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성 스님은 세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스님이 아니었고 큰 감투를 별로 쓴 일이 없었기에 매스컴에 자주 소개되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1960년대, 1970년대 한국불교계에서 ‘욕쟁이 스님’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춘성 스님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걸죽한 욕설을 무차별로 쏟아내는 스님이었다. 지나치게 화장을 하고 사치스런 옷을 걸친 채 으시대기 좋아하는 여자가 절에 오면 춘성 스님은 아무리 지체가 높은 고관대작의 부인이라고 하더라도 즉석에서 “씨부랄 년!” 이라는 욕부터 쏟아냈고, 값비싼 털옷을 입고 온 여자의 털옷을 벗게 한 뒤 그 자리에서 태워버린 일까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걸림없이 쏟아내는 춘성 스님의 무지막지한 욕설을 들어도 누구 한사람 감히 항의하거나 대들지 못한 점이었
1월 19일 (수) △능인선원 ‘금강회 총동창 법회’=오후 7시, 능인선원 대법당. 02)577-5800 △한국공무원불자연합회 ‘재경지역 신년하례법회’=오후 7시, 서울 구룡사. 02)739-1080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신년하례법회’=오전 11시, 조계사 대웅전. 02)732-4885 △중앙신도회 ‘종정예하 신년하례 및 비구니강원 대중공양’=오전 11시, 합천 해인사, 수도산 청암사. 02)733-7277 △사회복지법인 불국토 ‘부산 서부 노인학대예방센터 개소식’=오후 2시, 양정재가노인센터 내 서부 노인학대예방센터. 051)867-9119 1월 20일 (목) △도시철도법우회 ‘신년법회’=오후 7시, 서울 동명불원. 02)6211-2285 △부산불교음악연구회 ‘피아니스트 권상무 찬불가 독주
지난해 말 천태종 제13대 총무원장으로 재 추대된 운덕 스님은 2005년 한해 사부대중 공동체 지속 실현을 비롯해 내적 수행력의 사회적 지향, 대북 불교교류 사업 지속 추진, 상월원각 스님 현양 사업 등을 중점사업으로 추진한다. 스님은 1월 10일 오후 4시 서울 우면동 관문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천태종의 새해 주력 사업을 설명했다. 운덕 스님은 기자회견에서 해외포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캐나다, 덴마크, 몽골에 이어 일본까지 해외포교의 영역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또 대북 불교교류에 있어서도 개성 영통사 복원불사 지원 후속 사업으로 영통사 일대 성지순례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며 불교 주요종단으로 성장한 천태종의 올 한해 역점 사업을
부모는 7생이지만 은사는 누겁(累劫)이어서 의(義)가 깊고 은혜가 지중하다는 것을 어리석은 자는 알지 못한다. 너는 불도에 들어와 얼마 되지 않아 스승과 헤어졌느니. 아침저녁으로 나는 너를 생각하는데 너는 나를 생각하느뇨?요즘 말법 중생은 마음이 엷어서 은혜와 절의(節義)를 쉬이 배반하고, 쉽게 은사를 싫어해 홀로 지내고 노는 것을 좋아하며, 정(情)을 따라 마음대로 하여 여법하지 못하니 악도에 떨어질까 염려된다. 어찌할 수 없어 네가 늘 가까이 해야 할 계(誡)를 지어 전하며 안부를 대신한다. 잊지 말지니, 바로 너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 오히려 천 마디의 좋은 말을 초월하는 것임을….스승으로서 마음먹고 간절히 마음에 있는 말을 보내서 마주 앉아 이야기하듯 말하노니, 네가 도를 이루어 이미 스스로 알았
“불교방송의 청취율이 많이 떨어져 어려운 처지에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어렵게 다시 돌아왔습니다. 막상 이렇게 시작하고 보니 어깨가 무겁네요. 누구나 가깝게 들을 수 있고 자연스럽게 불교와 인연의 끈을 맺어주는 것이 제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1990년도 불교방송 개국 당시 비구니 스님으로는 처음으로 MC를 맡아 청취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정목 스님이 BBS ‘마음으로 듣는 음악’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다시 돌아왔다. 청취율 높이기의 대안으로 정목 스님을 선택한 BBS의 예측은 탁월했다. 12월 1일부터 약 30여일 방송되는 동안 제작진들도 놀랄 정도로 불교방송 홈페이지 게시판과 메일, 전화 등을 통해 청취자들의 반응이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멀리 미국과 스리랑
