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5만여명의 구독자와 420만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아름다운 사찰 여행’이 한권의 책으로 탄생했다. 무여 스님은 2019년 3월, 첫 영상 ‘무여 스님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사찰 여행-전등사 편’을 시작으로 2년간 단 한주도 쉬지 않고 영상을 올려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KBS 인간극장’과 ‘EBS 한국기행’ 등에 소개되는 등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후 4년간 여행한 120여곳의 사찰 중에서 각 계절에 어울리는 32곳을 엄선해, 사찰의 역사와 문화, 그 현장에 담긴 깨달음의 사리까
삶이 그대로 경전이 되는 경우가 있다. 계절의 흐름과 피고 지는 꽃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 기뻤던 순간과 슬펐던 기억. 일상에서 겪는 많은 것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깊게 사유할 수 있다면 삶은 그 자체로 놀라운 지혜를 준다. 무설(無說)의 법문(法門)이다.전남 화순 계당산 자락에서 작은 산방 이불재(耳佛齋)에서 자연이 깃들어 살아가는 정찬주 작가가 일상 속에서 느끼는 찰나 찰나의 행복 노하우를 한권의 책에 담았다.책은 ‘부처님 인생응원가’라는 조금은 특이한 제목이다.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지나온 지금, 세상은 여전히 그 여진
코로나19의 어둔 터널에서 벗어나 올해는 봉축다운 봉축을 할 수 있는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했습니다. 올해 봉축 표어는 ‘마음의 평화, 부처님 세상’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의미는 중생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얻는 부처님 세상, 정토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일 것입니다.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었고 걸음걸음에는 연꽃이 피어납니다. 그리고 아기부처님은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외칩니다. “하늘 위 땅 아래 나 홀로 존귀하니, 삼계의 모든 고통을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신생아에 불과한 부처님이 실제로 이러했느냐 묻는
일제강점기, 한국불교가 왜색불교에 노출됐을 때 한국불교의 수행전통을 회복하고 보존하기 위해 설립됐던 선학원의 설립취지 및 정체성, 역사, 문화 등을 모두 망라한 단행본이다.수덕사가 기획하고 김광식 동국대 특임교수가 집필했다. 책은 선학원 창건 및 운영의 주역이 만공 스님임에도 불구하고 왜곡되거나 소홀히 되고 있는 점을 바로잡고, 선학원 연구에 대한 오랜 성과들을 종합했다. 김 교수는 술이부작(述而不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으로 30년간 수행해 온 선학원 연구에 대한 논문들을 집약해 객관성과 보편성을 담아 책을 출간하게 됐다고
초의선사의 다맥을 이은 한국 유일의 ‘초의차’ 계승자 박동춘 박사가 초의 사상에 대한 기존의 연구 성과에 최근 발견된 초의선사의 새로운 자료를 모두 망라한 ‘초의선사의 다도연구’를 출간했다. 조선 후기, 우리 차는 절멸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때 혜성처럼 나타나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던 차 문화와 전통을 되살린 것이 초의 선사다. 그러나 다맥은 다시 흔들렸다. 겨우 되살려 놓은 다법은 조선의 국운 쇠락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이라는 굴곡 속에서 가는 실낱처럼 위태했다. 그러나 다행히 맥은 끊어지지 않았고 근대에 이르러 다풍은 응송 스
‘화엄경(華嚴經)’은 방대한 양으로 선뜻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다. 경전의 내용 또한 난해해 눈 밝은 길라잡이의 인도가 아니고서는 그 뜻을 이해는커녕 짐작하기조차 쉽지 않다. ‘화엄경’이 초기경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대승의 은밀한 종취(宗趣)까지 남김없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엄경’은 부처님의 말씀을 총망라한 경전의 꽃, 불경의 종합판이라 불려 왔다. 물론 ‘화엄경’이 처음부터 이렇게 방대한 경전이었던 것은 아니다. ‘화엄경’의 여러 품들은 원래 독립적인 경전이었다. 그러나 이 경전들이 찬술되고 유통되는 과정에서 ‘화엄
