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여름 새벽기도에서 이산선사발원문을 처음 들었다. 불교에 막 입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새벽예불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호기심으로 처음 참석한 날이었다. 예불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스님께서 일어나시더니 뭔가를 펼치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 글은 네 글자로 리드미컬했다. ‘점잖은 거동으로 모든 생명 사랑하여 이내 목숨 버리어도 지성으로 보호하리.’ 이 대목에서 귀가 번쩍 뜨였다. ‘고통 받던 저 중생들 극락세계 왕생하며, 나는 새와 기는 짐승 원수 맺고 빚진 이들 갖은 고통 벗어나서 좋은 복락 누려 지이다. 모진
때는 연말인지라 거리에는 번쩍거리는 불빛이 찬란하다. 잘 보냈든 그렇지 않든 한 해가 저물고 또 한 해가 시작될 것이다. 이 들썩이고 조금은 흥에 겨운 연말 분위기에 너무나 슬픈 소식을 전해 들었다.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운전원으로 일하던 스물넷 꽃다운 청년이 사고를 당해 숨졌다. 그 청년은 비정규직 노동자였고 1년 계약직으로 들어온 지 겨우 3개월 만에 사고가 났다. 야간에 홀로 4~5킬로미터나 되는 긴 석탄운송설비를 점검하다가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빨려 들어가 귀한 목숨을 잃었다. 우리의 밤을 환하게 밝혀줄 전기를 생산하는 현장에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저술한 ‘문명의 붕괴’에는 한때 흥했던, 그러나 지금은 사라진 문명들의 ‘옛’이야기가 몇 편 실려 있다. 책은 제목 그대로 이스터 섬, 핏케언 섬과 핸더슨 섬, 아나사지 문명과 마야 문명 그리고 저 북쪽 그린란드에서 노르웨이인들의 몰락까지 다양한 ‘문명의 붕괴’를 보여준다.흥미로운 것은 이들 문명이 몰락하게 된 공통점에 삼림 파괴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먹고 사는 문제 때문이었든 목재를 활용해서 집을 짓는 문제였든 또는 통치자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목재를 소비했든 어쨌든 숲을 지속가능하지 못하도록
11월 마지막 주 금요일은 쇼핑을 즐기는 이들에겐 빼놓을 수 없는 날인 블랙프라이데이이다. 세계 경제 침체로 어렵던 유통업계가 연말을 즈음해서 매출을 끌어올려 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날이 블랙프라이데이다. 여기서 블랙의 의미는 가계부에서 흑자를 뜻하는 검은 색을 차용해 온 것이다. 올해도 여전히 블랙프라이데이에 환호하는 이들을 주변에서 많이 만났다.해마다 돌아오는 블랙프라이데이에 여전히 살 것들이 많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요즘은 외국에서 물건을 직접 구입할 수 있다 보니까 특히 미국의 쇼핑몰들이 일제히 할인을 하는 이날을 준비하
올해도 우리 집은 겨우내 일용할 김장을 무사히 마쳤다. 해마다 11월 말쯤에 언니네 식구들이 우리 집에 모여서 친정에 보낼 김치까지 세 집 김치를 담근다. 이렇게 김치를 내 손으로 담그기 시작한 지가 5년쯤 된 것 같다.친정아버지가 편찮으시면서 언니와 나는 우리가 친정에 김장을 보내드리자고 의기투합했고 그렇게 시작된 일이 어느덧 연례행사가 됐다. 계기가 있기도 했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김치를 담그고 싶었다. 된장을 만들어 먹었던 것도 같은 이유였는데 어느 순간 기본 찬거리를 만드는 방법을 다 까먹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돈
추운 계절이 오니 백화점이며 쇼핑몰에는 두툼한 패딩이 가득하다. 지난해 한파를 혹독하게 겪었기 때문인지 이미 올해 9월부터 10월 중순까지 한 백화점의 프리미엄 패딩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00%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패딩을 만드는 충전재는 거위나 오리의 앞가슴 털이 주재료다. 거위털로 충전재를 채울 경우 롱 패딩 한 벌에 15~25마리의 털이 들어간다고 한다. 그러니 올해 충전재로 들어간 거위털은 얼마나 많을까? 패딩이 아니라 몸 전체를 덮는 코트를 만든다면 몇 마리의 동물이 필요할까? 단 한 벌의 코트를 만드는데 라쿤