지혜는 선정 이후 생기는 것…비구니 계맥 복원은 반대 남북방 수행체계 다른 건 환경 탓…모두 부처님 수행법 우 와사와 사야도는 마하시 사야도 입적 이후 마하시명상센터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큰 스승이다. 지난해 10월 31일 미얀마 양곤에 있는 마하시센터를 방문, 황금탑 쉐다곤에 작은 불상을 보시하러 가는 스님을 센터 입구에서 잠시 친견할 기회를 얻었다. 찰나에 불과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한국에서 온 이방인들을 자비롭게 맞아주던 모습이 선하다. 스님과의 인터뷰는 미얀마 양곤에서 럭키 패러스 호텔(Lucky Palace Inn)을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설수자 사장과 미얀마인 소모씨의 노력으로 가능했다.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2월 22일 스님을 뵙고
불교학계에 있어 2004년은 한국불교학의 세계화를 위한 초석을 다진 한해였다. 지난 4월부터 10월까지 각 학회별로 크고 작은 국제학술대회가 줄을 이었고 불교학결집대회, 세계여성불자대회, 세계교수불자대회 등 대규모 국제학술행사가 잇따라 개최됐으며 미쳐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지 못한 학회, 단체에서는 외국석학을 초빙해 초청강연회를 앞다퉈 개최했다. 90년대 후반까지 미미하던 국제학술대회는 외국에서 유학하던 학자들이 국내로 속속 복귀하면서 2000년 이후 한국불교학회, 인도철학회를 중심으로 연간 1∼2회 개최되기 시작했고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면서 올 한해만 10여 차례나 개최됐다. 학회 활동이 비교적 적은 동절기를 뺀다면 매월 1회 이상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된 셈이다. 특히 올 한해 방한한 외국학
1997년 12월 11일 입적 인욕-청빈-보시 실천 85년 청해문도회 결성 후학에 본분사 강조 장일 스님은 근현대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비구니 선승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고희가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수행처를 돌며 오후불식, 장좌불와 등 용맹정진을 통해 깨달음을 갈구했는가 하면 평생을 인욕과 청빈, 보시를 실천하며 수행자의 본분을 잃지 않았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특히 스스로 엄격한 지계(持戒)를 몸소 실천하며 후학들에게 “진정한 수행인이 되지 않으려면 속히 환속하라”고 경책하며 수행자의 본연의 모습을 강조했던 스님이었다. 1916년 독립운동가였던 부친 강성윤 씨가 독립운동의 거점 확보를 위해 대구에서 황해도로 이사한 지 1년 후부터 스님은 아버지를 따라 독립운동의 길로 뛰어들었
효 림 스님 실천불교 이사 기왕에 개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개혁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해야 하겠다. 지난 94년도 종단개혁에서 내가 개혁의 제일 과제로 내 세운 것은 겸직 반대였다. 당시 총무원장이 종단권력을 무제한으로 겸직하고 있었고, 종회의원에다가 본사 주지에다가 기타 각종 직책을 겸직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이런 겸직은 종단의 권력이 소수의 몇몇 사람에게 집중되어 그들의 횡포와 독단이 극에 달해 있었다. 그래도 그것에 대하여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문제를 지적하지 못했다. 만약 그랬다가는 보복을 당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지금 종단은 개혁이후 겸직의 정신이 많이 훼손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겸직을 금지한 이후 종단 권력은 보다 폭넓게 개방되고 많은 사람들이 종단운
