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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몽골인·티베트인 공존했던[br]‘키메라 제국’ 청나라의 흥망성쇠

기자명 이병두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 / 구범진 지음 / 민음사

▲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
만주의 작은 집단에서 시작돼 중국 역사상 가장 방대하게 영토를 확장했던 청(淸) 제국 형성의 역사는 “서로 다른 유전 형질을 가지는 세포조직이 하나의 생명체 안에 공존하는 유전자 혼재 생물”인 “‘키메라’ 생명체가 잉태되어 태어나고 자라나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고 착안하고 이것을 밝혀나간 것이 이 책이다.

먼저 관심을 갖게 되는 대목은,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의 흥기가 서양 제국의 아메리카 대륙 침략과 약탈의 부산물로 유럽과 아시아 대륙에 유입되기 시작한 은(銀)을 매개로 “지구적 규모의 교역 망(網)이 형성”되는 과정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는 것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 쟁탈 경쟁과 로마가톨릭의 선교 욕망이 합치되어 일어난 아메리카 대륙 침탈이 지구 반대편 중국의 동북부에 큰 바람을 일으키고, 그 바람이 태풍으로 바뀌어 당시 조선을 비롯한 동아시아 전반에 소용돌이를 일으켰던 것이다.

중국 지배를 100년도 채우지 못하고 초원으로 쫓겨난 몽골 제국의 실패와 대비되는 청나라의 성공에 대하여, 이제까지 많은 사람이 “중국의 제도와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한인을 차별하지 않는 적극적인 한화 정책 덕분에 성공적인 통치가 가능하였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한화정책으로 “만주족은 민족 정체성을 상실하여 자신들의 언어마저 잊어버리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19세기의 만주족에게 만주어는 외국어와 다름없는 언어가 되었고, 대부분의 만주족은 그들의 조상과 달리 기마와 활쏘기에 서툴렀으며, 한인들의 세련되고 화려한 삶을 좇게 되었다. 그럼에도 만주족은 끝까지 자신들과 한인을 구별하는 정체성을 유지”하였으니, 이를 가능하게 만든 것이 바로 팔기 제도였다.

몽골을 우호세력으로 하고 조선을 항복시킨 뒤 중국 본토로 들어가 명(明)나라를 이어 중화제국이 된 청나라, 그러나 그때 만주 팔기 인구는 명나라 인구의 1%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한인과 한데 섞여 살았다면” 팔기 구성원은 얼마 못가서 “문화 수준도 훨씬 높은 데다 숫자마저 압도적이었던 한인에게 동화”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이 위험성을 예방하고자 “팔기 구성원을 피정복민인 한인과 섞여 살지 않도록” 하는 철저한 격리정책을 통하여 안전망을 구축하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 그물이 찢어지게 되고 결국 안전망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청 제국은 이와 같은 격리 정책과 함께 “한인은 한인의 법률·제도, 즉 명나라의 법률·제도로 다스리고 기인은 팔기의 법률·제도로,” 그리고 “몽골인은 몽골의 법률·제도, 티베트인은 티베트의 법률·제도, 타림 분지의 위구르 무슬림은 이슬람의 법률·제도를 적용”하여 관리하는 본속주의(本俗主義)를 써서 방대한 지역을 다스리는 고도의 통치술을 구사하여 나름의 효과를 거두었다.

이 책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대목은 청이 조선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예우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중국의 역사지리학자인 담기양(譚其驤)이 “청나라가 통일을 완성한 이후, 제국주의가 중국을 침입하기 이전의 중국 판도를 가지고 역사 시기의 중국 범위로 삼을 수 있다”는 발언을 예사롭게 듣고 넘길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1719년에 제작된 ‘청내부일통여지비도(淸內府一統輿地秘圖)’에서 본래 명의 영토였던 지역의 지명은 한자로 표기된 반면 요동(遼東)과 조선의 지명은 만주문자로 표기되어 있다고 한다. 이 지도를 통해 “청나라가 자신들의 ‘세계’를 둘로 나눌 경우 조선을 대명(大明) 공간의 바깥에 위치시켰음”을 확인할 수 있으니, 이는 중국이 G2 강대국으로 등장하여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패권을 더욱 강화하면서 앞으로 더욱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은 우리의 대중 관계 설정에도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병두 대한불교진흥원 사무국장

[1313호 / 2015년 10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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