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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두의 책 세상] 시대를 앞서갔던 지식인의 운명

기자명 법보신문

『이탁오-공자의 천하, 중국을 뒤흔든 자유인』/신용철 지음/지식산업사/2006

중국 명(明) 말의 양명학자 이탁오(李卓吾)는 기존 질서와 권위를 거부하고 철저한 ‘자유’를 찾아 몸부림을 치다가, 1602년 이단으로 몰려 감옥에 갇혀 자살로 76년의 인생을 마감한다. 스스로 털어놓은 “몹시 급해서 남의 면전에서 상대방의 잘못을 꾸짖는 일이 많아 마음속으로 깊이 교류하지 않은 사람들은 말도 걸려 하지 않았다”는 말에서 그의 성격을 잘 알 수 있다.

그런 이탁오도 쉰 살까지의 자기 인생이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따라 짖는 개와 다를 바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개’가 되기를 거부하고 자기 세계를 세우게 된 뒤에는  가난으로 자식 넷을 앞서 보내는 등 고난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 가시밭길을 헤치고 나가면서 세상을 향해 독설을 날린다.

“큰 공을 이루는 사람은 반드시 후환을 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이루지 못할 공이 없다. 그러나 유가(儒家)는 공도 세우고 후환도 없기를 바라며 명분과 실리를 모두 겸하려 하니,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이탁오가 독설만 쏘아댄 사람은 아니다. “사람에 남자와 여자가 있다고 하면 옳지만, 식견에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잘못이다. 사람의 식견에 우월함과 모자람이 있다고 하면 옳지만, 남자의 식견은 모두 우월하고 여자의 식견은 모두 열등하다고 한다면 옳지 않다”면서 남녀평등을 주창한다. 아들이 죽자 며느리에게 개가를 권하고, 과부를 제자로 받아 학문의 길을 열어주며 삭발 출가하여 불법의 세계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래서 “풍속을 문란하게 한다”는 비난도 받는다.

“공은 관직을 지냈으면서도 청렴하고 절개가 늠름한 선비였으나, 우리들은 그저 남이 주는 대로 받아먹어 그 절개가 보통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선생은 젊은 여자의 방에는 들어가지도 않았고 어여쁜 소녀의 침상에는 올라가지 않았는데, 우리는 끊임없이 정욕을 불태워 첩이나 여자를 가까이 하는 일이 끊이지 않았다. 공은 도의 지극한 경지에 깊이 들어가 그 큰 것을 보았지만, 우리들은 고지식하게 문자만 지키고 있어 그 깊은 뜻을 깨닫지 못했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오직 책 읽는 것만을 좋아했지만, 우리는 세속의 인연에 골몰하여 책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공은 곧은 기개와 강한 절조로 남에게 굽히지 않았는데, 우리들은 겁이 많고 담력이 약하여 남들을 좇아가면서 굽실거리고 우러러보았다. 이 다섯 가지는 배울 수 없다.”

권력자들에게 ‘미친 놈’ 취급을 받던 이탁오를 끔찍이 따르던 원중도(袁中道)가 남긴 글인데, 그가 ‘배울 수 없다’고 말한 것들이야말로 아마 ‘가장 배우고 싶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신용철은 ‘이탁오는 시대를 몇 세기나 앞서 살았던 사람’이라고 평하며 안타까워하지만, 이 운명은 언제 어디서든 시대를 앞서 가는 사람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이병두 불교평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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