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앞둔 집권세력은 ‘공권력이 무력화되는’ 상황을 방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종교지도자들의 격한 반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성역 없는 공권력 집행’을 강제적으로 밀어붙이기도 어려운 딜레마에 처한다. 이런 딜레마는 정치인들로 하여금 성역 침해 시비를 불러일으킬 만한 행동을 회피하도록 유도했다. 정치인들의 이런 형태가 ‘성역이 점점 공고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내년 12월에는 새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 있다. 강인철의 말 그대로, 나는 이번에도 여야 정당이 똑같이 우리나라 ‘종교의 성역’을 더욱 공고하게 하고 ‘성역 정치’를 활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 ‘목적을 위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왜곡되고 있는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이란 낱말이 주는 이미지 그대로,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냉혹한 인물’로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농담과 짓궂은 장난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프란체스코 수도회 총회에 피렌체 대사로 파견되었을 때에는 유숙하던 집의 주인과 수도사들을 골려먹으려고 다른 친구에게 부탁해 특별 전령을 자꾸 보내게 해서 사람들이 더 좋은 대접을 하게 하려는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겼던 적도 있다.전령이 “편지를 가지고
우리 사회에서 학벌은 권력이자 신분이며 사회적 관계를 뜻한다. 좋은 학벌은 기득권 세력에 편입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며, 개인에게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긍심을 고양시켜주는 원천이다. 반대로 좋지 않은 학벌은 능력과 관계없이 엄청난 불이익, 차별, 소외를 경험하게 하며, 개인을 열등감과 패배의식에 젖게 하는 심리적 장치가 된다. 이처럼 학벌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소수의 학벌취득자들이 사회적 권력과 재화, 명예를 독점하게 됨으로써 필연적으로 사회적 갈등이 증폭된다.이렇게 심각한 문제이지만 비판적인 지식인들조차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
이번 4·13 총선에서는 ‘기독자유당’이 아슬아슬하게 국회 원내 진입에 실패한 것이 눈에 뜨였다. 여러 종교가 대체로 평화를 유지해온 우리나라에서 특정 종교에 기반을 둔 정당 출현이 옳은지 그른지 여부를 떠나서, 이 정당은 ‘이슬람 배척’과 ‘동성애 척결’ 등 소수자에 대한 배타성을 정책으로 내놓았다. 게다가 국내의 주요 대형교회 담임목사와 교회연합단체 대표들이 이 정당 지지를 공개 선언하고 선거운동까지 하면서 ‘정교분리’ 원칙을 정면 위배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도 앞으로 새로운 갈등 상황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을 하게 해준다
1141년 중앙아시아 사마르칸트 북방의 카타완 평원에서, 이슬람 세력의 맹주 셀주크 터키와 거란족 야율대석이 세운 카라키타이 왕국 사이에 전투가 벌어져 카라키타이가 승리하였다. 이 소식은 무슬림 세계를 놀라게 했을 뿐 아니라 로마가톨릭과 서유럽 세계에서는 야율대석이 기독교를 신봉하는 군주인 ‘사제왕 요한’이라는 기대와 희망을 품게 해주었다.이런 소문이 교황에게까지 들어가게 된 것이 단순히 서구인들의 무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을 전달한 사람의 의도적인 과장이나 그것을 듣는 사람의 희망적인 기대가 모두 작용했다. 저자 김호동은 이것
2006년 1월 중순의 어느 일요일, 미국 LA에 거주하는 유대계의 젊은 변호사 랜돌 쇤베르크는 밤늦게 집에 돌아와 휴대전화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 중에 그의 ‘승소(勝訴)’를 전해온 오스트리아 정부의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비엔나의 후베르투스 체르닌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가족과 함께 쉰 살 생일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던 그는 이 승소 소식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무엇이 이들을 그렇게 기쁘게 했던가. 세상에 ‘황금 여인’으로 알려진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화 반환을 위한 오랜 소송 끝에 ‘이 그림은 원 소유자의 적법한 상속자
