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송 시간이 지연됐으니, 회수해 가라.”엘리베이터 고장으로 29층까지 걸어 올라간 배달 기사가 고객에게 들은 말이다. 게다가 고객은 별점 1개와 부정적인 리뷰를 남겼다. 이후 관련 내용이 방송을 통해 퍼지자, “늦어진 아이들 끼니 때문에 예민해진 탓에 너무 제 입장만 고수한 것 같다”며 사과했다. 고객의 갑질이었을까, 정당한 권리였을까, 아니면 복잡한 조건이 초래한 모두가 불행한 상황이었을까.|최근에는 개인화, 더 나아가 초(超)개인화로 인하여 사회정의 기준이 자기 자신이 되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갑질의 이면에선 기존의 사회정
조계종 연예인전법단이 출범했다. 가수‧국악‧방송‧연극‧희극‧탤런트 총 6개 분과 177명으로 구성됐고, 사무실은 서울 성북구 적조사에 두었다. 명실상부 조계종 포교원 산하의 종령 기구이기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이 전법단의 총재인 범해 스님(현 포교원장)과 전법단장 탄탄 스님(전 불교중앙박물관장), 자문위원장을 맡은 자광 스님(전 동국대 이사장) 등과 문화예술계를 향도해 온 불자 연예인들이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온 결과일 것이다. 무엇보다 교계의 지원이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의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불법을 전하겠다는 굳건
경기도 광주 천진암은 스님들이 초기 가톨릭 신자들을 도왔던 절이었지만 지금은 온통 가톨릭 성지로 뒤바뀐 곳이다. 이에 대해 불교계 내부에서 비판과 분노의 목소리가 나온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글은 월간 ‘대중불교’ 편집장이었던 김희균씨가 ‘천진암터에서 천주교가 벌이는 백 년 동안의 시위’라는 주제로 해인사가 발간하는 ‘해인’ 1995년 12월 166호에 기고했던 글이다. 해인사의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편집자지난여름에 불자 김환봉씨가 ‘대중불교’를 찾아왔다. 십여 년 만의 만남이라 반갑게 안부를 묻고 나니 그는 뜻밖의 주
‘장독대와 브랜드’라 하면 무슨 싶기도 하지만 이는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을 대표하는 사업 ‘종로&장금이’를 말한다. 2013년부터 시작한 사업이 올해로 꼭 10년을 맞았고, 최근 장담그기 노하우를 담은 ‘장금이의 장맛’까지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종로&장금이’는 애초 전통장 문화를 전수하기 위한 노인전문자원봉사단에서 시작했다. 단순히 복지관 프로그램 중 하나였기에 어르신들이 장문화를 학습하고, 장을 담그는 활동에 그쳤다. 시간이 흐를수록 참여자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종로&장금이에 대한 지속가능성을 확인하면서 복지관은 새로운 도전에 나섰
공직자라면 누구나 다 지켜야 하는 여섯 가지 의무 사항이 있다. 그 중 첫 번째가 “법령을 준수하여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는 성실 의무이다. 임용고시를 거쳐 공직사회에 들어간 사람이든, 전문직으로 채용된 사람이나 시‧도지사와 교육감 그리고 시장‧군수처럼 선거를 통해 직책을 맡게 된 선출직이든, 공직자는 이 의무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 과거와 달리 일반 행정직 공무원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일은 많이 사라졌지만,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 이후 선출직 공직자들 중에 위법 행위로 사법 처리되거나 여론의 질타를 당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읽어 봤을 이야기 중에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요정이 나오는 것이 있다. 바로 ‘알라딘과 요술 램프(Aladdin’s Wonderful Lamp)’로 아라비아 지역의 민화를 묶어 만든 ‘천일야화’의 한 편이다. 여기서 요술 램프를 닦으면 램프요정이 나와 주인의 소원을 들어준다.하지만 현대 심리학에서 이 램프는 좋은 의미로 쓰이지 않는다. 램프 증후군(Lamp syndrome)으로 일명 ‘과잉 근심증후군’이다.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는 램프를 한 번만 닦을 수 없는 것처럼 걱정을 만들어 주는 램프를 계속해서 닦아
서울시가 서울순례길을 안내한다는 명목으로 가톨릭 정체성을 상징하는 하트 모양의 마크를 중구, 종로구, 용산구, 마포구 일대의 1105곳에 설치한 데 이어 특수 주문한 붉은색 보도블록으로 보행도로에 십자가를 형상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역 인근의 2,1km 구간에만도 십자가를 비롯해 기도, 비둘기 등의 가톨릭 상징물 377개가 있다. 가톨릭식의 ‘땅 밟기’를 서울시가 주도해 보려는 것인가?동학의 역사를 모두 묻고 가톨릭 성지로 변모시킨 서소문역사공원. 역사 왜곡까지 서슴지 않으며 가톨릭의 역사를 부각하려는 광화문 역사물길. 총 44
