 베푸는 것을 헌신짝처럼 버리라’ 하셨느니라.”우리가 흔히 들어 알고 있는 ‘보왕삼매론’은 이러한 10가지 이야기를 전하면서 “이와 같이 막히는 데서 도리어 통하는 것이요, 통함을 구하는 것이 도리어 막히는 것이니, 이래서 부처님께서는 저 장애 가운데에서 보리도를 얻으셨느니라”고 말하고
“형제가 담 안에서 싸우는 일은 있지만 밖의 침략에 대해서는 함께 막는다”는 말이 있다.(‘시경’) 요즘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 일부 언론의 일본판과 관련된 일을 보면서 이 말을 떠올리게 된다. 안에서의 비판과 밖의 편을 들면서 밖의 힘을 이용해 안을 치는 듯한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지 않다.물론 일본의 문제에 대하여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응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그들의 국익을 위해 움직이고, 우리는 우리의 국익을 위해 움직일 뿐이다. 과거와 연관된 감정 때문에 올바른 대응을 하지 못해 결국 우리 국익을 해치게 된다면, 그것은 일부
잠시 내리던 장맛비가 그치고 어느새 한여름의 더위가 시작됐다. 학생들은 일찍이 방학을 해서 각자 준비하고 계획한 여행이나 학업 등 다양한 일들을 하며 즐겁게 휴일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직장인을 비롯해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곧 다가올 여름휴가에 들뜬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 거라 생각된다.몇 해 전까지만 해도 여름휴가가 되면 외국으로 나가는 인파로 공항이 인산인해가 되었었다. 최근에도 그런 풍경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예년만큼의 혼잡은 아닌 듯하다. 경제적 문제도 있겠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지쳐 살다가 휴가 때 잠시 쉬려고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나눔의 집’이라는 복지시설이 있다. 일제강점기 위안부로 끌려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고통의 삶을 살아야했던 할머님들의 여생을 보살펴드리고 있는 곳이다. 이 시설의 공식 명칭은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 집’이다. 설립 초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진력을 다해 이 시설을 이끌어오고 계시는 월주 스님께 지면으로나마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최근 일본 아베 정권의 도발적 수출규제 조치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그동안 마치 정례행사처럼 역사 왜곡 발언을 일삼던 아베 정권이 이번에는 전혀 그 성격을 달리
최근 여러 미디어나 SNS 등을 보면 그야말로 ‘먹방(먹는 방송)’의 시대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맛있는 식당을 소개하는 정도에 그치던 것이, 지금은 과도한 경쟁 속에서 식당 소개는 물론이거니와 음식을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을 보여주고, 심지어는 수십 인분의 음식을 혼자서 다 먹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과연 이런 것이 ‘먹방’인가 라는 의구심이 생길 정도로 ‘식사’라는 개념에서 벗어난 모습이 다소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정신없이 바쁜 하루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자신
가짜 뉴스가 판치고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인간의 특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유리한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선택적 자각’이라고 한다. 일종의 진화의 산물이다. 그러나 선택적 자각이 지나치면 ‘확증편향(確證偏向)’으로 이어진다. 확증편향은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다르면 배척한다. 그래서 확증편향은 일종의 정신병이다.확증편향이 시작되면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증거를 내놔도 소용없다. 오히려 적대감을 갖고 분노한다.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것은 확증편향에
테르메즈 역사박물관은 우즈베키스탄의 고고학적 가치를 세계에 알리고 소중한 문화유산을 세계인과 공유하고자 테르메즈 건립 2500주년 되던 2002년 4월 문을 열었다. 이곳은 테르메즈에서 출토된 2만7000여점의 고대유물과 페르시아어·아랍어로 된 1만6000여점의 고서적, 필사본, 목판인쇄본 등을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은 시대별로 세분화돼 있어 전시관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만으로 이 지역 격동의 문화 변천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역사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은 파야즈, 카라, 달베르진 등 불교 유적지에서 발굴된 것들이다.이곳을