현대사에 숱한 테러가 있었지만 9·11테러는 ‘현대 사회의 취약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단순한 종이칼로 무장한 일련의 테러리스트들이 ‘세계 군비의 절반을 지출하고, 최첨단 감시 체계와 가공할 무기 체계로 포장된 미국의 불가침성’이라는 신화를 순식간에 무너뜨렸다.실상 ‘9·11’로 대변되는 새로운 테러 공격의 가능성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예상하고 있었다. 옛 소련이 무너지고 동서 냉전이 끝나면서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등장한 뒤 국가 간 갈등과 분쟁·전쟁은 사라져간 반면에, 세계 곳곳에서 종족과 종교 갈등이 폭
201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레이마 그보위(Leymah Gbpwee)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손만 뻗으면 온 세상이 다 내 것이 될 듯했다고 여기던 평범한 아프리카 가정의 꿈 많은 소녀였지만 어느 날 그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라이베리아는 1822년 미국의 해방 노예와 자유민 흑인들을 이주시켜 만든 식민지였다. 1847년 미국에서 독립하여 ‘자유의 나라’라는 뜻을 가진 최초의 흑인 공화국이 되었지만, 독립부터 큰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 나라에서는 백인 혼혈로 피부색이 밝은 ‘아메리코 라이베리언’들이 정·재계의 엘리트층이
해방 70년이 지났는데도 ‘친일 잔재가 청산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거세다. 이런 현실을 염려하고 각성을 촉구할 적마다 우리는 흔히 프랑스를 과거사 청산의 모범 사례로 들곤 한다.우리의 경우 “무장 세력이 전혀 개입하지 못한 상태에서 해방을 맞이한 반면, 프랑스는 자국 레지스탕스가 해방 전투에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기여를” 하였으며, 우리는 해방 뒤 “미군정의 실시와 이후 친일파에 기반을 둔 이승만 정권”을 맞이한 반면 프랑스는 해방과 동시에 드골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그 정부에 의한 대독협력자 숙청이 가능했기에 프랑스가 우리보다 이
물리학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이름은 알 것이다. 전문 분야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내놓기도 했지만, 삶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힘들 정도의 장애를 안고서도 그와 같은 인간 승리를 이룩했다는 데 대한 놀라움이 더해져서 그를 더욱 유명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주연으로 수십 년 동안 세상에 보여준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모노드라마 무대 뒤편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과 눈물을 흘린 가족, 특히 배우자의 희생은 가려져 있었다.이 책은 25년 동안 그의 곁을 지키며 고유명사 ‘스티븐 호킹’이 일반명사
사마천(司馬遷)의 ‘사기’는 52만6500자에 이르는 방대한 책으로, 고대에서부터 역사가 자신의 시대에까지 기술한 세계 최초의 통사일 것이다. ‘난세에 답하다’는 수십 년째 사마천과 ‘사기’에 푹 빠져서 연구하고, 강의하고, 그 현장을 찾아다니는 데에 모든 것을 바쳐온 저자가 ‘김영수의 사기와 21세기’라는 제목으로 실시한 방송 특강을 정리한 내용이다.저자에 따르면 “사마천은 보통 사람은 자기보다 열배의 부자에 대해서는 욕을 하고, 백배가 되면 무서워하고, 천배가 되면 그 사람 일을 해주고, 만배가 되면 그 사람의 노예가 된다”고
이 땅에서 권력의 무능과 부패에 저항하는 ‘갑오농민전쟁’과 그에 이은 ‘청일전쟁’으로 백성들이 고통 받던 1894년, ‘자유 · 평등 · 박애’를 기치로 하고 있던 프랑스공화국에서는 ‘반(反)유대주의’의 광풍이 유대계 육군 장교 드레퓌스 대위에게 간첩이라는 올가미를 씌우는 군사재판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거친 바람 앞에서 거의 모든 언론이 침묵하거나 오히려 선동하며 부채질을 하고 있었고, 가톨릭교회는 유대인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에밀 졸라는 이미 ‘목로주점’ 등으로 베스트셀러 작가의 명성을 누리고 있었지만 이 사태를 묵
포악한 군주가 숱하게 많았던 중국, 그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수양제(隋煬帝)는 천성이 포악했을까?저자가 보기에 수양제는 “아주 평범하면서도 동시에 여러 가지 약점을 지닌 인간이었다. 그를 둘러싼 시대 환경은 사회 자체에 아무런 이상도 존재하지 않았고, 모든 사람이 각자 다투면서 권력을 숭배하고 추구하며 남용하는 세상이었다. 이런 까닭에 이 시기에는 음란하고 포학한 천자가 수양제 외에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등장했다. 말하자면 난폭한 천자의 예사스런 등장이 시대 풍조였다. 수양제는 그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했다. 실로 무서운 세
