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도 눈물이 있다”는 말이 있다. 만인 앞에 평등하고 엄격해야 할 법일지라도 이를 만들고 적용하는 것은 사람이다. 그래서 법에는 인정이 깃들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프랑스의 소설가 빅토르 위고가 1862년 발표한 장편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은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쳤다. 그 죄로 그는 19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누구도 이것이 정의이고 바른 법집행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법에 눈물이 사라지면 정의라는 이름 아래 잔혹하고도 비인간적인 일들이 벌어진다.법무부, 품행단정하지 않다며
추석이다. 올해도 사람들은 어김없이 고향으로 향한다. 줄을 지어 달리는 귀성행렬이 길게 이어진 탯줄 같다. 그러나 고향이 예전만 같지 않다. 아이들이 사라진 골목은 텅 빈 듯이 고요하고 고향 안팎으로 깊은 침묵만이 흐른다. 넓은 들판에서 힘을 부리던 아버지들은 이미 세상을 떠나고 늙은 어머니들만이 남아 고향을 지키고 있다. 고향 쇠락과 함께 고향 절 몰락시골엔 예불·신행 끊긴 절 많아고향의 절들이 사라진 한국불교삭막한 도시인들 닮아갈까 우려고향은 해마다 늙어간다. 빈집이 늘고 인사할 곳은 줄어든다. 그 분들마저 세상을 뜨면 고향은
스님에게서 부모님과의 효도여행 경험담을 들었다. 10여명의 도반 스님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여행을 떠났는데 아이처럼 좋아하는 부모님을 보며 가슴이 먹먹했다고 한다. 품을 떠나 절로 가버린 사랑스런 자식을 그리워했을 그 애틋함이 마음으로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스님들도 못다한 효에 대한 목마름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어 행복했다고 한다. 유교 효는 혈연적인 효지만불교 효는 뭇 생명 향한 효 스님도 효도 할 수 있도록사찰이 공적만남 제공해야 출가수행자는 속세 인연은 물론 혈연까지 끊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부모와
‘대집경(大集經)’에 이런 구절이 있다. “보살은 보리도를 수행할 때 길을 잃은 중생에게 바른 길을 가르쳐주며, 길 위의 기와와 돌멩이 가시덤불을 제거하며, 건너야 할 물이나 험한 곳에 다리를 놓으며, 어두운 곳을 위해 등불을 단다.” 약자를 향한 교황의 위로는국민들에게 큰 울림 다가와 불교서 멀어진 삶 경책위해곁에 온 보살이라 생각해야 보살의 길을 이토록 쉽게 설명한 경전도 드물 것이다. 보살의 삶은 엄청난 희생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길 잃은 사람들에게 바른 길을 일러주고 어두운 곳에 등불 밝혀주는 것도 보살의 삶이다. 그러나
미국 영화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별세했다. 향년 63세. 100세 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쉬운 삶이다. 영화 속 그는 유쾌하고 따뜻했다. 인간미 넘치는 역할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참 스승의 길을 보여준 존 키팅 선생님의 역으로 진한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로빈 윌리엄스라는 본명보다 키팅 선생님이라는 영화 속 인물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영화에서 참 스승의 길 보여준미국배우 로빈 윌리엄스의 죽음 인간의 길 대신 성공 강요하는잘못된 교육에 대한 반성 필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는 1
영화 명량의 상승세가 무섭다. 7월30일 개봉한 이후 불과 2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역대 신기록이다. 영화 명량은 단 12척의 배로 왜선 330척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다. 영화 명량은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알고 있고 진부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명량에 열광하는 걸까?책임지지 않는 정치지도자들이이순신 장군에 대한 향수 불러충의 대상은 백성이라는 명대사대통령만 쳐다보는 관료에 일침 영화 속에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명대사가 등장한다.