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에 108배가 좋다는 입소문을 듣고 2009년 9월 법왕정사 부산법당에서 절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23년 결혼생활과 오랜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로 비롯된 상기병으로 인해 절을 하면 가슴이 꽉 막혀 숨이 제대로 내려가지 않고, 허리가 비뚤어져 자세가 흐트러지고 새끼발가락은 굳어 잘 꺾이지 않아 절은 고통이었다. 그래서 “청견 스님이 계시는 부산 법왕정사에서 3년 이상 절수행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부처님 전에 발원을 했다.운동으로 시작한 절수행염불선·3000배 철야정진고질병 어깨통증 사라져이젠 불성 찾고자 정
남편이 10년간의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둘이서 합심하여 자영업(마트)을 시작했다. 워낙 시간에 얽매이고 중노동에 버금가는 일이라 힘들었지만 성실하게 일한 결과 빠르게 안정되며 보람이 있었다. 한참 상승세를 타고 있는데 건물주가 가게를 비워달라고 하여 마음의 고통을 겪었다.생업 탓에 자녀 못돌봐무겁던 맘이 수행 인연대비주독송이 긍정의 힘50만독 회향…10년 결사이후 몇 차례 더 가게를 하는 동안 규모를 키우고 동업을 하면서 그 뒷감당을 하느라 힘들었고 무엇보다도 가게에 얽매여 중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에게 부모노릇을 못한다는
지난해부터 주말마다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간병인 활동을 하고 있다. 병원에서 매주 아프고 힘들어하는 환자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환자들의 쾌유를 위한 기도를 해야 되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게 되었지만 구체적인 기도를 시작하진 못했다. 집에서는 매일 아침마다 108배를 하면서 ‘일과수행’을 하고 있었지만 절을 할 때 환자들을 위한 염원을 보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주말 간병인 활동하면서환자들 위해 막연한 기도암투병 시누이 안타까워자비도량참법 알고 발심대광명사에서 자비도량참법 기도를 입재한다는 소식을 처음 들은 것은 지난해였다.
누구보다도 건강을 잘 챙겨왔다고 자부했다. 평생 아침에 일어나면 30분 이상 스트레칭을 해왔으며, 담배 끊은 지 15년. 술을 입에 안댄지가 4년이 되었기에 장담할 수는 없다고 하지만 이정도면 그래도 팔순 때까지는 큰 병 없이 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스스로 만족하고 살아왔다.퇴행성경추로 병원 치료투병 중 공생선원과 인연‘이뭣고’ 참구하며 수행고통 소멸에 정진 발원그런데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왼쪽 등 중간쯤에 뜨끔뜨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피곤할 때 나타난다는 ‘담’이겠거니 했다. 그전에도 두어 번 있었던 일이라 또 ‘그놈이 왔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마음공부와 많은 인연이 닿았다. 사춘기 때부터 종교생활 한답시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그래도 텅 빈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친정어머니의 간곡한 청으로 서른 즈음이 돼서야 부처님과 인연이 닿았다. 부처님 법과 만난 그 순간, 채워지지 않았던 목마름이 해갈됐다. 마음공부를 향한 수행이 불붙기 시작했다.어머니 청에 불교 인연남편 사업실패로 고통법륜 스님 말씀에 평안진언을 염송하며 사유처음엔 절이었다. 무조건 했다. 108배부터 하루 1000배씩 100일, 한 달에 몇 번 씩 3000배, 5000배, 1만배&he
오늘도 그 애들이 있을까. 언제부터인가 그 애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마음속에서 불쑥 올라온다. 사이좋은 고라니 두 마리. 새벽기도를 갈 때마다 그 애들은 절 입구에서 날 기다린다. 그리고 내가 나타나는 순간 쏜살같이 산속으로 사라진다. 추울 땐 어떻게 사는 지 봄이면 또 볼 수 있을까. 새벽 4시 사뭇 궁금해지는 마음 추스르며 법당에 들어선다.낯가림으로 못가던 절 불교 공부하면서 출입 매일 ‘금강경’ 독송하니웃음바이러스 절로 퍼져일상이 된 기도. 이렇게 어떤 절이든지 법당으로 선뜻 들어설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1년에 몇 번 정도
