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나 아비다르마불교는 인간존재를 5온, 즉 ①색온(色蘊), ②수온(受蘊), ③상온(想蘊), ④행온(行蘊), ⑤식온(識薀)의 5가지 임시적인 모임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색’은 ‘육체적 현상’을 ‘수․상․행․식’ 등은 ‘정신적 혹은 심리적 현상’을 의미한다. 5온은 과거․현재․미래 3세에 걸쳐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아닌 역동적으로 생멸하는 연기적 현상임을 시사한다. 이는 붓다의 연기적 통찰에 의해 제시된 것으로, 인간 존재는 5온의 연기적인 흐름(相續)이나 모임에 불과할 뿐 ‘나’라고 내세울 만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무아(無我
나의 할머니께서는 스님이셨다. 오늘날 내가 부처님의 길을 가게 된 동기도 순전히 할머니 명덕 스님의 공덕에 의지해서이다. 스님께서는 나를 무척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셨다. 어린 시절 방학 때면 스님이 계신 암자에서 지냈다.스님은 도를 깨치신 분은 아니었지만 부처님을 향한 신심과 정성은 극진하셨다. 신도들이 절에 올때 생선도 못 먹게 하셨고 부부간에 잠자리도 금하셨다. 부처님께 바칠 공양미를 가져올 때에는 도중에 땅에 내려놓지 못하게 했고 불공 전에 가져온 음식을 먼저 먹지 말라 하셨다.믿기 어렵겠지만 이런 스님에게는 신통력이 있으셨다
이젠 아침저녁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두터워지고 있네요. 이러다 “춥다”는 소리를 하는 계절이 돌아올 것 같습니다. 지난주엔 오랜만에 도반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었네요. 각자의 처소에서 각자의 분상에 맞게 포교들 열심히 하면서 지내는 도반들을 보면서 ‘나도 더욱 열심히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였지요. 부처님 제자로서 법당불사를 하였으니 ‘부처님 밥 공짜로는 안 먹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라는 어느 도반의 말처럼 나도 부처님 밥을 공짜로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일체의 중생은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다고 천명하고 있다. 이른바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이 그것이다. 불성이란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 다른 말로 여래장(如來藏)이라고도 한다. 불성사상은 인간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다는 심성본정설(心性本淨說)에 토대를 두고 있다. 심성본정설은 인간의 지고선(至高善), 즉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인간관이다.불성사상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잠재적인 가능성을 자신 속에 간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부처
조계종 제8대 교육원이 출범하였다. 조계종 중앙종회는 지난 9월19일 개최된 임시회의에서 진우 스님을 만장일치로 선출하였으며, 진우 스님은 9월23일 교육국장에 원용 스님을 임명하는 등의 인사 절차를 진행하였다. 이로써 제8대 교육원 집행부는 ‘역사적인’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교계 구성원들은 새롭게 출범한 교육원 집행부가 과연 어떻게 산적한 교육현안을 해결해나갈 것인지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될 것이다. 제8대 교육원 집행부의 출범을 역사적인 첫걸음이라 표현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지금의 교육원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얼마 전 거리에서 전단지를 받았다. 서툰 디자인의 전단에는 낯선 종교 이름과 함께 앞뒤로 빼곡하게 “지도 말씀”과 계율이 적혀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정직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일하자” “탐내는 마음을 버리자, 인색한 마음을 버리자, 편애하는 마음을 버리자….” 무척 소박한 계율이라 웃음이 나왔다. 부처나 예수의 말씀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은 말. 계율은 함께 살기 위해서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도리로 여겨지고 있고, 그런 면에서 어느 종교나 대동소이하다. 계율이 없는 종교는 없다. 특히 모든 것이 연결되어있음을 강조하는