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검찰이 마곡사 주지 원경 스님을 기소했다. 주지선거에서 돈을 주고 표를 산 혐의라고 한다. 돈을 주고 표를 사서라도 주지를 하겠다는 스님이라니, 무소유와 청빈을 지향하는 승가가 언제 이렇게 타락해버렸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불가에서는 ‘중벼슬은 닭벼슬만도 못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주지를 맡게 될 낌새라도 보이면 조용히 길을 떠나는 절집의 풍속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이제 이런 겸양은 찾아보기 어렵다. 선거 때마다 금권선거 의혹이 끊이질 않고 상대에 대한 비방 또한 세간 못지않다. ‘중벼슬이 더 이상 닭벼슬’이 아닌 각박해진 승가의
조계종이 학인염불대회를 열었다. 종단 차원의 염불대회는 처음이다. 7월17일 열린 염불대회는 전국의 승가대학에서 300여명의 학인 스님들이 참여했다. 조계종 경내는 스님들의 경연대회를 구경하려는 불자들로 넘쳐났다. 조계사를 들렀다 그 자리에 눌러앉아버린 외국인도 많았다. 응원열기는 뜨거웠다. 승가대학 동문들은 플래카드, 피켓을 흔들며 치열한 응원전을 펼쳤다. 참가자들이 선보인 염불은 다양했다. 불가의 전통적인 염불에서 랩과 같은 현대적 운율이 가미된 신세대 염불도 선보였다. 장중하면서도 발랄하고 감동적이면서도 재미있는, 감동과 즐거
“저희는 종교가 없습니다. 저희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조용히 어떤 믿음을 갖고 사는 것까지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니 저희를 괴롭히지 말아주세요.”서울대 캠퍼스에 기독교인들의 전도를 거부하는 카드가 등장했다. 지난해 일이다. 얼마나 선교에 시달렸으면 이렇게까지 했을까. 측은한 마음이 인다. 돌아보면 기독교인들의 막무가내 선교로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이 없다. 전도는 말 그대로 성스러운 가르침을 전하는 것인데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으름장에 가깝다. 천국이 아닌 지옥을 들먹이고 축복보다는 저주를 퍼붓는다.
법보신문 직원들은 매달 책 한권을 선정해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다. 며칠 전 읽었던 책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였다. 이 책은 나치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갇혔다가 살아 돌아온 빅터 프랭클 박사의 자전적 체험 수기다.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가족을 모두 잃었다. 자신 또한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느닷없이 가스실로 보내지는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수용소. 잔인한 폭력과 죽음만이 난무하는 그곳에서 그는 인간에게 주어진 양심과 이성을 잃지 않았다. 그는 닥쳐오는 고통을 면밀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순
합장(合掌)하면 마음이 경건해진다. 두 손을 가슴에 모으는 행위자체로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기도할 때 합장을 하는 것을 보면 합장은 특정종교의 전유물이 아닌 원초적으로 타고난 성스러운 몸짓이라는 생각이 든다.합장은 특히 불교와 관련이 깊다. 불교는 합장의 종교다. 합장으로 시작해서 합장으로 끝난다. 예불을 모실 때도 기도할 때도 수행할 때도 인사할 때도 가장 먼저 하는 것이 합장이다.합장은 특정종교 전유물 아닌원초적으로 타고난 성스런 몸짓합장은 예배·수행의 시작과 끝갈수록 인식 가벼워져 ‘우려’합장은 원래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14일부터 4박5일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그러나 이번 방한을 둘러싸고 가톨릭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단 교황 방한의 초청 주체가 모호하다. 초청 주체가 한국가톨릭이라지만 정부가 오히려 호들갑을 떨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초기부터 교황청에 친서를 보내 방한을 요청했다. 방한이 무르익자 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교황방한 정부지원위원회를 구성해 의전과 행사, 경호안전 3개 분야를 집중적으로 준비해 왔다. 최근에는 방한하는 교황을 위해 대통령 전용헬기까지 지원하겠다고 밝혔다.교황의 방한 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