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악을 짓지 말고/모든 선을 받들어 행해/스스로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칠불통계(七佛通戒)는 ‘법구경’ ‘출요경’ ‘전등록’ 등에 등장한다. 특히 ‘전등록’에 수록된 일화는 극적이다.중국 당나라 대표하는 시인 백거이가 도림 선사를 만나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뜻입니까? 도림 스님이 말했다.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시오.” 백거이가 말했다. “세 살 아기도 그건 압니다.”도림 스님이 대답했다. “세 살짜리 아기도 말은 할 수 있으나, 팔십이 된 노인도 행하기는 어렵소.”
석가모니 부처님 외에 재가불자가 설주(說主)가 되는 대표적 경전으로 두 권이 꼽힌다. ‘유마경(維摩經)’과 ‘승만경(勝鬘經)’이다. ‘유마경’은 재가 거사가, ‘승만경’은 재가 여성이 설주인 매우 독특한 경전이다. 두 경전 모두 대승불교의 꽃으로 불리며 출재가의 경계를 넘어선 차별 없는 깨달음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특히 ‘유마경’은 대승불교에 있어 의미가 남다르다. 출가중심주의와 개인의 해탈을 중시하는 초기불교의 한계를 지적하며 반야(般若)와 공(空), 불이사상(不二思想)을 통해 보살의 삶을 지향하는 대승불교의 첫 출발을 알리는 사
삶은 죽음으로 완성된다. 그래서 평생의 삶은 죽음으로 평가받는다. 수행자들의 삶이 더욱 그렇다. 환(幻)과 같은 인생을 말하며 무아(無我)와 공(空),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고준한 세계를 이야기하다 정작 죽음이 닥치면 놀라고 두려워하며 걱정과 번민 속에서 심연으로 끌려가는 수행자들이 세상에 허다했다. 반면에 마지막까지 예사롭지 않은 죽음의 모습으로 평생의 가르침보다 더욱 큰 울림을 주고 떠난 선사들도 많았다. 선사들의 여여하고 평온했던 죽음의 모습은 삶의 마감 또한 인생의 한 단면이며 집착할 것 없는 현상에 불과함을 고구정녕 일깨웠
1997년 외환위기로 경제가 폭락했던 시절, 귀농(歸農)이 반짝 인기를 끈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자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아마도 두고 온 고향이었을 것이다. 상처 입은 사람들은 귀농을 통해 마음과 몸을 치유하고 삶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중앙일보 종교 담당 대기자였던 이은윤 선생은 코로나19로 세상이 온통 암흑으로 변하자 시골에 칩거했다. 고향 집에 내려가 자연과 벗하면서 고전을 읽고 농사를 짓는 전원생활에 묻혀 살았다. 책은 전원생활 틈틈이 사색과 사유를 통해 건져 올린 고품격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나섰던 그러나 일반 국민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 황의돈의 이야기다. 책의 저자는 ‘역사와 선을 접목한 사학자 황의돈’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삶을 규정했다. 황의돈은 전통적인 유학자 가문에서 태어나 뛰어난 한학실력을 갖췄다. 그러나 그는 개화된 세상을 보며 근대식 학교인 군산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해 수학했으며 서울과 일본의 동경을 오가며 근대 학문을 섭렵했다. 그는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자 구국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북간도로 건너가 명동학교를 건립해 역사교육을 통해 애국사상을 고취시켰으며, 도산 안창호
원숭이는 잠시도 가만있지 못한다. 그래서 이런 원숭이의 행동은 흔히 하루에도 수 백 번 요동치며 변덕을 부리는 우리 마음에 비유된다. 원숭이를 길들이는 과정을 우리 마음을 다잡는 수행의 여정으로 소개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수행이나 명상은 요동치는 마음을 한 곳에 붙잡아 두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최종 목적지가 깨달음이고 열반이다.이 책의 주인공 몽이는 원숭이다. 원숭이의 우당탕탕 좌충우돌 수행의 여정을 불교계를 대표하는 용정운 명상 카툰‧불교그림 작가가 글과 그림을 함께 담아 펴냈다. 용 작가는 붓다의 가르침을 글과 그