솔거(率去 혹은 率居)라는 신라의 화가가 황룡사 담벼락에 소나무를 그렸는데, 새들이 진짜 나무인줄 알고 날아와 앉으려고 했기 때문에 벽에 부딪쳐 떨어졌다는 이야기는 아마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삼국사기’에 실려있고, 신라시대의 그림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현실에서 당시의 상황을 전해주는 매우 소중한 기록으로 자주 인용되고 있다. 동양화는 사실적인 표현에 관심이 없었다고들 하지만, 미술이 사물과 자연을 그리는데 있어 어떻게 ‘닮음’을 추구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 이야기는 솔거의 그림이 얼마나 사실주의적인 그림이었는
이번 추석은 다른 때 보다 빠른데다가, 후덥지근해서 그다지 명절 느낌이 덜했던 것 같다. 늦더위와 함께 태풍과 비가 반복되더니 이제 서야 더위는 빠르게, 빠르게 지나가고 있는 느낌이다.임만혁 작가의 개인전이 강원도 춘천 이상원 미술관에서 올 연말까지 열리고 있다. 작가는 강원도 출신으로 서울에서 대학원 이후 7년여 정도 활동을 하고 다시 줄곧 고향인 강릉에서 작업하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작품을 접한 것이 그 서울생활 중 어느 시점이었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 전시되었던 여러 작가의 작품 중에서 남미 대사관에서 임만혁
27대 선덕여왕(632~647)이 즉위 16년(647) 1월 상대등 비담(毗曇)의 반란 중에 사망하자, 사촌 자매인 승만(勝曼)이 왕위를 이어 28대 진덕여왕(647~654)이 되었다. 승만이라는 이름은 대승경전의 하나인 ‘승만사자후일승대방편방광불경(勝鬘獅子吼一乘大方便方廣佛經)’의 주인공인 승만부인(勝鬘夫人)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고, 그의 아버지 국반갈문왕(國飯葛文王, 國芬 또는 國眞安葛文王)의 국반이라는 이름은 석존의 삼촌인 곡반왕(斛飯王)의 이름에서 따온 것임은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다. 그리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바이올린과 첼로의 중간 음역을 지닌 비올라는 독특한 음색을 가진 악기이다. 바이올린이 화려한 소프라노라고 한다면 비올라는 따뜻하고 온화한 알토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음성과 유사하다고 생각되는 첼로의 음색보다 조금은 어둡지만 침착하고 세련된 매력을 가졌다. 또한 비올라는 실내악이나 규모가 있는 관현악에서 중후한 첼로와 개성 강하고 다소 날카로운 바이올린의 중재자와 같은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다.로베르트 슈만의 ‘피아노와 비올라를 위한 그림동화 작품 113(Märchenbilder)'은 잔잔하면서도 개성 있는 서정성
대추나무는 담장 안팎에 심어 가꾸는 과일나무였다. 그래서 골목 꼬마들과 친하고, 과일 나무 중 가장 늦게 잎과 꽃을 피운다. 그러나 밤이나 감보다 과일을 빨리 익힌다. 그리고 대추가 익을 무렵이면 골목 꼬마들이 대추나무 밑에 모인다. 바람이 떨어뜨리는 대추를 주워 먹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생겨난 전래동요가 있다. 골목 꼬마들이 나무를 쳐다보고 부르는 어린이 민요다.“바람아 바람아 불어라/ 대추야 대추야 떨어져라/ 아이야 아이야 주워라/ 어른은 어른은 잡수이소/ 송아지야 울어라. 움매~/ 망아지야 울어라 삐~효!” 한가위에는 햇과일이
“제 2칙 : 글자 한 자, 문구 한 마디, 게송 한수, 책 한권으로 정토법문을 남김없이 포괄하다.”내가 듣건대 정토법문은 부처님의 본래 품은 뜻을 가장 철저하게 털어놓은 법문이라 말한다. 일체 선·교·율보다 뛰어나고 일체 선·교·율을 통섭한다. 간략히 말하면 글자 한자, 문구 한 마디, 게송 한수, 책 한권으로 정토법문을 남김없이 포괄할 수 있다. 폭넓게 말하면 설사 삼장 12부의 그윽한 말씀이나 다섯 종 조사들의 미묘한 뜻일지라도 또한 설명하고 해석하여도 다함이 없다. 설사 대지에 널리 분포하는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함께 정각을
경기도 안성지역은 삼국시대 이래 교통과 문화의 교류를 위한 요지이자 전략적 요충지로 널리 알려져 왔던 곳이다. 특히 신라 5경이었던 청주, 충주, 원주에서 한강유역으로 연결되거나, 중국과 불교문화를 교류하는데 주요한 항구인 당항진(唐港津)으로 가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지역이었다. 고려시대에는 태조의 영정을 봉안한 진전사원(眞殿寺院)이 위치하고 있어 불교문화의 중심지로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인지 안성지역에는 절터와 불상, 석탑, 부도, 당간지주 등 많은 유물이 남아 있다.안성 운수암(雲水庵) 비로전에 봉안된 석조비로자나불상은 70여
“아버님 전상서! 조석으로 바람이 찬데 그간 기체후일향만강(氣體候一向萬康)하신지요? 소자는 아버님의 염려덕분으로 건강하게 공부 열심히 잘하고 있습니다.”무슨 옛날 편지인가 하겠지만 내가 고등학교 객지 유학시절 가끔 시골집에 계신 부모님께 안부편지 드리던 첫 구절이다. 그 무렵에는 소식을 거의 편지로 전하던 때라 격에 맞춰 글을 쓰지 않으면 ‘배우지 못한 놈’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하니 편지 첫머리의 ‘누구누구 전상서’와 ‘기체후일향만강’은 편지 좀 쓴다는 사람들의 기본옵션이었다.나는 중학교 때 한문시간이 즐거웠다. 고사성어에
