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종 총무원(총무원장 향운 스님)은 7월10일 오전 종단 총본산 경주 망월사에서 창종 50주년 기념 및 보살계 수계산림법회를 봉행했다. 법회에는 총무원장 향운 스님을 비롯해 부원장 운오, 종회의장 원봉 스님 등 사부대중 600여명이 동참했다. 대한불교원효종이 창종 50주년을 맞아 불제자로서 계를 철저히 지키겠노라 서원했다. 원효종 총무원(총무원장 향운 스님)은 7월10일 오전 종단 총본산 경주 망월사에서 창종 50주년 기념 및 보살계 수계산림법회를 봉행했다. 법회에는 총무원장 향운 스님을 비롯해 부원장 운오, 종회의장 원봉 스님 등 사부대중 600여명이 동참했다. 보살계는 출가와 재가를
▲ 장안사 대웅전. 문화재청은 부산시 기장군에 있는 장안사(長安寺) 대웅전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5월24일 밝혔다. 장안사는 신라 문무왕 13년(673)에 원효대사가 창건해 ‘쌍계사’라 불리다가, 애장왕(809) 이후 ‘장안사’로 고쳐 불리게 된 사찰로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조선 인조 8년(1631) 의월 스님과 인조 16년(1638) 태의 스님이 각각 중창했다고 전한다. 현재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7호로 관리되고 있는 ‘장안사 대웅전’은 2009년도 부산대 현장조사 때 천장반자에서 발견된 4건의 묵서명(墨書銘)을 통해 대웅전이 효종 8년(1657)에 중창된 이후 부분적인 수리 외에는 주요 구조부가 원
“깨친 즉 그만이요, 더 이상 공덕을 베풀지 않나니, 모든 유위법과 같지 않도다. 주상(住相)이 있는 보시는 천복(天福)을 생하게 하지만, 그것은 하늘에 화살을 쏘는 것과 같도다.” 영가(永嘉)대사의 말을 음미해 보자. 영가대사는 돈오돈수(頓悟頓修)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선가적인 입장에서 깨친다는 것은 사고방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즉 소유론적 입장을 떠나 홀연히 존재론적 사고방식에로 일시에 회전하는 것이 곧 부처되는 길을 밟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가의 사유에 따르면, 불교는 어떤 정신적인 것(something spiritual)을 점진적으로 터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고방식(mentality)을 전적으로 소유의 의식에서부터 이중부정적인 초탈의 사고방식(非∼非∼=neither∼nor∼)과 동시
▲대한불교원효종(총무원장 향운 스님)은 4월15일 오전 서울 효창공원 원효대사 성상 앞에서 ‘원효보살 열반 1326주기 추모대재’를 봉행했다. 화쟁국사 원효 스님 열반 1326주기를 맞아 추모행사가 열렸다. 대한불교원효종(총무원장 향운 스님)은 4월15일 오전 서울 효창공원 원효대사 성상 앞에서 ‘원효보살 열반 1326주기 추모대재’를 봉행했다. 이날 총무원장 향운 스님은 “1300여년전 우리 민족정신과 한국사상의 첫 새벽을 환히 열어놓은 원효선사는 진리는 자신 마음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씀했다”며 “모든 불자들은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돈오(頓悟)하여 무생(無生)을 요달하고서 부터는 모든 영욕에 어찌 근심하고 기뻐하겠는가?” 돈오의 경지에 노니는 것은 공의 경지에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의 경지는 이미 원효대사가 ‘금강삼매경론’의 서문에서 암시하였듯이, 비유비무(非有非無)라는 이중부정과 같은 초탈의 경지에서 머무는 것을 말한다. 초탈의 경지는 곧 바로 해탈의 경지를 말한다. 해탈의 경지는 일체의 경계를 다 벗어나 있는 상태이니, 그것은 존재와 무의 양 경계를 떠난 상태와 같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방식은 다 대대법(待對法)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은 다 서로 짝을 이루어 존재한다.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반짝거리는 새벽별을 보고 홀연히 깨달았다고 하는 것도 새벽별의 반짝거리는 이중적 대대법(待對法)이 우주의 진리임을 부처
