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서원이 사찰로 바뀐 아산 강당사
113. 서원이 사찰로 바뀐 아산 강당사
  • 이병두
  • 승인 2019.09.24 10:22
  • 호수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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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철폐 위기 벗어나기 위한 편법

유생 공부했던 아산 외암정사
흥선군이 사원 철폐령 내리자
마곡사 불상모셔 사찰로 전환
숭유억불 조선시대 특별 사례
충남 아산시 소재 강당사 관선재(觀善齋).
충남 아산시 소재 강당사 관선재(觀善齋).

조선 중기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운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은 흥선대원군 집권 시절 전국의 서원을 철폐할 때도 살아남은 사액(賜額)서원이다. 일찍이 사적 제55호로 지정되었고 금년(2019)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곳인데, 이곳에는 보물 제59호로 지정된 당간지주와 함께 석등 좌대 등이 남아 있어 ‘본래 사찰이 있던 자리에, 아니면 사찰을 강제로 빼앗아 서원을 세웠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보물로 지정할 때의 명칭도 ‘숙수사지당간지주’로 분명히 하고 있어 이 서원 자리에 숙수사가 있었음을 확인해준다.

지난 2012년에는 서울 도봉산 입구에 있던 도봉서원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 과정에서 금동제 금강령‧금강저‧향로‧향완(香埦) 등의 유물이 출토돼 이곳이 고려시대 영국사(寧國寺) 자리였던 것이 확인됐다. 2018년 봄에는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이 ‘천년 만에 빛을 본 영국사와 도봉서원’을 열어 사찰이 서원으로 바뀐 생생한 역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 전혀 다른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충남 아산시 외암마을 가까이에 보통의 사찰과는 다른 형식의 전각이 여러 채 있는 강당사(講堂寺)라는 절이 있다. 이곳은 원래 조선 중기 외암(巍巖) 이간(1677~1727년)이라는 성리학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외암정사가 있던 곳이다. 1707년에 세운 외암정사는 사진에서 보듯 추사 김정희가 쓴(또는 권상하가 썼다는 주장도 있음) 편액 덕분에 ‘관선재(觀善齋)’로 더 잘 알려졌었다. 조선 중기 윤혼과 이간이 이곳에서 강학을 했다고 하는데, 이간이 세상을 떠나자 유생들이 그를 관선재에 배향하면서 ‘외암서사(巍巖書社)’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 뒤 고종이 즉위하여 흥선대원군이 실제 권력을 행사하던 1864년 전국 서원의 실태를 조사하여 서원의 폐단과 존폐 문제를 제기한 후 노론의 정신적 지주였던 만동묘를 철폐하고 4년 뒤인 1868년에는 사액(賜額)서원을 제외한 전국 1000여곳의 서원을 정리하였으며, 1871년에는 다시 대대적인 서원 철폐령을 내려 전국의 서원을 정리하였다.

이 서원 철폐령으로 위기에 놓이자 이를 피하기 위해 외암서사를 강당사라는 절로 바꾸고, 공주 마곡사에서 불상을 모셔다 안치했다고 한다. 서원 철폐령으로 맞게 된 철거위기를 돌파하는 수단 또는 편법이었다고 하지만,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에 ‘서원이 사찰로 바뀐’ 특이한 역사를 가진 곳이다. 어쨌든 서원을 절로 바꾸어 불상을 모실 때에 이간의 후손들과 후학들, 지역 유생들과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당시에 스님들이 지역 사회에서 신망을 얻지 못했다면 그 상황을 원만하게 풀고 150여년을 이어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강당사는 잠시 강법사(講法寺)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다시 옛 이름인 강당사로 되돌아갔는데, 이 절의 창건주라고 할 수 있는 이간의 문집 판각 307매를 보관하고 있어 사찰의 원류를 증명해주고 있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505 / 2019년 9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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