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는 이와같이 말씀하셨다. 열반에 이르는 길을 너희에게 보여주겠다. 그러나 열반을 성취하고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너 자신에게 달려있다. 나는 축복을 통해, 구원을 위한 기도를 통해 너를 인도할 수는 없다.”물론 세계 주요 종교인들이 마음의 평화를 이룩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보다 나은 세상을 구현하는데 있어서 똑 같은 가능성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것이 불교, 자이나교 일부 상키아학파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자업자득(自業自得, self-creation)이 근본 원리입니다. 우리는 인과율을 믿습니
존경하는 원로 그리고 불자 형제·자매님! 이곳에 모인 모든 분들에게 한 사람의 불교 수행승으로서 지금은 매우 감동적이고 아주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늘 그러했듯이 마지막에 연설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해야 할 말이 별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내용은 이미 앞서 언급되었기 때문입니다.(웃음)대다수의 종교 신자들이신과 부처님 찾으면서도실제 일상생활 속에서는신과 부처님 개의치않아부처님 따르는 불자라면진정으로 항상 진실해야불자로서 이렇게 하시길매일아침 부처님 기억하고부처님의 가르침 암송하며‘나의 마음’ 늘 관찰해야이렇게 하루
“번뇌! 번뇌! 지혜의 눈에는 사라져 버리는 너는, 내 마음에서 사라져 어디로 가는가? 너는 어디에 있다가 나를 해치러 다시 오는가? 의기소침한 나에겐 정진할 힘마저 다해 버렸구나!” ‘입보리행론 보리심 불방일품 중에서’우리는 지금 이시각에도 시간을 소비하고 있으니소비하는 시간을 어떻게보내는가가 가장 중요해과거는 존재하지 않고현재는 찰나에 불과하고미래는 하늘의 구름과 같아결코 두려워할 필요없어일분일초를 방일한다면일분일초에 절망 깃들어신심과 자비심 끊임없이 사유하고 사유할때 증장신심과 자비심 충만하면고통은 신기루처럼 사라져물질적으로
먼저 스스로를 한 인간 또는 인류 대가족의 한 구성원으로 생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러한 생각을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문화와 종교, 국가, 종족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똑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은 행복할 권리, 고통을 극복할 권리를 간직하고 있다는 보편적 가치를 의미합니다. 결국 우리 모두의, 인류 공통의 근본적인 삶의 목적은 “행복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득권(生得權), 즉 태어날 때부터 간직하는 근본적인 권리를 의미합니다.비관적인 태도만 갖는
티베트에서는 많은 종류의 병들을 ‘사랑과 자비’라는 하나의 약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과 자비라는 특질은 인간 행복의 궁극적 원천이고, 이에 대한 필요성은 우리 존재의 핵심에 놓여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사랑과 자비는 너무나도 오랫동안 사회적 교류의 너무나도 많은 영역에서 빠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대개 가족과 집으로 한정 되었고 공적인 생활에서 이를 실천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거나 심지어 순진하다고 인식되어 왔습니다. 이것은 비극입니다. 제가 보기에 자비의 실천은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의 증상이 아니라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타
오늘날 수많은 전쟁에도 불구하고 인구는 그 어느 때 보다 많습니다. 이것은 사랑과 자비가 세상을 지배해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불쾌한 사건은 뉴스가 되고 자애로운 행위들은 일상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하면서 당연시 되고, 그래서 대체로 무시되는 상황을 설명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오늘날 물질주의적 사회서 ‘돈과 권력’을 갖고 있다면 친구가 많은 것처럼 보여그러나 그들은 결코 당신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어당신의 돈과 권력 없어지면그 사람들을 찾을수 없게돼지금까지 자비의 정신적 혜택에 대해 주로 논의해 왔는데 그것은
의도적으로 생각을 하던, 그렇지 않던 우리 경험의 기저(基底)에는 중대한 질문이 하나 놓여 있습니다.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그 누구도 사랑의 필요성에서 자유롭게 태어난 사람은 없어일부 학파가 시도하고 있지만 인간은 전적으로 물질적이라고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해값어치 있는 물질이라도 해도사랑을 느끼게 할 수는 없어우울증 등 부정적 감정원인은타인에 대한 애정결핍서 비롯저는 이 질문에 대해 깊이 통찰해 보았고 그 생각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것을 접하고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중동 혹은 동남아시아에서의 분쟁, 남북문제 등과 같은 오늘날의 갈등에서 분노는 결코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런 갈등은 서로가 인간임을 이해하는데 실패함으로써 발생합니다. 더 강력한 무력의 사용도, 군비경쟁도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모든 갈등과 다툼, 폭력은개인에서 사회와 국가로확산돼 전쟁까지 일으켜국가간 지도자라고 해도인간적으로 만났을 때는갈등과 다툼 자체가 없어대통령과 같은 지도자가서로 인간임을 자각할때진정성 있는 대화 가능해그것은 순전히 정치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고 전적으로 기술적인 진보와 관련된 것만도 아
불교 심리학은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속하는 존재’라고 오해하고 이에 대해 열정적으로 갈망하고 집착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공격성과 경쟁을 효과적인 도구로 인식하고 이를 사용해서 갈망과 집착의 대상을 추구하고 있다는 결론입니다. 이러한 정신적 태도는 일상에서 쉽게 행동으로 나타나고 당연한 결과로써 호전성을 낳게 됩니다. 그런 과정은 태고적부터 인간의 마음에 작용해 왔고 현대적인 환경에서 그런 경향은 더욱 쉽게 강화 되었습니다. 우리는 미혹과 탐욕 그리고, 공격성이라는 이 독(毒)을 어떻게
아침에 일어나 라디오를 듣거나 신문을 읽으면 우리는 폭력, 범죄, 전쟁, 재난 등 예전과 똑같은 슬픈 뉴스들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선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이러한 보도가 없는 날은 단 하루도 없습니다. 현대에 우리의 소중한 삶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명확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부딪히는 수많은 나쁜 뉴스들은 앞선 세대들은 경험하지 못 했을 것입니다. 공포와 긴장 상황에 관한 소식을 지속적으로 접하다 보면 세심하고 배려심 많은 사람들은 현대 세계의 진보에 대해 심각하게 회의를 품게 됩니다. 부정적인 문제가
법보신문은 2015년 을미년 한 해 동안 격주마다 세계 최고의 현자로 추앙받는 달라이라마의 법문을 게재합니다. 티베트망명정부의 한국지부인 ‘티베트하우스코리아’ 원장이자 동국대 경주캠퍼스 티벳대장경역경원 초빙교수로 활동 중인 남카 스님의 안내를 받아 달라이라마 오피스에 법문 연재를 공식 요청해 연재를 진행하게 됐습니다. 달라이라마가 세계 각국에서 설한 법문을 번역해 싣습니다. 편집자 ‘종교간의 조화, 공존 그리고 세계평화의 유지’를 주제로 한 종교간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먼저 ‘종교자유를 위한 국제협회의 역사와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