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법전 종정에 “공약 불이행” 설명 정부, 12월 24일 속개 발표…철마선원 철거 북한산을 관통하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사패산 구간 공사가 지난해 12월 25일부터 재개됐다. 국무총리실은 24일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당초 정부 원안대로 북한산을 관통한다고 확정 발표했다. 12월 22일 노 대통령이 해인사에 주석하고 있는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을 예방해 북한산 관통도 공사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있다. 고건 국무총리는 24일 오전 국정현안 정책조정회의를 거쳐 이 같은 내용을 결정하고 “국가적 필요와 정책 결정의 불가피성을 이해해준 불교계에 정부를 대표해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이로써 2년 1개월 동안 공사가 중지돼온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의 ‘사패산 노선’은 200
노무현 대통령의 법전 종정 스님 예방으로 북한산 관통공사 재개가 급물살을 타자 각계 반응은찬-반으로 확연히 갈라졌다. 정치권 대부분이 ‘환영’을 표시한데 비해 환경운동 단체들은 조계종과 정부의 ‘뒷거래’ 의혹 가지 재기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나라당 박진 대변인은 23일 논평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公約)이 결국 공약(空約)이 되고 말았지만 어쨌든 불교계가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고 평가했다. 민주당 김영환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국책사업의 추진을 위해 불교계의 이해를 구하는 등 해결에 나선 것은 긍정적”이라며 “정부는 불교계뿐만 아니라 환경파괴를 우려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많은 만큼 신중하게 후속조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열린우리당 역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면서 “
△1997. 4. 20 북한산국립공원을 지키기 위한 100인 선언 △2001. 9. 6 조계종, 정부에 북한산 관통도 건설 중지 촉구 △2001. 10. 24 관통도로 건설 저지를 위한 불교 대책위 출범식 및 제1차 결의대회 △2002. 2. 13 송추 농성현장 ‘북한산 회룡사 제2선원(철마선원)’ 개원 △2002. 2. 18 LG 건설 직원, 송추 공사현장에서 비구니스님 폭행 △2002. 3. 5 조계사 ‘자연환경보존과 수행환경수호 위반 범불교도 결의대회’ △2002. 7. 18 북한산국립공원 살리기 3보 1배 △2002. 8. 14 불교환경연대 등과 서울고속도로(주), ‘노선조사위원회’ 구성과 ‘정부가 최종 결정한다’는데 합의. △2002. 12. 4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
무여 스님은 1940년 경북 김천에서 출생, 1966년 세속 나이 26살 때 오대산 상원사에서 희섭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무여 스님 표현 그대로 스님은 어려서부터 ‘곱게 자란 아이’였다고 한다. 스무 살이 지나면서 스님은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가?”라는 물음을 가졌다. 청소년 시절 웬만한 감수성을 갖고 있는 청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져봄직한 물음이다. 그러나 스님이 여느 청년과 확연히 달랐던 점은 이 물음을 스스로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군 복무 시절 휴가를 받아 서울에 나온 적이 있었어요. 조계사에 들렀는데 한 스님이 반야심경을 설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스님이 설한 ‘공(空)사상에 금새 흠뻑 빠졌지요.” 이 때부터 스님은 불교서적을 보며 불교와의
