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염불만일회 불국사 성지대회에 참석한 염불행자들이 석가탑·다보탑에서 염불대동제를 마치고 남북통일과 불국정토 건설을 다짐하고 있다. “저희들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매일 아미타불을 부르며 염불만일을 기필코 이루어 이 땅에 사는 모든 산 생명들이 부처님의 자비 안에서 밝은 깨달음을 성취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오늘 우리의 기원으로 이 땅에 불국정토를 건설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난 7월 30일∼8월 1일까지 제6차 전국염불만일회 9회년도 경주 토함산 불국사 성지대회에 참석한 300여 염불행자들은 3일 동안 매일 나무아미타불 1만 독송을 하며 이 땅의 불국정토화를 발원했다. 폭염 속 염불결사 의지 불태워 지난 98년 8월 5일 ‘힘차게 신나게 멋있게 염
선용 스님은 한국불교에서 아직은 생경하기만 한 정토선 수행을 이끌고 있다. “과거 역대의 수많은 조사 스님과 선지식들은 염불수행과 자력(화두)수행을 비교해서 말씀하실 때, 자력수행은 난행문(難行門)이요, 염불수행은 이행문(易行門)이라고 했습니다. 즉 자력수행은 아주 수행하기 어려운 법문이요, 염불수행은 아주 수행하기 쉬운 법문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자력수행은 마치 파도가 험난한 생사의 바다(生死苦海)를 스스로의 힘만으로 헤엄쳐 건너려 함과 같아서 실로 위험하기 짝이 없고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반면, 염불수행은 마치 불보살님의 배(般若龍船)를 타고서 바다를 건너는 것과 같아서 참으로 안전하고 마음 든든한 수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충북 음성 용운사에
청화 스님 말씀 듣고 염불 수행 알아매일 나무아미타불 염불하며 행복 어느날 우연한 기회에 찾았던 사찰에서 어느 비구니 스님의 법문을 듣고, 그것이 불교의 정설이고 진실인양 헛 꿈을 꾸며 살아온 13년. 긴 세월이 흐르면서 회의도 들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더욱 혼미하기만 했다. 물론 공부는 당연히 자력으로 해야만 하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우연히 청화 스님이 쓰신 책을 읽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염불은 글도 모르고 불교도 모르는, 아무 것도 모르는 할머니들이 기복적으로 하는 것인 줄로만 생각하고 있었기에 청화 스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는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청화 스님의 책을 읽으면서 염불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막연하게 가졌던 편견이 일순간 사라지게 되었다. 이미 입적하셨지만 마음
“어느 것이 부처님 법이냐?” “이것입니다.” “저것은 무엇이냐?” “이것입니다.”“차를 마시되, 손을 대지 말고 마셔라.” “차 맛이 참 향기롭습니다.” 스승 해안 스님과 제가 나눴던 말입니다. 바로 이때에, 즉 팔만대장경을 모조리 묻는다 해도 하나도 걸림이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스승께서는 전법의 게송을 써 주셨습니다. 그 전법게의 내용을 예서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스승께서 내린 전법게를 담았던 겉봉투에 글씨가 써 있었는데 바로 ‘청백가풍(淸白家風)’입니다. 이것은 우리 집안에 내려오는 전통입니다. 여러분들은 자손들에게 무엇을 전해 주시겠습니까? 혹 임종당시에 전해줄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명예입니까? 아니면 재산입니까? 후손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고인의 말씀에 ‘세법은 무전이전이요 불법은 부전