황금빛 단풍잎이 비처럼 내리는 운문사 은행나무, 학인들은 논강이 끝난 뒤 은행나무로 달려가 ‘잎비’를 발로 흩으며 가을을 만끽한다. 그 은행나무는 이맘때쯤이면 그 장관을 일반인들에게도 개방한다. 지금 운문사 도량에는 황금빛보다 더 빛나는 회주 법계명성스님이 계신다. 내가 회주스님을 처음 뵌 것은 1978년 만추의 계절, 은행나무가 찬란한 빛을 내뿜는 10월, 치문 방부생으로서였다. 당시 회주스님께서 1977년 최초로 학장과 주지를 겸직하시게 된 지 얼마 안 된 시기로 운문사 학인들 건사하랴, 도량보수 및 불사를 계획하고 추진하시랴,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다. 풀은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눕는다”(‘논어’)라는 말이 있다. 쉽게 말하면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지향에 따르기 마련이라는 말이다. 어떤 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윗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랫사람들은 금방 안다. 그리고 윗사람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쏠리게 마련이다. 윗사람이 아무 작용을 하지 않는 것 같아도 조직 전체의 성격과 지향이 가장 위에 있는 한 사람의 인격성에 좌우된다. 그래서 윗사람 된다는 것은 어렵고, 그 자리가 무거운
핼러윈 참사로 우울하고 분노스럽던 11월4일 밤, 경북 봉화의 아연광산 지하갱도에 갇혔던 광부 2명의 무사생환 소식이 속보 자막으로 나왔다.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며 그들의 생환 소식을 몇 번이고 들었다. 어둡고 두려운 공간에서 9일간의 사투 끝에 무사히 구조됐다는 뉴스는 핼러윈 참사로 인한 우울한 마음을 잠시나마 달래주는 ‘감격’의 순간이었다. 이 사건 일지를 보면서 불교에서 말하는 ‘동체대비’의 마음이 바로 이런 가르침이구나 새삼 깨달았다. 어두운 갱도에 갇혀 생사를 다툴 동료들을 위해 밤낮을 쉬지 않고 탄광을 파들어간 동료 광
조계종 사회노동위가 9~11일까지 3일 동안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리며 오체투지 했다. 첫날은 조계사에서 남대문 경찰서까지, 이튿날은 남대문 경찰서부터 삼각지까지, 마지막 날은 용산 대통령 집무실-전쟁기념관-녹사평역을 지나 이태원 현장까지 이어졌다. 오체투지에 앞서 전한 사회노동위원장 지몽 스님의 호소는 울림이 크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분들을 추모하며 유가족분과 많은 국민의 분노, 슬픔 그리고 고통이 조금이라도 녹아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거리에 몸을 눕히겠다.” 이에 앞서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영가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추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과 공직자는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가진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이번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서도 공직자들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세월호 참사는 인천을 출발해 제주도로 행하던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안산 단원고 학생을 포함한 305명이 사망한 사건이며, 이번 이태원 핼러윈데이 참사는 코로나19로 모임을 구속받던 젊은이들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나들이 길에 인구 십만이 넘는 과밀로 좁은 골목길에서 154명의 압사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모두가 사고에 대한 긴급 대책에 따른 안전 메뉴얼
30년 전의 일이다. 한 젊은 청년이 우연히 조계사를 들리게 됐다. 법당 입구에 서책이 있었다. ‘불교 기초교리’였다. 한 권을 집어 들자 곁에 있던 사람이“2000원입니다”라고 했다. “처음 오는데 책을 그냥 주지 않느냐?”고 하니 오히려 의아하다는 듯 바라봤다. 그냥 내려놓고 난생처음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절도 했다. 생각하니 교회는 처음 갔을 때 성경, 찬송가와 몇 종류의 책을 더 준 것이 기억났다. 오랜 세월의 숨은 인연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자꾸 법당 앞에서 당당하게 파는 책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뜻밖의 사고로 생을 달리한 꽃다운 영가님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불교계가 깊은 애도를 표했다. 아울러 “이번 핼러윈 데이에 많은 인파가 모일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가능했지만, 시민 안전을 위해 배치된 경찰력은 200여명에 불과했다. 세월호 아픔도 여전한데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며 경찰의 안일한 대처를 지적했다. 이에따라 불교계는 “참변의 원인과 과정을 철저히 살펴 더이상 미래의 주역인 청년들의 희생이 없도록 해야한다”며 참사의 원인을 철저히 밝힘과 동시에 재발을 방지
