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른자 보직이라 불렸던 인사과에서 강원도로 도망치듯 떠났습니다. 동해 삼화사에서 만난 부처님이 아니었다면 제 인생은 여전히 낭비되고 있었을 겁니다.”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상을 수상한 김병우(도광) 불자는 조직생활 중 겪은 심적 갈등을 수행으로 극복하고 신심을 다져가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담아냈다는 심사평을 받았다. “마음둘 곳이 없었던 제게 삼화사 도반들이 손을 건넸어요. 함께 법을 공부하고 마음을 들여다보니 새 삶이 다가왔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진급 통보도 받았고요.” 3년 간 하루도 빠짐없이 108배를 하고 포교사로도 활동했던
“꺼내기 어려웠던 이야기를 공개할 수 있었던 건 부처님을 통해 만난 많은 분의 크나 큰 사랑 덕분입니다.”올해 신행수기 동국대 총장상은 아동보호시설에서 자라며 겪었던 내적 갈등을 부처님 법에 의지해 이겨낼 수 있었음을 담담하게 풀어낸 김상아(소연지) 불자에게 돌아갔다. 그는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가슴 아팠던 순간, 즐거운 시간, 포기했던 때 모두가 제 삶의 일부였다”며 “많은 분의 노력과 사랑, 보이지 않는 부처님의 가피로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감사한 마음뿐”이라고 말했다.현재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며 복지공무원을 준비 중인
“사실 ‘남편의 승진’ ‘부모님의 건강’ 등 개인의 기복을 바라는 내용이 기도의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이를 발원문에 담기에는 부끄러웠습니다. 해서 불자의 관점에서 불교와의 인연으로 달라진 점, 좋은 점들을 생각해 발원문에 옮겼습니다. 발원문을 작성하는 시간이 제게는 성찰의 시간이었습니다. 스스로 작성한 발원문을 마음 깊이 새겨 열심히 실천하겠습니다.”발원문 부문 대상인 교육원장상을 수상한 최윤주(여여행) 불자는 “온 마음을 다해 처음으로 써본 발원문으로 큰 상을 받게 됐다”며 “오롯이 부처님의 가피이며 남편을 비롯한 모든 인연에게
“불법을 만나 평화롭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좋은 건 나눠야 하듯 많은 이들이 제가 느꼈던 기쁨을 느꼈으면 합니다. 육신을 벗는 날까지 인연 닿는 곳마다 불법을 전하고 싶습니다.” 김복자(법신행) 불자는 불교와의 인연을 중심으로 자신의 79년 인생을 풀어낸 수기로 불교방송 사장상을 수상했다. 방송을 통해 법문을 듣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그는 수상소식을 듣자 떨리는 목소리로 “훌륭한 글도 많았을 텐데 수상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 모든 것이 부처님 덕분”이라고 소감을 전했다.김 불자는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오지 않을
“어머니 덕분에 부처님을 만나 오랜 세월을 함께했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칠 때도 있었지만 기도와 수행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면서 굳건하게 극복해 냈습니다. 진정한 행복을 알게 해준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법보신문 사장상을 수상한 정진숙(위제야) 불자의 ‘꽃가마’는 인도순례 이튿날 발생한 교통사고와 어머니와의 사별이 불자로서의 삶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는 내용이다. 어머니가 가족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정씨는 자연스레 불교가 인생의 중심이 된 ‘모태불자’다. 정씨는 “함께 신행생활을 하는
중앙신도회장상을 받은 정정례(무등행) 불자는 “수상 소식을 들으니 어려웠던 당시 상황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고 했다.정정례 불자는 2006년 남편이 뇌종양 선고를 받자 눈앞이 캄캄했다.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남편이 모두 자기 탓인 것만 같았다. 남편은 아무것도 삼킬 수 없었고 그때마다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그런 남편 대신해 어린 세 딸을 키워야 했기에 마냥 슬픔에 빠져있을 수만은 없었다. “저라도 힘을 내야했어요. 밥을 먹으려 숟가락을 들면 목이 메어 삼킬 수가 없었어요.”매일 새벽 익산 연국사로 가 참회기도를 했다.
