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나무나 소나무처럼 의지(意志)가 곧고 굳센 사람은 드물다. 왜일까? 뜻[志]은 세우기도 어렵고 지키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매진하지만 그것을 ‘뜻’이라 칭하기엔 많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경우 일신의 안녕과 영달을 궁극의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나름 자신을 다그치고 채찍질하며 고군분투한다지만 그건 욕망의 다른 형태이지 만인의 표상이 될 ‘뜻’은 아니다.미련없는 인생 찾아 여행불법 만나 ‘보살 삶’ 발원예배·참회로 게으름 경책신분 차별없이 진리 전해자타에 유익하고 고금에 수긍되
개과천선(改過遷善)이란 쉽지 않다.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그냥저냥 살아가는 게 우리네 보통사람들의 삶이다. 하지만 크게 실망할 것도 없다. 이보다 못한 부류도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우 드물긴 하지만 ‘아니다’ 싶으면 당장 고치는 이들도 있다. 이런 부류는 불법을 배우기가 매우 용이하다. 그래서 상근기라 칭한다. 누가 상근기일까? 자신의 전부를 던질 용기가 없다면 감히 상근기라 자부할 수 없을 것이다.20년 세월 전장서 보내다보월선사 만나 자신 돌아봐백성들 도륙한 과거 참회지위·명예 버리고 출가발심수나라 말
사람 목숨보다 돈이 귀한 시대다. 돈에 얽힌 치정과 폭력을 아침저녁 뉴스를 통해 목격하고는 “돈 몇 푼에 저럴 수 있냐”며 다들 분노한다. 하지만 정도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돈에 목을 매고 살기는 피차일반이다.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처럼 눈과 귀가 온통 돈에만 쏠려있다. 친척이 모여도 친구를 만나도 돈 번 이야기, 돈 잃은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고, 누군가를 평가할 때도 그가 가진 재산정도가 기준의 첫째를 차지한다. 통제되지 않는 인간의 탐욕, 우르르 몰려가는 모양새가 가히 불길로 뛰어드는 불나방을 방불케
얼마 전 서울에서 식자재 유통업을 하는 거사님이 내려와 잠시 만난 적이 있다. 그분이 고기를 먹는지 물어보며 이렇게 이야기를 꺼냈다.생명 귀히 여기는 게불제자로서 도리라며실 한 올, 쌀 한 톨도허투루 받지않은 선현“제가 유명 닭고기 생산업체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암놈이 알도 낳고 육질도 좋기에 암놈만 키운다더군요. 병아리가 부화하자마자 감별사들의 손을 거쳐 수놈들은 폐기처분됩니다. 그 장면이 가히 충격이었습니다. 감별사들마다 커다란 쓰레기통을 옆에 두고 있더군요. 그게 뭐냐면 수놈 버리는 통이었습니다. 그 통에서 수놈들은 차곡차
운문사를 방문할 때마다 문선제는 절문 앞에 내려 군사와 무기를 물리고 직접 걸어서 들어갔다. 그렇게 전각을 일일이 돌며 예배를 마친 뒤, 승조선사의 작은 방으로 찾아가 황제가 아닌 한 사람의 제자로서 예를 올렸다. 이런 일이 잦아지자 신하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그들의 불만이 운문사 스님들의 귀에 전해졌다. 어느 날 저녁, 조바심이 난 제자들이 스승을 찾아갔다.황제를 일반 불자로 대하자신하들, 벌 줘야한다 이간질살기어린 황제 마음 알고도의연하게 황제 꾸짖은 스님“스님, 황제께서는 수레에서 내려 직접 스님을 찾아뵙고 있습니다. 하지
승조의 가르침에 감동한 문선제(文宣帝)는 승조로부터 보살계를 받고 그 발아래 절하였다.가르침에 감동한 황제승조에게 보살계 받아황제의 존경 깊어지자주변 시샘·폄훼 심해져“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라 하더니, 그 말씀이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이 제자가 오늘부터 평생 스님을 외호하는 시주가 되겠습니다. 저의 청을 허락해 주십시오.”승조가 가만히 웃으며 대답하였다.“폐하는 황제이십니다. 폐하께서 보살의 서원을 세우셨다면 온 백성을 보호하고 온 백성을 교화하는 데 힘쓰셔야 합니다. 저는 이제 떠날 때가 되었습니
