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린 뒤라야 송백의 지조를 알 수 있고 어려운 일을 당해봐야 누가 장부인지 알 수 있다. 벌써 구십일의 안거가 지나 해제 날을 맞았습니다. 과연 무엇을 위해 결제를 하고 해제를 합니까?진정으로 마음이란 것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대중들이 각자 한 입씩 생철을 씹었습니다. 얼마나 물러졌는지는 스스로가 잘 알 것입니다. 고인의 말을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혹독한 추위를 지내봐야 어느 것이 군자인지 알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대중들은 분명 마음속에 설산수도의 자세로 정진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해제하는 대중들은 수행자의 지조를 지녔을 것입니다. 생철같은 공부가 조금 물러졌다고 쉬어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순식간에 다시 단단하게 굳어져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일하게 하라는 말을 간곡하게 하는
백은선사는 눈밝은 지도자를 못만나 선관책진을 스승으로 삼고 열심히 공부해서 깨쳤으나 인가해줄 스승이 없었다. 토굴 앞에 흐르는 시냇물을 보고 내가 만일 바로 깨쳤으면 거꾸로 흘러가라고 하자 그 자리에서 물이 거꾸로 흐르는 것을 보고 깨쳤다는 자신을 얻고나서 종횡무진으로 법문을 설하고 다니다가 어떤 거사를 만났는데 거사가 하는 말이 스님이 정말 깨쳤거던 손 하나만 가지고 소리를 내보라고 하자 할말이 없었다. 스님은 그 후 피나는 노력으로 다시 정진을 하던 중 처마밑 아궁이에서 군불을 때게 되었는데 마침 비가 오자 처마밑에 반신은 마르고 처마밖에 반신은 비에 젖는 것을 보고 크게 깨쳤다. 그 후 스님은 척수포대 손하나만 들고 있는 포대화상을 많이 그려서 공부하는 이들을 격려했다고 한다 반신은 마르고 반신은
초조 달마 스님은 동토 중국에 오지 아니하고 이조 혜가는 서천 인도에 가지 아니하였다. 사람 사람이 우뚝한 벽 만길이요, 낱낱이 항상 광명을 현전하도다.대중은 도리어 구경의 입장을 아는가? 만일 알지 못하면 고인의 갈등을 깨달으라. 드노니 취암 스님이 동안거의 종말에 대중에게 말하기를 “한 겨울 동안 형제를 위하여 법문 하였으니, 보아라 취암의 눈썹이 있는가?” 보복 스님이 말하기를 “도적의 마음은 거짓 속임수이니라.” 장경 스님이 말하기를 “나왔다.” 운문 스님이 말하기를 “꼭 가두었다” 하니, 허공은 텅 비었으나 만물이 죽 늘어 있고 바른 눈이 훤출히 밝으나 가는 털도 있지 아니하다.고준한 곳은 조사도 가까이 하지 못하며 평탄한 곳은 사람과 하늘 사람이 다같이 앎이로다. 감히 대중에게 묻노니, 어
가섭에게 아난이 물었습니다. “세존께서 사형에게 금란가사를 전하셨다고 하는데, 그 외에 특별히 따로 무엇을 전하셨습니까?” 그러자 가섭이 말했습니다. “아난이여!” 가섭이 부르는 소리에 아난은 대답했습니다. “예!” 이에 가섭은 다시 말했습니다. “문간에 있는 찰간(刹竿)을 꺾어버려라.” 아난이 가섭에게 ‘세존이 금란가사 이외에 다시 어떤 무엇을 전한 것이 있는가?’라고 한 것이 문처(問處)이고 가섭이 ‘아난이여!’라고 부른 것은 답처(答處)입니다. 그리고 가섭이 ‘아난이여!’하고 불렀고 아난이 ‘예!’하고 대답한 그것으로 설법이 모두 끝난 것입니다. 이심전심의 전법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영산회상에서 석존이 꽃을 들어보이자 가섭이 미소로서 대답하여 그 자리에서 법을 전해 받았습니다. 세존께서