“제 삶은 폭력 트라우마와 알코올 중독으로 얼룩져 어두운 터널 속에 있는 듯했습니다. 감추고 싶은 비밀을 드러내는 일이기에 저의 경험을 이렇게 써내려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저와 비슷한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제8회 조계종 신행수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인 포교원장상을 수상한 이정민(금강심) 불자의 ‘자비심이 진리를 보게하리라’는 불교에 입문하면서 자신에게 일어난 긍정적 변화를 진솔하게 담아냈다. 어린시절 겪은 가정폭력이 가정불화로 이어졌고, 결국 알코올에 의지하는 삶을 살았다. 어느
“가족이 서로 다른 종교에 의지하면서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많죠. 저 역시 그랬습니다. 시어머니의 강요로 불교를 처음 만났거든요. 막상 불교를 알아가다 보니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방법을 배운 것 같아요. 차츰 미움은 사라지고 사이도 금세 좋아졌죠. 제 이야기가 종교문제로 갈등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제8회 조계종 신행수기 공모전에서 대상인 총무원장상을 수상한 김분애(안심주) 불자는 소감을 묻자 “부끄럽다”고 답했다. 뒤늦게 만난 부처님 가르침은 알게 모르게 상처 줬던 가족에 대한 참회를 이끌었다.
여주교도소에서 전체 형기 5년 가운데 2년째 복역 중이다. 제대로 적응하며 생활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는데 뜻밖의 행운을 만났고, 그 행운으로 지난 잘못을 참회하며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행운은 부처님과 인연을 맺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게 된 것이다. 2020년 7월 모든 재판이 끝난 후 이곳 여주교도소로 이감됐다. 같이 공장출역을 하던 동료 재소자가 “종교거실이 따로 운영되고 있다”며 “함께 불교를 공부해 보자”고 권유했다. 사회에 있을 때 어머니와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절에 방문한 적은 있지만, 불자라고 생각해 본 적
우리 가족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은 2006년 3월 무렵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여자의 갱년기 증상처럼 자꾸 얼굴에 열이 나고 매운 것을 먹은 것처럼 혀가 화끈거린다고 했다. 한의원에서 약을 지어 먹어봤지만 차도가 없었다. 인근 대학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았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의사는 “남자도 갱년기가 올 수 있으니, 약을 먹고 기다려보자”고만 했다. 내심 걱정이 돼 “MRI라도 찍어보면 좋겠다”고 했지만, 의사는 그럴 필요까지 없다고 했다. 의사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남편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수없이 내 머리를 맴도는 나쁜 생각과 말들, 달라이라마는 아침에 일어나면 꽃을 생각하라 했던가? 머리로는 알지만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1년 전 나는 이렇게도 나 자신을 지독히 괴롭히고 있었다.나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고 있다. 다정하고 능력 있는 의사 남편을 두었고, 바르고 공부 잘하는 두 아이의 엄마다. 일찍이 불법을 알아 아주 부유하지는 않지만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2년 전 남편이 병원 개원 준비로 마케팅회사를 알아보던 중
동트는 아침에 수행하며 발원하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자아를 넘어서는 성숙한 인생이냐 아니냐를 좌우할 만큼 큰 차이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우리 삶은 단순하지 않다. 선과 악,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고 뒤틀린다. 언제나 순풍에 그림처럼 미끄러져 가는 배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거센 비바람이 불고 태풍을 만나기도 한다. 생각지도 않던 일이 벌어져 일을 망치기 직전까지 내몰리는 경우가 생긴다. 이럴 때 좌절하거나 물러서면 수렁에 빠질 위험이 크다. 그러나 발원하는 삶에는 좌절과 불가능이란 없다. 앞길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도 발원의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적으로 강화되면서 올해의 부처님오신날도 작년과 다르지 않기에 조금은 무거운 마음이 앞선다. 불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의 지난한 삶이 이어져 가고 있기에 제8회 대한불교조계종 신행수기에 선정된 작품을 통해 많은 분들이 잠시나마 위안의 시간을 갖길 바란다. 신행수기는 불자의 체험과 신심을 바탕으로 다소 투박하더라도 진정성이 스며들어 있기에 전문 작가의 글은 아니지만 이로 하여금 위안과 희망을 안겨준다. 김분애 불자의 ‘부처님과의 인연’은 “모든 것은 내 마음 먹기에 따라 달라지고 나의 생각과 행동은