수행인들이 무심이나 무념의 경지를 말합니다. 무심과 무념의 상태는 무엇이며 이 상태를 깨달음의 경지라고 할 수 있습니까. 불교 속에서 흔히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무심이나 무념입니다. 무심·무념의 경지가 어느 상태를 두고 말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가 있습니다. 글자대로라면 마음이 없는 경지, 혹은 생각이 없는 경지라고 해야겠지요. 그렇다면 마음이나 생각이 없는 경지는 꿈 없이 잠자는 상태나 혹은 목석처럼 아무 분별이 없는 경지라는 말인데, 과연 그 경지를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본래 무심 무념이라는 용어는 교리적인 용어라기보다는 중국의 선가에서 사용해왔던 용어입니다. 대표적인 어록으로 육조단경을 들 수 있으며, 여기서 혜능 스님은 무념을 강조하셨습니다. 즉, 무념을 궁극적 깨달음의 경
진정한 발심없이 출가했다가 줄행랑 이것 저것 수행유람하며 비참한 마음 새벽 3시, 잠을 깨우는 자명종 소리가 어김없이 울린다. 새벽예불 시간에 늦을까 싶어 반사적으로 일어난다. 잠에서 깨기 위해 차가운 물에 세수를 하고 있노라면 문득 ‘나무아미타불…’ 염불소리가 들려온다.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해나가는 중에도 의식은 그 소리에 집중을 하고 있다. 염불을 시작하면서부터, 아니 정확하게는 자성염불이 되고 나서부터는 잠에서 깨어난 순간부터 ‘나무아미타불’염불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물론, 내 삶이 이렇게 바뀌기 까지는 수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사연도 많았다. 지난 92년 봄이었을까. 평소 존경하는 박 선생님께서 어느 큰스님의 법문을 들으러 가자고 해 처음 절을 찾았다. 불교에 대해서는 아무
2500년전 붓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 즉 모든 존재는 항상 변할 뿐, 불변하는 실체는 없다고 선언했다. 그것은 기존의 브라만을 비롯한 인도의 모든 사상체계를 뒤엎는 혁명적인 발언이었다. 하지만 그 선언을 두고 2500여년간 후대인들은 윤회의 문제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우리에게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면 왜 인간은 업을 지고 또다시 중생의 몸으로 태어나야 하며, 선업은 선업대로, 악업은 악업대로 갚아야만 하는 것일까.’ 최근 몇 년간 한국 불교학계에서는 무아-윤회 양립할 수 있냐는 논쟁이 뜨거운 공방을 거듭했다. 한쪽에서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개념이 후대로 가면서 뒤섞인 것이라 주장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윤회가 있기에 무아가 성립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비아론 무아론 모두 모순 내포 최근 『
한국 불교교육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박선영 교수의 정년을 기념해 박선영 교수〈사진〉의 저서 『불교와 교육』이 발간됐다. 또 한국종교교육학회는 학회 창립을 주도하고 초대 회장을 역임한 박 교수의 학문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불교와 교육’을 주제로 22집 논문을 편찬했다.『불교와 교육』은 박선영 교수가 각종 학술지에 발표한 불교교육학계 논문들 중 대표적인 것들을 모은 것이다. 특히 한국문화를 통해 종교교육의 역사와 불교교육학의 학문적 성격, 그리고 불교교육의 방법적 원리들을 모색한 논문들이 수록돼 있다.박선영 교수는 저서에서 “불교적 사
경주 불국사 경내 무설전. 何以故 如來說諸心 皆爲非心 是名爲心 “어찌 그러한가? 여래가 설한 모든 마음이란 다 참된 마음이 아니고 이름 붙여 마음일 뿐이기 때문이니라.” {六祖}爾所國土中所有衆生 一一衆生 皆有若干差別心數 心數雖多 摠名妄心 識得妄心非心 是名爲心 此心 卽是眞心 常心 佛心 般若波羅蜜心 情淨菩提涅槃心也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무량국토 가운데의 중생은, 모두 각각 가지가지 차별된 마음의 수를 가지고 있으니, 마음의 수가 비록 많으나 모두 망령된 마음이라 할 것이다. 망령된 마음이 진실된 마음이 아님을 알면 이것을 마음이라 이름 할 것이니, 바로 이 마음이야말로 곧 진실된 마음이며 항상스런 마음이며 부처의 마음이며 반야바라밀의 마음이며 청정한 보리열반의