어이없는 참사가 일어난 다음 날 아침 삼각지와 국방부를 거쳐 이른 출근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도로 양쪽으로 길게 몸을 늘어뜨린 은행나무 가지들이 마치 곡(哭)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 뒤 녹사평역 사거리에서 남산2호터널 방향의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즈음이었다. 머릿결이 쭈뼛하게 일어서는 묵직한 느낌과 함께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순간 나도 모르게 길 건너 이태원 쪽을 쳐다보았다. 소방차와 경찰차가 비상등을 깜빡이며 오갔고, 언론사 소속 취재 차량 수십 대가 무질서하게 뒤엉켜 있었다. 어젯밤의 아비규환과 무간지옥의
잘 만들어진 품격 있는 녹차를 만나면 생각나는 감사한 인연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해였다. 선배와 경복궁 동문 쪽에 있는 법련사(法蓮寺)에 간 적이 있다. 승보종찰 송광사의 서울 국제선원이었다. 절은 두 채로 이어져 있었다. 아래채는 대웅전으로, 돌계단을 몇 개 올라가는 위채는 관음전과 옆에 객방 등으로 이루어져 이곳에서 청년법회(法會)가 열렸다. 어느 여름날 위채 관음전 쪽에서 연세가 있어 보이는 어른 세 분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스님 한 분을 보게 되었다. 차를 마시는 그 스님의 모습은 먼발치에서도 내가 만난 사람들과
“아빠, 나 더 이상 포켓몬빵 안 살거야” 평소 포켓몬빵에 목을 매던 초등학교 2학년 딸이 한 말이다. 모두 알다시피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SPC그룹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단지 어린 여성노동자 한 명이 사망해서가 아니라, 고인의 죽음조차 능멸한 회사, 단지 한 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문제를 일으켰던 회사에 대해서 사회적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다. 산업재해 분야에서는 ‘1대 29대 300법칙’이라고도 불리는 하인리히 법칙이 있다. 중대사고가 1건 발생했다면, 같은 원인으로 29건의 작은 사고가 발생했고, 다행히 피해는 없지만
나는 요즘 가을걷이에 참 바쁘다. 봉숭아, 맨드라미, 부추씨, 벌개미취, 등심붓꽃씨 등을 가을 햇볕에 말리는 등 가을걷이에 손길이 바쁘다. 짚단을 가져다 아직 어린 수국을 감싸서 겨울을 준비하기도 한다. 등에 닿는 햇살이 참 따뜻하고 평화롭다.어린 시절, 가을철 엄마는 고구마도 캐고 들깨도 털고, 콩 타작도 하고 무척 바빴다. 어린 딸도 손길을 보태기 바랐다. 늘 하던 말이 “봄에는 집안에 있는 모든 씨앗이 들판으로 나가고 가을이면 밖으로 나갔던 모든 것들이 되돌아 곳간을 채운다”고 했다. 그때는 무슨 소리인지 몰랐지만 그 나이가
국내 불교 관련 학회·연구소들이 서울시의 가톨릭 편향 정책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보조사상연구원, 불교학연구회, 한국불교학회, 한국선학회, 한국교수불자연합회 등 29개 단체가 참여했다. 한국 불교사에서 특정 사안의 한 성명에 이렇게 많은 학회가 참여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이례적이고 대규모다. 이 사안을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방증이다.광화문 역사물길, 가톨릭 서울 순례길, 서소문 역사공원 등의 가톨릭 편향 시책이 드러날 때마다 많은 학자가 언론을 통해 비판의 목소리를 낸 바 있다. 불교사회연구소가
문화대혁명을 겪은 중국은 유구한 역사의 뿌리를 스스로 송두리째 잘라버렸다. 뿌리가 잘린 나무는 다시 자랄 수 없듯, 파괴되고 끊어진 역사는 되살릴 수 없었다. 그것을 누구보다 절감한 중국은 지금 동북공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주변 민족과 국가들의 역사를 자기 것이라 우겨 중국 문화의 공백을 채우려는 것이다. 이왕이면 그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가져가고 싶을 터. 한민족과 한반도의 역사·문화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당연하다. 고구려도, 김치도, 한복도 무조건 자신들의 것이라고 우긴다. 그 모습이 뿌리 잘린 꽃처럼 보여 안쓰러운 마음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