부처님은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러나 불자들의 인식 속에서 부처님은 결코 인간이 아니다. 사람과 신들의 스승으로 홀로 존귀한, 인천(人天)의 스승이며 유아독존(唯我獨尊)의 존재다. 부처님은 태어날 때부터 왕자였으니, 신분이 이미 고귀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극한의 고행과 치열한 수행 끝에 마침내 성도했다. 깨달음 이후 열반에 드는 순간에도 중생구제와 교화를 멈추지 않았던 놀라운 삶은 인간이 이룬 성취라 믿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따라가면 결국 우리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 그래서 때로
‘유마경’은 대승경전 가운데서도 백미로 꼽히는 경전이다. 본래 제목은 ‘불설유마힐소설경’으로 재가거사가 설주(說主)인 독특한 형식의 경전이다. 설주는 상업이 융성하게 일어나고 있던 인도 바이샬리에 사는 유마 거사이다. 경전은 장자이기도 한 유마 거사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에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문병을 당부하면서 시작된다. 부처님의 당부에도 수행력과 법력이 재가불자인 유마 거사에 미치지 못한다며 제자들이 문병을 사양하자, 마침내 문수보살이 유마 거사를 만나면서 나눈 대화가 핵심이다.‘유마경’은 “중생이 병들어 아프기에 보살도 병들어
‘웃을 때 반짝이던 별이/ 웃음을 멈추자/ 빛을 내지 않았다.별이 다시 빛을 내기 시작한 건/ 내가 다시 웃을 때였다.’ -‘별’ 중에서책은 노래하는 스님으로 알려진, 조계종 제7교구본사 덕숭총림 주지 도신 스님의 첫 산문집이다. ‘별’은 책의 제목이 된 시로, 시를 넘어 지혜의 사리들이 알알이 배어있다. 삼라만상 모든 것은 결국 내 마음의 투영이다. 내가 웃으면 별도 웃고, 내가 울면 별도 운다. 나의 아름다운 미소로 세상을 물들여야 한다는 깨우침이다.누구에게나 칠흑같은 어둠 속 터널을 지나는 것 같은 아픈 경험들이 있다. 그러나
죽음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태어났으면 반드시 생로병사(生老病死)하고, 생겨났으면 결국 생주이멸(生住異滅)한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그리고 붕괴돼 사라지는 것은 태어난 것이나 생겨난 것이나 생명 있는 것이나 생명 없는 것이나 모두에게 필연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렇게 죽음을 맞이할 운명인데도, 우리 주변에는 죽음이 보이지 않는다. 죽음을 두려워해 보지 않고, 그리고 애써 숨긴다. 인간들이 이렇게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누구도 죽음 이후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 이후를 알 수 없으니, 죽음은 어두컴컴한 심연으로 가라앉는
선으로 들어가는 문을 문 없는 문, 즉 무문(無門)이라 한다. 안거 동안 방문을 걸어 잠그고 수행하는 선방을 보통 무문관(無門關)이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을 닫아걸었으니 문이 없는 셈이고 그래서 붙은 이름이다. 그러나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는 말이 있듯이 큰길에도 또한 문이 없다. 선의 길을 대도무문이라 말하는 것은 깨달음이나 진리에 이르는 데에는 정해진 길이나 방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의 길은 문 없는 문을 찾는 무문(無門)의 길이다. 그래서 선은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까지 나아간 뒤 벽을 부수어 문을 만들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 교과서를 읽게 되면 공부가 되지만, 이야기로 풀어낸 역사책을 읽는 것은 때론 취미가 된다. 같은 역사가 누구에게는 힘든 공부가 되고 누구에게는 즐거운 취미가 되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내용을 풀어내느냐의 차이에 있다. 같은 내용이라도 줄거리를 갖는 스토리텔링이 되면 훨씬 수월하고 읽기가 편하다. 이해는 덤으로 따라온다.원영 스님이 펴낸 ‘이제야 이해되는 불교’는 불교입문서이지만 마치 수필집이나 소설책 같다. 책의 표지 디자인도 교리책답지 않게 무척이나 산뜻하다. 조금이라도 복잡하게 느껴질 만한 내용은 표와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