경주 불국사 경내 범영루. 앞에서 설해진 구경무아분은 일체가 무아(無我)라고 강조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도 무아일테니 사물을 볼 수 없는 봉사가 아니냐는 의심이 남게 됩니다. 그래서 구경무아분 다음에 이어지는 일체동관분은 이런 의심을 풀어주기 위한 내용으로 전개됩니다. 즉, 부처님은 봉사가 아니고 오히려 다섯 개의 눈을 가지고 있는데 그 다섯 개의 눈도 청탁이 사라진 절대평등의 하나로서 사물을 관찰하는 바른 눈이라고 설명됩니다.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肉眼不 如是 世尊 如來有肉眼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天眼不 如是 世尊 如來有天眼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慧眼不 如是 世尊 如來有慧眼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法眼不 如是 世尊 如來有法眼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佛眼不 如是
Q : 염불 대신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한다고도 하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요? A : 마하반야바라밀이란 나의 참모습을 일곱 자로 표현한 말입니다. 마하는 ‘크다[大]’는 뜻이고, 반야는 ‘지혜’를 가리키며, 바라밀은 ‘완성됨’ 또는 ‘저 언덕에 이름’을 뜻합니다. 요약하면 ‘큰 지혜로 완전함에 도달한 상태’라고 풀이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의 참모습이 바로 마하반야바라밀이며, 큰 지혜로 완성된 위대한 존재가 참나인 것입니다. 가장 높고 으뜸가며 가장 존귀한 존재가 바로 참나 라는 말이 됩니다. 이 참나는 가짜나처럼 나거나 죽는 법이 없습니다. 이러한 마하반야바라밀법을 바르게 깨치신 분이 부처님이고, 부처님은 우리가 본래부터 마하반야바라밀의 존재 즉, 부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은 우리가 중생인 것처럼
고우 스님이 돈황본육조단경 강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수강생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나도 때로는 미운 생각이 납니다. 오온개공인 것을 잠깐 잊어버린 때거든요. 미운 생각나는 자체가 굉장히 괴로워요. 그때는 오온개공으로 돌아갑니다. 그럼 미운 생각이 사라지고 정말로 즐겁습니다.” 스승을 찾아가는 목적도 가장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찾아가는 것이죠. 혜능 대사가 말하기를, “선지식아, 깨끗한 마음으로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생각하라.” 불교는 이 ‘마하반야바라밀법’에 다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반야심경」을 외웁니다. 이 경이 267자라 하는데 핵심 되는 말이 ‘오온개공(五蘊皆空)’입니다. 오온이 모두 공한 줄 알면 우리 마음 속에 마하반야가 생기기 시
부산진경찰서(서장 송수태)는 6월 23일 부산진경찰서 6층 회의실에서 부산진경찰서 경승위원 위촉식을 갖고 감로사 주지 혜총 스님을 경승실장으로 임명했다. 삼광사 교무 갈웅 스님에게 부실장 소임을 맡겼으며 선암사 주지 원범 스님(감사)을 비롯한 금선사 주지 유초(총무), 홍제사 주지 성문, 광명사 주지 무아, 원각사 주지 태연, 선봉사 주지 도봉, 보광원 주지 인환 스님 등 9명을 경승위원으로 각각 위촉됐다. 경승실장 혜총 스님은 “부산의 중심지이면서도 사건 사고가 많은 부산진구를 부처님의 자비가 넘치는 곳으로 가꾸기 위해 9명의 경승 스님들이 화합하고 원력을 모아 교화 활동에 진력하자”고 당부하면서 “아직 결성되지 않은 경찰불자회도 이른 시일 내에 창립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며 경찰 포교에 대한 의지를
6월24일 용운사 철야정진에 참석한 불자들이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하고 있다. “사리불이여,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아미타불에 대한 설법을 듣고 이 아미타불 명호를 굳게 수지하여 염불하되 하루나 이틀 또는 이레 동안만이라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른다면, 그 사람이 목숨을 마치려할 때에는 아미타 부처님께서 여러 성인대중들과 함께 그 사람 앞에 나투시므로, 이 사람이 임종시에 마음이 온갖 삿된 중음의 경계에 끌려가지 않고 바로 아미타 부처님의 극락정토에로 왕생하게 되느니라.” 지난 6월 24일 충북 음성군 삼성면 가산이마을 용운사 저녁 예불에 참석한 불자들은 우리말 『불설 아미타경』을 독송하며 철야정진에 앞서 마음을 경건하게 다잡고, 자성염불 성취를 서원했다.