정운 스님 지음 / 무우수 이메일을 통해 ‘부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비구니 정운 스님의 글을 모은 책이다. 정운 스님은 2000년 3월부터 5년째 매주 한 번씩 200여 명의 네티즌에게 이메일을 통해 법음을 전하고 있다. 책에는 인터넷 메일을 통해 전달한 글들과 신문·잡지 등에 기고했던 스님의 글을 가려 함께 수록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대학 등에서 『금강경』 『법화경』 『42장경』 등을 강의하며 기록한 글들이지만 너무 경직되지 않으면서도 수행자의 본분에서 보다 많은 이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자 하는 정성스러움이 무게 있게 실려있다. 경전에서 찾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주를 이루지만 여러 종교의 잠언과 옛 고사 혹은 명언들로부터도 도움 받기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각 글의 말미에는 주를
플럼빌리지에서 수행이란 따로 없다. 도반과 길을 걷는(사진 왼쪽)중에도 대중과 호숫가를 산책하는 중에도 ‘걷기 수행’을 한다. 2002년 8월 센포라그란데 기차역에서 스님들이 운전하는 밴을 타고 플럼빌리지가 있는 테낙까지 가는 30분 정도의 시간 동안 좌우에는 끝도 없이 넓은 해바라기밭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린아이 몸집만큼이나 만개한 노오란 해바라기꽃이 남프랑스의 말간 햇살을 받으면서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그 사이를 아직은 여물지않은 파란빛 열매를 단 포도밭이 메우고 있었다. 석일행(釋一行)을 베트남어로 발음한 이름이 틱낫한, ‘석(釋)’은 석가모니 부처님 집안 사람이라는 뜻이고 ‘일행(一行)’은 ‘한 가지 행, 한결같은 행’이란 뜻의 법명을 가진 틱낫한 스님이 이곳의 수련회는 수련회(retreat)가
태고종 ‘개혁-성장’ 동력 확보 총무원장 운 산 스님 종단협의회 소속 26개 종단 중 가장 큰 변화와 발전상을 보인 곳은 태고종이다. 세간에서 태고종이 무서운 속도로 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놀라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태고종 변화의 중심에는 총무원장 운산 스님이 있다. 운산 스님은 지도자 한 사람의 생각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공감할 수밖에 없는 행보를 보이며 종단의 성장 동력이 되고 있다. 운산 스님은 사찰 재등록과 승려분한신고를 시행하면서 종단의 체질을 개선했고, 사찰법을 제정해 태고종 사찰의 공공성을 높이는데 성공했다. 또 총무원 행정을 지방 교구에서 감사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 교구 대표자들이 직접 총무원의 살림을 살필 수 있는 참여종단상을
보리방송문화상 운영위원회(위원장 수불 스님)는 지난 12월 8일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제12회 보리방송문화상 시상식을 거행, 1990년부터 불교방송에 ‘고승열전’을 집필해 온 윤청광 방송작가에게 총무원장상을 시상했다. 또 KBS1 부처님오신날 특집 다큐멘터리 ‘청화, 56년간의 증거~’(연출 유동종), KBS1 현장르포 제3지대 ‘6인의 여행자, 부처를 만나다’(선희돈), MBC 부처님오신날 특집 다큐멘터리 ‘대자유인-한국의 비구니’(박승규) 등에 상을 수여했다. 안문옥 기자 moonok@beopbo.com
아미 슈미트 지음 / 꿈꾸는돌 여성의 몸으로 위대한 수행자로 존경받는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수천 년에 걸쳐 이룩된 남성중심의 견고한 차별과 편견을 극복해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 온갖 역경을 딛고 깨달음을 이루었더라도 왜곡되거나 가려져 역사에 기록되기는 더욱 어렵다. 오랜 비구니 교단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전해지는 ‘비구니 큰스님’이 드문 것도 이러한 이유와 무관치 않다. 이런 의미에서 『붓다의 딸, 세상을 비추다』는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평범하다 못해 기구했던 한 여성이 위대한 스승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그의 깨달음의 내용이 상세히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 디파 마(1911~ 1989)는 인도의 여느 소녀들처럼 초등학교도 졸업 못하고 결혼을 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12월22일(수)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대불련 총 동문회-2004 자비의 밤’=오후 7시, 소공동 롯데호텔 크리스탈 볼룸. 02)720-1936 △조계종 외국인노동자상담지원센터 ‘교계외국인노동자 지원단체 간담회’=오후 2시, 한국불교역사기념관 2층 회의실. 02)2011-1965 △국학연구소 ‘우리문화탐방’=오전 8시, 강화 석모도 보문사. 02)434-3030 △생명나눔실천 광주전남지역본부 ‘희망나눔 음악회’=6시 30분, 화순 전남대학교병원. 062)234-6602 △능인선원 ‘삼존불 점안 대법회’=오전 10시 30분, 능인선원 광장. 02)577-5800 △조계종 총무원 ‘전통불교문화산업지원센터 기공식’=오후 2시, 공주 마곡사 현장. 02)2011-1937 △중증장애인생활시설 반야원 ‘희망나눔 하