근세 한국불교의 중흥조로 첫 손가락에 꼽히는 분이 바로 성우 경허(惺牛 鏡虛) 선사. 만일 경허 큰스님이 없었다면 우리 나라 근세불교는 그야말로 얼마나 적막강산이었을까 하고 걱정할 만큼, 경허 큰스님은 꺼져가던 우리불교의 불씨를 되살려 횃불로 활활 타오르게 해주신 큰 스승이었다. 그래서 어떤 이는 경허 큰스님을 ‘한국의 달마대사’라 칭송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제2의 원효대사’로 추앙하기도 한다. 만공(滿空), 혜월(慧月), 침운(枕雲), 수월(水月), 한암(漢岩) 등 실로 기라성 같은 거봉들을 문하에서 배출하여 한국불교를 화려하게 중흥시킨 경허 큰스님. 스님은 1849년 헌종 15년 8월 24일 전북 전주 자동리에서 여산 송씨(宋氏) 두옥(斗玉)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서울 종로5가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전병롱(53·홍원) 원장은 세간에서 치열하게 정진하고 있는 수행자다. 지난 30여 년째 화두와 염불 수행을 하고 있는 전 원장의 일과는 밤 1시부터 시작된다. 남들이 깊은 잠에 들 무렵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정진에 들어간다. 그는 먼저 초를 밝히고 향을 사른 후 부처님을 찬탄하는 예불과 수많은 무주고혼들의 왕생을 기원하는 발원부터 시작한다. 일반인들 눈에야 보이지 않지만 구중에서 헤매는 불쌍한 영가들이 수없이 많고, 이들이 천도돼야 살아있는 사람들은 물론 국운까지도 융성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30분 정도 예불을 한 후 1080배 정진에 들어간다. 처음 시작할 무렵에는 힘도 들었지만 십수 년 계속 하다보니 이제는 절을 오래해도 숨이 가쁘지 않고 땀도 나지
‘골인’과 ‘깨달음’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엉뚱한 우문으로 말문을 연다. 이 시대 최고의 코드는 골인이다. 슛 골인의 함성이 천지에 자욱하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회로가 골인에 맞추어져 있다. 승리, 정복, 쟁취, 출세, 환희, 감격 등 모든 가치의 실현은 골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머리카락 하나 만큼의 차이로 행복과 불행이 갈라진다. 빠름, 속도전, 디지털이 그 가치를 획득하는 도구이다. 안타깝게도 깨달음의 길은 그 가치와 동반하지 못한다. 그것과 역행하는 노선을 만나야 도달할 수 있다. 법열은 골인으로 얻을 수 있는 모든 영예보다 높은 것이기에 가부좌를 틀고 화두를 잡고 있다. 용화선원은 도심 사찰이다. 인천시 남구 주안동, 주변엔 아파트와 상가 건물로 둘러싸여 있다. 수행의 입지로서
“메트릭스는 불교적인, 특히 선적인 아이디어로 넘치는 영화다.” 가장 헐리우드적인 블록버스터 영화 ‘메트릭스’에 대한 불교적 잣대 논란에 과감히 종지부를 찍으려 들고 있다. 영화 '메트릭스 시리즈'의 주인공 네오는 선재동자처럼 관객을 선의 세계로 이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 등에서 직접적인 기독교 용어가 많이 사용돼 기독교 영화라는 설도 적지 않았고, 일부에서는 포스트 모던 영화, 혹은 그저 단순한 ‘헐리우드식 SF 영화’라는 등 무수한 평이 쏟아져 나온 것도 저자의 결단에 힘을 실어주었다. “불교, 특히 선이라는 관점에서 영화를 해석하며 보면 더 맛이 난다”는 조언이다. “이래서 불교영화다” 저자는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후 출가해 봉선사와 해인사 등에서
2004년 조계종 신년 종정 하례식이 1월 7일 오전 11시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봉행됐다. 법전 종정스님이 총무원장 법장 스님에게 금란가사를 하사 하고 있다. 종정 법전 스님은 법어를 통해 “2003년에는 종단 안팎으로 어려운 일들이 많았으나 총무원장 스님을 중심으로 힘을 모아 종단 안정을 이뤄냈으며 특히 교육과 포교 등 각 분야에 많은 노력을 기우려 왔다”고 치하 한 뒤 “올해는 더욱 정진해 종단화합을 완성하고 사회와 국가, 인류가 대 화합하여 여러 난제들이 원만히 해결되는 한 해가 되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법전 스님은 또 이날 ▲종도들은 수행과 교화에 전념하여 불조의 혜명을 계승 선양하고 중생을 널리 이익케 하라 ▲종단은 승가교육의 내실을 도모하여 인천의 스승으로서 안목과 위
그 간 불교 교리를 공부해 오는 동안에 수행 없이는 불교의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불교는 생활 불교일 때 종교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할 수 있지, 지식 이론의 이해에 그친다면 참다운 종교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틈나는 대로 독경, 염불, 사경 등 수행을 계속하면서 여름과 겨울 방학 때, 전국의 유명 사찰에서 실시하는 수련회에 참가하는 기회를 가지기도 하였다. 특히 사찰수련회의 색다른 체험에서 크게 감동을 받았다. 송광사에서의 묵언 수련, 해인사의 철두철미한 계율 준수 생활과 삼천 배 철야 정진, 불국사에서의 삼보일배 탑돌이와 석굴암 감실 안에서의 새벽 예불의 장엄함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상의 여러 수행을 통해 얻은 내 나름의 결론을 요약하면 부처님께서