40대 중반 어느 겨울날, 남편과 길을 걷다 쓰러졌다. 남편을 나를 업고 집으로 돌아왔다. 서둘러 병원에 가야 했지만,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 계속되는 구토와 어지럼증…. “살라달라” 소리를 지르고, “차라리 침대에 묶어달라” 울부짖었다. 그렇지만 남편이 해줄 수 있는 건 안아주고 함께 울어주는 것뿐이었다. 왼팔의 마비가 시작되고야 병원을 찾았다. 뇌경색이었다. 수술은 불가능하고 약물치료만 가능하다고 했다. 약을 먹어도 참을 수 없는 고통은 지속적으로 나를 괴롭혔다. 당시 아들은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아픈 몸보다 아들의 대학입시가
고향인 경기도 이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가면 신중전의 그림이 무서워서 절에 가는 것이 싫었다. 어머니는 가을추수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부처님 전에 올리는 쌀을 챙겼다.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미는 깨끗해야한다면서 정성들여 챙겨두셨다가 4km가 넘는 거리를 먼 거리를 공양미를 이고 절에 가셨다. 나는 8남매에 3째 딸로 태어났다. 그리고 스무 살 무렵 도시에 살고 있는 오빠 집으로 가서 살게 됐다. 오빠 집에서 2km정도 떨어진 곳에 성당이 있었는데 당시 하얀 미사보를 쓰고 기도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보
지금으로부터 2600여년 전, 히말라야 산기슭 카필라국의 왕위를 계승할 싯다르타 왕자가 출가를 하자 숫도다나왕을 포함한 사캬족 모두가 혼란에 휩싸였다. 숫도다나왕은 왕자가 자신의 뒤를 이어 장차 전륜성왕 같은 훌륭한 왕이 되길 바랐다. ‘모든 것을 다 이룬다’는 의미인 ‘싯다르타’로 이름을 지은 것도 이 때문이다. 왕은 풍요롭고 호화로운 궁중에서 안락하게 지내며 싯다르타가 훌륭한 왕가의 후손으로 자라나도록 세심히 보살폈다.하지만 숫도다나왕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싯다르타 왕자는 보장된 왕의 길을 과감히 버렸다. 고통에서 헤매
어려서부터 혼자 조용히 있기를 좋아하는 예민한 소녀였던 내게 아빠는 내 마음을 잘 알아주고 항상 내 편이 되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아기 때부터 생일이면 독상을 차려주실 만큼 나를 아끼고 귀하게 생각하셨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가족들의 광기 어린 성향이었다.“은희야(어릴 적 이름), 니 까자(과자의 경상도 사투리) 어디서 사 왔노?”“외상으로 사 왔다.”이 대답에 태어나 처음으로 폭력을 경험했다. 사실 시골에서 외상으로 간식과 술을 사온 건 아빠였고 아빠를 꼬리처럼 따라다닌 나는 배운대로 했을 뿐이었지만 설명 한마디 없이
5월11일 오전 10시 서울 조계사 인근 한 오피스텔 5층. 살짝 열려있는 문틈 사이로 화기애애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도마에 칼이 탁탁 부딪치는 소리가 경쾌하게 더해졌다. 안으로 들어가니 봉사자 4명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있다. 빨간 대야에 손질한 홍고추, 애호박, 무, 대파가 알록달록 쌓였다. 맵싸한 파 향기로 잠깐 사이에도 눈물이 찔끔 났지만 재료를 썰고 있는 봉사자들 손길은 멈추질 않았고, 눈매에는 웃음기만 가득하다. 그 사이를 한 스님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사단법인 다나 대표 탄경 스님이다. 스님은 “오늘 밥차가 나가는 날이라
“허허허. 다른 사람 돕는 게 남 좋을라고 하는 일이 아닙니더. 이웃을 생각하는 만큼 스스로가 발전할 수 있는거라예. 다 제 복지을라고 하는 겁니더.”구수한 경상도 사투리. 툭툭 내뱉는 한마디에 왠지 모를 포근함까지 느껴진다. “우리는 남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법상 스님 이야기 속에서 새삼 ‘이웃’의 의미가 떠오른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무색해진 지는 제법 됐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인남녀 10명 가운데 4명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1인 가구가 보편화됐고 시간적 여유도 사라졌으며 개인화 성향도 강해진
“스님, 저는 전생에 무슨 잘못을 크게 저질러 이런 병에 걸렸을까요? 언제쯤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병원법당을 찾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같은 질문을 한다. 병마와 싸우느라 지칠 만큼 지쳐버린 환자들에게 그 어떤 말이 위로가 될까? 스님들은 따뜻한 말한 마디 건네는 위로를 넘어 환자나 가족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을 통해 그들의 마음에 희망의 씨앗을 심어 주고 싶었다.2020년 10월 승가결사체 ‘자비실천 병원포교단’이 결성됐다. 대표 지인 스님을 비롯해 하륜·선봉·유정·능지·성민 스님은 환자들의 아픔을 보듬고 스스로 치유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