경남과학기술대학 청담사상연구소(소장 허익구)는 최근 ‘마음사상’ 제9집을 펴냈다. ‘청담선사의 정화불사 재조명’을 특집으로 다룬 이번 논문집에는 △원효대사의 일심과 청담선사의 마음(오형근) △청담조사의 정화운동의 역사적 의의(김선근) △청담조사의 정화사상의 현대적 활용 방안 연구(김응철) △청담조사의 정화사상과 현대적 구현(김방룡) △청담의 불교정화운동과 이념(김광식) 등이 게재돼 있다. 또 기고 논문으로 △청담의 ‘마음’과 원오의 ‘심요’ 고찰(선응 스님)이 실려 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지난 4월15일 입적한 성수 스님은 구순이 가까운 나이에도 새벽예불을 거르지 않고 철저하게 계행을 실천하면서 후학들에게 모범을 보였던 선지식이었다. 4월15일 통도사 관음암에서 세연을 마감한 활산당 성수 대종사는 철저한 계행을 바탕으로 한국 간화선의 전통을 계승하려 노력했던 스님이었다. 효봉·구산·인곡·청담·성철 스님 등 현대 한국불교사에서 대표적인 선사들과 촌철살인의 법거량을 나눌 정도로 법의 경지에 오른 대표적 선사이면서도 구순에 이르도록 새벽예불을 거르지 않았으며 휴지 한 장도 허투루 쓰지 않을 정도 철저한 계행을 실천하면서 후학들에게 모범을 보였던 선지식이었다. 1923년 경남 울주에서 태어난 스님은 어려서부터 또
▲조계종 원로의원 활산당 성수 대종사가 15일 오전 6시 통도사 관음암에서 입적했다. 조계종 원로의원 활산당 성수 대종사가 4월15일 오전 6시경 통도사 관음암에서 입적했다. 법랍 69세, 세납 90세. 1923년 경남 울주에서 태어난 성수 스님은 10대 후반에 ‘원효대사’ 같은 도인을 한 번 만나보겠다며 운수행각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스님의 발원은 1년이 넘도록 이뤄지지 않았고, 그러던 어느 날 양산 내원사에서 성암 스님을 만나 출가수행자의 길에 올랐다. 1948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55년 범어사 강원을 졸업한 성수 스님은 1967년 조계사를 시작으로 범어사, 해인사, 고운사, 마곡사
“창칼을 만나도 언제나 태연하고, 독약을 마셔도 한가롭고 한가롭도다.” 죽음의 공포가 불법을 깨친 이에게 한낱 어린아이 장난 같다는 것이 영가대사의 생각이겠다. 성철 큰스님은 그의 저서인 ‘신심명, 증도가 강설’에서 구마라습의 제자인 승조 스님과 또 달마대사의 일화를 각각 소개하셨다. 승조(僧肇) 스님은 당시 요진나라 임금이 그를 탐내어 재상으로 삼고자 하므로 사양하는 그를 위협하여 그 직을 맡도록 강요했다. 이에 승조 스님은 죽음을 감수하고 그 요청을 거절했다는 일화를 소개하셨고, 유명한 달마 스님은 그의 설법으로 많은 중생들이 감화를 받는 것을 보고 질투심을 느낀 이들이 그를 죽이려고 시도했으나 다 실패하고, 드디어 여섯 번째에 독약으로 그가 세상의 인연을 스스로 다했다는 것이다. 그가 죽은 뒤에
▲독립운동가이자 시안, 만해 한용운 어두웠던 일제강점기를 밝혔던 민족의 혼불이 만화 속에서 다시 불을 밝혔다. 운주사가 만화고승열전 4번째로 ‘독립운동가이자 시인, 만해 한용운’을 펴냈다. 두꺼운 위인전 한 권보다 보기 쉬운 그림으로 만해 스님에 대한 이해는 물론 재미까지 곁들였다. ‘왕눈이 스님’, ‘나라를 구한 스님, 사명대사’, ‘부처님이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춤추는 스님, 원효대사’, ‘부처님 지혜를 배우는 불교우화 41가지’ 등 불교만화를 그려온 정수일 작가의 세심한 작업이 돋보인다. 한 손엔 염주를, 한 손엔 ‘님의 침묵’ 시집을 들고 붕어를 탄 채 일본군을 몰아내는 표지부터 눈길을 끈다. 실제 만해 스님 초상과는 사뭇 다른 그림이지만
