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을 향한 최석호 법사의 수행메시지 책 전면에 걸쳐 주옥같은 이정표 ‘가득’ “막연한 비굴함 속에, 또 막연한 교만함 속에 헛된 인생으로 꽃다운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았으면 합니다. 크게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불꽃같은 정열로써 인생을 살고자 하는 분들에게, 부처님의 제자답게 참다운 보살행을 실천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이 책이 약간의 도움이라도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990. 6. 20 최석호” 14년 전, 그러니까 1990년 이 책이 막 발간될 무렵은 초년기자 시절이었다. 지금은 삭발하여 저명한 스님(법륜 스님)이 되었지만, 저자 최석호 법사로부터, 당시로서는 다소 생경한 느낌의 제목인 『젊은 불자들을 위한 수행론』(중앙불교교육원출판부)을 선물 받았을 때, 그리고 그날 저녁 이
부산 운불련, 4월 4일부터 서비스 300여 회원 24시간 대기…요금 할인 달리는 법당, 거리의 포교사로 정법 수호에 매진하고 있는 한국 운불련이 장애인을 위한 운불련 콜을 창립한다. 부산 동명불원에 콜센터를 설치한 불자 운전기사들이 성실 봉사를 다짐하고 있다. 한국 운전기사 불자연합회(총재 법장 스님, 회장 조홍인, 이하 운불련)는 지난해부터 ‘장애인을 위한 운불련 콜’ 사업을 추진, 2월 5일 부산 동명불원에서 창립을 위한 추진위원 발대식을 갖고 본격적인 회원모집에 나섰다. 장애인을 위한 운불련 콜은 말 그대로 장애인의 부름에 우선적으로 달려가는 운불련 만의 새로운 콜 제도. 운불련 부산지역회에서 그 울림을 시작해 점차 전국망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30여 명으로 구성된 운
궁극적 깨달음에 대한 끝없는 회의 우곡 선사 만나 참 수행 의미 깨쳐 참선수행을 통하여 선정(禪定)의 맛이 살짝 살짝 느껴지는 순간, 수행과 현실 사이에는 자그마한 틈새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수행과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병행한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일 것이라는 의식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궁극적인 마음의 평정, 깨달음이라는 것은 선택된 자들만이 가 닿는 신비스러운 곳인데, 어불성설 너 같은 중생이 감히, 네 주제를 알아야지!”라고 자문자답하면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였다. “수행하는 시간만이라도 마음의 평정을 얻었으면 됐지, 또 무슨 욕심, 스님들처럼 출가해서 수행을 전업으로 삼아도 마음이
‘태극기 휘날리며’ 개봉과 동시에 영화 홍보, CF·화보촬영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장동건〈사진〉. 개봉 8일만에 3백만을 돌파하고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대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그로서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도 할 법한데, 언제나 하심하는 마음으로 산다는 그 답게 부드러움이 단번에 느껴졌다. 한국전쟁의 뼈아픈 현실 속에서 애틋한 형제애를 그린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진태’역을 맡은 그는 영화 속에서 관객들의 가슴과 눈물샘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그는 영화 장면 중 “술에 취해 동생 진석(원빈)에게 초콜릿을 주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영화 속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해 촬영 전 실제로 맥주 8캔을 마셨다”고 한다. 그는 고 3 시절, ‘기흉’이라는 폐병으로 병상에
중문학 전공자로 막강 번역팀 구성 漢詩 ‘제 맛’ 살리는 데 꼬박 3년 ‘날아라 슈퍼보드’ 혹은 ‘드래곤 볼’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몇 해전 텔레비전용 애니메이션과 만화책 등으로 소개되며 전국 어린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이 공전의 히트작들은 모두 ‘손오공’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손오공과 불경을 구하러 서역으로 가는 삼장법사, 사오정, 저팔계의 모험을 담은 『서유기』를 새삼 새롭게 소개한다는 것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다고 여기는 『서유기』의 완역본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매우 최근의 일이다. 국내에서는 1965년 정음사에서 출간한 『서유기』 등 지금까지 5종의 번역서가 출간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출간된 이 번역본들은
“정비 없인 명안종사 없다” “내규수준 전락” 우려 확산 조계종, 청규관련 논문의뢰 21세기형 청규 정비 나설듯 수행 열기가 태풍 수준이다. 제방의 선방은 밀려드는 결제 대중들을 수용하기도 벅차다. 방부 들이기가 하늘에 별따기 수준이다. 조계종은 “수행 전통이 회복되고 있다”며 간화선 중심의 수행법 정립의 고삐를 죄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수행열풍에도 불구하고 명안종사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큰스님들의 잇단 입적 후 이 같은 우려는 확산되는 추세다. 그렇다면 명안종사가 배출되지 않는 원인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일일부작(一日不作)이면 일일불식(一日不食)’으로 대표되는 백장청규(百丈淸規) 정신의 쇠락을 꼽는다. 청규란 제2의 율장(律藏)으로 불릴 만큼 선원을
