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메르 예술의 극치, 크메르의 보석'이라는 찬사를 받는 곳이 반띠아이 쓰레이(Banteay Srei)이다. 앙코르 복원 작업에 참여했던 프랑스 건축가들이 남긴 탄성이다. '창조주의 두 손을 빌려와 창조주의 두 손을 창조한 사람, 영혼을 빚은 조각가의 삶과 예술 그리고 지독한 사랑, 신의 손을 지닌 인간' - 이것은 프랑스의 조각가 로댕에게 바쳐진 헌사이다. 정교함, 현란함, 치밀함을 좋아하는 여행자에게, 앙코르 유적 중 단 한 곳을 지정하여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반띠아이 쓰레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건축물의 어디를 샅샅이 꿰뚫어 보아도 단 1 평방센티미터의 여백이 없다. 숨이 막힌다. 재료가 돌인가 나무인가 흙인가 확신이 없어 송곳으로 찔러보고 싶다. 그럴 수는 없는 노
최근들어 우리 민속에 대한 생태학적인 접근이 학계와 환경운동계에서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다. 필자를 비롯해 일군의 학자들이 지난해 제8회 세계생태학대회에서 발표한 논문들도 우리 민속에 대한 생태학적인 고찰이었다. 개인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나라마다 민족마다 나름대로의 기억들이 있다. 기억을 잃어버린 나라와 민족은 불행하다. 그 기억들 가운데 민속은 가장 실제적이며 구체적인 문화로, 그 나라 그 민족의 존재증명이다. 민속은 자연적으로 발생하여 유기적으로 생성-발전-쇠퇴 또는 전승되는 것이기 때문에 가변성이 심하다. 그러면서도 민속의 가치는 그 가변성에서 나온다. 가변성은 곧 생명성을 의미한다. 민속은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교집합이기도 하다. 오늘에 와서 옛 민속이 생명의 차원에서 다시 거론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점에서 근대라고 한다면 언제부터일까? 역사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는 개항(1876) 이후를 근대의 기점으로 잡는다. 불교계 역시 이 시기부터 근대불교의 여명기가 시작되고 있지만, 그다지 정점이 될만한 사건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불교계는 그보다 조금 늦은 1895년에 가서야 비로소 250여 년 간 소위 '승려들은 절대 도성을 출입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족쇄가 풀리고(승려 도성출입금지 해제), 그로부터 7년 뒤인 1902년쯤 정부에서는 무슨 속셈인지 '이제야 전국사찰을 좀 관리해 봐야겠다'고 원흥사에 사찰관리서를 설치(1902)하는 시기가 자의든 타의든 변화의 모멘트가 된다. 이쯤 불교 출판계에는 서서히 현공겸(玄公廉)의 『석가여래전(釋迦如來傳)』(1912)과 이교담의 『팔
세상엔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들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자연의 소리는 아주 작고 여리기 때문에 아무나 들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하지만,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면 그 살뜰한 소리는 고요한 법계의 울림과 모든 존재 내면의 쩌렁쩌렁한 깨우침을 담고 있다. 그러나 보통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람은 세상사에 찌든 온갖 소음들만 귀 고막이 터져라 듣고 산다. 세상의 소음에 익숙해지다 보면 작고 여린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존재 본래의 청음 능력을 상실한다. 우리들 육근(六根)이라는 것이 본래는 세상의 작고 여린 소리를 다 들을 수 있었고 우주와 자연의 작지만 커다란 울림과 교감할 수 있었지만, 감각적이고 육감적인데 서서히 익숙해지다 보니 그 본래 능력을 상실하고 시끄러운 세상일에
필자가 선학을 연구하고 이를 수행정진으로 삼은 계기는 은사스님으로부터다. 필자에게서 은사는 부모와도 같았지만 선생님과도 같은 존재였다. 불서 중 요긴한 대목은 반드시 외우게 하셨고, 특별히 필자의 공부를 챙기신 은사는 선서의 내용을 간혹 말씀해 주셨고, 특히 좬육조단경좭에서 혜능스님의 구도여정은 시나리오를 보듯 실감나게 말씀해 주신 것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스님의 이러한 가르침은 나중에 선전 보는 데에 큰 힘이 되었다. 선사들의 행장과 선문답은 습관적으로 응주하게 되고, 선전의 선구는 ‘활검도’가 되어 내 눈앞에 빛으로 발산된다. 많은 선전중 필자가 유독 보배처럼 여기고 보는 것이 대주혜해의 좬돈오입도요문론좭이다. 언제나 곁에 두고 선학을
직장을 그만 두고 민규와 나는 참 행복했다. 민규를 어디든지 데리고 다녔다. 강의, 법회, 수련회 등. 아이는 마냥 행복해하며 따라 다녔다. 따라가면 내가 일을 마칠 때까지 한 두 시간 혼자서 지내야했는데도, 종이와 연필만 주면 그림 그리며 시간을 잘 보냈다. 그럴 때 나는 사랑한다는 것은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냥 함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한 것. 그래서 어디를 가는지 물을 필요도 없고, 꼭 상대해 주지 않아도 좋은 것. 그것이 사랑이구나 싶었다. 나는 아이에게서 참사랑이 무엇인지 배웠다. 그토록 진실한 사랑을 받고 있음에 스스로 감동하고, 아이가 더욱 사랑스러웠다. 아이는 나만 있으면 무조건 좋아했다. 나를 힘들게 하지도 않았고, 귀찮게 하지도 않았다. 내가 명상을 하고 있으면 옆에 누워서 뒹굴뒹굴
