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고 산다내가 꽃인데꽃을 찾아다니는가 하면내가 바람인데한 발작도 나를 떠나지 못하고스스로 울안에 갇혀 산다.내가 만물과 함께 주인인데이리 기웃저리 기웃한평생도 모자란듯 기웃거리다가나를 바로 보지 못하고나는 나를 떠나 떠돌아다닌다.내가 나무이고내가 꽃이고끝내 나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헛것을 따라다니다가그만 헛것이 되어 떠돌아다닌다.나 없는 내가 되어 떠돌아다닌다. 중생이 본래 부처인데, 스스로 자기 자신이 부처인 줄을 모르고 평생 중생으로 살다가 죽는다. 불교의 신행 목적은 “중생의 마음속에 부처의 성품과 덕성을
작은딸산바라지 간아내가 돌아온다내일부터만행 끝내고결제에 들어간다동안거몇 십 번인데아직도 먼 성불의 길지금 이 순간 전국의 100여개 선방에서 2000여명의 스님들이 동안거에 들어가 있다. 안거(安居)는 인도에서 비롯되었다. 인도에서는 4월16일부터 3개월, 90일 동안이 우기이므로 외출 때 자신도 모르게 작은 벌레를 밟아 살생을 하게 되므로, 그 기간에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앉아 좌선 수행을 하는 전통이 있었다. 여기에 겨울 날씨가 추운 중국에서는 10월16일부터 이듬해 1월15일까지 동안거(冬安居)를 더하게 되었다. 스님들은 동안거
천오백 년 전화엄사에 끌려왔다는 암소와 수소한 울음이 한 울음을 껴안고 운다새 아침과 헌 오후 두 차례매 맞으며 운다백두대간의 정기가 남으로 뻗은 지리산 천왕봉에 붉은 해가 솟는다. 화엄사 운고각(雲鼓閣)의 큰 북이 둥둥둥 울린다. 기해년 새해를 여는 축복의 북소리이다. 온누리의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들을 구원하는 북소리이다.‘법고(法鼓)’는 천오백 년이 넘는 고찰 화엄사의 큰 북을 노래한 시이다. 화엄사의 새벽예불을 여는 법고소리에 잠에서 깨어난다. 미명 속에서 들려오는 무명을 깨우는 법고소리이다. 불가에서의 북은 악기가 아니라
바릿밥 남 주시고 잡숫느니 찬 것이며/ 두둑히 다 입히고 겨울이라 엷은 옷을/ 솜치마 좋다시더니 보공(補空)되고 말어라정인보(1893~1950)는 1928년, 35세에 두 어머니를 생각하며 40수의 연작 시조 ‘자모사’를 발표하였다. ‘자모사(慈母思)’는 자애로운 어머니를 생각한다는 뜻이다. 아버지는 자식을 엄하게 훈육하고 어머니는 자식을 자애롭게 양육한다는 뜻으로 ‘엄부자모(嚴父慈母)’란 말이 있다. ‘자모사’는 어머니의 자애로운 사랑을 읊은 시조이다.정인보는 1921년 ‘기진 어머니’란 시를 발표하여 등단하였고, 자타가 인정하는
세상과 더불어 사는 것이사람뿐인 줄 알았더니오십줄에, 줄에 걸려 넘어지면서나는 깨달았네사람 눈에 사람 마음만 보고사람 생각과 행동이더욱 사람 되길 바랐더니죽어서도 사람인 양사람의 저승길만 찾을 게 뻔해오십줄에 줄줄이 길을 묻게끔오늘도 오도송 한 줄로 빗금질 치네인생은 사람하고만 사는 것이 아니라 삼라만상의 유정무정(有情無情) 자연초목(自然草木) 중생들과 함께 살아간다. 그리고 결국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연으로 되돌아간다. 이것이 우주자연의 법칙인 순환이고 윤회이다.김종철(1947~2014)의 ‘오도송’은 ‘산중문답 시편 22’ 연작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눈이 나리면 어이 하리야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그렇게 그리운 임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산 사람이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마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음이다. 사랑과 자비는 불성의 표현이다.시인은 무명 번뇌가 한 점 없는 청정한 본래 마음자리를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 비유했
꽃그늘 봄바람 속에 절집 개를 기다리는/ 마을 분식집 마당 개에게 전생을 물어본 적이 있다/ 누구의 보시물이 될 것인지 괜히 물어본 적이 있다너를 끌어낸 반 평의 햇빛과/ 너의 망막에 드는 만상이/ 죄다 새장 밖의 그림인데/ 코가 꽤인 나도/ 쓸모없는 자유를 투덜댄 적이 있다농협사료 냄비 한 개와/ 떡라면 냄비 하나를 마주하고서/ 우리의 전생을 이야기하다가/ 한 입 감사하게 넘기시자고/ 한 그늘 아래, 또 우리의 후생을 이야기했다개의 팔자가 사람 팔자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애완견을 기르는 사람이 천만 명을 넘어섰다니 개의 힘(견권
