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그저 부처님 앞에서 절이나 하면서 소원 빌고 초파일날 등이나 다는 줄 알고 있었다. 삶에 너무나 지쳐 있을 때 한 줄기 빛처럼 불교와 인연되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6남매의 장녀로 태어나 나의 삶보다는 동생들 먼저 생각하고 결혼해서도 몸만 떨어져 나왔을 뿐 친정식구들과 같이 살아가는 것과 같은 나날이었다. 절에 다니면서 부처님 말씀 모든 것이 좋아서 봉은사 기초학당과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집에 오면 그날 배운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행복하고 감사했다. 남편한테 이제 그만 좀 하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부처님 말씀과 불교의 모든 것들이 새롭게 다가 왔다. 알아 가면 갈수록 신이 나고 행복했다. 금강경 경전반에서 공부 하던 중에 법보신문에 난 마음에 해뜰 무렵 여몽님 기사를 보고 금강경 공부를
사람들은 절을 제대로 배우라고 하면 절은 다 똑같은 절인데 배울 필요가 있냐고 쉽게 생각한다. 절수행은 동작, 호흡, 알아차림 모두가 완벽히 조화를 이루고 부처님에 대한 감사의 절절한 마음으로 할 때 효과가 크다. 나 역시 이제는 절을 좀 안다고 생각했을 때 한계에 부딪히고 좌절하고 또 다시 배우고 느끼고 몸으로 체득했다. 이는 청견 스님이라는 큰 스승이 계셨기에 가능했다. 나는 절수행을 통해서 과거의 못난 나를 버리고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절수행은 수승화강, 두한족열의 효과를 가져 온다. ‘머리는 차고 발은 따뜻하게’ 혹은‘가슴은 서늘하고 아랫배는 따뜻하게’해 주었을 때 우리의 몸은 가장 이상적인 상태가 되며, 마음도 평안을 찾는다. 특히 몸이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극대화되어 자연치유능력이 높아진다.
2008년 7월25일 한의원에서 수입약재를 테스트하기 위해서 평소처럼 내가 직접 복용하고 반응을 보는데, 갑자기 문제가 발생해서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눈을 떠보니 중환자실이었고,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가족들을 볼 수 있었다.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퇴원하면 다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닥쳐온 것은 ‘공황장애’라는 재앙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 나날이었다. 치료하면서 좋아졌다가 다시 재발하는 고통이 계속되었다. 안타까워하던 가족들도 지쳐갔고 나 스스로도 한의사로서 부끄럽고 힘든 시간이었다. 시간은 덧없이 흐르고 더 이상 방법이 없음을 직감했다. 수소문해서 공황장애를 절수행으로 극복한 김창업 원장을 통해 법
컴퓨터를 통해 공부를 하다 보니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화면을 쳐다보는 시간이 많다보니 목 디스크가 온 것이었다. 2008년 9월, 1천편을 회향하고 나서 김천 수도암 철야정진을 다녀온 직후였다. 이어 얼마 후엔 오십견도 왔다. 목은 움직일 때마다 아픔이었다. 칼로 찌르거나 자르는 듯 하고 팔을 거쳐 손까지 저리며 가만히 있을 때에도 모래알이 박혀 있는 듯 고통은 끊임없이 계속됐다. 통증으로 손바닥을 올릴 수 없어 접족례를 할 수가 없었다. 절도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상황에 따라 하루 한 두 편, 대체로는 20편 정도의 보리방편문을 사경했었다. 편수를 줄일까? 그만두고 쉴까? 수없이 번민하다가 10편으로 줄이고 버텨나갔다.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함께 정진해 나가는 사경방 도반들의 성원과 ‘지속이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그동안 짜증덩어리요, 고민보따리로 살아왔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속에서 화가 나고, 짜증스럽고, 욕이 툭툭 튀어나오고, 얼굴을 찡그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가 한권의 책으로 맺어진 인연 덕에 마음의 짐을 상당히 덜 수 있게 되어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다. 지난 2007년 12월31일 퇴근길에 서점에 들려 책을 몇 권 구했다. 매우 힘들게 버틴 한 해인 만큼 마지막 날은 책이나 읽으며 마무리 하자는 생각이었다. 처음 눈길이 간 것이 청화 스님의 법문집 ‘생명의 고향 마음자리로 돌아가는 가르침’으로 다음날까지 감동스럽게 읽었다. 불교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했을 뿐만 아니라 염불과 참선을 묶어 염불선이라는, 일반대중도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최상승의 공부방법이
드디어 2010년 초, 거듭되는 신묘장구대다라니 기도를 입재하면서부터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스님께서 집전하시는 기도수행을 열심히 하였다. 이웃에 사는 사람들이 내가 매일 부처님께 기도 하러가는 것을 보면서 너무 빠지지 말라고 미친 사람 같다고 할 정도로 옆도 보지 않고 다녔다. 반복되는 49일 기도 회향 날 스님께서 내려주신 법어는 “통채로 내 살림이니 잘 닦으리라 살리리라” 라는 말씀을 내려 주셨다. 그 후에도 모두가 바로 내 마음 자리인 법어들을 내려 주셨다. 그 법어가 내 가슴에 콱 박혔다.기도를 하면서도 집중을 못 하고 온갖 잡념이 오고가고 다른 도반들은 무엇이 이루어졌네, 성취가 됐네,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변하는 것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업장이 너무 두터워서 이루어지는 것이 없는가
