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가 후원하는 ‘범어사 설선 대법회’ 세 번째 법석이 3월 19일 범어사 보제루에서 열렸다. 초봄의 기운을 타고 범어사를 찾아온 4천여 명의 사부대중을 위해 범어사는 설법전에 대형 스크린을 추가로 설치하며 대중을 위한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날 ‘가장 행복하게 사는 길, 참선수행’이라는 주제로 법문을 설한 봉화 각화사 선덕 고우 스님은 “본래성불이라는 정견을 바로 세우고 연기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조금씩 스스로를 맑히려는 노력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편집자주 선(禪)을 놓고 저는 말을 하려하고 여러분들은 들으려 합니다. 말하는 사람이 있고 듣는 사람이 있다는 전제하에 선을 말한다면 이미 그르친 것입니다. 그것은 ‘말’(馬)을 보고 ‘사슴’(鹿)이라고 하는
혜국 스님은 법석에서 "아는 것은 천하의 마구니요, 모른다고 하는 화두는 천하의 스승"이라고 강조했다. 수행은 게을리하며 선어록만 보고 "다 알았다"고 하는 '착각'을 경계한 일갈이다. 본지가 후원하고 부산 범어사 등이 주최한 설선대법회 두 번째 법석이 열렸다. 3월 12일 부산 범어사 보제루에서 열린 이날 법회에는 사부대중 4천여 명이 모여 충주 석종사 선원장 혜국 스님의 법문을 경청했다. 스님은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자신의 마음을 깨닫기 위한 화두를 잡고 실천하라”고 강조했다. 이날 법문을 요약 개재한다. 편집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인을 만나면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했습니다. 그동안 몸과 마음이 편안했느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엔 “부자 되십시오”한다면서요? 단
3월 19일 원적에 든 전 통도사 주지 신허당 상수 대화상의 영결식 및 다비식이 3월 21일 통도사 설법전에서 엄수됐다. 영축총림 통도사 사중장(장의위원장 현문 스님)으로 치러진 이날 영결식은 원로의원 초우 스님, 범어사 주지 대성 스님, 통도사 주지 현문 스님, 통도사 백련암 감원 원산 스님, 불교TV 회장 성우 스님, 통도사 신도회 박해종 수석부회장 등 사부대중 500여명이 참석했으며 명종 5타, 삼귀의례, 행장 소개, 영결사, 추도사, 헌화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장의위원장 현문 스님은 이날 영결사를 통해 “스님의 크신 원력을 받들어 사부대중은 통도사가 수행도량의 모습을 갖추는데 더욱 진력할 것”이라며 “통도사의 발전과 불교 중흥에 끼친 스님의 큰 공적은 후세에 길이 기억될 것”이라고 말
뜻밖에 보내주신 편지를 받으니 그 기쁨이 오랜 갈증 뒤 청량수를 마심과 같고 굶주린 뒤 산해진미를 맛봄보다 기쁘더이다. 당장에라도 달려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싶지만 행여 가벼이 움직이면 마음만 쓰이게 할 것 같아 그만 두었습니다.허나 서로 이야기하고 의논할 일이 산 같고 바다 같습니다. 어느 날에나 동녘[일본]으로 건너오시겠소이까? 남들이야 세월이 느리다 할지 모르지만 내겐 한 순간이 마치 몇 계절이 지나가는 듯 하여 목을 길게 늘이고 기다리고 있사오니 이해해주소서.1880년 6월 20일 도쿄 아사쿠사에 머물고 있던 동인(李東仁, 1849~1881·사진)은 아사노 쓰기노시(朝野脚遲)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한 통의 편지를 썼다. 부산에 별원을 내고 그곳에 머무르고 있던 정토진종 대곡파의 오쿠무라 엔싱에게 보내
행자시절 어려움은 인생의 값진 경험 항시 ‘관세음보살’부르며 살아야 스님은 마음을 깨끗하게 비운뒤 기도하는 것이 진정으로 자신과 가정을 위하는 것이라며 언제어디서든 아미타불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단양 광덕사 회주 혜인 스님은 지난 2월 14일 강남 봉은사 법왕루에서 열린 선지식 초청법회에서 5백여명의 불자들에게 “기도를 하기 전에는 마음 한 가운데에 있는 자갈과 가시덤불을 다 걷어내 옥토를 만든 후 그 마음이라고 하는 땅에 모든 복덕과 지혜와 공덕의 종자를 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문을 요약 게재한다. 편집자 화엄경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만약에 사람이 부처님의 경계를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 뜻을 허공과 같이 할 것이요, 잘못된 생각과 망상을 멀리하고 항상 모
불교에 있어서 궁극의 이상적 인간상인 불타(佛陀: 깨달은 사람)의 특성은 무엇일까? 그것은 깨달음으로 본질적이며 자주적으로 깨닫는‘자각’을 의미 하는 것이며, 그 내용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먼저 연기의 도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연기사상은 무아(無我)사상을 확립하게 되는데, 여기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구도를 향한 마음의 발로, 즉 발심인 것이다.원효(617~686)의 『발심수행장』은 총 706자의 짧은 문장으로, 그 형식은 운문체로 되어있다. 내용은 욕심을 버리어 수행을 완성하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방법적인 면에 있어서는 계와 염불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무지한 이들에게도 노래와 춤을 추어 불타의 칭호를 알려‘南無(나무)’를 칭념하게 한 그의 교화를 연상하게 하는 것이다.