나를 금배지라 부르던할머니가 나의 초롱을 만들어불당(佛堂)에 달고 가셨다꿈에 그 초롱이 와서들여다보니무지개가 나려와촛불에 타서 재가 소보록했다11월15일은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이 있는 날이다. 그날 받을 점수 등급은 어머니가 불당(佛堂)에서 자녀를 위하여 기도한 시간과 비례한다. 간절한 마음으로 한 자루의 향을 올리고 또 올려서 그 재가 소복하게 쌓인다. 그 재의 양이 수능 점수이다. 어느 저명한 철학자가 TV 강연에서 “맹세코 하나님과 부처님께 기도해서 수능시험점수나 고시시험에 영향을 주는 것은 확률 0%이다”고 열변하였으나, 필자
어제는 하루 종일/ 까닭 없이 죽고 싶었다/ 까닭 없이 세상이 지겨웠고/ 까닭 없이 오그라들었다긴 잠을 자고 깬 오늘은/ 까닭 없이 살고 싶어졌다/ 아무라도 안아주고 싶은/ 부드럽게 차오르는 마음죽겠다고 제초제를 먹고/ 제 손으로 구급차를 부른 형/ 지금은 싱싱한 야채 트럭 몰고/ 전국을 떠돌고/ 남편 미워 못 살겠다던 누이는/ 영국까지 날아가/ 애 크는 재미로 산다며/ 가족사진을 보내오고/ 늙으면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면서도/ 고기반찬 없으면 삐지는 할머니살자고 하는 것들은 대체로/ 까닭이 없다인생은 오묘하고 불가사의하고 논리적으
가려주고숨겨주던이 살을 태우면그 이름만 남을 거야온몸에 옹이 맺힌그대 이름만차마소리쳐 못 불렀고또 못 삭여낸조갯살에 깊이 박힌흑진주처럼아아 고승(高僧)의사리처럼 남을 거야내 죽은 다음에는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이름은 부모가 나에게 처음 붙여준 호칭이다. 그 이름은 곧 나를 대신하다가 점점 나 자신이 되고 만다.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면 나는 좋아서 춤을 춘다. 누군가 나의 이름을 비난하면 분노한다.이름은 형상이나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형상이 없는 소리나 문자 부호일 뿐이다. 그런데
산이 나를 막아선다맨몸으로 오라고짐승 되어 오라고밀어내고 넘어뜨린다기어서 기어서벼랑에 다가서도짐승이 아닌 나를 한사코벼랑에서 밀어낸다.산은 자연의 원시상태이다. 짐승은 자연의 주인이다. 인간 역시 자연에서 나왔으나 문명의 옷을 입었다. 문명은 자연을 오염하고 훼손한다. 따라서 산은 문명의 주인인 인간을 거부한다. 그래서 인간이 산에 오르려면 “맨몸으로 오라”고 읊고 있다. “짐승이 되어 오라고 밀어내고 넘어뜨린다”고 하였다.이 시에서 ‘짐승’은 원시적인 인간 즉, 자연 그대로의 인간을 상징한다.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 등 삼독심이
히말라야에 사는 전설의 독수리는/ 먹이를 찢는 부리가 약해지면 설산의 절벽에 머리를 부딪쳐/ 조각난 부리를 떨쳐버리고 다시 솟구쳐 오르는/ 강한 힘을 얻는다고 한다/ 백지의 눈보라를 뚫고 나가지 못하는 언어가/ 펜 끝에 머물러, 눈감고 있을 때/ 설산에 머리를 부딪쳐 피에 물든/ 독수리의 두개골이 떠오른다.솔개의 환골탈태론이 있다. 솔개는 70년을 사는 조류인데 40년이 되면 먹이를 찢는 부리가 약해져서 산의 정상에 올라가서 절벽에 머리를 부딪쳐 조각난 부리를 떨쳐버리고 다시 솟구쳐 오르는 강한 힘을 얻는다고 한다. 그렇게 하여 다
나무가 춤을 추면바람이 불고나무가 잠잠하면바람도 자오보통사람 같으면 “바람이 불면 나무가 춤을 추고/ 바람이 잠잠하면 나무가 자오”라고 읊었을텐데, 윤동주(1917~1945) 시인은 거꾸로 “나무가 춤을 추면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잠잠하면 바람도 자오”라고 하였다. 인과가 거꾸로 나타난 역인과의 관계이다. 물론 좋은 원인이 좋은 결과를 만들고, 또 좋은 결과가 새롭게 좋은 원인을 만들기도 한다.보통 인과관계가 하늘이 꾸물꾸물하여 먹구름이 끼면 비가 온다. 그러나 가랑비가 내리면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기도 한다. 이렇게 시인이나 깨달