동안거 해제 맞아 108명 자원 동참헌혈증 기증…“보육시설 봉사계획” 조계종 종무원조합 원우회가 2월 21일 동안거 해제를 맞아 헌혈 캠페인을 진행했다. 교육원 류창하 씨가 침대에 누워 헌혈을 하고 있다. 2008년 1월 8일 현재 혈액재고상황은 대량 출혈 및 수술에 사용되는 적혈구 농축액의 경우 1.7일분, 백혈병 환자에게 사용되는 혈소판농축액도 1.4일분에 불과하다. 혈액검사가 끝나지 않아 바로 병원에 공급할 수 없는 양을 제외하면 전국에 적혈구 농축액이 1일분도 안되는 0.7일분에 그치고 있다. 이에 따라 전국 대부분의 혈액원에서 병원의 요청에도 혈액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해 수술도 미뤄지고 있다. 혈액 부족난이 심각한 가운데 조계종 종무원조합 원우회(
“국보 1호인 숭례문 화재 소식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는데, 이제 우리는 또다른 문화재의 피해를 막기 위해 이 일을 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동안거 해제를 맞아 기자들과 마주 앉은 조계총림 송광사 주지 영조〈사진〉 스님은 세간의 관심사를 묻는 질문에 문화재에 대한 국민 인식의 전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보 제56호 국사전을 비롯해 보물 제 263호 하사당, 보물 제302호 약사전, 보물 제303호 영산전 등의 국가지정문화재 뿐만 아니라 50여 동에 달하는 목조 건축물이 있는 송광사 살림을 책임진 영조 스님에게 숭례문 화재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송광사에서도 화재가 발생했으나, 한 스님이 지붕에 올라가 기왓장을 뜯어내고 출동한 소방대
“비구 영조는 머리 숙여 대중 스님들께 사뢰옵니다. 스님네가 불러서 송계(誦戒)하게 되었사오니 혹 잘못이 있더라도 자비로 지시하여 주옵소서.” 2월 21일 오전 8시. 승보종찰 조계총림 송광사를 품에 안은 조계산에 대중을 불러모으는 대종 소리가 울리고 선원을 비롯해 강원·율원과 산 내 암자에서 정진 중이던 대중들이 사자루에 모였다. 이날 새벽 2시, 예불로 2008년 동안거 해제일을 맞은 대중들이 지난 석 달 간의 안거 기간동안 계를 파했거나 또 다른 허물은 없었는지를 대중에게 고하는 포살을 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 것. 이날 포살의 송자(誦子) 역을 맡은 주지 영조 스님이 ‘자비로 허물을 지적해 줄 것’을 청하자 조계총림 선원 수선사와 문수전에서 안거를 난 30여 명의 수좌들을 포함해 150여 명
“수행의 공덕을 쌓으면 자연스럽게 지혜와 덕을 갖추게 되는 등 4가지의 축복이 따라옵니다.” 조계총림 송광사 내 선방에서 3개월 간 산문을 나서지 않고 정진해온 30명의 수좌들과 더불어 수행해온 유나 현묵〈사진〉스님. 스님은 동안거 해제일인 2월 21일 출·재가를 막론하고 수행을 통해 지혜와 덕을 갖출 수 있다며 수행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총림에서 수좌들의 수행을 지도하는 현묵 스님은 “수행을 통해 공덕을 쌓으면 용모가 밝아지고 아름다워지는 것은 물론, 힘과 용기가 생기고, 건강이 좋아지며, 안정의 힘을 얻고 지혜와 덕을 갖출 수 있다”며 수행의 공덕을 설명했다. 현묵 스님은 1971년 출가 후 지리산 칠불사에서 7년간 묵언 수행을 한데 이어 3년간 산문 밖 출입을 금한 채 결제에 들어 용맹정진하는 등
#송광사 방장 보성 스님의 해제 법어를 들은 뒤 산문을 나서는 수좌 스님들.
