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는 순전히 장자를 놀려볼 심산이었건만 장자의 마음은 오직 부처님이 가득 들어차 있었기에 티끌만큼의 농이 깃들 수는 없었습니다. 장자는 이내 자신의 전 재산을 수레에 가득 실어서 왕자에게 보냈습니다. 나는 그저 장난으로 한 말이니 수레를 몰고 돌아가라는 왕자. 이미 당신은 동산의 값을 말하였으니 그건 팔겠다는 의사가 있는 거라며 부득부득 우기는 장자. 급기야 재판으로까지 가게 되었고, 현명한 노인들은 장자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이제 장자는 손수 금화를 내려서 동산을 덮기 시작하였습니다. 앞서 』보문품『에서 “62억 항하의 모래 같은 보살의 이름을 받들어 목숨이 다하도록 음식 등으로 공양한다면”이라는 부분을 읽을 때면 저는 언제나 급고독장자가 왕자의 동산에 금화를 까는 모습이 떠오릅니
무진의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관세음보살은 어떻게 이 사바세계에서 노니시며, 어떻게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시며, 방편의 힘은 그 일이 어떠하나이까?” 무진의보살은 』보문품『에서 딱 두 번 부처님께 여쭙습니다. 첫째는 관세음보살의 이름에 담긴 뜻을 여쭈었습니다. 부처님은 그 이름을 설명하시면서 저와 같은 중생들은 몸과 입과 마음으로 쉬지 않고 부르라고 답하셨습니다. 즉 구제를 바라는 중생의 입장에서 설명한 부분입니다. 이제 두 번째 질문이 던져졌습니다. 관세음보살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이 세상에 머물고 계신가, 중생을 위해서는 어떤 모습으로 어떤 법을 설하시는가, 어떤 수단(방편)을 쓰고 계신가하는 것입니다. 구제를 펼치는 관세음보살의 입장을 설명하시는 것이지요. 그런
아주 큰 부잣집에 어린 외아들이 있었는데 무단으로 가출하여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한 시도 잊지 않았지만 아들은 자신의 신상에 관해서는 죄다 잊어버리고 거지처럼 떠돌아 다녔습니다.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우연히 자신이 태어난 고향거리에 들어선 아들은 눈을 의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갑부의 행차를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자신의 아버지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들은 고작 ‘어쩌면 왕보다 더 부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세력도 막강할 텐데 만일 내가 왔다갔다 하는게 눈에 거슬리기라도 하면 나를 붙잡아다 학대하고 종처럼 부릴지도 모른다. 도망가자.’ 이렇게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도망치려던 아들을 알아본 아버지는 너무나도 반가운 나머지 아랫사람을 불러 무조건 잡아오게
당신은 지금 누구를 만나고 싶습니까? 영업직에 몸담고 있다면 실적을 올려줄 고객을 만나고 싶을 것입니다. 아직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였다면 꼭 이상형은 아니라도 좋으니 그럴듯한 이성을 만나고 싶을 것입니다. 헤어진 피붙이나 첫사랑, 내 일손을 덜어줄 사람 등등 지금 만나고 싶은 사람을 손꼽으라면 참 많은 이들을 들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거나 만날 예정이 되어 있는 사람은 대상에 맞게 스스로를 가꾸고 내보일 준비를 깔끔하게 합니다. 모든 준비를 다 마치고 큐 사인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텔레비전 뉴스 앵커처럼 말입니다. 상대를 만나면 정중히 명함을 건네고 깍듯하게 인사를 합니다. 가급적 고운 말을 쓰고 적당히 양보하며 최선을 다해 상대한 뒤에 그의 호주머니에 넣어진 내 명함이 그
사기꾼을 만날 때는 더 큰 사기꾼으로 부처를 만날 때는 더 큰 부처로 나투리라 어제오늘 사이 당신이 만난 이들…. 책상을 마주 놓고 일하고 있는 직장 동료, 옥신각신 물건값을 흥정하다 헤어진 시장 상인, 어젯밤 술자리에서 내 옆에 앉았던 사람, 지하철에서 좌석 하나 놓고 잠깐 신경전을 벌인 여자… 앞서 원효 스님의 경우를 비추어 보면 이런 사람들 가운데 어쩌면 관세음보살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관세음보살이 누구에게나 불쑥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다른 문제는 없는데 이성에게 자주 끌려.’ ‘다른 건 관심 없어. 내 가족만 행복하면 되.’ ‘왜 나는 운전대만 잡으면 거칠어지는지 모르겠어.’ ‘주겠다는데 왜 돈을 거절해야해? 일단 받고 보자.’ ‘그러
이미 위없는 깨달음을 이룬 후에도 중생 제도를 위해 이 땅에 나투시다 그런데 보십시오. 관세음보살이 부처의 몸으로 나타나기도 한답니다. 우리는 ‘보살’에 대해서 이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보살은 아직 부처가 되지 못한 사람. 보살이란 깨달음을 추구하는 자. 보살이란 본래 석가모니 부처님이 성불하기 전 과거세에 수행하던 몸을 가리키는 말. 보살이 이런 자라면 부처님과는 격이 한참 떨어지는데 어떻게 그런 보살 신분에 감히 부처의 몸으로 나타난다는 말일까요? 이런 의심을 짐작이나 하고 있었는지 여러 경전에서는 친절하게도 관세음보살이 아직 수행해야 할 수행자의 신분이 아니라 이미 부처를 이룬 뒤에 중생을 위해 다시 보살의 몸으로 내려온 분이라는 설명을 곳곳에서 하고 있습니다.