불법은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해지는 것이기에 교화에는 상대방의 성향과 성숙도를 살핀 적절한 방편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수많은 방편은 공히 열반과 해탈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고, 계율을 지키고 선정을 닦고 지혜를 계발해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소멸시킨다는 대강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고금의 일들을 살펴보면 소위 방편이란 이름으로 법답지 못한 일들이 행해진 사례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속내를 들춰보면 결국 탐욕과의 타협을 방편이란 이름으로 그럴싸하게 위장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부처님께서 전하신 진실한 방편에 탐욕
인간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다툼과 고통, 번민과 혼란의 근원은 탐욕이다. 부처님을 비롯한 수많은 성자들께서 예외 없이 다들 그렇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런 가르침에 진심으로 동의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가 ‘그래, 바로 저거야. 저것을 가지면 넌 행복할거야’라고 늘 속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들 사람을, 재산을, 권력을, 명예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발버둥 치다 생을 마감하는 것이 대개의 인간사다. 그래서 불교도들은 오욕의 대상을 나의 것으로 만들려는 갈증을 멈추고, 나의 것이라며 움켜쥐었던 손아귀에
북주(北周) 무제가 도사(道士) 장빈(張賓)의 요설에 현혹되어 불교를 없애려 시도했다. 이에 수많은 승려들이 목숨을 걸고 항거했다. 정애 법사 역시 그 가운데 한분이었다.화려한 말·글로 허송세월덧없음 깨닫고 일생 정진황제의 파불 결정에 항거스스로 심장 꺼내어 열반17세에 출가해 경률을 수학하고, ‘대지도론’‘중론(中論)’‘백론(百論)’‘십이문론(十二門論)’을 깊이 탐구했던 그는 말솜씨에 글솜씨까지 빼어나 젊은 시절에 이미 천하에 명성이 자자했다. 그렇게 화려한 명성과 넘치는 공양을 즐기면서 청춘을 보내던 어느 날 정애는 스스로 크게
지장이 반대했지만 황제는 개의치 않았다. 그에게는 나름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승단의 다툼과 문란을 국법으로 엄중히 다스려야 한다는 대신들의 상소가 빗발치고 있었다. 자신이 나서 불만을 잠재우지 않으면 향후 불교교단에 더 큰 피해를 초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양무제는 자신의 결정을 관철시키기 위해 화광전(華光殿)에 모임을 마련하고 각지의 명승들을 초청했다. 그 초대명단에 지장은 없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지장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되어 황궁으로 향했다. 황제가 말했다.승단 다툼·문란 심각해지자율장으로 통제하려는 황제에경
동서고금의 모든 성인들께서 인류에게 ‘솔직함’을 진리의 덕목으로 권장하셨지만, 사실 세상살이에서 솔직한 태도를 취하기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에서 이해득실을 따지자면 솔직하기보단 감추고 위장하는 편이 훨씬 이득이 많고 손해가 적기 때문이다. 게다가 솔직함은 때로 목숨을 내놓아야 할 만큼 위험하다. 살벌한 약육강식의 전장에서 솔직함이란 갑옷을 벗고 방패와 창마저 내려놓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룻강아지나 철모르는 어린아이가 아니고서야 감히 솔직할 수 있을까? 만약 이런 손해와 위험에 대해 충분히 알면서도 정
수나라 말엽, 양제의 폭정으로 반란의 불길이 치솟았다. 613년 양현감(楊玄感)을 필두로 이밀(李密)과 이연(李淵), 두건덕(竇建德) 등이 각기 군주를 자처하며 각처를 점령하였다. 618년, 혼란스러운 정국도 아랑곳 않고 강도(江都)에서 사치와 향락만 탐하던 양제는 자신의 근위대장인 우문화급의 손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군주가 시해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낙양을 수비하던 왕세충(王世忠)은 월왕 양통을 옹립하여 황제로 추대하였다. 그리고 619년에 양통을 폐하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국호를 정(鄭)이라 하였다.군비확충 눈 먼 황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