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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여성은 자기 역할 분명[br]상호 존중하며 진한 부부애 보여

기자명 이병두

‘조선의 부부에게 사랑법을 묻다’ / 정창권 지음 / 푸른역사

조선시대 양반 부부들도 끈끈한 사랑을 나누며 살았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먼저 조선 유학자를 대표하는 퇴계를 보자. 오늘날 ‘퇴계 이황’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영남의 보수 집단을 연상하기 쉽지만, 막상 퇴계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만큼 다정한 사람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는 죽음 전까지 어린 손자에게 편지를 썼던 자상한 할아버지였고, “낮에 의관을 차리고 제자들을 가르쳤지만, 밤에는 부인에게 꼭 토끼와 같이 굴었다. 그래서 ‘낮 퇴계 밤 토끼’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으며, 아내가 실수를 할 때마다 그 순간을 재치 있게 넘겨 심지어 형수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부부 사이의 애정 표현도 요즈음 젊은 부부에 뒤지지 않았다.

한편 이 책의 저자는, 조선의 여성들은 “자신의 역할이 분명했고, 그래서 존경을 받았던” 존재였다고 말한다. “당시 집안은 오늘날 웬만한 중소기업과 맞먹는 규모였고, 집안을 다스리는 것은 곧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며, 따라서 당시 “안주인의 역할은 오늘날 가정주부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방대”한데다가 “남성들은 근친(부모를 뵈러가는 일)이나 수학, 관직, 유배 등의 이유로 자주 집을 비우고 떠돌아다녔기 때문에 실질적으론 여성들이 안팎의 집안일을 거의 다 주관”했고, “하는 일이 많은 만큼 존경도 받았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몇 해 전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신 적도 있지만, 조선시대 묘지에서 1586년 세상을 먼저 떠난 남편에게 부인이 “둘이 머리가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왜 나를 두고 떠나느냐’며 절절한 사랑을 담아 쓴 ‘원이 엄마’의 편지에서도 확인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조선 중기까지는 매 맞는 여자들에 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아내를 무서워한다거나 매 맞는 남자들에 대한 기록은 쉽게 찾아볼 수” 있었으며, “남녀가 거의 대등하게 살았기 때문에 여자들도 부부싸움을 하면 물러서지 않고 팽팽히 맞섰”지만 “조선 후기가 되면 못난 남자들이 힘없는 아내들을 거침없이 때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무력한 모습을 보인 지배층 남성들의 콤플렉스가 드러난 것이리라.

어쨌든 떠나간 아내를 그리며 이광사·심노숭이 쓴 애절한 사부(思婦)의 시나, 제주 유배 중 아내의 죽음을 전해 듣고 추사가 죽은 아내에게 “내세에는 서로 바꿔 태어나/ 천 리 밖에서 나는 죽고 그대는 살아서/ 나의 이 서러운 마음을 그대도 알게 했으면”이라고 쓴 도망시(悼亡詩)를 보면, 오늘날의 젊은 부부들보다도 더 짙은 부부간의 사랑을 엿볼 수 있다.

그런가하면 이빙허각의 남편 서유본은 자신보다 여러 면에서 뛰어났던 아내를 예우하였고, “아내가 여러 책에서 뽑아 모아서 각각 항목별로” 정리한 내용을 엮어 ‘규합총서’라는 책을 만들어주는 애정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이에 뒤질세라 이빙허각도 66세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 자신보다 앞서 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리며 “태산과 홍해처럼 베풀고/ 서로 의를 따라 살았네/ 우리 혼인할 때의 사랑을 생각하니/ 세상 그 어떤 것도 비할 바가 없었네/ 평생을 짝을 이루어 아름다운 부부의 연을 맺은 지/ 50년이라네/ 내가 받은 사랑의 기쁨을 잊을 수가 없으니/ 지기(知己)의 은혜에 보답해야만 하리”라면서 절명사(絶命詞)를 지어 애틋한 사랑을 드러내었다.

전북 남원의 하욱과 그의 아내 여류시인 김삼의당은 신혼 첫날 밤 “부부의 만남에서 백성이 생겨나고/ 군자도 여기에서 시작된다 하오/ 공경하고 순종함이 아내의 도리/ 몸이 다하도록 낭군의 뜻 어기지 말기를” “우리 둘이 만났으니 광한루 신선/ 이 밤의 만남은 옛 인연을 이음이라/ 배필은 본디 하늘의 정함이니/ 세상의 중매란 다 부질없네”라고 서로 시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다짐하기도 하였다. 

이병두 대한불교진흥원 사무국장

[1309호 / 2015년 9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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