경허 큰스님이 서산의 천장암에 계실 때의 일이다. 하루는 경허 큰스님의 형이신 천장암 주지 태허 스님이 인근에 사는 갈산 김씨네 49재를 올리기 위해 장을 크게 보아다가 온갖 떡과 과일을 푸짐하게 진설해 놓았다. 이 당시만 해도 백성들이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때라 동네에 큰 제사나 잔치가 있다고 하면 떡과 과일을 얻어먹기 위해 인근 마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드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경허 스님이 누더기 한 벌로 보임하며 주석했던 천장암. 천장암에서 아무날 아무시 갈산 김씨네 49재가 있다는 소문을 들은 인근 마을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천장암으로 모여들었다. 산 사람에 공양물 보시 법당 안에 차려진 온갖 떡과 과일, 동네 아이들은 허기진 배를 쓰다듬으며 군침부터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 비롯해, 불국사, 범어사, 월정사, 낙산사, 직지사, 해인사, 부석사, 조계사, 통도사 등 9개 사찰 교구본사 주지 스님들이 2월 17일부터 19일까지 인도 부다가야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참석한다. ‘불교와 영적여행’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보드가야 ‘마하보디 사원’을 전 세계 불자들에게 헌당하기 위해 인도 관광부에서 주최했으며 전 세계 300여 불교지도자들이 참석한다. 인도 대사가 1월 16일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을 예방해 초청장을 전달하고 있다. 이번 대회는 달라이라마의 기조법문과 인도 대통령의 개회사가 포함돼 있으며 인도 정부는 초정인사에 대해 편의 제공은 물론 각국과 보드가야를 잇는 직항로도 개설할 계획이다. 1
최근 직장인들의 수행·정진 열풍이 가시화되면서 전국 시민선방에서도 직장불자들을 위해 다양한 수행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전국 시민선방들은 직장인 불자들이 ‘일과 수행’을 병행할 수 있도록 이용 가능한 시간대에 맞춰 수행프로그램을 마련하거나, 근기에 맞는 다양한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다. 서울 보리수선원은 매일 초보불자들을 위해 저녁 7시 30분부터 2시간씩 ‘초보불자 반’을 편성해 운영하고 있으며, 매주 토요정진반과 일요정진반을 운영하고 있어 바쁜 현대인들의 수요에 부응하고 있다. 보리수선원은 참선 수행에 처음 입문하는 재가불자들을 위해 참선이론부터 실수까지 일대일 상담형식으로 진행된다. 초보불자들의 수행정진을 위해 특별 강의를 하는 곳도 있다. 서울 수선회는 오는 2월 10일
1975년 1월 13일 입적 전강(田岡) 영신 스님은 20대 초반에 개안(開眼)을 이루고 30대에 조실의 지위에 오른 현대 한국 선종의 대표적인 선지식으로 추앙 받는 인물이다. 특히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스님 등 당대 최고의 선지식을 찾아 직접 법거량을 통해 인가를 받는가 하면 육조 혜능과 마조, 임제의 사상을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함으로써 경허와 만공 스님 이후 선종의 맥을 잇는 가교 역할을 담당했다. 전강 스님은 1898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나이 16세 되던 해인 1913년 유기 행상을 하다 만난 한 스님과의 인연에 의해 해인사에서 출가했다. 출가 이후 피나는 수행과 정진을 계속하던 스님은 도반이었던 사미승이 갑작스럽게 죽자 ‘삶의 허망함’을 깨닫고 이 때부터 만공 스님으로
2월 15일. 40여년 이상을 수행정진해 온 한국 대표 선원장 스님들의 향훈을 조계사 법당에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됐다. 조계사가 주최하는 ‘한국 선 중흥을 위한 선원장 초청대법회’〈표 참조〉는 15일부터 5월 9일까지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조계사 대웅전에서 총 13회에 걸쳐 진행된다. 이번 대법회의 취지는 ‘간화선 위기론의 해법 제시’와 ‘재가 신도들의 수행 고취’ ‘수행의 대중화’로써 한국선의 진면목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수 있는 자리다. 왼쪽 상단부터 고우 스님, 무여 스님, 혜국 스님, 대원 스님, 현웅 스님, 지환 스님. 선지식들의 생생한 ‘법문’ 2004년의 화두가 ‘수행’으로 떠오른 지금 한국 선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전국 30여 시민 선원에서 30