각각 스무 살, 열일곱 살이었던 강(康) 도령과 선(鮮) 아가씨. 1636년 병자호란을 맞아 이 땅에 살았던 이들은 조선을 유린한 만주족에게 포로가 되어 혹독한 겨울 추위 속에 세 달을 걸어 선양(瀋陽)으로 끌려간다. 포로들은 끌려가는 도중 열에 여덟은 맞아 죽고, 강간당해 죽고, 얼어 죽고, 병들어 죽고, 압록강에 뛰어들어 죽었다. 당시 조선 인구의 10%가 포로로 잡혀갔다. 이 책 ‘화냥년― 역사소설 병자호란’은, ‘돌아오게 할 수도 있었지만 돌아오게 하지 않아서 그렇게 죽어가고 또 그렇게 살아남은’ 포로들과 ‘이들을 버렸던’
“미국은 얼핏 보면 에너지와 활력이 넘치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 모리스 버만의 이 말이 아니더라도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미국을 ‘기회와 희망의 땅’으로 여기고, 밀입국을 해서라도 그곳에 가서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미국은 이미 “기업들의 의도와 생각대로 움직이는 기업 상상력의 산물”이 되었고, 겉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활력은 “상품의 구매와 소유 이상의 가치는 가지지 않는데”, 저자는 이것이 “문화적 쇠퇴”의 징후라고 본다.저자는 ‘문명이 몰락하게 되는 네 가지 중요한 요인’- 즉, 사회경제적 불평등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소장품은 ‘삼국~조선말~근대’에 이르기까지 전 시대에 걸쳐 있으며, 서화는 물론 조각과 공예 등 거의 모든 미술 분야를 아우른다. 국보 12건, 보물 10건 등 22건의 국가 지정문화재와 뜰에 전시된 석탑, 부도, 불상 등을 소장하고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곳의 소장품만으로 한국미술사를 서술할 수 있으며, 이를 제외한 한국회화사는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한다.이 미술관의 설립자이자 조선 제일의 수장가 간송 전형필(1906-1962)의 삶과 문화재 수집 이야기를 추적한 이 책을 읽고 나면, 마치 다큐 영화
일본의 아시아사 연구를 세계 학계에 빛나게 한 이른바 ‘교토(京都)학파’의 대표였던 미야자키 이치사다, 그의 글을 좋아하여 국내에 번역 소개된 것은 거의 다 사서 읽는다.역사를 깊이 공부하지 않은 일반인들도 청(淸)나라 강희(康熙)제와 건륭(乾隆)제 시절에 중국이 정치·군사·문화 부문에서 세계 최강이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널리 이름이 알려진 아버지 강희와 아들 건륭 사이의 옹정(雍正)제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있다. 왜 그랬을까.저자는 말한다. “강희제는 인자하고 도량이 넓은 군주라는 좋은 평판을 얻었다. 그러나
만주의 작은 집단에서 시작돼 중국 역사상 가장 방대하게 영토를 확장했던 청(淸) 제국 형성의 역사는 “서로 다른 유전 형질을 가지는 세포조직이 하나의 생명체 안에 공존하는 유전자 혼재 생물”인 “‘키메라’ 생명체가 잉태되어 태어나고 자라나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고 착안하고 이것을 밝혀나간 것이 이 책이다.먼저 관심을 갖게 되는 대목은,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의 흥기가 서양 제국의 아메리카 대륙 침략과 약탈의 부산물로 유럽과 아시아 대륙에 유입되기 시작한 은(銀)을 매개로 “지구적 규모의 교역 망(網)이 형성”되는 과정과 밀접한 관
최근 중국이 미국에 맞서는 초강대국으로 부상하고, 과거 오랜 동안 미국의 우산 아래에 머물던 아시아와 중남미 여러 나라들이 미국과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띄는데다가 미국 내부에서도 ‘몰락의 징후’가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는데도, 미국 정치와 경제, 문화계 주류에서는 애써 이런 기류를 무시한다. 이것이 ‘오만한 제국’의 속성이다.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흑인은 인간 이하의 것들이다.’ 몇 백 년 전, 서양인들의 머릿속에 파고든 이런 생각은 4천만 명이나 되는 흑인의 목숨을 앗아간 대서양의 노예무역을 가능케 했다. 흑
조선시대 양반 부부들도 끈끈한 사랑을 나누며 살았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먼저 조선 유학자를 대표하는 퇴계를 보자. 오늘날 ‘퇴계 이황’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영남의 보수 집단을 연상하기 쉽지만, 막상 퇴계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만큼 다정한 사람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그는 죽음 전까지 어린 손자에게 편지를 썼던 자상한 할아버지였고, “낮에 의관을 차리고 제자들을 가르쳤지만, 밤에는 부인에게 꼭 토끼와 같이 굴었다. 그래서 ‘낮 퇴계 밤 토끼’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으며, 아내가 실수를 할 때마다 그 순간을 재치 있게 넘겨 심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