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5월 16일 창간한 본지가 이번호로 지령 500호를 맞았다. 숫자적 개념으로만 따지면 500은 큰 수는 아니나 주간전문지로서 볼 때 지령 500호는 각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감회가 새롭다. 주지하다시피 주간 전문지가 지령 500호를 맞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옛말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어느덧 본지가 지령 500호를 맞게 됨은 강산이 변하고도 남는 11년의 세월이 흘렀으며본지를 성원하고 애독하는 독자들이 탄탄하게 조직화돼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의지령을 더할 때마다 경영진과 편집진 등 종사자 모두가 기울인 각고의 노력과 정성이 보태졌고 매회 새롭게 독자들에게 다가서기 위해 정보를 발굴하고 가공하기위한 `땀과 아이디어'는 매번 숨막히는 연속이었다. 본지는
우리가 일산으로 최근 이사온 후로는 출퇴근시간에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가 사는 곳에서 학교까지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세번이나 갈아타야 하고 또 한번은 전철을 타야 하기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두 시간 정도를 길에서 보내고 나서야 학교에 도착한다. 자연히 집에서 좀 더 일찍 떠나야 하고 또한 전철에서는 옆의 사람이 하는 얘기를 우연히 듣게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다음에 옮기는 얘기는 이렇게 해서 우연히 엿듣게 된 얘기중의 하나이다. 어느 날 퇴근 길의 전철에는 내 곁에 두 사람의 중년 부인이 앉게 되었다. 그 중의 한 부인은 아들이 군복무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 부인은 남편과 함께 가능하면 자주 아들을 면회 간다. 그런데, 아들의 부대에는 집에서한번도 면회오지 않는 군인이 있다는
성낙주의 소설 의 문학성은 고타마 싯다르타와 코살라국의 비유리왕의 갈등 구조 미학이나 당대의 불교 설화 구조를 재구했다는 점에서 찾기 보다는 말라국 파바성 출신의 대장장이 춘다와 그의 아들 나무크시아, 그리고 카라카인 야수비등의 주변인물의 서사 구조와 미학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정신적인 차크라바르틴인 붓다와 정치적인 차크라바르틴인 비유리왕의 이야기는 춘다와 나무크시아를 둘러싸고 있는 이야기를 돕기 위한 시대적 배경과 인물 창조의 보조 장치 또는 메세지 전언의 효과적 전달을 위한 소설적 장치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 소설이 단순히 석가시대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소설이 아니며 그 당대의 서민적인 삶의 모습을 통해 정신 부재의 이 시대의 삶을 환기시켜 주기위한 픽션이라 할 때 더욱 그러하
언젠가 신문의 해외토픽에서 기막힌 이야기를 읽었다. 가끔 배가 아픈 증세를 보인 사람이 병원에 찾아갔더니 뱃속에 수술하고 남은 수술칼이며 거즈 같은 것이 그득해 새로 수술을 하고 핀세트며 수술 가위 등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최근에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우리 병원들의 문제가 정말 간단치만은 않다는 것을 실감케 되었다. 우선 가장 심각한 것은 의무진의 실수 가능성이 의외로 높다는 것이다. 새삼스런 이야기는 아니지만 의사들의 솔직한 고백으로도 병원진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와 과실, 그리고 뜻밖의 사고가 만만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내가 그런 일을 당하고 나서 환자들이 정말 편안하게 병원을 신뢰하면서 진료를 받기는 힘들게 되었다는 것을 실감케 되었다. 서
〈법보신문〉이 지령 500호에 이른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 동안 어려움도 많았겠고 우여곡절이 없을 리 없는데, 척박한 여건을 딛고 교계의, 또 나아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신문으로 확고하게 자리잡기까지 이끌고 온 이들과 밀어 준 독자들 모두에게 경하의 말씀을 드린다. 한 때 객원논설위원으로 〈법보신문〉 시평을 격주로 기고한 적이 있었다. 청탁을 받고 첫 글을 실을 때만 해도 〈법보신문〉을 과연 몇 사람이 구독하며 내 글을 누가 꼼꼼히 읽기나 하랴 하고 솔직히 좀 가벼운 심경으로 임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정을 모르는 경솔한 태도였다는 것이 금방 판명되었다. 여기저기서 글 읽었다는 인사가 쏟아졌다. 평소 불교와 인연이 없는 듯해서 〈법보신문〉을 접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학교의 선배,
"새롭게 일어서는 불교 구현 위해 제2의 창간 자세로 임할 터" 88년 5월16일 설레이는 가슴으로 세상에 첫선을 보였던 〈법보신문〉이 어언 10년의 성상을 넘어서 지령 500호를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무량겁의 절대 경지를 말하는 불교적 시간관(時間觀)에 견주어 볼 때 500이라는 숫자는 한낱 티끌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심이란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이어서 지령 500호의 신문을 발간함에 이르러 독자님들께 다시 한번 자축과 다짐의 말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지령 500호에 이르기까지 〈법보신문〉이 걸어온 발자취는 영욕과 희비, 좌절과 희망이 점철되었던 지난 10여년의 우리 불교사에 다름아니었습니다. 육군 17사단 훼불사건에서 보았듯이 정법을 훼손하는 무리
