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를 모르면 한국인이 아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할 정도로 세한도는 유명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 책의 저자인 박철상은 “세한도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한 시대 학술과 문화의 결정체”라고 말한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손재형이 어렵게 구해온 세한도를 대한 정인보는 “쓸쓸한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대의 변치 않는 절개를 표현했네. …누가 알았으리, 그림이 돌아온 게/ 강산이 회복될 조짐이었다는 것을”이라고 읊었다. 정인보에게 세한도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잃어버린 조국의 얼이었던 셈이다. 다른 사람들도 세한도를 대하며 이런 느낌을 가질까? 세한도의 작가 추사는 정말 대단하였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 옹방강(翁方綱)을 흠모하여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를 꿈에서 만나기까지 했다. 옹방
불교에서는 ‘마음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一切唯心造)’라고 믿으며,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런데 과연 ‘마음’이 무엇인지, 그 마음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이처럼 마음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마음과 생명 협의회’ 소속 과학자들과 달라이라마가 23년 전부터 정기적으로 모여 마음을 주제로 대화하고 토론을 가져왔는데, 이 책은 1991년 다람살라에서 이루어진 세 번째 모임을 기록한 것이다. 마음과 정신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현대 자연과학을 한 수 아래로 보는 한국 불교 전통에서는 이런 모임자체가 낯설겠지만, 스스로 “수도승이 아니면 기술자가 되고 싶었다”고 말해왔고 “과학적 방법론에 의해 불교 교리 중 어떤 부분이 오류라는 게 증명되면, 불교는 그에 맞게
중국 명(明) 말의 양명학자 이탁오(李卓吾)는 기존 질서와 권위를 거부하고 철저한 ‘자유’를 찾아 몸부림을 치다가, 1602년 이단으로 몰려 감옥에 갇혀 자살로 76년의 인생을 마감한다. 스스로 털어놓은 “몹시 급해서 남의 면전에서 상대방의 잘못을 꾸짖는 일이 많아 마음속으로 깊이 교류하지 않은 사람들은 말도 걸려 하지 않았다”는 말에서 그의 성격을 잘 알 수 있다. 그런 이탁오도 쉰 살까지의 자기 인생이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따라 짖는 개와 다를 바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개’가 되기를 거부하고 자기 세계를 세우게 된 뒤에는 가난으로 자식 넷을 앞서 보내는 등 고난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 가시밭길을 헤치고 나가면서 세상을 향해 독설을 날린다. “큰 공을 이루는 사람은 반드
최근 모 신문에 “인도 ‘노예 노동 아동’ 1200만 명, 노예처럼 혹사당하고도 대가는 한 달에 2500원”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것이 신흥경제부국 인도의 현재 모습이고, “인권과 빈곤이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임을 보여주는 확실한 사례인데도 사람들은 이런 현실을 애써 모른 체 한다. 국제앰네스티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계·무슬림·여성 사무총장인 아이린 칸은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엄연한 ‘진실’에 대해 생생한 증언을 해주지만, 여전히 “진실은 불편하다”고 여기며 끝까지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수많은 재계 인사와 정치가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인권은 사치일 뿐이고 자유는 사회 불안정이며 경제성장의 장애물이라 여긴다. 「이코노미스트」지를 필두로 한 보수주의 진영에서는 “앰네스티의 활동은 언
1899년 노동자 50명으로 출발한 이태리의 피아트가 이미 오래 전에 연산 200만대의 크라이슬러를 합병하였고 지난 해 5월에는 155만대 생산의 GM유럽을 합병하기로 하였다는 발표가 있었다. 자동차 선진국의 대형 회사들을 따라잡고 손아귀에 넣게까지 되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박사학위 논문이기도 한 이 책을 통해 저자 장문석은 ‘피아트와 파시즘의 관계’를 꼼꼼하게 파고들어 피아트의 성공 요인을 찾는다. 피아트의 창업자 아넬리는 “우리 기업가들은 여당 편이다.”라고 말하였고, “나는 레닌으로부터도 주문을 받는다”면서 ‘파시스트와의 밀착’ 비난을 일축하기도 하였다. 때로 피아트와 파시즘 정부는 미묘한 갈등 관계를 갖기도 하였지만, 서로의 목적에 도움을 주는 한에 있어서는 인정하
공동체 구성원들을 규제하는 법(法)이 필요 없는 사회가 있었다. 약자를 따뜻하게 배려할 줄 알았고,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오랜 역사를 이어온 사람들이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이 살의(殺意)만큼이나 위험하다고 여겨왔던 이들의 땅에 백인들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이 오랜 평화가 깨진 적이 없었다. 이들이 지켜온 관습은 혹독한 자연환경 안에서 살아온 이 사람들이 공동체를 유지해온 비결이었다. 이들의 역사는 사슴과 더불어 시작되었고, 사슴이 없이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었다. 이 부족의 언어에 ‘사슴’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단어가 수십 개라는 점만 보아도, 사슴이 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했던지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사슴이 사라지면서 이 순박한 사람들은 빠른 속도로 사라져갔다. 이 사람들에게 그렇게 소