세계은행 전 수석환경자문위원인 로버트 굿랜드 박사와 제프 안항은 2009년 세계적 권위의 월드워치 매거진 11·12월호 논문에서 축산업이 환경에 끼치는 파괴적 영향을 과학적으로 조명해냈다. 온실가스 분석에서 대부분 패턴이나 시스템보다는 개별가스에 초점을 맞추는 관계로 매우 중대한 오류를 범하곤 했다. 축산업의 온난화 영향이 연구마다 다르게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고 정책 결정에 필요한 신뢰할만한 효과를 식별해내기도 어려웠다.이번 연구는 개별 종이나 특정 현장에만 중점을 두는 기존의 축산업에 관한 환경영향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먼저 영역
조계종단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에는 공덕의 크고 작음을 견주는 비유가 등장한다. 즉 “갠지스강 모래알 숫자만큼 많은 삼천대천세계들을 칠보로 가득 채워놓고 이를 여래께 보시하여 얻을 공덕”이 그 하나요, “‘금강경’ 가운데 최소한 사구게송 하나라도 받아 지녀 남에게 일러주었을 때 얻을 공덕”이 또 다른 하나다. 이 경우에 뒤의 공덕이 앞의 공덕보다 크다 하였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칠보(七寶)로 가득 채워놓은 것이라면 삼천대천세계가 아니라 인천 세관창고 서너 개 분량만 되어도 어찌 경전의 게송 한 수 외워서 전해주는 공덕만 못하
시간은 변화를 통해서 측정한다. 시계는 물의 운동, 해의 운동, 톱니의 운동을 통해서 또는 원자의 운동을 통해서 시간을 측정한다. 여기에는 같은 시간에는 같은 양의 운동이 일어난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그런데 만약 아무것도 없다면, 즉 아무 물질도 에너지도 없다면, 즉 변하는 게 하나도 없다면 어떻게 시간을 측정할 수 있을까? 아차, 시간을 측정한다는 것은 측정하는 ‘주체’가 있어야 하므로 ‘아무 것도 없다’는 말에 부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시간을 측정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시간이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현대 힌두 명상의 대가 라마나 마하리쉬(Ramana Maharshi, 1879~1950)의 어릴 적 이름은 벵카타라만이다. 그는 어렸을 때 한 번 잠이 들면 남들이 어떤 짓을 해도 눈을 뜨지 않는 특징이 있었다. 심지어 친구들이 그의 몸을 옮기거나 얼굴에 심한 장난을 해도 그는 깨어나지 않았다.어릴 때 그의 마음속에서 ‘아루나찰나’라는 신비한 고동소리가 항상 울려 퍼졌다. 그는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집에 온 친척 한 사람이 아루나찰라라는 말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에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물어보았다. 알고보
조선 중기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운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은 흥선대원군 집권 시절 전국의 서원을 철폐할 때도 살아남은 사액(賜額)서원이다. 일찍이 사적 제55호로 지정되었고 금년(2019)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곳인데, 이곳에는 보물 제59호로 지정된 당간지주와 함께 석등 좌대 등이 남아 있어 ‘본래 사찰이 있던 자리에, 아니면 사찰을 강제로 빼앗아 서원을 세웠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보물로 지정할 때의 명칭도 ‘숙수사지당간지주’로 분명히 하고 있어 이 서원 자리에 숙수사가 있었음을 확인해준다.지난 2012년에는 서울 도봉산 입구
불교는 윤회라고 하는 끝없는 삶의 연속에서 벗어나 모든 것이 사라진 열반을 증득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종교이다. 이런 불교적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불교로의 입문이 필요하다. 불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불, 법, 승 삼보에 귀의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그 후에 승가라는 수행자 집단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비구(니)계, 사미(니)계, 우바새(이)계 등을 받아 불교의 정식 일원이 되어 함께 수행하며 살아가는 것이다.이러한 불교입문에 특별한 조건이나 제약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불교인이 되고자 하는 본인의 의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즉 누군가의 강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