아신 아사바 사야도(왼쪽)와 현웅 스님은 '무아'와 '수행법'에 대한 법담을 나눴다. 테라바다엔 그런 것 없다 부처님 닮아가야 증득 참선에서는 깨달음 얻으려면 부처 버려라 강조 성천문화재단 회원은 최근 육조사 선원장 현웅 스님을 지도법사로 미얀마로 성지순례를 떠나 남방불교의 수행 전통이 가장 잘 보존되어 전승되고 있다고 평가 받는 마하시 명상센터를 방문했다. 생전의 마하시 스님은 전 세계에 위파사나 수행을 보급하는데 노력했다. 현재 전 세계에 약 260개의 ‘마하시 명상센터’가 세워져 있다. 그 총본산이 바로 성천문화재단이 방문한 양곤 명상센터이다. 정식 명칭은 ‘MYANMAR YANGON MAHASI VIPASSANA MEDITATION CENTRE’. 현웅 스님과 마하시 창설자의
아비달마 교리 토대로 인간 존재 섬세히 분석 자신의 삶 돌아보듯 진지한 성찰도 공감 ‘번뇌’와 ‘업’ ‘고통’ ‘사랑’ ‘마음’ 등은 불교의 보편적인 주제들이다. 그 중 ‘번뇌’ ‘업’ ‘고통’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사랑’이라는 주제 역시 일시적으로는 가슴을 설레게 하지만, 종당에는 이별과 슬픔, 그리고 긴 회한을 남기게 한다. ‘마음’ 역시 자신의 것이긴 해도 뜻대로 되지 않기는 매일반이다. 대수롭지 않은 것 같지만 어느 하나 호락호락한 것이 없다. 인간을 둘러싼 여러 가지 주제 중에서도 특히 불교와 대단히 밀접한 사랑, 번뇌, 업, 고통, 마음, 이 다섯 가지 주제에 대하여 불교적 입장에서 쉽게 풀어 쓴 책(중수필집)이 정승석 선생
맛 한마음 다선은 느껴지는 맛의 변화를 잘 주시하는 것입니다. 차맛은 차물과 혀와 마음의 삼자 조건에 의해 생성되고 소멸됩니다. 이러한 맛의 생성 소멸의 변화를 잘 주시 관찰합니다. 먼저 모든 강물이 흘러 바다에 이르면 모두 똑같이 한 맛이 됨을 명상합니다. 다음는 명상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선(禪)으로 들어갑니다. 즉 차 맛의 변화를 처음과 중간과 끝을 관찰합니다. 그리고 차 맛이 생기는 순간순간이 차맛이 사라지는 순간임을 보고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정신적 물질적 현상이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음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즉 차맛이란 시간적으로 무상하며 독립된 실체가 없어 공이며 자아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므로 무아(無我)인 것입니다. 이렇게 차 맛에는 고유한 어떠한
부처님이 25안거를 성만한 수행성지인 인도의 쉬라바스티에 우뚝선 한국의 천축선원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21년 째 되는 해부터 입멸에 이르기까지, 마지막 해만 제외하고는 늘 우안거에 들만큼 불연이 깊은 땅인 인도의 쉬라바스티에 선기 성성한 한국의 수좌 스님 6명이 2004년 11월 26일 동안거에 들었다. 한국의 제방 선원에서 선감이나 입승 소임을 맡아 20안거 또는 10안거 이상 화두를 들고 탁마해 온 수좌 스님들이다. 수좌 스님들은 지금 실험 중이다. 도와 덕이 드높은 수좌 스님들의 안거를 두고 ‘실험’이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가 불경스럽기는 하지만 쉬라바스티에서의 동안거는 분명 ‘실험’이다. 성도재일인 1월 17일부터 열흘 간 80여 불자들과 함께 인도 성지 순례를 다녀 온 충주 석종사 선원
무심히 그려넣은 선 깨달음의 정점인 듯 적멸의 순간인 듯 부처의 미소는 화두다 모든 미소의 절정이며 모든 미소의 극치다 김은현이 도조로 만들어 놓은 인물상은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만들어지고 조각된 것이라기 보다는 살아서 몽상에 잠긴 듯한 미소다. 미소란 사전 정의에 의하면 “소리내지 않고 가볍게 웃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감정을 표출한다. 눈, 입, 관자놀이, 입아귀 등이 관련된 신체적 움직임인 미소는 분명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인간적인 표현일 것이다. 인류가 가진 특수한 기호이자 사람들마다 고유하게 나타나는 표현인 미소는 언어와는 다른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인류가 가진 특수한 기호 침묵 속에 감춰져 있는 바를 무언의 표정으로 드러내는 미소는 살아가는 내내 우리
