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의 장기기증이 늘고 있다. 지난 1월2일 태고종 총무원은 시무식과 함께 스님 100여명의 장기기증 서약서를 생명나눔실천본부에 전달했다. 동국대에 재학 중인 스님들의 모임 석림회도 2월28일 서약서 108장을 제출했다. 스님들의 장기기증 서약이 가장 많았던 해는 2011년이다. 당시 장기기증을 서약한 스님은 140여명이다. 이때를 제외하면 항상 100여명을 밑돌았다. 그러나 연초부터 스님들의 장기기증 서약이 줄을 잇고 있다. 200여명이 넘게 이어진 스님들의 장기기증 서약 행렬에 생명나눔실천본부도 들뜬 분위기다. 스님들의 장기기
돌이켜보면 1980~90년대는 암울했다. 정권퇴진과 민주화를 외치는 젊은이들의 외침이 함께 했다. 정부는 잔인하고 무서웠다. 젊은이들은 학교 도서관 대신 거리에서 최루탄을 뒤집어쓰며 역사의 시계를 바로 세우기 위해 피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마침내 권력으로 쌓은 탐욕의 성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일궈냈다. 그리고는 서로의 노고를 다독거리며 일상으로 돌아갔다. 작은 양심과 가녀린 함성을 보탰던 수많은 기록되지 못한 역사의 주역들이 일제히 나이를 나눠먹으며 노동자가 되고, 서민이 되고, 국민이 됐다.정부기관 선거개입에 이어검찰의 조작
서울 진관사 경내에서 출토된 성보가 국가로 귀속될 처지에 놓였다. 문화재위원들이 소유권을 확인해 달라는 진관사의 요구를 묵살했다. 출토된 성보는 금동불입상 2점을 비롯해 272점이다. 해당 사찰과 조계종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한국불교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조계종의 정체성을 부정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특히 예경의 대상의 돼야 할 성보들이 박물관 전시실에서 눈요깃거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에 크게 분노하고 있다.문화재위원들은 진관사가 조선시대 왕실사찰로 왕실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왕실 소유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진
올해 하반기 프란시스코 교황이 방한할 예정이다. 과거에도 교황이 다녀갔다. 25년 전인 1989년 교황 바오로 2세가 방한했다.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가톨릭 미사는 전국에 생중계됐다. 교황의 존재에 관심조차 없었던 국민들은 이날 교황을 새롭게 인식했다. 교황의 방문 소식에 가톨릭은 들뜬 분위기다. 가톨릭을 새롭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그러나 이번 교황방문추진은 정부의 종교차별 결정판이다. 교황방한추진은 가톨릭보다 정부가 더 서둘렀다. 박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교황청 인사를 접견하면서 교황 방한을 공식 요청했다. 최근에는 정홍
중국역사에서 혜원(慧遠)이라는 법명으로 기억되는 스님이 두 분 있다. 동진 때의 여산혜원(廬山慧遠, 334~416) 스님과 북주와 수나라 때 살았던 정영혜원(淨影慧遠, 523~592) 스님이다. 두 스님은 황제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출가수행자로서의 기개를 지킨 스님들이다. 여산혜원 스님은 절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황제에게 부처님 외에는 누구에게도 절을 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정영혜원 스님은 북주의 무제가 스님들에게 사찰을 폐하겠다고 위협할 때 유일하게 죽음을 무릅쓰고 왕의 면전에서 잘못을 조목조목 따졌던 스님이다.이 두 스님의
조계종 종단개혁이 20주년을 맞았다. 1994년 따스한 봄, 불교계에 태풍이 불었다. 개혁의 광풍이었다. 1987년 6·10항쟁을 계기로 사회는 민주화로 향했다. 국민들은 직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뽑았다. 세상은 달라지는데 불교는 바뀌지 않았다. 종권은 당시 총무원장 의현 스님에게 집중돼 있었다. 사회는 상식으로 가고 있었지만 불교는 비상식이 판을 쳤다. 민심을 얻지 못한 의현 스님은 정부권력에 기댔다. 선거 때마다 여당후보를 지지했다. 노골적인 찬양이었다. 의현 스님은 정권과 결탁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부패해 갔다.상황이 이런데도