"시시비비 명쾌하게 가리는 정론지 명성 이어가길" -고산 스님(조계종 총무원장) 〈법보신문〉 지령 500호를 축하드립니다. 열악한 교계의 언론환경 속을 꾸준히 걸어온 〈법보신문〉의 모든 가족들을 향해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법보신문〉이 처음 창간되던 때 〈법보신문〉에 거는 교계의 관심과 기대는 자못 큰 것이었습니다. 그 관심과 기대에 `법보'는 비교적 충실히 답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불편부당하면서도 시시비비를 분명히 가리는 정론지가 되고자 애쓰던 노력들이 그것입니다. 〈법보신문〉은 포교지로서도 많은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독자를 진리로 안내하고, 신심을 중장시키는 교량 역할을 다하였습니다. 〈법보신문〉을 펼치면 산사의 향기가 퍼지고, 정진 납자들의 날선 구도의
불교언론을 죽이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요즘같은 태평성시에 그 무슨 망발이냐고 눈을 휩뜰 부류도 있겠지만 불교언론에 몸담고 있는 당사자로서는 요즘같이 불교언론에 쏟아지는 몰매를 보지못했다. 지난 한달간 세개 이상의 매체가 불교언론비평을 크게 혹은 비중있게 다뤘다. 이중 두개 매체는 지금 불교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체에서 발행되는 기관지이고 나머지 하나는 제호를 바꿔 재창간한 교계 주간신문이었다. 발행주체가 매우 다른 이 세 군데 매체는 그러나 내용면에서만큼은 공통점을 보인다. 교계언론풍토에 대한 심한 불신과 질책이 그것이다. 한마디로 "불교언론이 언론은 언론이되 하는 모양새가 언론(정론)으로 보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자사이기주의에 빠졌다거나 기자정신이
조계종이 금년도에 추진할 종무계획을 발표했다. 종단의 안정과 화합, 수행중심의 승가상 확립, 포교전법사업의 내실화, 대사회활동의 다각화와 전문화, 종도중심의서비스행정의 실현, 종무행정의 전산화와 불교종합정보망사업 추진, 불교종합회관건립불사 추진 등이 주요내용이다. 이와 같은 사업계획은 고산 스님의 새집행부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해나갈지를 예측케 하는 기본 자료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종무계획' 만으로 볼 때 고산 스님의 새 집행부는 지난해에 비해 특별히 새로운 구상을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금년 중에 불교종합회관을 착수하겠다는 것과 지난해 종단사태와 관련 수행중심의 승가상 확립을 위한 참회법회와 교육실시 등은 전에 없던 항목이어서 눈길을 끄는 정도다. 이러한 사업계획은 새집행부
겨울 산천이 본체를 드러내 놓고 있다. 스스로 장식을 제거하고 뼈대를 노출시키고 있어 한층 아름답다. 더욱이 올해는 눈이 내리지 않아 겨울산이 건조하고 삭막한 분위기마저 든다. 방문을 열고 산을 바라보면 우뚝 우뚝 서있는 산뼈들이 다가서는 것 같다. 그리고 차가운 침묵과 고요가 엄습한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으면 마음 속에 번뇌들이 빠져나가고 산 속에 숨어있던 때묻지 않은 고요가 찾아든다. 그리고 삼라만상의 숨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생명이 움직이고 있음을 깨닫게 하는 일이었다. 우주는 하나의 생명체이다. 비록 개체는 각기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본다면 생명체는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마음을 비우고 사유(思惟)를 맑히니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바로 이것이 무아의 경지이다. '나'란 생
T사에서 운영하는 K장학회. 명문대 위주의 학생을 상대로 학비를 지급해온지 10년이 넘는다. 장학금 수혜를 받은 학생만도 300명을 웃돌만큼 규모가 크다. 그러나 K장학회는 교계 인재를 길러 내기 위한 성격과는 거리가 멀다. 졸업과 동시에 제 갈 길을 가는데, 4년간 장학금을 지급해온 스님을 찾아오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그런데도 T사는 왜 이러한 장학사업에 적지 않은 정재와 남다른 의지를 보이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사회각계의 엘리트로 자리할 그들과의 개인적 친분을 쌓아 이용가치를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계산이 뒷받침돼서다. 즉 장학회를 운영하는 스님의 개인적지명도와 친분관계를 넓혀나가는데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K장학회를 바라보는 교계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문제의 심각
지난 4일 낮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 청사 앞길에서 대학생들과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회원들이 모여 이색적인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 퍼포먼스에서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소리를 외면하고 서있는 법조인들에게 "귀를 잘파서 국민의 소리를 들으라"며 한 시민이 1m길이의 각목으로 만든 귀이개를 건네주는 장면을 보고 둘러서 있던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시위방법의 행위예술화라고나할까. 아무튼 피킷과 소리 높은 구호 등으로 인식되는 시민운동단체의 시위방법이 몇 년전부터 그 경직성을 풀고 여유와 발랄함과 유연성을 찾고 있는 것 같아 한결 가벼운 느낌을 받는다. 한국에서도 이제 '시민사회', '시민운동'이란 말은 낯설지 않다. 정권에서 '군사'의 때가 빠져나간 문민정부의 시작쯤인 90년대 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