단주 찬 김래원과도 호흡 척척 부처님 가피로 성공 예감 “전 평소에 부처님께 부탁(?)만 드려요.(웃음). 그래서 늘 죄송하죠. 부처님은 제 부탁이 귀찮으신지 다 들어주시구요.” MBC 수목 드라마 ‘사랑한다 말해줘’(극본 김규완, 연출 오종록) 주연으로 캐스팅 된 윤소이(20) 불자가 연기활동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바쁜 스케줄에 쫓기면서도 그녀는 한 달에 두 번 이상은 꼭 집 근처(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사찰을 찾는다. 바쁜 연예인임에도 한 달에 두 번이나 절에 가냐고 다시 되묻자 그녀는 “마음 같아서는 이틀에 한번씩 가고 싶어요. 절에 자주가면 더 많은 부탁을 들어주시지 않을까요”하며 특유의 함박웃음을 터트린다. 천방지축 윤소이(영채)와 순진무구 김래원(병수)
대한불교승가종의 첫 번째 법계품수식과 구족계 수계산림이 열렸다. (사)대한불교승가종(종정 월인 스님)은 지난 11월 22일부터 23일까지 양일간 부산 명륜동 서래암에서 제1회 대한불교승가종 구족계 수계 산림법회를 봉행했다. 승가종의 첫 번째 출가승 수계식이 열린 이날 서래암에는 중앙 금강계단이 마련돼 청정한 승가의 길을 열었다. 승가종 종정 월인 스님을 비롯한 종정협의회 소속 23개 종단 종정 스님을 증명으로, 2급-3급 법계 품수와 비구 및 비구니계가 내려졌다. 부산지사=박동범 지사장
순행(巡行) 후 서로 있는 곳이 멀어지니 직접 목소리를 듣고 인사드리는 일도 이제 아득해졌습니다. 나라에 일이 많고 번거로움도 많다보니 제 몸의 조화가 깨지고 일도 늦어집니다. 그렇다고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항상 부처님께 기도를 해주시고 사람을 보내어 자주 안부를 물어주시니 다만 황감할 뿐입니다. 행여 이로 인해 제가 멀리서 수행에 전념하고 계신 스님에게 폐를 끼치고 승가의 화합을 깨뜨리는 것은 아닐까 두렵습니다. 원각사의 일은 널리 들으신 바와 같고 끝까지 서술하기는 곤란합니다. 저의 지극한 정성에 부흥해 스스로 편안하게 머무르시기를 바라옵니다.금을 보내드리오니 좋은 곳에 쓰시기를 바라며, 불개(佛盖)와 전액(殿額) 그리고 향촉 등 물건을 아울러 받들어 올립니다.심신의 병 치유해 준스승으로 섬기며불교 외호
정적인 불교에 비한다면 화려하게만 보이는 연예계는 어울리지 않는 분야일 수도 있습니다. 이 둘을 어떻게 엮어볼까 무지 고민이 되는군요. 본격적인 연재를 시작하기에 앞서 제가 불교와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지에 대해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때 어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서울 보문사 옆 탑골승방(미타사)에 모셨습니다. 막내 아들이라고 유난히도 예뻐하셨는데 저로서는 너무 일찍 아버지를 여읜 것이죠. 그 때 어머니를 따라 처음으로 찾은 사찰이 불교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부처님을 뵈었는데 첫 번째로 그 웅장함에 놀랐고 두 번째로 편안함에 마음이 고요해져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았습니다. 처음 갔던 그 절에는 비구니 스님만 계셨습니다. 그래서 전 어린 시절에 부처님을
우리 조계산맥에서는 몇 안거를 성만했느냐로 스님들의 나이를 삼습니다. 혜국 스님이 25안거를 살았으면 25살이오, 50안거를 살았으면 50살입니다. 전국의 납자들이 일시에 안거에 들어가 하루 12시간 동안 꼼짝 안하고 날마다 참선을 하는 이런 제도가 법적으로 내려오는 나라는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돈오는 엄청난 법음 3년 전, 선원장 스님들이 달라이라마 스님을 만나러 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선물로 죽비를 가져가 한국 스님들이 참선 할 때 쓰는 법구라고 했더니 달라이라마 스님이 “그래 어떻게 합니까?”하고 물어요. 그래 “스님도 한번 같이 앉아 보시겠습니까?” 하고는 죽비를 쳤습니다. “이 상태에서 화두를 드는데 한 시간동안 꼼짝 안하고 정진하다가 10분정도 쉬고 다시 화두를 들며 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