친정어머니는 불자였다. 독실했다. 하지만 그 옛날 기복신앙으로만 절에 다니셨다. 그래서 매사 제한이 많아 난 도리어 불편함을 느꼈다. 그런 문제들이 쌓이다보니 불교를 싫어했고, 그런 이유로 초등학교때 엄마 몰래 교회에 다녔다.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집 앞 교회에 다니면서 사회봉사활동도 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아이들도 교회에 보냈다.그렇게 열심히 하던 신앙생활도 무뎌져 갔다. 어느 날 회의를 느끼게 됐다. 내가 꿈꿔왔던 참 종교인이란 희망은 사라져갔다. 허무했다. 그때부터 난 다시 무신론자로 돌아섰다. 그저 바른 삶만을 고
부처님께 기도를 드렸던 기억을 더듬어보니 13년 전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큰어머니 권유로 진주의 한 사찰에서 사십구재를 지내면서였다. 이후 10년 간은 기억이 없다.과도한 업무로 디스크아내 따라 백련암서 절신기하게 통증 사라져아내와 3년째 3000배3년 전 어느 날, 아내는 평소 함께 하던 도반이 사정이 생겨 기도를 못 가게 되었으니 포항에서 해인사 백련암까지 운전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내의 운전 실력을 알던 터라 약속을 할 수밖에 없었다.법명이 지혜월인 아내는 이미 오래 전부터 백련암에서 3000배 기도와 아비라 기도를 해
2013년 11월24일, 금강경 간경을 만독했다. 지금까지 날 돌아보면 부정적인 마음이 많았다. 가족 중에서도 특히 엄마와는 물과 기름 같은 뭔가 모를 그런 거리감과 서운함이 있었다. 일을 하면서는 일복이 참 많아 일에 치였었고,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으면서도 지나고 보면 이용당하곤 했다.허우적거렸던 상황들이 너무 싫었다. 가족 간이든 스스로든 밑이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삶 어느 곳에서든 뭔가가 꼭 새어나가는 모양새였다. 그런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절에 다니기 시작했고 그러다 금강경을 만나 공부하게 됐다. 공부를 많이 하면
지난 60년을 무엇하며 살았나. 되돌아본다. 늘 쓸데없는 망상과 생각 속에 사로잡혔다. 언제나 욕망, 증오 등 부정적인 행동으로 스스로가 고통 받았다. 좀더 정확하게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했다. 또 주위 인연에 집착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며 화냈다. 자만심과 열등감을 오가며 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살았다. 항상 내면에서 불 같이 일어나는 것들과 싸웠다. 아니다. 싸우지 않고 불과 같이 일어나는 마음들에 편승해왔다.쓸데없는 망상 사로잡혀욕망·증오로 고통받아부정적 생각 알아차리며 내려놓기 반복하자 행복밖으로 보이는 모습과 내면은 달랐다
나는 본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권사였던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녔었다. 결혼 후 살림만 하고 있던 차에 지인의 소개로 연꽃모임 이대원성 보살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때부터 불교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대원성 보살은 그때 겨우 서른 살을 갓 넘은 젊은 나이였다. 그러나 너무도 열심히 불교활동을 하며 절에 다니는 대원성 보살을 보면서 신기함과 호기심으로 따라 다녔다. 우연은 운명이 놓아준 다리였다.사경하고 보시하던 도반대원성보살 모습에 감화본받고자 법화경 사경힘든 시절을 극복한 힘우연 아닌 인연으로 부처님을 믿게 됐고 큰스님들 법
반복된 일상에 회의감불교 접하고 활력 느껴참법배워 새 기운 얻고늘 참회하는 마음 발원 늘 호기심이 많았던 내가 불교를 접하면서 나의 삶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일상에 매몰돼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된 삶에 회의를 느꼈지만 불교를 공부한 뒤로 하루하루 삶이 달라졌다. 절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또 스님들로부터 감로수와 같은 법문을 듣는 것은 세상의 어떤 취미보다 재미있었고 또 삶의 활력소가 됐다. 또 (사)미소원 장유정 이사장을 따라 봉사활동을 하며 새로운 희망을 가꿔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미소원에서 진행하는 자비도량참법 기도에 참가했다. 지도법사 희선 스님의 지도에 따라 5일간 호궤합장을 하며 전생에서부터 이어온 악업을 끊고 새로운 선업을 지을 것을 발원했다. 예전부터 꼭 자비도량참법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