절에 다닌 지는 30년이 넘었다. 결혼한 이후부터 남편의 권유로 손위 시누이와 함께 절에 다니기 시작했다. 남편 덕에 불교와 인연은 맺었지만, 절에는 부처님오신날을 비롯해 특별한 날, 1년에 3~4번 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면서도 부처님 앞에만 가면 그저 집안 식구 건강과 많은 복을 달라고 부처님께 졸랐다. 나는 딸 둘에 막내로 아들을 두었는데, 아들은 학교 다닐 때부터 무슨 일이든 잘 해내는 것이 드문 서툰 아이었다. 다른 아이들한테 맞기를 잘해 학교 가기 싫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 아이는 나에게 늘 ‘문제를 안겨주는 아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가 없었다. 그럭저럭 자라, 아들을 훈련소에 입대 시키고 돌아 왔는데, 며칠 만에 전화해서 공수부대에 지원했다고 전해 왔다. 평소 내 생각으로는 공수부대에서
현대 사회는 고도의 산업사회와 물질 만능주의로 치닫고 있다. 이런 사회에 우리는 수많은 스트레스와 질병에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것을 다스리고 극복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누구나 한 번 쯤,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고 본다. 시간과 공간과 장소에 크게 구애 받지 않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스려 하루하루를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큼 소중한 게 또 어디 있을까 생각한다. 지금은 과학이 발달해 과학적이지 않으면 사람들은 도통 믿지를 않는다. 다행히 시중에는 절수행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분석해 놓은 책들도 여러 권 있다. 그리고 우리가 건강에 대하여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인 ‘생로병사의 비밀’에도 절수행에 대하여 체계적인 분석과 실험으로 과학적인 근거를 밝힌 방송도 했다. 절이 얼마나 우리
별 생각 없이 어느 날 집 근처 봉선사에 산책 나갔다. 봉선사 입구에서 문득 눈에 띈 글이 있었다. ‘매주 둘째 주 토요일 오후 9시~5시까지 철야 삼천배 정진’. 이 플래카드를 보고 평소에 집에서 108배 정도는 하던 참이라 잘 됐다 싶어 삼천배에 동참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봉선사 청풍루에서 30명 정도가 동참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삼천배는 쉬운 수행이 아니었다. 나무아미타불 고성 염불을 하면서 절을 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온몸은 비 오듯 쏟아지는 땀에 젖고, 나무아미타불 고성 염불은 저 나름대로 질서 없이 이리저리 나뒹굴었다. 잘 듣고 따라 한다고 하는데 박자가 맞지 않았다. 법사님은 오죽 안타까웠을까. 삼천배를 하는 중간 중간에 “염불 소리가 맞지 않는다며 잘 듣고 따라 하라”는 말을 몇
2009년 12월 시작된 아비라 기도 1품은 점차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매일 하루 일과 속에 아비라 기도 1품은 기복 불교에 젖은 내 수행 방식의 변화와 불교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을 가져왔다. 불교는 수행이라는 실천의 종교이자 수행의 방식에는 일과를 여여하게 지내는 것이 기초적인 수행생활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일과를 여여하게 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는 스스로 설정한 한계와 게으름 탓이었다. 내가 다니는 직장이 조그마한 목욕탕과 법당이 있어 수행생활을 하기에 최상의 조건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어쩌면 수행을 등한시 여겼던 내 일상이 수행의 최상 조건이던 직장 내 목욕탕과 법당을 사각지대에 방치한 셈이다. 그때까지는 근무시작 전 천수경, 금강경 등의 경전을
도량석으로 온 생명이 깨는 산사의 새벽은 아니지만 나의 하루도 새벽 알람으로 열린다. 새벽 5시, 마치 도량석인 것처럼 알람 소리와 함께 나의 하루도 깨어나기 시작한다. 항상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생활 습관처럼 수행이 몸에 배이길 기원했던 마음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소중한 일상이다. 첫차를 타고 사무실에 출근하면 6시20분경이다. 일과기도를 시작하기 전 구내 목욕탕에서 몸을 청결히 하기 위해 샤워를 한다. 샤워를 마친 후 무명처럼 내려앉은 어둠 속에 잠긴 법당에 도착하면 6시50분이다. 부처님 전에 불을 밝힌다. 그리고 향공양을 올리면서 3배하고 청수와 차 공양을 올린다. 이후 3배를 더 하며 일과기도를 시작한다. ‘대자대비~’로 시작하는 108 예참문과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의 법신진언을 장쾌합
그동안 사경수행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마음의 수용범위가 점차 조금씩 넓어졌고, 그렇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생활의 안정감, 만족감과 행복감을 가져왔다. 누군가가 수행은 습관을 바꾸는 것이라 했다. 어린 시절부터 성장하면서 만들어진 습관은 물론 과거로부터 이어져오는 기억 저 너머의 습관까지 바꾸기는 정말 힘든 일이다. 우리는 보통 자신의 습성대로 행동하고는 그런 무의식의 생각이나 행동이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원인을 밖에서 찾아 원망하고 실망하며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다. 나 자신이 지어서 내가 받는다는 게 진리다. 오래 묵은 업장을 걷어내는 것이 쉽지는 않다. 오직 할뿐인 마음으로 묵묵히 가다보면 언젠가는 가벼워지지 않을까? 누구나 느끼는 사실이긴 하지만 수행을 꾸준히 지속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