1970~80년대 수학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방문지가 경주였다. 학생들은 선생님을 따라 불국사와 석굴암을 보고 대능원을 관람했다. 3박4일, 산과 문화유적과 공업지구 몇 곳을 돌고 아쉬움을 간직한 채 학교로 복귀했다. 시간이 제법 흐르고 나서 그때의 수학여행이 삶에 큰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선생님으로부터 견문을 넓히고 문화유산과 국토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것을 수학여행의 목적이라고 들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수학여행이 끝나도 자부심이 생겼던 것 같지는 않다. 가봤다는 경험, 별것 없더라는 기억만이 오랫
알고 하는 잘못과 모르고 하는 잘못 중에 어떤 것이 더 나쁠까? 사회법의 관점에서 죄질을 따지자면 알고 행하는 잘못이 훨씬 나쁘다. 잘못인 줄 알면서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다르다. 모르고 저지르는 허물이 더 크다. 죄의식이 없어서 개선의 여지 또한 없기 때문이다. 새해가 시작되면서 전국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행사들이 열렸다. 이들 행사들을 보면서 모르고 저지르는 잘못에 대한 가르침이 불현듯 이해가 됐다. 개인의 소원이나 희망을 담아 하늘로 띄워 보낸 풍등과 풍선을 통해서다. 새해를 맞이하는 현장에서 빠지지 않는 행사가
커피열풍이 거세다. 최근에는 믹스커피로 대변되는 인스턴트커피 시대를 넘어 직접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먹는 ‘핸드드립 커피’가 유행이다. 대중화를 넘어 고급화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세계 7위의 원두 수입국이다. 올 한해만 1인당 484잔에 이르는 커피를 소비했다. 2000년 313잔에 비해 55%가 늘어난 가파른 상승세다.세간의 커피열풍으로 불교계의 고민이 깊다. 커피열풍이 불교계에도 거세게 불고 있기 때문이다. 커피를 즐기는 스님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절 집안의 풍속도마저 바뀌고 있다. 스님들은 전통적으로
일평생 차별없는 세상위해 헌신폭동조장 혐의로 27년간 옥살이대통령 돼서도 화해·용서로 치국만델라 삶서 사회갈등 해법 찾길 넬슨 만델라(1918~2013). 그는 평생을 단 하나의 목표에 매달렸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철폐,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 그를 사람들은 세계인권운동의 아버지라 불렀다. 그러나 그의 삶은 인권운동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역경에 굴하지 않은 강인한 정신력과 선함에 대한 무한한 믿음, 사람에 대한 사랑과 자비, 그리고 겸손한 그의 삶은 성자의 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마하트마 간디에 비견하기도 한다. 그는 남아공 한 부족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저 평범한 흑인청년에 불과했던 그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자신의 나라가 처한 상황에 눈을 떴다. 흑인이
정권 휘둘려 국민신뢰 잃은 검찰바로세우겠다는 김진태 신임총장부당한 권력에는 맞서 싸우면서약자엔 자비롭던 신념 잃지않길 김진태 검찰총장 시대가 열렸다. 김 총장은 12월2일 취임사에서 “정치적 중립에 대한 모든 시비를 불식시키고 오직 국민의 편임을 각인시키겠다”고 밝혔다. 김 총장이 애써 검찰의 중립을 강조하고 국민의 편임을 역설해야 할 만큼 검찰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검찰은 1년 사이 수장이 두 번이나 바뀌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지난해 11월 검찰 내부의 이전투구로 검찰총장이 사퇴했고, 올해에는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를 진두지휘하던 검찰총장이 물러났다. 이런저런 이유들이 거론됐지만 모두 정권의 뜻에 따른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첫 번째가 누가 정권의 신임을 얻고
서울시 유네스코 문화유산 추진“불교전통·음식쓰레기 해결 대안”불가에서는 평등 실천하는 수행발우공양 의미 되새기는 계기로 대학시절 산사로 오리엔테이션을 간 적이 있다. 불교대학이었으니 불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어스름한 새벽, 장엄한 예불에 전율처럼 소름이 돋았다. 너무 맑아 싸한 산사의 공기를 마시며 참선할 때는 이대로 부처가 되는 것 아는가 하는 기대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러나 산사의 체험이 마냥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발우공양은 낯설고 불편했다. 특히 발우를 씻은 천숫물을 모두 나눠마셔야 할 때는 곤혹스럽기까지 했다. 발우공양은 공양을 마친 다음에 김치쪼가리와 천숫물을 사용해 발우를 말끔히 씻어야 한다. 그런데 그 천숫물이 더러웠다. 일부의 극렬한 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