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직면한 사회 문제들은 미성숙한 인간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붕괴된 핵발전소에서 나온 후쿠시마 오염수의 해양방출은 지구를 방사능으로 오염시키는 무모한 행위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문명을 파괴하는 야만적인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인류는 아직도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지구온난화, 환경과 생태 파괴, 지구자원의 고갈, 부의 불균형, 권력의 독점, 약자·소수자·인종·여성·이민자에 대한 차별 등 국내외에서 일어나는 불의와 부정과 부조리에 의한 고통은 무지로부터 발생한다.무지를 타파하는 첫 길목이 정견이다. 불법의 핵심
지난 6월20일 인터넷에서 주요 뉴스를 훑어보다가 ‘부산 최대 라이벌 사우디의 파격…PT연설 절반이 여성이었다’는 기사 제목이 눈에 띄었다. 2030년 개최되는 세계박람회(엑스포)를 부산에 유치하려는 한국의 최대 경쟁국으로 꼽히는 곳이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로 칭함)라는데,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그 나라에서 일어나는 여성 인권 신장 변화 속도가 이토록 빠르리라 내다본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엑스포 유치 설명 PT를 한 여섯 명 중 세 명이 여성이었다고 하니, 사우디가
불교는 성 차등을 근본으로 하는 종교인가? 아니면 출가 승단에서만 성 차등을 인정하는가? 수행자로서 남성과 여성은 근본적으로 차등이 있는 것일까? 성 평등을 근본으로 하는 현대 사회에서 불교가 답해야 할 문제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답을 미루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문제의 뿌리는 출가 승단 안에서 비구와 비구니의 엄격한 차별에 있다. 출가자의 공동체인 승단은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조직사회이며, 재가자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적인 공동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기에 이 문제는 더더욱 근본적인 물음이 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복싱 체육관에서 ‘도장깨기’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알아보니 일본에서는 제법 역사가 있는 뒷골목 용어인 모양이다. 뭐 그렇다 치고. 요즘에는 방송용어로도 흔하게 사용되는 핫(hot)한 유행어가 된 듯하다. 장윤정의 도장깨기나 지역 맛집 도장깨기란 프로그램도 있으니까 말이다. 재밌는 것은 도장깨기가 선객들이 서로의 공부 머리를 가늠해보던 이른바 ‘법거량’과 정확하게 같은 취지의 말이라는 점이다. 힘으로 누가 더 센지를 겨뤄보는 것이나 말로 누가 더 깨쳤는가를 시험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 뜬금없이 이런 말을 꺼낸 것은
‘미래한국 불교를 위해서 제언하고자 한다’는 전국비구니회와 ‘샤카디타 코리아’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제18회 샤카디타 한국대회에서 발표할 필자의 논문 제목이다. “위기의 세상 속에 깨어있기”를 주제로 6월23일부터 닷새간 봉은사 일원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는 논문발표, 워크숍, 전시, 명상, 문화공연 등 세계 각국 불교여성들이 준비한 다채롭고 풍성한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최근 우리는 우리가 발전시켜온 문명과 작금의 세계정세가 얼마나 ‘무상(無常)’한 것인지를 뼈아프게 실감했다. 우리는 늘 깨어있어야 하고, 지혜와 통찰력을 길러야
2011년 일본 후쿠시마현 제1원전의 폭발은 세계를 경악케 했다. 이보다 25년 전인 1986년에는 체르노빌에서 원전 폭발이 일어나 지구의 종말과 같은 상황을 보여줬다. 영구 폐쇄된 체르노빌은 죽음의 땅이 됐다. 환태평양지진대, 일명 불의 고리에 놓인 일본은 지진활동으로 인해 후쿠시마현 말고도 언제든 해안에 건설된 원전에 위험이 가해질 수 있는 상태다. 한국 또한 최근 동해의 지진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울진·영덕·월성·고리에서 가동되고 있는 원전에 대한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전문가와 정치가들이 일본의 오염수 해양방류에 대
