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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 나는 내전 끝내고[br]평화 되찾게 한 여인 이야기

기자명 이병두

‘평화는 스스로 오지 않는다’ / 레이마 그보위·캐롤 미더스 공저 / 정미나 옮김 / 비전과 리더십

▲ '평화는 스스로 오지 않는다'
201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레이마 그보위(Leymah Gbpwee)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손만 뻗으면 온 세상이 다 내 것이 될 듯했다고 여기던 평범한 아프리카 가정의 꿈 많은 소녀였지만 어느 날 그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라이베리아는 1822년 미국의 해방 노예와 자유민 흑인들을 이주시켜 만든 식민지였다. 1847년 미국에서 독립하여 ‘자유의 나라’라는 뜻을 가진 최초의 흑인 공화국이 되었지만, 독립부터 큰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 나라에서는 백인 혼혈로 피부색이 밝은 ‘아메리코 라이베리언’들이 정·재계의 엘리트층이 되어 아프리카 토착 원주민들을 멸시·천대·착취했고, 이런 식으로 150여년 가까이 이어지는 동안 불평등과 착취에 맞서 자신들의 것을 되찾으려는 원주민들의 열망이 불화의 불꽃으로 피어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1980년 토착민 출신 사무엘 도가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토착 부족들에게 일시 희망을 주기도 하였지만 자기 종족이 모든 것을 독점하고 다른 종족을 탄압하였다.

1990년 2월 레이마가 ‘생애 가장 행복했던’ 졸업 축하 잔치가 열리던 날 찰스 테일러가 이끄는 무장반군이 ‘사무엘 도 정권 타도’를 명분으로 코트디부아르 국경을 넘어 쳐들어오면서 14년 동안 이어질 라이베리아 내전이 시작되고 말았다. 그 뒤로 정부군과 여러 그룹의 반란군들이 복잡하게 얽힌 내전과 짧은 평화협상이 되풀이되는 동안 나라 전체가 아수라장이었다. 피난길에서는 ‘무자비한 전투원’으로 바뀐 고등학교 시절 친구를 만나기도 하였다.

피난을 떠났다가 돌아오기를 몇 차례, 이젠 정부군과 반군뿐 아니라 가족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부모님 그리고 “어떻게 이 모든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실 수 있단 말인가?”하며 하늘을 원망하게까지 되었다.

이 어려움 속에서 남자를 잘못 만나 폭력에 시달리고 아이들을 줄줄이 낳으며 고통을 겪는 레이마를 문득 깨닫게 한 것은, 그보다 훨씬 더 힘든 상황에 놓인 시에라리온에서 피난 온 여자들이었다. 피난길에서 군인 칼에 한쪽 가슴이 베어져 없어졌다는 이에게 “어떻게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고 묻자 그녀는 “그자들이 승리하게 내버려 둬요?”라며 오히려 이상하게 여겼다.

그녀는 자신의 비극이 단지 개인에게서 그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국가적인 문제이자 정치적인 문제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참 지난 뒤 레이마가 여성들을 규합해 ‘평화 건설’ 운동에 나서고 마침내 성공시키는 긴 여정을 나설 수 있었던 데에는 이때 이들에게서 받은 첫 ‘깨침’이 중요한 계기가 된다.

레이마 개인이 겪은 고통의 이야기를 읽는 일도 힘들다. 그러나 생지옥과 다름없던 시절에도 어려운 고비마다 도움을 주는 천사 같은 이들 덕분으로 힘을 내게 되고, 조국에 평화를 찾는 ‘평화 건설자(peace-builder)’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녀에게 평화 건설이란 대립 세력의 중간에 개입하여 싸움을 종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쟁 피해자들이 인간애를 되찾아 다시금 사회의 생산적인 일원이 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 역할을 맡게 된 것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으로 여겼다.

종교와 종족을 넘어서 여성들을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규합하여 흰옷을 입고 연좌시위를 벌였고, 가나에서 열린 평화협상 장을 점거한 채 평화를 줄 때까지 물러나지 않겠다며 버티기도 하여 마침내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종식시켰으며, 독재자 찰스 테일러를 퇴진시켰다. 선거에서 아프리카 최초로 여성인 엘렌 설리프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켜 라이베리아를 이름 그대로 자유의 땅으로 바꾸고 있다.

그는 “우리와 같은 여자들이 있는 한 결국에는 폭정도 두 손 들고 물러날 것이며, 언제나 선이 악을 이길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병두 전 문화체육관광부 종무관

[1334호 / 2016년 3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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