북학파의 시조라고 일컬어지는 서명응은 박제가를 ‘기이한 선비’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는 청나라로 가는 사신을 따라 오가는 길에 보고 들은 것들을 단 한 가지도 예사롭게 넘기지 않았으며, 궁금한 것이 있으면 꼼꼼하게 물어서 기록을 남겼다. 관심 분야가 넓고 깊은데다가 호기심도 대단하여, 북경에서는 각 지역의 여자 옷을 수집하려고 하다 돈이 떨어져 사지 못하고 안타까워했던 적도 있다. 연암 박지원이 추천사에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길가는 사람이라도 붙잡고 묻는 것이 옳다. 비록 하인이라 할지라도 나보다 글자 하나라도 많이 알면 우선은 그에게 배워야 한다.…법이 좋고 제도가 아름다우면 아무리 오랑캐라 할지라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고 한 말을 그대로 실천했던 사람이 박제가였다. 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감자·토마토 등에서 비타민·철분·칼슘 등 핵심적인 영양소가 수십 퍼센트씩 줄어들거나 아예 사라진 것도 있다. 이 영양소들은 협력하기도 하고 때로는 대항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아주 작은 양이라도 부족하면 우리 몸이 매우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세상의 거의 모든 음식물에서 이런 ‘좋은 영양소’들은 꾸준히 사라지고 중금속 등 독성 오염물질의 양은 늘어나고 있어서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비타민 정제 같은 영양보충제를 꼬박꼬박 챙겨 먹으며 “나는 눈이 멀거나 빈혈에 걸리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안심하지만, 이런 보충제들을 과다 복용할 경우 몸에 치명적인 결함을 가져올 수 있다. 영양 물질이 골고루 들어있는 식품을 먹는 것
중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영조와 정조 시대가 ‘조선의 문예부흥기이고 탕평책을 펼쳐 당쟁을 중지시킨 시대’라고 배웠고, 그래서 그것이 많은 국민들의 상식이 되었다. 이 시대를 연구하는 전문 학자들의 견해도 이와 같았지만 무엇보다도 1990년대 초반 소설 『영원한 제국』이 정조 시대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크게 불러일으키고,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군이 불법 탈취해간 외규장각 도서 반환문제가 불거져 관심을 고조시켰던 것이다. 이런 관심에 더하여 몇 해 전에는 이 시기를 다룬 TV 사극이 인기몰이를 하면서 ‘영·정조 시대=문예부흥기’라는 우리의 상식을 확실하게 다져주었다. 그러나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을 통해 이 시기에 일어났던 대표적인 역모사건과 괘서(掛書-대자보) 사건을 추적한 백승종의 주장으로는, 실제
우리는 아프리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광활한 세렝기티 초원을 질주하는 야생동물들의 장관·킬리만자로 정상의 만년설과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보여주는 목가적인 풍광이 아프리카라고 아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기아와 독재 정권·복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이어지는 종족 분쟁·‘물 한 모금’을 찾아 수십 리를 헤매는 어린아이들·급속히 진행되는 사막화 등 어두운 이미지 때문에 “아프리카는 본래 그런 곳이고 그나마 유럽인들이 식민지 개발을 하지 않았으면 영원히 원시 상태에 머물렀을 것”이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뜻밖에 많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 책의 저자 루츠 판 다이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위와 같은 판단은 사실(史實)과 완전히 어긋난다. 1325년 말
지선 스님, 수석에 깃든 불성을 보다 일체중생(一切衆生) 실유불성(悉有佛性)이요, 두두물물(頭頭物物) 개시불법(皆是佛法)이라 했던가. 40여년 동안 수석(壽石)과 인연을 맺어 온 고불총림 유나 지선 스님은 “돌 가운데 선의 이치가 들어 있으니 산을 거닐며 선을 말하고 강물 따라 노닐며 수석을 논한다”며 수석을 통한 수행을 강조한다. 수석에는 부처와 보살과 불법의 도구들과 생명이 깃들어 있으니 수석이 바로 나의 스승이요, 도반이요, 종교와 철학이요, 예술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스님의 수석 작품 대부분은 수행자와 생명의 형상을 하고 있다. 수석을 ‘발견의 미학’으로 정의하고 있는 지선 스님의 수석 작품에 나툰 불보살과 수행자, 생명을 2010년 새해 특집호에 소개한다. 이 작품들은 스님이 회주로 주석하고 있는
지난 연말 며칠 동안 캄보디아 순례를 다녀왔다. 외국 여행객들이 넘쳐나는 곳마다, 피골이 상접한 채 “원 달러!”를 외치는 아이들이 있었다. 여행을 함께 한 일행 중 한 명이 안내원에게 물었다. “강우량도 풍부하고 1년에 2~3모작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경작 조건이 좋은 쌀 수출국이라고 하는데, 왜 굶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요? 그 사람들 게을러서 그런 것 아닌가요?” 마침 비행기 안에서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고 그 생각에 깊이 잠겨있던 내 머리와 가슴을 이 말이 치고 또 친다.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인 저자가 아들에게 말한다. “전 세계에서 수확되는 옥수수의 4분의 1을 부유한 나라의 소들이 먹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서 영양과잉 질병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