올해 3월 말 스님 몇 분과 강화도로 삼사순례를 다녀오면서, 그중 한 곳에 모셔져 있는 함허기화(涵虛己和, 법명 得通; 1376~1433) 스님의 자그마한 부도에 참배하였다. 함께 한 일행과 작고 소박한 스님의 부도를 참배하며 스님이 불교사에 남긴 자취를 잠시 돌아보고 오늘날 한국불교 현실을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그 부도 옆에 세운 안내판을 보는 순간 답답하고 안타까워 눈을 돌리고 싶어졌다. 그 부도의 주인공인 함허 스님이 어떤 분인지 설명도 없이 부도의 크기와 양식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1392년 실권
불교문화 전반에 드리운 기본 요소는 ‘전통’과 ‘엄숙, 경건’이 아닐까? 서구 문명의 홍수와 그것을 타고 들어온 기독교를 상대하면서 자연스럽게 불교는 전통을 업을 수밖에 없었고, 그 전통에서 흘러나오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엄숙함과 경건 쪽으로 치우치게 된 것 같다. 불교박람회 등을 보면 계속 새로워지는 면모를 보이면서도 여전히 그러한 기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러한 문화적 분위기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부처님오신날의 연등축제이다. ‘부처님오신날’의 핵심은 ‘기쁨’이어야 한다. 부처님이 오심으로써 우리 모두에
나는 불교학생회 출신 스님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문학의 밤’에 초대되어 처음 불교를 접했다. 그 시절 시골의 학교는 대부분 사찰로 소풍을 갔고, 나의 유년시절도 초등학교 6년과 중학교 3년, 모두 9년을 아주 먼 거리를 걸어서 사찰로 소풍을 갔다. 그 절에 스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코흘리개들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했다. 9년을 들은 설명이지만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은 전혀 없다. 아마도 사찰에 대한 연기와 법당에 대한 설명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각인된 기억은 이상한 옷(가사 장삼)을 입은 도인과 같은 스님의 낮선 모습과 곰팡
지난 4월10일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자유 우파의 단결을 주장했다. 그는 137년 전에 들어온 한국교회가 “민족의 개화, 독립운동, 건국, 새마을운동, 민주화 등에 중심적 활동”을 통해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는 데 앞장섰다고 한다. 그리고 “어렵게 찾아온 보수정권이 확실히 제자리를 찾고, 윤석열 정부가 성공하는 길은 보수의 대결집”이라고 한다. 전 목사의 정치 참여는 한국 사회의 비이성적인 사회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목불인견의 언행으로 인내의 한계를 넘어선 시민들이 사회적 병폐로 지적
조선 왕조 초기부터 유신(儒臣)들은 불교가 다시 일어날까봐 불안해하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불교를 말살시키려고 하였다. 유신들의 불교 비방 정도가 너무 심해지자 성종 임금이 “유생들이 임금을 속이면 한사코 ‘미치고 망령되어 탓할 여지가 없다’고 말하면서 유독 승려들에 대해서는 신문하라고 억지를 부리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질책한다.(1480년 6월) 유생들이 원각사에 들어가 학조(學祖) 스님의 멱살을 잡는 등 행패를 부리다 붙잡히는 사건이 일어나서 ‘과거 응시자격 박탈’이라는 중징계를 지시하자, “아이들이 우연히 원각사에 들어갔다가
‘부처님오신날’이 가까워 오면서 절마다 수많은 기원을 담을 등이 빛날 것이다.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소망들…. 그 간절한 마음이야말로 신앙의 출발점이요, 또 우리를 궁극의 깨달음으로 이끄는 힘일 것이다. 기도의 힘! 그것은 나의 절실한 바람에 바탕하기에 가피와 영험을 이끌어내는 크나큰 힘이 된다. 올해의 ‘부처님오신날’에도 그런 기원들이 나의 삶과 세상을 향상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기도의 힘이 그만큼 크기에 올바른 기도를 통해 그것이 서원으로 이어지게 하는 일이야말로 또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기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