나는 바람이 되어 무량(無量)하다.용의 눈을 마음에 박으니저 한꺼번에 꿈틀대는 녹음, 잎새 잎새들이 전부 비늘이다.어느 날은 또 바위가 되어 도적떼를 물리치고공중에 사뿐 앉아 그대를 지키나니.“저 이마에 흐르는 땀 봐라.”- 의상대사는 마침내 이 절(浮石寺)을 마무리 지었다. 무량수전에, 극락정토 한복판에 아미타여래불을 모신 일 -내 이름은 선묘, 지금도바람이다.6월30일, 부석사를 포함한 한국의 천년 고찰 7곳이 ‘한국의 산지승원’이란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한국의 산사가 1000년 이상 국민의 신앙과 수도, 생
내 나이 일흔둘에 반은 빈집뿐인 산마을을 지날 때늙은 중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더니예닐곱 아이가 감자 한 알 쥐여주고 꾸벅,절을 하고 돌아갔다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그 산마을을 벗어나서내가 왜 이렇게 오래 사나 했더니그 아이에게 감자 한 알 받을 일이 남아서였다오늘은 그 생각 속으로 무작정 걷고 있다마치 인도의 시성 타고르의 시 “바닷가에서 아이들이 놉니다. 그들은 고기를 잡기 위한 그물질도 할 줄 모릅니다”는 시구가 떠오르는 천진하고 소박함이 드러난 시이다.참 맑고 티 없이 깨끗한 천진을 노래한 시이다. 아무런 욕
조롱 속에 거울 하나 넣어놓았더니거울에 비친 제 모양을 제 짝인 양생이 다하도록 잘 살았다는 문조(文鳥)사막 속에 오아시스 놓여 있었더니물에 비친 모랫길을 제 길인 양생이 다하도록 잘 걸었다는 낙타그게 혹내가 아니었을까천양희(1942~현재)는 시인으로 단련되기 위하여 인생을 하루하루 뼈에 사무치도록 읊조리며 살아온 사람이다. 범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인생은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삶이 아니다.얼마 전에 92세로 별세한 한국 영화계의 산증인인 최승희 선생이 장례식장에서 ‘나는 바보처럼 살았구먼’이란 노래를 틀어달라고 유언한 것을 보면
님이여, 당신은 백 번이나 단련한 금결입니다/ 뽕나무 뿌리가 산호가 되도록 천국의 사랑을 받읍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아침의 첫 걸음이여님이여 당신은 의가 무거웁고 황금이 가벼운 것을 잘 아십니다/ 거지의 거친 밭에 복의 씨를 뿌리옵소서님이여 사랑이여 옛 오동의 숨은 소리여님이여 당신은 봄과 광명과 평화를 좋아하십니다/ 약자의 가슴에 눈물을 뿌리는 자비의 보살이 되옵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얼음바다에 봄 바람이여만해 한용운(1879~1944)의 ‘찬송’은 부처님을 찬양하고 찬송하는 시이다. 부처가 되려면 수많은 시간 동안 수행과 단련을
국민들을 위한다면/ 국민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말을 팔았으면/ 아무리 최선을 다해 일을 하셨어도/ 진정 국민들을 위하였다면/ 자신이 부족하였음을 느끼셨을 텐데(…)재산이 늘었다니요!잘못 전달된 거겠지요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만혹 재산을 늘린 분들이 계신다면대통령님이시거나, 국회의원님이시거나, 검사님이시거나,도지사님이시거나, 시의원님이시거나, 농협장님이시거나, 다 개새끼님들 아니십니까국민들을 위하여 일하겠다고 말을 파신 분은/ 중생들이 다 극락왕생할 때까지/ 성불하시지 않겠다는/ 기호 108번/ 지장보살님 꼭 한 번 생각해 주세요오는 6
나 같은 것나 같은 것밤새 원망을 해도나를 아는 사람 나밖에 없다자기를 인식한 존재는 인간뿐나 자신 아는 사람 역시 자신부처를 먼 곳에서 찾는 행위는모래알로 밥을 짓는 어리석음나는 누구인가? 알쏭달쏭 나를 알기가 쉽지 않다. 나를 알면 부처이다. 부처님은 ‘아함경’에서 “나는 오온의 화합체이다. 오온(五蘊)은 색수상행식을 말한다”고 하였다.그러나 오온은 실체가 없고 자신을 구성하는 고유한 성질인 자성(自性)이 없이 여러 가지 요소들이 인연 따라 화합하여 잠시 나의 모습(형상)을 이루고 있을 뿐이다. 인연이 끝나면 나는 형체가 없이
모난 돌이 바다로 가려면모난 곳이 다 닳아서둥글어져야 한답니다.누군가의 흉허물이 보이십니까?아직 바다는 멀었습니다.시단에 등단하지 않았음에도수행면모·선적품격 나타낸 시모난 돌은 투철한 수행정진 끝내면서 흘러나온 깨달음 소리범일(1957~현재) 스님의 ‘모난 돌’은 2017년 12월 부산 지하철에 게시된 ‘풍경소리’에 실린 시이다. 짧고 간결하지만 선시처럼 깊은 여운을 주는 시이다. 시단에 등단하지 않은 스님의 시지만 구도자로서 수행의 면모와 선적인 품격을 나타내고 있어 좋은 불교시로 선택하였다. 범일 스님의 ‘모난 돌’은 우연히 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