뜰 앞에는 매화가 마침내 진한 향기를 토하고 있다. 모진 추위를 이겨내고 한바탕 사무친 정진 끝에 찾아온 봄소식에 더욱 환희롭기만 하다. 이제 동안거 해제가 시작되면 제방선원에서는 만행을 떠날 것이다. 『만선동귀집』에서는 이(理)와 사(事)가 서로 의지해야 걸림이 없어 나와 남을 이롭게 할 수 있으며 동체대비가 원만해져서 다함없는 만행을 성취할 수 있다고 했다. 수행의 목적은 실상의 이치를 증득하여 널리 중생들을 위해서 보살행을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이 일하는 속에서 실천 되었던 것은 가만히 앉아 있는 좌선에 집착하여 고요함을 지키면 이기심으로 인해서 자비심이 일어나지 않아 활달한 경계를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을 통해서 이치를 파악함으로써 살아 움직이게 했던 것이다. 오늘날 선원에서는 점점 울
정해년 동안거 기간 전국 94개 선원에서 안거 정진에 들었던 2222명의 조계종 수좌 스님들이 2월 21일 오전 일제히 해제법회를 갖고 산문을 나섰다. 전국 선원에서 자자와 포살을 통해 3개월의 동안거 기간동안 있었던 자신의 허물을 고하고 남의 잘못을 지적하며 탁마의 고삐를 죈 수좌 스님들은 총림의 방장 스님 등 스승들의 경책을 들어 가슴에 아로새기며 산문을 나섰고, 외호대중들은 수좌들의 수행 열기가 산문 밖으로 펴져 세간이 청정해지기를 기원했다. 동안거 해제에는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을 비롯해 각 총림의 방장 스님들이 법어를 통해 정진대중을 경책했다. 동안거 해제 모습을 공개한 조계총림 송광사에서도 방장 보성 스님으로부터 “출가승에게 입제와 해제가 따로 있을 수 없으니, 깨닫지 못했거든 분별심을 헤아
겨울 3개월 동안 동안거 수행정진에 전념해온 조계총림 송광사 대중들이 2월 21일 오전 9시 사자루에서 방장 보성 스님의 해제 법문을 듣고 산문을 나섰다. 조계총림 방장 보성 스님은 해제 법어를 통해 “출가인들은 일대사를 마치기 전에는 결제도 없고 해제도 없다”며 본참공안만을 열심히 참구할 것을 당부했다. 이에 안거 대중들은 보조국사 이후 효봉, 구산 스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선지식을 배출한 이면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목우가풍을 이어 해제철 세상에 나가서도 선방에서와 다르지 않게 여여하게 수행을 이어갈 것을 다짐했다. 조계총림 송광사 해제법회에는 150여 명의 총림 대중이 참여했으며, 해제 법회에 앞서 오전 8시에 열린 포살에도 150여 명의 대중이 참여해 계를 받들어 지킬 것을 다짐했다
태고종 종정 혜초 스님이 동안거 해제를 맞아 법어를 발표했다. 혜초 스님은 “지난 결제기간 동안 부처를 찾겠다며 정진수행을 한 결과 얼마나 부처와 가까워졌느냐”고 되물은 뒤 “마음속에 내재된 집착의 그림자를 지워버리지 않고 성공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한 부처를 찾겠다고 산중에 들어앉아도 시물(施物)을 축내며 허송세월을 한다고 하여 부처가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이어 “불교는 자기수행의 비구도(比丘道)와 중생구원의 보살도(菩薩道)를 실천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며 “비구도는 자각(自覺)을 위한 수행과정이고 보살도는 각타(覺他)를 위한 최종 목적이기 때문에 결제(結制)를 자각을 위한 정진의 기간이라고 한다면 해제(解制)는 각타를 위한 연법도생(演法度生)의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은 2월 21일 동안거 해제에 앞서 미리 발표한 동안거 해제 법어를 통해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의 ‘금란가사’ 문답을 예로 설명하면서 “이제 ‘세존의 금란가사’ 공안을 걸망에 지고 천하를 주유하면서 ‘찰간(刹竿)을 꺾어버리라’는 그 도리까지 함께 참구하고 또 참구하라”고 쉼 없는 정진을 당부했다. 심정섭 기자sjs88@beopbo.com 다음은 조계종 종정 도림법전 대종사 동안거 해제 법어 전문 가섭에게 아난이 물었습니다.“세존께서 사형에게 금란가사를 전하셨다고 하는데, 그 외에 특별히 따로 무엇을 전하셨습니까?”그러자 가섭이 말했습니다.“아난이여!”가섭이 부르는 소리에 아난은 대답했습니다“예!”이에 가섭은 다시 말했습니다.“문간에 있는 찰간(刹竿)을 꺾어버려라.