▲원효 스님이 ‘화엄경’을 읽었다는 금산 화엄봉에서 바라다 본 보리암. 스님도 깎아지른 바위 위에 걸터앉은 도량을 봤으리라. “나무관세음보살.” 겨울 보낸 나뭇가지 사이로 합장한 마음이 걸렸다. 굽어보는 해수관세음보살상 뒷모습이 그윽하다. 멀리 다도해가 일렁였다. 남해 금산 보리암이 가슴에 담긴 순간이다. 남해 보리암(주지 능원 스님)은 강화 보문사, 여수 향일암, 양양 홍련암과 더불어 대표적인 관음기도도량이다. 금산 복곡 제2주차장에서 800m 오르다 100m 아래로 난 계단을 내려가야 만날 수 있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다. 아이와 함께 온 부부와 지팡이 짚은 노보살, 연인들, 도량을 내려오는 기도객들이 마
정토왕생 발원하며 청정 지켜남편과 더불어 칭명염불 수행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왕자 싯다르타는 부처가 되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보리수 아래 길상초를 깔고 앉아 금강 삼매에 들었다. 이때 그를 방해하기 위해 마왕 파순의 세 딸이 등장한다. 딸들은 각 600명의 여인으로 변신해 왕자를 유혹했으나, 싯다르타는 이에 현혹되지 않고 마침내 위없는 깨달음을 이룬다. 여기서 마왕의 세 딸은 애욕과 욕망의 상징인 동시에, 남성의 본능을 일깨워 번뇌를 유발하는 수행의 장애를 뜻한다. 한국불교의 고승 수행담 및 불교설화에서도 여성은 남성 구도자의 수행을 방해하는 장애요소로 종종 등장한다. 남성 위주의 불교사에서 특히 여성의 존재
봄소식을 알리는 입춘이 지났는데도, 제 65차 108산사순례 팔공산 수도사에 도착하자 매서운 칼바람이 가사자락을 휘감는다. 겨울이 겨울답게 마지막 추위를 한껏 품어내는 것 같다. 나와 우리 회원들은 수도사의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 추위도 아랑곳없이 먼 길을 달려왔다. 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봄이 오면 풀과 나무들은 저마다 자기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추위조차 인내한다. 그것이 진리이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병풍바위 아래에서 원효대사 역시 많은 제자들을 데리고 추위를 견디고 이곳에서 수도를 하였으리라. 그래서 절의 이름도 금당사에서 수도사로 바뀌어졌다. 많은 후대의 학자들은 원효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은 일심(一心)이라고 평가한다. 일체유심조가 그렇고 마음의 근원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원효는 “인간은
▲정찬주 “원효대사께서는 ‘십문화쟁론’에서 둘이 융합하지만 하나로 획일화되지는 않아야 한다고 법문하신바, 화쟁은 특정한 종교라는 울타리를 넘어 사회적인 갈등을 치유하는 가장 수승한 처방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수상을 21세기에 맞는 원효 대사의 일대기를 집필하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12월13일 부산일보 대강당에서 열린 화쟁문화시민포럼(이사장 법산 스님) 창립 2주년 기념법회에서 소설가 정찬주씨가 화쟁문화대상 문화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정찬주 소설가는 “지역, 계층, 이념, 세대간 모든 갈등과 대립을 원효대사의 화쟁 사상으로 풀어내고 평화와 행복을 위해 화해 및 화합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앞장서 온 화쟁문화시민포럼에서 이 같은 상을 받아 영광”이라며 “온
기억이 개인의 정체성이라면 역사는 한 나라의 정체성이다. 삼국시대 일본이 한민족의 역사에 등장한 이래 그들은 늘 침략자로 인식돼 왔다. 그 옛날 고도의 문화를 전수해줬음에도 분탕과 노략질을 일삼았으며,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라는 민족적 수난의 구렁텅이로 내몬 것도 그들이었다.일본을 혐오하는 감정. 어쩌면 그것은 켜켜이 쌓인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돼 어느덧 우리 민족의 유전자처럼 자리 잡게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는 오늘날 일본불교를 바라보는 한국불교계의 인식과 그리 다르지 않다. 제국주의 선봉에 서서 한국불교의 오랜 전통을 무너뜨리려