매우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 전국이 침잠했었다. 지난주 초고농도 미세먼지에 갇혀버린 풍경이 딱 그랬다. 오염물질 배출량은 증가하는데 공기가 정체돼 있으니 오염 농도가 증가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는 우리의 폐 속으로 이 오염물질들이 흡입되었다. 매순간 숨을 쉴 때마다.한 치도 어긋남 없는 인과법칙의 적용이다. 기차를 타고 남녘으로 가는 와중에 본 미세먼지의 위력은 대단했다. 차창 바깥은 운무에 완전히 묻혀버린 듯 운치마저 느껴졌다. 운해라고 상상하니 차창 밖 풍경은 볼만했다. 이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얼마 전 구글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우주달력이란 걸 봤다. 대략적인 이미지로 표현된 것이었으나 보고 있자니 느끼는 바가 적지 않았다. 달력은 우주의 시작이라는 빅뱅으로부터 시작된다. 태양계에 생명이 살기 시작한 것이 9월이며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생명이 진화를 거듭하는 것은 12월이다. 현생 인류로 인간이 진화를 한 것은 12월31일 오후 11시 52분쯤이고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 대륙 여기저기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은 마지막 1분을 남겨놓고였다.생태 환경 강의를 할 때 지구 역사를 언급하는 일이 요사이 부쩍 늘었다. 특히 학생들을
도시 사람들이 대체로 그렇듯 나 역시 도심과 집을 오가는 교통수단으로 전철과 버스를 이용한다. 전철에서 내려 집까지 걷기에 멀지 않은 길이지만 짐이 있거나 춥거나 혹은 더울 때, 특별히 피곤한 날 등 걷기에 뭔가 조건이 미흡할 때는 버스를 탄다. 사실 이 모든 것은 걷기 싫다는 핑계일 수도 있다.등산할 때 무거운 백팩을 메고 험한 산길은 잘도 걷지 않는가. 심지어 오르막을. 걷고자 한다면 걸을 이유는 천 가지도 넘을 테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은 순수하게 이동하는 시간에 더해서 버스며 전철 등을 기다리는 시간도 무시할 수 없다.
파리에서 이십여 일 머무는 동안 참 좋다고 느꼈던 풍경이 몇 있다. 유난히 넓은 하늘 아래 이국적이면서도 나지막하고 고풍스런 도심 풍경이 그랬다. 조각난 하늘을 이고 있는 빌딩 숲이 익숙한 내게 그들의 공간은 그저 부러웠다.그러나 애당초 넓은 땅을 가진 그들을 아무리 부러워한들 달라질 게 없었기에 오래 부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정작 부러웠던 것은 그네들이 채소며 과일을 파는 가게였다. 작은 가게든 대형마트든 그곳의 판매 시스템은 무게를 달아 팔도록 돼 있었다.고른 물건을 비닐이 아닌 누런 종이 봉지에 담았다. 어릴 적 익숙했던 마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화가 난 사람이 돌을 던지는 대신 최초로 한 마디 말을 내뱉던 그 순간 문명이 시작됐다고 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문명이 매우 발전했다고 하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명이 발전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흔히 문화와 문명을 혼용해서 쓰기도 하는데 문명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다.대체로 문화는 종교, 학문, 예술, 도덕 등 정신적인 움직임을 가리키고, 문명은 보다 더 실용적인 생산이나 공업, 과학, 기술과 같은 물질적인 방면의 움직임을 가리킨다고 정리할 수 있겠
‘우리 모두에겐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쾌적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동시에 별빛 가득한 하늘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의무도 있다. ’지난주에 열린 ‘2018 탈석탄 친환경에너지 전환 국제 컨퍼런스’에서 환경부장관·서울시장·인천시장·경기도지사·충남도지사 명의로 발표한 ‘탈석탄 친환경에너지 전환 공동선언문’ 중 일부다. 눈에 띄는 건 이번 선언문의 제안자가 충남이었다는 사실이다.충남에는 우리나라 석탄화력발전소 총 61기 가운데 절반인 30기가 위치해있다. 이런 이유로 전국 온실가스배출량의 24.7%,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의 13.2%가 충
‘도토리 밤 채취금지’동네 산 초입에 붙어 있던 현수막 글귀다. 야생동물이 먹어야 하니 채취를 금지한다는 설명이 아래 짧게 적혀 있었다. 바로 그 현수막 옆에서 도토리를 열심히 줍고 있는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다. 모든 이들 눈에 현수막이 눈에 띄었을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수막 내용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목까지 차올라왔다. 그러다 행여 기분 나빠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몇 번을 곱씹다가 꿀꺽 삼켰다. 산에 오르다보니 이번에는 중년 부부가 열심히 도토리를 줍고 있었다. 같이 간 딸에게, ‘저기 현수막에 도토리 밤 채취 금지라
