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를 모르면 한국인이 아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할 정도로 세한도는 유명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 책의 저자인 박철상은 “세한도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한 시대 학술과 문화의 결정체”라고 말한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손재형이 어렵게 구해온 세한도를 대한 정인보는 “쓸쓸한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대의 변치 않는 절개를 표현했네. …누가 알았으리, 그림이 돌아온 게/ 강산이 회복될 조짐이었다는 것을”이라고 읊었다. 정인보에게 세한도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잃어버린 조국의 얼이었던 셈이다. 다른 사람들도 세한도를 대하며 이런 느낌을 가질까?
세한도의 작가 추사는 정말 대단하였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 옹방강(翁方綱)을 흠모하여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를 꿈에서 만나기까지 했다. 옹방강도 세상을 떠나기 1주일 전, 자신을 딱 한 번 찾아와 만난 조선의 젊은 제자 추사가 보내온 편지를 받고 좋아하였다. 세계적인 석학과 우정을 나누는 젊은 우리 학자, 그 모습이 얼마나 멋진지 상상만 해도 즐겁다.
하지만 당대 국제 지식계의 총아였던 추사도 비정한 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고문으로 엉망이 된 몸을 이끌고 유배를 떠난다. “부인이 죽는다면 내가 먼저 죽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할 정도로 사랑했던 부인이 세상을 떠난 것도 모르고 애절한 편지를 써서 보내다 뒤늦게 그 소식을 듣고, “사람이 다 죽게 마련이지만 부인만은 죽어서는 안 된다”며 눈물짓는다.
추사는 이런 슬픔을 가슴에 안고 어느 날 붓을 든다. 자신이 좋았던 시절이나 유배를 떠나와 고통스런 때나 변함없이 스승으로 대해주는 이상적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해 보답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붓을 들어 자신의 처지와 이상적의 절개를 비유한 그림을 그려나간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세상에 유명한 세한도이다.
추사는 말한다. “그대가 나를 대하는 것은 이전이라고 해서 더 잘하지도 않았고 이후라고 해서 더 못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전의 그대는 칭찬할 게 없었지만 이후의 그대는 성인의 칭찬을 받을만하지 않겠는가?”
스승의 그림과 글을 받은 이상적도 눈물을 흘리며 스승에게 답장을 쓴다. “어찌 이렇게 분에 넘친 칭찬을 하셨으며 감개가 절절하셨단 말입니까?…걱정스러운 것은 그림을 구경한 사람들이 제가 정말로 속물에서 벗어나 권세와 이권의 밖에서 초연하다고 생각할까 하는 것입니다.”
이제 추사와 옹방강·추사와 이상적, 이들 스승과 제자가 나누었던 아름다운 우정과 의리를 찾아보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박철상은 “세한도에는 움직이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바람 소리가 느껴진다”고 하였는데, 얼어붙은 겨울바람소리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옹방강-추사-이상적이 영혼으로 나누는 이야기도 귀에 들려야 세한도를 제대로 보는 것은 아닌가.
이병두 불교평론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