정글의 법칙 직장도 전법도량 실생활 실천보시행 7가지 제시 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에 화두가 성성하면 누구나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은 승속을 막론하고 절집 인연이 깊은 이들에겐 낯설지 않다. 참선은 반드시 산중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고 저잣거리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며, 결코 스님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인데, 이런 구절들은 들을 땐 그럴 듯 하다가도 막상 실행에 들어가려 들면 막막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대표적으로 참선수행을 들었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여러 종류의 신행들도 마찬가지이다. 삶은 모든 부분이 그대로 수행이요, 신행의 과정이라는 원론엔 수긍이 가지만 실제로 일상의 삶 그대로가 불교적 삶이 될 수 있을까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
거센 모래 바람이 그치지 않는 황량한 산웨이산(三危山). 둔황 막고굴은 그 곳 산기슭에 고요히 둥지를 틀고 있다. 4세기 중엽인 5호16국 시대부터 14세기 원나라 때까지 약 1000여 년간 조성된 까닭에 막고굴의 불상과 벽화들 모습도 제각각이다. 초기의 굴, 그러니까 수나라 이전의 굴들에서는 불상의 얼굴이나 의상 등이 서역풍에 대단히 가깝다. 불교가 아직 이 지역에 정착하지 못한 때문인지 어딘지 모르게 세련된 멋은 없지만 정겹고 소박한 아름다움이 매력적이다. 반면 북위시대를 거쳐 당대에 이르면 정교함과 화려함은 극치를 이루고 불상과 보살은 마치 살아있는 듯 생동감이 물씬 넘친다. 벽화도 초기에는 부처님의 전생 등을 표현한 것이 많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대승불교를 주제로 한 경전들이 주로 나타나고 있으며
조계종 8교구 본사 직지사의 조실 관응당 지안 대종사가 2월 28일 오후 7시께 직지사 산내 암자인 중암에서 법납 76세, 세납 95세로 원적했다. 스님은 1910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1929년 상주 남장사에서 탄옹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1936년 서울 선학원에서 구족계를 수지한 뒤 일본 용곡대(龍谷大)에서 수학했으며, 직지사 주지, 김용사 강사, 동국학원 이사 등을 역임했다. 1956년부터 47년 동안 직지사 조실로 주석하며 후학들을 양성했으며 유식학(唯識學)에 있어 독보적인 존재로 추앙 받았다. 영결식은 3월 3일 오전 11시 직지사 만덕전에서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봉행된다. 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 관응(觀應) 스님 주요 양력
대강백 관응당 지안 대종사가 지난 2월 28일 입적했다. 지난 3월 3일 직지사에서 봉행된 관응 큰스님의 영결식과 다비식에는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많은 스님과 불자들이 운집하여 스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애도했다. 관응 큰스님은 황악산 직지사의 조실로 중암에 주석하면서 간경과 후학양성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분이다. 생전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를 꺼려 언론 등을 멀리함으로써 대중적 인지도는 높지 않았지만 한국불교 강맥을 이어가는 강사들에게는 거대한 산맥 같은 어른이셨다. 관응 큰스님이 남긴 일화들이 마치 하나의 전설처럼 들려오는 것은 스님의 위신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알게 하는 것들이다. 지난해 말 잇따라 선지식들이 열반에 들면서 슬픔에 빠져 있던 불자들에게 들려온 또 하나의 슬픈 소식이다.
소설 서유기에 나오는 불타는 산, 후오이엔산. 산줄기가 위로 솟구치는 불길 같다. 둔황의 아침이 뿌옇게 밝아온다. 오늘 달려야 할 거리는 약 900km. 이른 새벽부터 서둘러 출발했다. 숙소 앞에는 두 마리 개가 이리 저리 뛰놀고 있다. 우리나라의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둔황. 이곳은 불교미술에서 뿐 아니라 역경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800여 년전 지참, 구마라집, 현장과 더불어 중국 4대 역경가의 한 사람인 축법호(竺法護)는 둔황에서 태어났다. 8세 때 출가해 불법을 전하겠다는 뜻을 세운 그는 스승을 따라 서역 각지를 유람하며 불교를 배우고, 또 수많은 경전을 수집해 고향 둔황으로 돌아왔다. 당시 서역의 36개국 언어에 능통했다고 하니
영국서 제2의 종교로 자리매김 “불교는 실용적 철학이자 심리학” 영국의 제1종교는 단연 영국국교인 가톨릭이다. 그렇다면 영국내 제2종교는 무엇일까? 믿기 어렵겠지만 불교이다. 1998년 영국 컴브리아주에 설립된 최초의 까담파 사찰 만주쉬리센터. 영국 국영방송 BBC 뉴스는 3월 4일 “불교가 두 번째 종교가 되다”라는 제목으로 영국내 불교신자의 증가를 보도했다. BBC에 따르면 최근 콘월과 데본 지역에서 실시한 인구조사에서 총인구 127만6186명 중에서 89만9749명이 기독교도라고 답해 1위를 차지했으며 2639명이 불자라고 답해 불교가 2위를 차지했다. 또 2168명이 이슬람교라고 답했으며, 1087명이 유대교, 755명이 힌두교, 280명이 시크교를 믿고 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