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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자아의식과 자기정체성의 문제 ②

실체 자아는 부정하지만 생멸하는 현상적 자아 인정

초기불교의 5온 무아설은
진리적 승의 차원에서 인정
불변 아트만 부정하는 대신
5온 통해서 자아의식 설명

초기불교나 아비다르마불교는 인간존재를 5온, 즉 ①색온(色蘊), ②수온(受蘊), ③상온(想蘊), ④행온(行蘊), ⑤식온(識薀)의 5가지 임시적인 모임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색’은 ‘육체적 현상’을 ‘수․상․행․식’ 등은 ‘정신적 혹은 심리적 현상’을 의미한다. 5온은 과거․현재․미래 3세에 걸쳐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아닌 역동적으로 생멸하는 연기적 현상임을 시사한다. 이는 붓다의 연기적 통찰에 의해 제시된 것으로, 인간 존재는 5온의 연기적인 흐름(相續)이나 모임에 불과할 뿐 ‘나’라고 내세울 만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무아(無我)와 상통한다.

이런 점에서 인간존재는 5온에 불과한 것인데, 범부들은 5온을 ‘나’ 혹은 ‘자아’로 여기거나 집착하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범부들이 5온을 ‘나’ 혹은 ‘자아’로 집착하는 것을 ‘5취온(五取蘊)’이라 한다. 범부들은 태어난 이후 습득한 지식(=상식)과 경험의 울타리에 속박되기 십상인데, 이는 ‘나’라는 인간존재를 포함하여 세상만사가 연기적으로 얽히고설키어 돌아간다는 이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 혹은 ‘자아의식(=ego)’은 심리구조상 인간존재가 실존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어쩌면 없어서도 안 되고 너무 집착해서도 안 되는 매우 중요한 핵심요소라 여겨진다.

그렇다면 5온․무아(無我, anātman)가 내세우는 함의는 과연 무엇이고, 5온․무아를 통해서 인간존재의 정체성을 어떻게 이해해야할 것인가? 초기불교와 아비다르마불교에서 5온으로 설명되는 인간존재는 진리의 차원을 세속과 승의의 둘로 나누어 설명하는 이제(二諦)적인 관점에서 분석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인간존재’ 혹은 ‘나(=자아)’는 5온과 관련하여 색․수․상․행․식 등의 5가지 구성요소로 해체되는 점에서 5온 자체에 임시적으로 붙여진 명칭이나 일종의 관념에 불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5온과 나(=자아)의 긴밀한 관계와 그 의미는 이제적인 관점을 적용하면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세간적인 진실(=세속제)의 차원에서 ‘나(=자아)’는 명칭이나 업의 산물로 형성된 일종의 관념에 불과하지만 있다(=有)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일상적으로 듣고 말하고 만져지고 경험하며 인식하고 판단하는 등의 심신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자아의식은 인정되기 때문이다. 반면 초일상적인 뛰어난 진실(=승의제)의 차원에서 ‘나(=자아)’ 혹은 ‘자아의식(=ego)’은 육체적․심리적인 현상, 즉 색․수․상․행․식 등의 5가지 구성요소로 해체되는 점에서 5온 이외에 ‘나(=자아)’라고 부를만한 것은 실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無)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초기불교와 아비다르마불교에서 5온․무아설은 승의적인 차원에서 ‘나(=자아)’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결국 5온․무아설이 가지는 함의는 승의적인 차원에서 고정불변하는 ‘나(=자아)’는 부정하지만, 세속적인 차원에서 5온의 유기적이고 인연에 따라 조건적으로 생멸하는 경험적이고 현상적인 자아는 인정하는 것이다. 즉 무아(無我)의 의미는 현상적 자아는 세속적 존재(=유)로 인정하되, 동시에 승의적인 차원에서 실체적 자아(=ātman)는 부정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5온․무아설의 입장은 연기적인 이치에 따라 설명되는 진리의 징표로서 제시된 3법인 가운데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제법무아(諸法無我)의 그 본질적인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인간존재의 자기정체성의 문제는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나를 나로서 기억하고 경험하고 인식하는 등의 심신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자아의식은 현상적으로 인정되는 점에서 인도철학과는 달리 실체적인 자아인 아트만을 별도로 내세우지 않고도 5온의 유기적이고 연기적인 흐름(상속)을 통해 설명된다.

김재권 능인대학원대학교교수 marineco43@hanmail.net 

 

[1506호 / 2019년 10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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