만다라. 250X250cm 흙벽에 채색. 근자에 다소 ‘이상한’ 동양화들이 등장하고 있다. 분명 산수화나 사군자, 민화 및 탱화 등 전통적인 동양화(종교화) 형식을 이용하고 있지만 이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묘한 균열과 차이가 드러난다. 산수화를 조각으로 만들거나 전통 산수화 안에 도시 풍경이 섞여 있다거나 거문고 대신 노래방기구를 갖다 놓고 노래 부르는 사람이 그려져 있는가 하면 민화 속 도상들을 입체로 만들어 공간에 설치화 시킨 경우 등이 그 예다. 이른바 퓨전동양화라고나 할까. 동시대 젊은 작가들에게 있어 전통(이미지)은 새롭게 해석될 것들이고 또 다른 의미와 상상력 속에서 다시 태어나야 할 오브제에 해당하는 것 같다. 전통-현대도 생멸거듭 이전 세
미혹의 체험에서 나온 외도·마도의 설법우주의식 운운은 진흙 말려 금칠한 것 뿐몸과 마음을 ‘나’라고 여기는 자아의식과, 자아는 홀로 존재한다는 개체의식을 버리면 우주의식이 드러나 전체가 된다고 합니다. 이것을 올바른 공부라고 할 수 있습니까. 불교계 밖에서 수행하는 사람이 어느날 저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었습니다. 그 집의 거실에 들어섰을 때 벽에 걸린 액자가 눈에 띄었습니다. 액자에는 이러한 글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그대가 곧 우주라, 개체를 넘어서면 곧 전체라, 전체가 곧 신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글을 보고 집주인에게 “이 글이 당신 선생이 써준 글이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 글의 내용이 최상의 깨달음의 경지를 읊은 것이라고 인정하는가”라고 물으니, 역시 그렇다고
경주 불국사 경내 전경. 須菩提 菩薩 亦如是 若作是言 我當滅度無量衆生 卽不名菩薩 何以故 須菩提 實無有法名爲菩薩 是故 佛說一切法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수보리여! 보살이 만약 ‘내가 마땅히 무량한 중생을 제도했노라’와 같이 말한다면, 곧 보살의 이름을 붙일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여! 실제의 이치에는 보살이라고 이름 붙일 어떤 법도 없기 때문이니라. 이런 까닭으로, 부처가 설한 일체법은 我 · 人 · 衆生 · 壽者相이라는 것도 없느니라.” 〈보충설명1〉 구경무아분은, 보살이 ‘나는 바라밀을 행한다’, ‘내가 무량중생을 제도한다’, ‘내가 불국토를 장엄한다’ 등을 비롯한 모든 상(相)을 철저히 제거하여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는 청정무아의 상태여야만 비로소 보살의
Q : 많은 염불 중 왜 ‘나무아미타불’만 하는 것입니까? A : 다른 염불을 해서 안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아미타불이 부처님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덕을 총체적으로 표현한 이름이기 때문에 이 염불을 하는 것일 뿐입니다. 모든 염불의 대명사가 바로 나무아미타불입니다.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문수보살 등의 여러 명호는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을 세부적으로 나눠 표현한 이름들입니다. 이것을 하나로 모아서 표현하면 아미타불이 됩니다. 부처님의 육신은 소멸되고 없지만 그 가르침인 법신(法身)은 영원히 존재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법신이고, 이 법신을 아미타불이라고 합니다. 아미타(阿彌陀)는 범어(梵語)의 음을 따온 말이고, 이것을 한자로 옮기면 무량수(無量壽) 무량광(無量光)이 되고, 우리말로는 시간과
불교계 노인복지시설이 척박한 제주에 매머드급 실비요양원이 들어선다. 인천 수미정사(주지 종연 스님)는 이미 터 고르기 작업이 들어간 염불선 센터 미소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불사에 착수한다. 수미정사는 제주 남군 성산읍 신산리에 마련된 4,061평의 부지에 연건평 300평의 노인실비요양원인 염화마을과 ‘나무아미타불’ 염불 수행 선 센터 미소사를 세울 예정이다. 오는 8월 15일 기공식을 봉행할 미소사는 5층 탑 형식의 구조물 옆에 현대식 2층 건물을 조성, 전통과 현대건축양식을 접목시킨 형태로 설계됐다. 미소사는 탑 2층에 아미타좌불을 본존불로 좌우보처에 대세지-관세음보살을 봉안해 여법함을 더하고, 불단과 연결된 현대식 건물 1층에는 법당을 조성해 노인들의 염불수행 도량을 목적으로 올해 11월 15일 문을
육조 스님 시대나 지금이나 존재원리는 ‘마음’새끼줄을 뱀으로 착각하듯 ‘내가 있다’고 집착 그런데 여기에 “종지宗旨를 계승한다” 하는 이 ‘종지’는 우리 존재원리, 마하반야바라밀법을 말하는데, 이것이 갠지스강 모래수의 보물보다 더 가치가 있고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끊이지 않게 전해지도록 위거라는 분이 법해 스님한테 기록하라 했듯이 육조 스님이 또한 「단경」을 설한 의도도 여기에 있다. 그러면, ‘종지(宗旨)’란 무엇이고, ‘마하반야바라밀법’은 무엇이냐? 이것이 우리 존재원리의 내용이다. 이렇게 말하니까 굉장히 먼 얘기 같지만, 지금 내가 얘기하고 여러분들이 그 얘기를 듣고 있는 바로 그 존재원리를 말한다. 결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천년, 만년이 가더라도 이 존재원리는 조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