방한암(方漢岩) 큰 스님은 조선조 말 1876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22세 때 우연히 금강산 구경길에 나섰다가 장안사(長安寺) 행름노사를 만나 삭발 출가하였다. 24세 때에 당대 최고의 선지식 경허대선사를 청암사에서 만나 『금강경』을 배우던 중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忘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라는 구절에서 큰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개안(開眼)의 기회를 얻었다. 그 후 스님은 해인사, 통도사를 거쳐 평안도 맹산군 도리산에 있는 우두암에서 홀로 참선수행하던 중 아궁이에 불을 지피다가 홀연 큰 깨달음을 얻고 다음과 같은 오도송을 읊었다. 한암 스님의 생전 모습. 부엌에서 불 지피다/홀연히 눈 밝으니 이로부터 옛길이/인연따라 분명하네 만일 누가 달마스님이
1966년 2월 7일 입적 화산 수옥 스님은 금룡(金龍)·혜옥(慧玉) 스님과 함께 한국불교의 비구니 3대 강백으로 후대 비구니들의 지표로 추앙받는 스님이다. 오늘날 비구니를 대표하는 니승이라면 대부분이 그의 제자라 할 정도로 비구니계에 미친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비구니 교육의 중요성을 일찍이 간파해 평생을 후학 양성과 주력해 온 수옥 스님은 16세에 출가해 덕숭산 수덕사 견성암에 몸을 담았다. 스님은 그 해에 법희(法喜) 스님을 은사로 출가 득도했으며 다음 해에 비구 청월(淸月) 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했다. 견성암에서 수행에 전념하던 스님은 19세가 되던 해 전문강원이 있는 해인사를 찾아 고경화상(古鏡和尙) 밑에서 2년 동안 사집과를 수료했다. 28세 봄이 되던 해, 스님은 서
“동국대가 그 동안 외적인 팽창에 주력했다면 지금부터는 내실에 중점을 둘 때라는 것이 많은 분들의 지적입니다. 이런 지적을 잘 수용해 동국대가 내적 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총장을 지원하고 여러 이사들의 뜻을 모아나갈 것입니다.” 지난 1월 27일 196차 동국학원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21대 이사장으로 선임된 전 월정사 주지 현해 스님〈사진〉은 “여러 이사들이 뜻밖에 이런 중책을 지워줘 심적으로 부담이 크다”며 “앞으로 이사장으로서 학교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현해 스님은 58년 만화 스님을 은사로 득도한 후 59년 월정사에서 탄허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 했으며 65년 해인사에서 비구계를 수지했다. 이후 68년 조계종비 1기생으로 동국대를 졸업하고 8
부산 승학산 기슭에 위치한 해인정사가 올해 말께 대작 불사 회향을 앞두고 ‘작은 총림’의 위용을 갖춰가고 있다. 올 연말까지 문화회관과 종각 공사를 끝으로 대작불사를 회향할 해인정사 전경. 산새가 준엄하고 기세가 높아 ‘학이 날아오르는 듯한 모습’이라는 뜻을 가진 승학산의 기운을 적당히 감싸 앉은 부산 사하구 괴정동 해인정사(주지 수진 스님)는 이제 6살이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그 자태가 장엄하면서도 안정적인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해인정사 대작불사를 추진한고 있는 수진 스님은 99년 8월 5000천 평의 대지에 종교용지 1500평에 이르는 본격적인 대작불사를 착공했다. 해인정사는 2000년도 4월 건평 200여 평에 이르는 3층으로 된 종무소, 공양실, 시민선방으로 활용할 요사채를
1940년 2월 24일 입적 용성 스님은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격동기 속에서 불교사상가이자 우국지사로 명성을 날린 근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선지식이다. 스님은 대각 운동을 펼쳐 침체된 한국불교를 개혁하고자 했으며 불교경전을 한글로 번역하는 역경작업에 주력함으로써 불교를 대중화시키는데 앞장섰다. 또 3·1운동 당시 만해 스님과 함께 민족 대표 33인에 불교대표로 참가하는 등 일제 강점기 속에서 민족의 주권을 되찾으려는 독립운동에도 최일선에 섰던 인물이다. 스님은 열여섯에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던 중 ‘수도 정진을 통해 깨달음을 얻겠다’는 발원을 세우고 다시 해인사에서 출가를 한다. 해인사에서 승려로서 기본 소양을 배운 용성 스님은 이후 의령 고운사를 찾아 수월 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