짧지만 적확한 비평을 하거나 혹은 교훈적인 이야기를 할 때 사자성어(四字成語)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한자는 한 글자에도 뜻이 있고, 두 글자면 일정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으며, 네 글자라면 표현 못하거나 전달할 수 없는 것이 없다는 말이 있다. 오히려 한자 네 글자로 이뤄진 사자성어는 어떤 내용이나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할 것도 없이 간단명료하면서 교훈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물론 사자성어는 은유적이고 간접적인 화법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화법보다 더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그 뜻을 알고 나면 또한 단도직입(單刀直入)이며
상월결사 인도순례 43일간의 일정을 회향했다. 4월23일 3만여 인파가 몰린 가운데 서울 조계사와 우정국로에서 열린 회향법회는 인도에서의 순례단의 발걸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자리였다. 스님과 불자들이 함께 전법을 염원하며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서원의 장이었기 때문이다. 길에서 자고 먹고 걷는 43일간의 일정은 고난의 길이었다. 혼자라면 절대로 성취할 수 없는 여정이었다. 아무리 장한 신심이 있더라도 풍토가 다르고 먹거리가 다르고, 기후가 다른 곳에서 매일 25km를 걸으며 43일간의 순례를 회향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몇 차례 인도를 방문했지만 돌이켜보면 성지순례라 보기 어려웠다. 절박함이 없었다. 배움이 없으니 유적지를 둘러보는 이상의 의미를 갖기도 어려웠다. 보아도 본 것이 아니었다.길에서 자고 일어나며 부처님께서 갔던 길을 직접 걸으니, 보이기 시작했다. 출가의 의미, 수행의 절박함, 깨달음의 위대함, 그리고 열반의 아름다움을 알게 됐다. 부처님께서 가셨던 그 길을 그대로 밟으며 따라가지 않았으면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부처님 성지에서의 감동도 달랐다. 각각의 성지가 담고 있는 부처님의 생각, 체취, 그리고 가르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평생의 삶은 죽음으로써 평가받는다. 죽음 앞에서도 말과 행동이 당당하다면 예사롭지 않은 삶이다. 고귀하고 바른 삶을 산 사람들은 언제나 죽음 앞에서도 초연했다. 그러나 탐욕과 욕망에 찌든 이들은 죽는 순간에도 비루했다. 삶에 대한 집착으로 버둥거리다가 결국 황천(黃泉)으로 끌려갔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테지만 삶에 대한 애착,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생명을 가진 존재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그러나 삶과 죽음에 대한 모든 두려움을 완벽하게 초월한 분이 있다. 바로 부처님이시다. 부처님께서는 삶에 대한 애착은 물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인도는 날것 그대로 사문유관(四門遊觀)의 땅이었다. 싯다르타 태자는 카필라성의 동서남북 4문을 나가서 늙고 병들고 죽음을, 그리고 마지막에 당당한 사문을 만난 뒤 출가했다. 아버지 숫도다나왕은 싯다르타 태자가 태어나자마자 붓다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았기에 인생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볼 수 없게 했다. 그러나 인과는 한 치의 어긋남이 없다. 사문유관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생각해 보면 카필라성에서의 삶은 싯다르타 태자만의 것은 아니다. 우리 또한 화려한 카필라성에 살았던 싯다르타 태자와 다를 것이 없다. 산업화 사회에서 죽음은 장례식장
순례는 쉽지 않았다. 2주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매일이 버거운 날들이다. 길에서 자고 길에서 일어나, 걷는 것은 안락한 생활에 안주했던 몸과 마음이 편하게 받아들이기에 역부족이었다. 하루 일정은 새벽 2시에 시작됐다. 도량석에 맞춰 일어나 텐트 안의 짐과 침낭, 매트를 정리하고 의복을 갖추면 예불과 동시에 3시에 순례에 나선다. 빛이 들지 않은 길은 온통 칠흑 같은 어둠이다. 그 길을 오로지 대중들의 랜턴에 의지해 걸었다.여러 길을 걸었다. 아스팔트길, 흙길, 골목길, 고속도로. 편한 길은 없었다. 아스팔트는 파이고 곳곳이 부서져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