꽃이 법답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법답지 못한 것임을 성문은 가르침의 소리(聲)를 듣고서야(聞) 수행이 진전되는 단계입니다. 사리불이나 목련존자처럼 부처님 당시 뛰어난 제자들이 모두 성문이라 불리는데 그것은 바로 스승이신 부처님에게서 법을 듣고서 진리에 눈을 떠갔기 때문입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입장이다 보니 자신에 대한 통제가 엄격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된다, 저것은 안 된다, 그러면 큰일난다…라는 식으로 세상에 대해 여러 가지 잣대를 이리저리 맞추느라 그것을 넘어선 경지는 엄두도 내지 못하였던 것이지요. 그 잣대는 진리에도 적용되어 깨끗한 경지(열반), 더러운 경지(사바세계)에 대한 차별심에 얽매이는 폐단을 떨어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된 자들입니다. 대승경전에서 부처님의 성문제자들을
현실에는 우리와 같은 인간 세계가 존재하는가 하면 그보다 한 차원 높은 세상도 존재합니다. 착한 일을 아주 많이 한 사람이 가게 되는 욕계의 여섯 하늘과, 참선을 부지런히 닦는 이가 차례차례 나아가는 선정의 하늘인 색계의 열여덟 하늘과 무색계의 네 하늘이 그것이지요. 그러니 지금 하나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해도 범부에게는 서로 뺏고 빼앗기며 작은 행복에 흡족해하고 작은 슬픔에 세상이 끝난 것처럼 몸부림을 치는 사바세계이지만 선업을 닦은 이들은 온통 즐거움이 가득 찬 세계를 누리고 있으며, 수행을 많이 한 이는 숨쉬는 한 찰나가 그대로 참선의 단계인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은 이렇게 하늘의 몸으로도 나타나서 구제의 가르침을 베푸십니다. 범천왕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범천왕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며
수행자가 마땅히 지켜야할 것은 진리 추구와 지혜로운 침묵이다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며 비구와 비구니는 남녀 출가자, 우바새와 우바이는 남녀 재가신자로서 불교의 승가를 구성하는 네 가지 큰 부류(사부대중)입니다. 부처님의 법이 후대로 이어지는 것은 이들이 존재하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비구와 비구니라는 말에는 빌어먹는다는 의미가 들어 있고 우바새와 우바이라는 말에는 가까이 모신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출가한 스님은 재가불자에게 밥을 빌어서 먹는 사람이고, 재가불자는 출가한 스님을 가까이 다가가 모시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출가자와 재가자는 서로 완벽한 조화를 이룹니다. 부처님은 출가자에게 이렇게 가르치셨습
한 여인의 신념이 거룩한 향기가 되어 수많은 이들을 불법에 조복케 하리라 장자 거사 관리 바라문 부인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그 부인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며, 소년 소녀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소년 소녀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며 수마제를 아십니까? 급고독장자의 딸이랍니다. 가정교육을 잘 받은 태가 흘러서인지 마침 장자의 집을 찾은 친구 만재장자의 눈에 띄었습니다. “내 며느리로 다오.” 느닷없는 청혼에 급고독장자는 망설였습니다. ‘만재장자는 친한 친구이기는 하지만 그는 이교도를 섬기고 삿된 풍속에 빠져있는 지방의 사람이다. 내 딸을 보내면 보나마나 몸 고생 마음 고생할 게 뻔한데…’ 하지만 “만일 수마제가 그 지방으로 시집간다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