“눈을 한 번 감아 보세요.”“아랫배에 의식을 집중하고 호흡해 보세요.”봉은사 명상 지도법사로 있으면서 대중들과 소통하고 있는 도연 스님은 이렇게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이미 명상의 절반은 해낸 것이라고 입문자들을 격려한다.현대인들은 잠 잘 시간을 줄여가면서 일에 몰두하고, 밥을 먹으면서도 스마트 폰을 보고, 쉬는 것도 잠시 뿐이다. 멍하게 있으면 인생을 낭비한다고 손가락질 당하기 일쑤고, 남보다 실적이 좋지 못하거나 학업 성적이 떨어지면 곧바로 무능하거나 불필요한 존재로 취급을 받기도 한다.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야
지난 4~5월 전국 곳곳에는 형형색색의 연등이 나부꼈다. 서울시 전역에도 5만여 가로연등이 내걸려 하늘 위와 하늘 아래 가장 존귀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땅에 오셨음을 찬탄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만나는 빛의 장엄은 불자들에겐 볼거리를 넘어 환희로움이다.우리나라 연등의 역사는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됐다. ‘삼국사기’에는 866년 경문왕이 ‘정월대보름, 황룡사에 거둥해 연등을 구경하고 백관들에게 잔치를 열어주었다’고 기록돼 있다. 그 전통은 고려로 이어져 보름 연등회와 사월초파일 연등회, 팔관회로 성대하게 펼쳐졌다. 고
달라이라마(Dalai Lama) 14세는 불교 역사상 불멸 후 이백여 년 후의 아소카대왕(?~BC 238) 이래로 가장 위대한 전법자이다. 불교의 교세 확장은 부처님께서 직접 행하신 45년간의 전법, 아소카 대왕에 의한 인도 전역으로의 확장 및 스리랑카로의 전파, 대승불교의 흥륭, 대승불교의 북동아시아 지역으로 확산 등 단계를 거치면서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여러 불교인들에 의해 유럽과 미국 등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불교가 확산되고 있는데,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전법자는 달라이라마이다.가장 먼저 부처님 당시의 전법은
만(卍)과 유사한 나치상징의 이름은 하켄크로이츠인데, 독일어로 ‘갈고리’를 뜻하는 하켄과 ‘십자가’를 의미하는 크로이츠의 합성어이다. 하켄크로이츠의 등장은 철학이 발달한 독일이기에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 생긴 일이라 여기기도 하지만, 기실은 유럽 전역에 걸쳐 중세 이전부터 만(卍)에 해당하는 문양의 사용은 널리 전개되고 있었다.고대 게르만족의 룬 문자에서 하켄크로이츠가 유래되었고, 그리스어의 감마디온과 라틴어의 크룩스감마타도 만(卐)과 유사하며, 유럽 주요 민족의 왕실문양과 근대에는 몇몇 기업의 마크에도 주로 평화와 길상의 상징으
불교의 계율 중에는 유난히 ‘말’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앞서 살펴본 ‘자찬훼타계’와 ‘방삼보계’도 말로 인해 죄를 짓는 내용이었다. 이는 말이라는 것이 가장 행동하기 쉬우면서도 그 책임의 무게가 가장 무거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말을 하고 듣는다. 말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말이란 우리의 감정과 생각 등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말 한 마디로 천 냥 빚도 갚는다’와 같이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말을 어떻게 하느냐는 굉장히 중요하다. 자신
헌법재판소가 낙태에 대한 포괄적 금지 및 처벌을 명시한 현행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태아의 생명권보다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무게를 둔 판결이라 볼 수 있다. 낙태가 보편화되기 시작한 건 1961년 시행된 가족계획 정책을 시행하면서부터다. 가톨릭은 1973년 ‘모자보건법’에 의한 낙태금지 완화를 적극적으로 반대하기 시작했고, 45년이 지난 현재도 가톨릭은 낙태 금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불교계는 헌법판결이 난 지금까지도 조용하다. 상좌부 율장에 낙태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 있다. ‘낙태를 야기하는 정도일지라도 인간의
전쟁의 근원은 정치와 역사에서, 지진은 지구과학, 산불은 날씨와 생태계에서 찾기 마련이다, 그러나 복잡계 물리학의 시선은 일관적이다. 임계와 격변 즉 패턴이다. 패턴이 발생하면 개별적 요소나 조건은 무의미해진다. 지구온도가 임계점을 지나면 온실가스 방출이 없더라도, 여러 요인의 복합작용으로 지구시스템의 자정작용이 멈춰 인류가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찜통지구가 불가피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전조현상도 없이 발생하는 대규모 지진이나 임계점을 지나면 회복탄력성이 무너져 대규모 멸종이나 회복불능으로 이어지는 생태계와 인간의 몸도, 마의 10초
수만 종의 동물 가운데 먹을 수 있는 것은 극소수다. 그것도 문화마다 다르다. 문화가 허용치 않는 고기는 살아있는 모습이 떠올라 메스꺼워하는 반면 허용한 고기는 혐오감 없이 먹는다. 왜 그럴까? 육식주의 때문이다. 육식주의는 어떤 동물이 식용가능한지 결정하고, 먹을 때 정서적 심리적으로 불편치 않도록 보호해준다. 고도화된 신념체계로 ‘느끼지 않는 법’ 즉 우리 본연의 연민과 공감을 마비시키는 보이지 않는 체계이다.흔히 채식주의자하면 신념체계에 근거한 선택이며 삶의 한 방식으로 알 수 있다. 반면에 ‘고기 먹는 사람’은 육식주의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