계·정·혜 삼학 수행하면이기적 욕망서 탈출 가능중생이 곧 여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르는 불자는 거의 없겠다. 중생이 곧 부처라면, 중생과 부처의 공통성이 마음에 있어야만 하겠다. 저 공통성이 이익을 좋아하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인간의 마음은 늘 좋아하는 것을 하려는 강한 열망의 기호(嗜好)를 갖고 있다. 즉 싫어하는 것을 절대로 하지 않으려 한다. 주자학과 다른 양명학이 인성을 기호로 읽었다. 도덕적 당위가 옳은 것이므로 해야 한다고 강요해도,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하는 척할 뿐이다. 마음은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행복의 이익을 좋아한다. 마음이 싫어하는 것은 고통과 슬픔이다. 17세기 화란의 철학자인 스피노자의 말이다. “우리는 어떤 것이 좋다고 판단해서 그것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것을 욕망
부파불교시대 이후 논사들의 고민거리 우리나라 최초로 독자적 시각 접근 인간은 죽으면 육체와 함께 영혼(자아)도 영원히 없어져 버리고 마는가? 아니면 영혼은 남아서 업에 의하여 끊임없이 육도의 세계를 윤회하는가? 이 문제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서가 윤호진 스님의 『무아 윤회문제의 연구』이다. 불교를 비롯한 인도의 종교와 철학은 대부분 육신은 죽어도 인간은 선악의 업 등에 의하여 끊임없이 윤회한다고 한다. 다만 차이점은 인도철학에서는 유아윤회(有我輪廻), 즉 윤회의 주체 또는 실체로서 아트만(영혼, 자아)을 상정하고 있는데 반해, 불교에서는 윤회의 주체, 실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며(無我), 선악의 업에 의하여, 또는 아뢰야식에 의하여 윤회한다고 말하고 있다(무아윤회). 불교의 무
진여의 세계에는 너도 없고 나도 없다.(眞如法界 無他無自)딱 맞게 상응하고 싶다면 다만 불이라고 할 뿐.(要急相應 唯言不二)진리와 하나가 된 마음, 대도를 체득한 마음에는 자타의 구별이 없고 일심과 만법이 일체가 된 세계이다. 진여법계는 ‘분별대립이 없는’ 세계, 즉 일심의 총칭이다. 따라서 나다 너다 하는 자아의 분별의 입장이 없다는 것이다. 이 대립이 끊어진 ‘진여’인 공의 경지를 아주 적절히 상응되는 말이라면 ‘불이(상대, 이원이 아닌 것)’라고 말할 뿐이라는 것이다. 불이의 법문은 유마경의 핵심내용이다. 좬조당집』의 「투자(投子)장」에, “묻기를 ‘옛사람이 말하기를, 이라고 했는데, 미심쩍습니다. 화상께서는 어떻다고 보십니까?’ 스승은 말씀하길
평창동 정토사, 150평 불사 발원 설산 스님 원력, 올 12월 회향 예정 새로 건립될 정토사 조감도. 올 5월부터 불사에 들어간다. ‘나무아미타불’ 염불소리 가득한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 기도도량 서울 평창동 정토사(회주 설산 스님)가 도량 중창을 발원했다. 정토사는 지난 2001년 10월 제7차 만일 염불 정진을 회향한 염불만일회 법주 설산 스님이 40여년 전 기존의 가정주택을 개조해 아미타불을 모시고 창건한 도량이다. 정토사는 지난 40여년 간 ‘나무아미타불’ 염불도량이자 ‘염불만일회’ 기도도량으로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가정집을 개조해 사용하다 보니 현재 정토사 모습은 초라하기만 하다. 20여평 규모의 법당과 작은 방사 4동이 정토사의 전부다. 건물 또한 오랜 세월로
마음의 평등이 체득되면 분별이 모두 쉬어진다.(契心平等 所作俱息)여우같은 의심이 다하여 맑아지면 올바른 신심이 조화되어 곧아진다.(狐疑盡淨 正信調直)진리가 마음에 계합하고 이 마음은 대도(大道)인 것이라고 깨달으면, 미혹을 버리고 깨달음을 구하려고 하는 분별은 전부 쉬어진다는 것이다. ‘계심’이라고 하는 세계에는 여우같은 의심이 완전히 없어지고 부처와 내가 하나라고 하는 신심이 확고부동하게 되는 것임을 말한다. ‘호의’는 앞에서도 나왔지만 가지가지의 생각으로 백가지의 분별을 나타내며, ‘조직’은 우두법융의 『심명(心銘)』에 “일심도 망녕되지 않으면 만 가지 인연이 조화롭고 바르다”라고 하는데 그 의미가 잘 나타나 있다. ‘직’은 선가에서 많이 쓰는 용어다. ‘직관(直觀)’ ‘직절(直截)’, ‘직지(直指)’,
