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사구게송(四句偈頌)
35. 사구게송(四句偈頌)
  • 현진 스님
  • 승인 2019.09.24 10:36
  • 호수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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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내용을 갖춘 하나의 문장을 의미

중국·인도 고문헌, 운문으로 표현
중국에서는 ‘삼구’ 형식도 있지만
인도에선 오직 사구게송만 존재
‘4’를 완벽한 형태로 보았기 때문

조계종단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에는 공덕의 크고 작음을 견주는 비유가 등장한다. 즉 “갠지스강 모래알 숫자만큼 많은 삼천대천세계들을 칠보로 가득 채워놓고 이를 여래께 보시하여 얻을 공덕”이 그 하나요, “‘금강경’ 가운데 최소한 사구게송 하나라도 받아 지녀 남에게 일러주었을 때 얻을 공덕”이 또 다른 하나다. 이 경우에 뒤의 공덕이 앞의 공덕보다 크다 하였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칠보(七寶)로 가득 채워놓은 것이라면 삼천대천세계가 아니라 인천 세관창고 서너 개 분량만 되어도 어찌 경전의 게송 한 수 외워서 전해주는 공덕만 못하겠느냐는 것이 누구나의 솔직한 느낌일 것이다.

물론 경전을 읽어주는 강사의 간략한 설명만 놓치지 않아도 쉽게 이해되는 것이 또한 이 부분이기도 하다. 아무리 많은 재물을 쟁여놓고 보시하더라도 그것은 내 자신이 해탈로 나아갈 수 있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 못하는 반면, 비록 ‘금강경’의 한 구절일망정 온전히 남에게 일러줄 정도라면 그것을 자신이 완벽히 이해했다는 의미이기에 이는 내 자신이 해탈로 나아갈 수 있는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동양에서 고대문명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중국과 인도는 고대의 문헌일수록 시(詩) 혹은 게송(偈頌)인 운문으로 표현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중국에선 시작(詩作)이 아닌 글을 산문(散文)이라거나 후대에는 소설(小說)이란 말로 폄하해놓기까지 하였다.

중국은 대표적으로 절구(絶句)와 율시(律詩)로 정착되어 있는데, 절구는 기승전결의 네 마디에 각각 다섯 글자로 된 오언절구와 일곱 글자로 된 칠언절구가 있으며, 율시는 여덟 마디를 일반적인 모습으로 하여 오언율과 칠언율이 통상적이다. 인도는 네 마디가 하나의 게송을 형성하는 사구게송(四句偈頌)만이 존재하는데, 한 마디 안에는 음절수를 기준으로 4음절에서 무려 26음절까지로 형성되어 있으므로 모두 23가지의 게송형식이 존재한다. 인도 게송은 길던 짧던 모두 네 마디로 되어있는 것 밖에 없는 셈이다.

세 마디로 된 삼구(三句)의 시나 게송의 형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쩌다 있을 수도 있는 세 마디로 된 시나 게송에 대한 인식은 중국과 인도에 있어서 다소 색다른 차이를 보인다. 중국의 절구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의 네 마디로 형성되어 있으므로 어느 한 시가 삼구(三句)로만 되어있다면 분명 결(結)부분이 부족한 셈이다. 이 경우 삼구시를 미완성의 시로 간주하기보다는 멋을 부린 혹은 파격적인 형식을 통해 더욱 강한 인상을 전하려고 고의적으로 결론을 생략・축약해버린 ‘갈후(渴後)’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지만 인도에서의 삼구게송은 분명 결론의 미비(未備)일 뿐이다. 사구게송이 유일하고도 완벽한 형태이므로, 여기에 한 마디가 부족하다는 것은 단지 완벽에서 하나가 부족한 ‘불완전’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는 완전한 것을 나타내는 숫자에 대한 중국과 인도의 차이를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는데, 중국은 솥[鼎]의 세 발처럼 숫자 삼(三)을 완벽하고 안정된 숫자의 전형으로 여기지만 인도는 이 사구게송에서 유래된 숫자 넷[四]을 모든 것을 갖춘 완전한 형태로 여긴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우리는 ‘금강경’에 언급된 ‘사구게송’을 단지 ‘약이색견아…’ 혹은 ‘일체유위법…’ 등 몇 수의 게송에만 국한시키기도 하는데, 이는 ‘사구게송’이란 표현에 대한 인도식의 본뜻을 인지하지 못해서이다. 사구게송은 ‘완벽한 내용을 갖춘 하나의 문장’을 의미한다. 물론 ‘약이색견아…’ 등이 사구게송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대승불교를 일으키며 이미 희미해져가는 무아법(無我法)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할 수 있는 내용의 온전한 문장이라면 어느 글이건 모두 ‘금강경’의 ‘사구게송’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505 / 2019년 9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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