음력 1월 인등기도 봉행도 등 값 오천원에서 만원선 인등은 ‘1인1등’이 원칙이다. 한 사람이 하나의 등을 켜는 것이므로 네 식구의 한 가족이 사찰 신도로 등록한다면 네 개의 인등을 밝혀야 하지만 사찰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게 운영되기도 한다. 인등은 매달 음력 초하루에 공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날짜보다는 매달 빠뜨리지 않고 등공양을 올리는 것이 더욱 중요시 된다. 사찰에 따라서는 인등을 밝히는 불자들을 위해 음력 1일부터 사흘간 기도와 축원을 하는 인등 기도를 봉행하기도 한다. 인등 기도는 특별한 행사로 여겨지지는 않지만 신도들을 위한 정례기도인 만큼 사찰에서는 매우 비중있게 다뤄진다. 인등비는 사찰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보통 5000원에서 1만원선이다. 인등을
‘本’자는 나무 뿌리를 표시한 회의(會意)의 문자이다. ‘나무 木’의 밑 부분에 뿌리를 상징하는 一자를 결합한 것이다. 그러니까 ‘뿌리 본’이라 함이 더 정확할 것이나, 근본(뿌리 根, 本)이라는 뜻풀이로 읽고, ‘根’ 자를 ‘뿌리 근’으로 읽어왔다. 따라서 이 ‘근본 本’자는 나무 뿌리를 이르기보다는 모든 일의 밑뿌리를 이르는 의미로 쓰여져, ‘끝 말(末)’ 자와 대칭으로 쓰여 ‘본말(本末)’이라 함이 더 자연스럽다. ‘末’ 자도 회의문자로 나무의 윗 끝을 상징하여 ‘木’ 자 위에 一자를 얹어 ‘끝 말’이라 한다. ‘心’ 자는 토기(土氣)가 몸 속에 잠겨 있는 것을 상형했다고도 하고, 토기가 아닌 화기(火氣)라 하기도 한다. 혹은 심장의 모양을 본뜬 것이라 하나, 이는 좀 지나친 풀이인 듯하다. 이
모든 법회나 기도가 끝날 때 회향식과 회향발원을 합니다. 회향식에서의 회향이란 회전취향, 즉 돌이켜서 향하게 한다는 뜻으로 내가 쌓은 선근 공덕을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인 일체중생에 향하게 하여 함께 나누어 가지겠다는 의미로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회향은 다른 중생의 깨달음이나 열반을 위해 자기의 선근 공덕을 돌림으로써 자기가 닦은 공덕과 이익을 다른 이와 함께 나누는 불교의 지극한 자비사상이 표현된 것입니다.
액취는 양쪽 겨드랑이에서 특수한 냄새가 나는 병을 말합니다. 암내라고도 하는 액취는 겨드랑이에서 역겨운 냄새가 나는 증상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불쾌감을 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대개 이 병은 사춘기 이후 활발한 활동이 시작되는 청년기의 남녀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여자가 조금 더 많은 편입니다. 또 우성 유전성을 나타내는데 부모님이 액취증이 있으면 자녀들에서도 나타나기가 쉽습니다.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에 호르몬의 영향을 받아 아포크린 땀샘의 활동이 왕성해지면서 특이한 냄새를 내는데, 아포크린선은 전체의 약 95%가 양측 겨드랑이에 분포되어 있으며 나머지 5%는 음모, 유두, 배꼽 부위등에 분포되어 있으므로, 이곳에서 분비된 끈적끈적한 분비물이 세균과 반응하여 강한 냄새를 풍기는 것입니다
당뇨병이 현대 문명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일반사회의 설이 있으나 사실은 이 지구상의 인류의 역사와 함께 고대로부터 계속 이어져 내려왔다고 볼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에 쓰여졌다고 생각되는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 에서 “극도의 다뇨”라는 말이 있으며 당뇨병을 연상케 하는 여러 가지 증상 도 기재되어 있다고 한다. 로마시대의 Celsus(B.C. 30~A.D. 50)는 다뇨증에서는 살이 빠져서 중태에 빠진다는 것과 치료로는 안마술과 운동을 권장하고 식사량을 줄이는 것이 고 처음으로 임상적 기술을 하였다. Cappadocia(로마시대)에 살고 있던 Aretacus(A.D. 30~90)는 다뇨증에 대하여 diabetes(siphon)라고 병명을 지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증세를 기술하였다
홀로 있다는 것은 외로움이나 고독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 외로움이나 고독이란 느낌이 우리의 속 뜰을 더 생생하게 비춰 주고 우리 존재의 근원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여유와 깊이를 가져다준다. 혼자 있다는 것은 그냥 그 자체만으로도 한없이 충만한 것이다. 쉽게 생각해 보면 헛헛하고 외로워 보일지 모르지만 텅 빈 가운데 성성하게 깨어있는 속 뜰은 마구잡이로 채워 넣는 소유의 정신에 비할 바가 아니다. 홀로 있을 때 우리는 참으로 함께 할 수 있고, 작은 나의 허울을 벗고 전체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몸뚱이만 그저 덩그러니 혼자 있다고 해서 다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혼자 있으려면 번거로운 우리의 소유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잔뜩 소유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