보 광 스님 동국대 불교대학원 원장 지난 2004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대지진과 해일의 피해는 인류의 대재앙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하여 태국, 미얀마, 스리랑카, 몰디브, 인도 등 서남아시아의 중요 휴양지에서 일어나므로 더욱 피해는 크다. 마침 지구 반대편의 겨울 사람들에게는 연말연시와 겨울철에 여름휴가를 만끽할 수 있는 해변이라서 더욱 매력적이었다. 그러므로 단순히 피해국만의 일이 아니라 전 세계의 재앙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인명의 피해는 세계 각국이 입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필자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 한 달전에 스리랑카 성지순례를 하고 돌아 왔다. 스리랑카를 여행하면서 참으로 복 받은 나라라고 생각하였다. 아름다운 해변과 울창한
치열한 불교논쟁사, 사상적 심화 이끌어 논쟁이 학문발전의 자양분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객관적인 주장과 논리적인 반박은 사상의 폭을 넓히고 학문의 깊이를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불교학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비록 종교를 다루는 학문이지만 다양한 해석과 검증은 사상의 깊이와 신앙적 틀을 더욱 견고히 하도록 한다. 이런 까닭에 2600여년 전 부처님조차 무언가를 강요하기보다 제자들과 끊임없는 논쟁을 벌여 자신의 깨달음을 확실히 전달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은 인도불교사 전체를 관통하고 있을 뿐 아니라 스리랑카 등 남아시아와 중국, 한국 등 동아시아 지역으로 전파되면서도 일관되게 이어졌다. 불교논리학파와 힌두 논리학파와의 500년에 걸친 무수한 논쟁, 티베트 불교를 성립토록 한
위파사나 열풍 진원지…매일 수행점검 남방고승 초청…수행서적 지속 출간 자율적 보시 운영…수행처 건립 추진 붓당 사라낭 가차미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담망 사라낭 가차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낭 가차미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서울 압구정동의 보리수선원. 이곳에 처음 들어서면 마치 수만리 공간을 훌쩍 뛰어 넘어 미얀마의 전통사찰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남방의 이국적인 부처님과 미얀마 전통 승복을 입고 있는 선원장 붓다락키다 스님. 200여 평 크기의 수행홀에는 느리게 돌아가는 영사기 속의 사람들 마냥 천천히 움직이는 이들과 여기저기에 바위처럼 앉아있는 사람들도 눈에 뜨인다. 느린 말투, 느린 손짓, 느린 걸음…. 그런 탓에 여기에선 벽시계 속의 시계바늘조차 더디
‘내 것’은 그 어디에도 없어 스님들은 스님 틀 깨는 사람 불교공부를 하고, 수행을 하는 사람들일수록 정말이지 큰 아상에 빠져들곤 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수행을 많이 하면 할수록 ‘나는 수행 잘 하는 사람이다.’ 라는 등의 ‘나 잘난’ 상을 많이 만들어 낸다. 물론 그런 마음을 가지면 잘못이고 틀렸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그런 마음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니 자책하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잘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잘 지켜봄으로써 ‘나’란 허상에서 바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이건 수행자들에게 있어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수행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점을 잘 지켜보는 것이다. 잘 지켜보아 거기에 빠지고 집착하지 않는 것이 수행이다. 그것이야말로 아상의 실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