그날 나는 한 환경단체 ‘후원의 밤’에 참석 중이었다. 로드킬 당한 동물에 관해 슬퍼했고 DMZ에 살고 있는 모든 동식물의 평화를 기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물원 사육장을 탈출한 퓨마가 엽사가 쏜 총에 사살돼 끌려 내려왔다는 뉴스를 접했다. 탈출한 지 4시간 반 만이었고 8살 암컷 퓨마, 이름은 호롱이라고 했다. 여덟 살이 되도록 퓨마가 온전히 누린 자유가 어쩌면 그 최후의 4시간 반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시간조차 자유를 만끽했다기보다는 쫓기는 신세로 공포감에 허둥댔을 걸 생각하니 내 안에 슬픔이 차올랐다. 사육사가 우리의
지난 주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화성갯벌에 다녀왔다. 마침 여름 철새인 저어새며 붉은 어깨도요 등 다양한 도요물떼새들을 만날 수 있었다.썰물 때 바닥이 드러나는 곳을 갯벌이라고 하는데 진흙 혹은 모래가 퇴적되어 형성된 땅이다. 그런데 이런 설명으로는 갯벌을 매우 협소하게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땅이라 하면 그저 흙이 있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생명을 품고 기르듯이 갯벌 또한 다양한 생명을 품고 기른다. 갯벌에는 농게, 망둥어, 맛조개, 칠면초, 퉁퉁마디 등 다양한 저서생물들이 산다. 오고가는 새들을 품고 갯벌에 기대어
이불 두께가 달라지나 싶더니 엊그제가 찬 이슬이 내린다는 백로였다.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대하는 마음이 딴판으로 바뀌었다. 하루하루 염천을 머리에 이고 살던 지난여름의 그 해가 오늘 아침 떠오른 이 해와 다르지 않을 텐데도 변하는 계절이 낯설고도 반갑다. 떠올려보니 그 여름 햇살은 뻗치는 그 순간부터 이미 하루를 좌절시켜버렸던 것 같다. 숨 쉬기조차 버거운 기온이 연일 이어지면서 급기야 입맛을 잃고 말았다. 배는 고픈데 몸이 받아주질 않으니 기력도 점점 딸렸다. 이렇게 몸이 지치니 어떤 일도 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대로
SNS에 자동차 앞 창문에 떠억 붙은 한 마리 낙지 사진이 올라왔다. 태풍 솔릭이 제주 앞바다를 사정없이 강타하던 와중이었다. 처음엔 희화하게 느꼈는데 사진을 보다가 바다에 살고 있는 생명들 또한 태풍으로 고난의 시간을 갖게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세상을 나를 중심에 놓고 내 견해로만 보다보면 주변을 살피는 일에는 인색할 수밖에 없다는 걸 그 사진을 보는 내 태도에서 느꼈다. 실제 태풍이 지나갈 때 바닷 속 해양생물들에게 벌어지는 일에 관한 연구가 있었다. 몸집이 큰 상어처럼 빠르게 멀리 움직일 수 있는 물고
폭염으로 힘든 와중에도 연일 하늘은 아름다웠다.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 드리워진 풍경을 보며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자주 떠올렸다. 미세먼지로 마음까지 뿌예지던 날들을 경험했던 터라 비현실적이다 싶을 만큼 아름다운 하늘이었다. 하루를 마감할 시간이 다가오면 파란 하늘은 노을에게 무대를 넘겨줬다. 아름답다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표현 말고 달리 수식어를 찾기도 어려웠다. 날마다 새롭게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니 감탄하기에도 벅찼다. 삭막한 도시가 어쩐지 풍성해진 느낌이었다. 감상이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저녁노을의 바통을 별이 빛나는 밤이 이
폭염이 이어지면서 우리 집 모이대를 찾는 새들이 뜸해지자 이런 저런 근심들이 뜸해진 자릴 분주히 채웠다. 더워도 너무 더우니 이런 폭염에 혹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짱짱하던 볕의 기세가 조금은 꺾이는 오후 무렵, 찾아오는 몇몇 새들이 반가워 내다보면 하나같이 부리를 벌리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를 견뎌내는 힘겨움이 창문 너머로 전해졌다. 고작 몇 십 그램의 무게로 뜨거운 열기를 감당하는 모습이 안쓰러우나 해 줄 수 있는 거라고는 물그릇을 채우는 것과 모이를 조금 더 내놓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쉼 없이 먹이활동
독일 남부 바이에른이 개마고원 정도 위도에 해당될 만큼 독일은 위도 상 우리나라보다 훨씬 북쪽에 위치해 있다. 보통 7월 평균 기온이 18도 정도라고 하는데 그런 독일도 이번 폭염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한 달 넘게 폭염이 계속되면서 피해가 속출했다. 일단 농작물 수확량이 큰 폭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과 뜨뜻해진 수온으로 물고기 폐사소식이 들린다. 숲 역시 폭염에 고통을 겪고 있다. 헤센 주에서만 80군데 산불이 발생했고 독일에 살고 있는 지인에 따르면 숲의 상층부가 누렇게 말라버렸다고 한다. 비단 독일뿐만이 아니다. 독일보다 훨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