‘정토삼부경’ 인연 지은 후원효·신란 정토 핵심 연구 붓다에 대한 믿음 확고해야염불신심 요체 제대로 파악 ▲효란 스님 “부처님의 빛을 비로소 빛내겠다(초휘불일·初輝佛日)”고 자칭한 신라 고승! 화쟁사상을 통해 피폐해진 민초들의 삶에 희망을 전하며 새로운 땅을 일구려 했던 스님, 원효대사! 아홉 살에 출가한 일본의 신란(親鸞) 스님. 득도일에 벌어진 유명한 일화가 있다. 득도 하던 날. 스승 지엔(慈圓)은 “저녁이고 시간도 늦었으니 득도식은 내일로 하자”고 말했다. 이에 소년이 노래로 답한다. “내일이 온다고 생각하는 마음 때문에 벚꽃을 볼 수 없을지 모른다. 밤중에 폭풍우가 불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득도식은 그날
청담사상연구소(소장 허익구)는 11월4일 오후 2시 경남과학기술대 학생회관 공연장에서 제10회 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 ‘청담대종사의 정화불사 재조명’이란 주제로 열리는 이번 학술세미나에선 △원효대사의 일심사상과 청담선사의 마음정화사상(오형근 동국대 명예교수) △청담대종사의 정화운동의 역사적 의의(김선근 동국대 명예교수) △청담대종사 정화사상의 현대적 활용방안 연구(김응철 중앙승가대 교수) △청담대종사의 정화사상과 현대적 구현(김방룡 충남대 교수) △청담대종사의 불교정화운동과 정화이념(단계별, 총괄적 이해를 중심으로)(김광식 동국대 연구교수) 등 논문이 발표된다. 055)751-3698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백련정진회는 ‘법화경’ 교육과 수행모임이다. 지난 9월3일 봉행한 창립법회 모습. 사진 맨 아래는 수행어첩. “교육 없는 수행은 맹신에 불과하고 수행 없는 교육은 울림이 없다.” 20년 동안 ‘법화경’ 교육과 사경수행에 몰두하고 있는 법화경연구원 법성사 주지 법성 스님 신념이다. 교육과 수행은 양 날개로 둘 중 하나가 빠지면 날 수 없다는 게 스님 설명이다. 스님은 강남 봉은사 교무국장 소임을 맡아 교양대학에서 사부대중 다수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전했지만 수행이 부족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법성사에서 ‘법화경’ 강의와 사경을 이끌던 스님은 ‘법화경’을 통해 완전한 행복으로 가는 교육, 수행, 정진모임을 발원했다. 그 결과 지난 9월3일 오전 10시 법성사
심장병에 천식. 숨소리 크니 도반 정진에 불편. 대중생활 접고 토굴 생활.선열 속에 그리지 않았으니 내 그림 ‘선화’ 아냐.언행 살펴 고쳐 나가는 게 수행.선택 했다면 절박함으로 다가가라.예단은 필요 없고, 평가는 두려워할 게 아니다. ▲일장 스님. 낸시 함멜의 시 ‘여행’은 이렇게 시작한다. ‘길을 선택해야만 했을 때 나는 서쪽으로 난 길을 택했다. 길은 유년기의 숲에서 성공의 도시로 이어져 있었다.’ 샤르트르가 ‘인생은 B(Birth. 탄생))와 D(Death. 죽음) 사이의 C(Choice. 선택)’라 한 것처럼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출가도 선택이다. 그 누구도
경산 압량군 불지촌서 탄생15세 때 출가해 수행 전념 도반 의상과 당 유학길에서시체 썩은 물 마시고 대오 ▲원효는 평생 밤을 지새우는 학문생활과 거리를 누비는 교화의 길을 걸으며 스스로의 삶을 불살랐다. 그림은 이종상 화백이 그린 원효대사 표준 진영. 원효(元曉)의 성은 설씨다. 할아버지는 잉피공(仍皮公), 아버지는 담내(談)이었다. 담내는 지금의 경산인 압량군 불등을촌에 살았다. 어머니는 유성(流星)이 품속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꾸고 임신했고, 만삭이 되어 밤나무골 밤나무 아래를 지나다가 홀연히 분만했는데, 오색구름이 주위를 덮었다. 이렇게 원효는 밤나무 아래에서 태어났다. 진평왕 39년(617)에. 그는 오색구름을 타고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