조계종이 종단차원의 국립공원 내 문화재관람료 징수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한 가운데 법보종찰 해인사가 가야산 해인사 일원이 환경적 개념으로 관리되면서 나타나는 가치관의 혼란을 막기 위해 국립공원에서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해인사(주지 현응)는 1월 15일 가야산 해인사 일원이 국가문화유산지역으로 관리돼야 한다는 취지의 국립공원 해제 요구서를 통해 “환경부의 국립공원정책이 등산객의 대거 유입을 초래하면서 가야산 해인사 일원은 더 이상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지역이 아니라, 체육레저를 목적으로 하는 등산객들을 위한 산으로 전락되면서 국가지정문화재인 산이 무분별하게 훼손되고 있다”고 국립공원 해제 요구 이유를 밝혔다. 해인사는 또 “가야산의 대다수 지역이 해인사 소유토지로서 국
법보종찰 해인사가 가야산 해인사 일원이 환경적 개념으로 관리되면서 나타나는 가치관의 혼란을 막기 위해 현재의 국립공원 해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해인사(주지 현응)는 1월 15일 가야산 해인사 일원이 국가문화유산지역으로 관리돼야 한다는 취지의 국립공원 해제 요구서를 통해 “환경부의 국립공원정책이 등산객의 대거 유입을 초래하면서 가야산해인사 일원은 더 이상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지역이 아니라 체육레저를 목적으로 하는 등산객들을 위한 산으로 전락되면서 국가지정문화재인 산이 무분별하게 훼손되고 있다”고 국립공원 해제 요구 배경을 밝혔다. 해인사는 또 “가야산의 대다수 지역이 해인사 소유토지로서 국가가 손실보상이나 이용료 없이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무상 점유하여 사용하면서 일반에 개방하는 일은 위헌적 요
1월 15일은 성도재일이다. 이날은 부처님이 왕궁에서 누렸던 부귀영화를 모두 버리고 설산으로 들어가 6년간의 치열한 수행 끝에 마침내 보리수나무 아래서 정각을 이룬 날이다. 마치 예수가 부활을 통해 신의 아들임을 입증했듯, 인간 싯다르타는 완전한 무상각을 이뤄 붓다의 길을 제시한 것이다. 경전에서는 이날의 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오랜 기간 고행으로 극도로 쇠약하신 몸을 이끌고 ‘네란자라’ 강을 이르러 목욕한신 뒤 ‘수자타’ 소녀로부터 유미죽을 얻어 드시고, 붓다가야 보리수 아래 금강보좌에 앉으시면서 ‘내 진정한 깨달음에 이르기 전에는 결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결심하고 깊은 선정에 드신 지 꼭 7일째에 새벽별을 보고 위없는 깨달음을 얻어, 위대하신 성자 붓다가 되었다.”
일타 스님 소개로효봉 스님께 출가 340일 동안 17만배 회향50년간 끝없는 기도 정진 손수 빨래하며양말도 꿰매 신어 시주 열심히 해도 번뇌 여의어야 ‘극락’ 1959년 7월 14일 대구 팔공산 동화사. 서울에서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가 노스님과 마주하고 앉아있었다. 젊은이에게 그 노스님은 거대한 산맥이었다. 그가 한국인 최초의 판사라는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8년간 눕지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에 오후불식 등 치열한 정진으로 큰 깨달음을 이루고 출가 12년 만에 송광사 조실에 추대됐던 선가(禪家)의 ‘전설’ 효봉 스님이었던 까닭이다. 그는 효봉 스님에게 출가를 하러 왔다고 말씀드렸다. 스님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네 얼굴은 중 상호인데 지금까지 왜 속가에 있었느냐?”라며 허허
제 13장 회향 흰 구름을 무심히 바라보던 혜국이 ‘여기를 보십시오’ 하고는 마루 판자를 가리켰다. 그러나 풀 먹인 잿빛 가사처럼 깔깔한 마루 판자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오후의 부드러운 햇살 한 자락이 내려앉아 있을 뿐, 마루 판자는 얼룩 하나 없이 말끔했다. “스님, 무엇을 보라는 말입니까.”“전 이 마루 판자를 볼 때마다 소름이 돋곤 합니다.” 불현듯 혜국은 마루 판자를 통해서 무엇이 전광석화처럼 떠오른 듯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요사 저쪽에서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보살이 젊은 스님의 안내를 받아 걸어오고 있었다. 보살을 본 혜국은 토방으로 내려섰다. 잘 아는 보살이 분명했다.“시님, 죄송합니더. 고속도로에서 농민들이 길을 막고 데모를 하는 바람에 늦었십니더.”“보살님, 저도 방금 왔습
중국 청량 징관 국사가 지은 『화엄경 청량소초』를 완역하겠다는 발원으로 하루 20시간이 넘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번역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수진 스님. 스님은 “이 일을 끝마치는 것이 부처님과 스승의 가르침에 보답하는 길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노을을 좋아하는 소년이 있었다. 해가 붉게 대지를 물들일 때면 말할 수 없는 기분에 들뜨던 소년의 가슴에는 어느 때부터인가 출가 수행자의 발원이 함께 물들기 시작했다. 낙동강 하구, 아름다운 노을을 만날 수 있는 부산 사하구 괴정동의 승학산 해인정사. 이곳에는 노을을 좋아했던 그 소년이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강백이 되어 『화엄경』의 큰 빛을 밝히고 있다. 해인사 강주를 지낸 수진 스님이다. 붉게 타오르던 노을이 지고 승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