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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종교 성역화 강화될수록 대중들의 투명성 요구도 커져[끝]

기자명 이병두

‘민주화와 종교: 상충하는 경향들’ / 강인철 지음 / 한신대 출판부

▲ ‘민주화와 종교: 상충하는 경향들’
“선거를 앞둔 집권세력은 ‘공권력이 무력화되는’ 상황을 방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종교지도자들의 격한 반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성역 없는 공권력 집행’을 강제적으로 밀어붙이기도 어려운 딜레마에 처한다. 이런 딜레마는 정치인들로 하여금 성역 침해 시비를 불러일으킬 만한 행동을 회피하도록 유도했다. 정치인들의 이런 형태가 ‘성역이 점점 공고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내년 12월에는 새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 있다. 강인철의 말 그대로, 나는 이번에도 여야 정당이 똑같이 우리나라 ‘종교의 성역’을 더욱 공고하게 하고 ‘성역 정치’를 활성화해줄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성역의 공고화 추세는 국가권력의 성역 침해 빈도를 더욱 감소시켜, 역설적으로 종교 공간 침해를 둘러싼 종교-국가 갈등의 약화, 즉 ‘성역정치의 퇴조’를 낳는 경향이 있다. 동시에 성역의 공고화 추세는 성역 고유의 ‘종교적’ 기능을 마비시킬 정도로 약자들이 쇄도하여 종교 공간이 포화되는 현상, 중재가 아예 불가능할 정도로 심하게 상충하는 집단이익들이 성역을 무대로 분출되는 현상을 조장한다. 바로 이런 상황이 몰려드는 이들을 내칠 수도 수용할 수도 없는 ‘종교인들의 딜레마’를 가중시킨다. 종교지도자들의 딜레마가 심해질수록, ‘성역의 자발적 해체’를 향한 구조적인 압력 또한 증가된다. 이처럼 성역은 국가권력의 강제에 떠밀려서가 아니라, 순전히 종교지도자들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해체 수순으로 돌입할 수 있다.

실상 2015년 연말 누군가 ‘뜨거운 불덩어리’라고 했던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의 조계사 피신과 그 대응을 살펴보면 ‘종교인들의 딜레마’와 ‘성역의 자발적 해체’라는 말이 더 실감날 것이지만, 이것은 1994년 이후 명동성당이 먼저 보여준 바 있어서 크게 놀랄 일도 아니다.

어쨌든 선거정치가 활성화될수록 거대 종교나 교단의 지도자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는 정치인들의 접근은 더욱 빈번해지고 강해진다. 종교지도자들 편에서도 정치인들이 다급해지는 선거 국면을 숙원사업 해결 등 교단의 제도적 이익을 증진시킬 절호의 기회로 이용하려는 욕구가 커지기 쉽다. 따라서 주요 선거를 전후하여 종교와 정치 사이에 새로운 형태의 정교유착이 형성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국무총리와 여야당 대표 등 정치인들이 3대 종교계의 대표를 예방하는 것도 실제로는 ‘표’를 의식한 정치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일반적인 사항뿐 아니라 이 책에서는 우리가 잘 모르고 있던 사실도 밝혀준다. 노태우 정권 시절 추진된 분당·평촌 등 수도권 5대 신도시에서 개신교·천주교 신자의 비율이 예외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원인은 신도시의 종교부지 확보에 있었다는 것이다. 불교는 5대 신도시 전체에서 12곳의 종교 부지를 확보하는 데 그쳤고, 그것도 산본에 6곳, 일산에서 3곳, 중동에서 2곳, 분당에서 1곳, 평촌에선 전무(全無)했던 것이다.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1990년대 이후 불교계가 주도한 종교차별 문제 쟁점화가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분석이다. 밝은 면은 불교계의 문제제기가 헌법에 규정된 정교분리 정신을 증진하는 데 기여하여 결국 종교의 자유와 종교 간 평화도 더욱 잘 보호될 것이라는 점이다. 어두운 면은 불교계가 차별이라고 느끼는 사안들로 국한하면서 우리 사회의 진정한 종교적 약자들이 실제로 겪고 있는 부당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에 눈감는 것이라는 점에서, 불교의 종교차별 쟁점화는 새로운 형태의 종교차별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종교적 차별들을 정당화 내지 고착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점차 사회적 위상이 높아져 가고 있는 불교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여러 가지 숙제 중에 이것이 가장 풀기 어려운 것이 될 수도 있다.

이병두 전 문화체육관광부 종무관

 [1350호 / 2016년 7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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