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방행·살활종탈에 자재한 기풍 구축 운봉화상에 전법 후 서철 등과 선풍진작 슬프다, 이 종문의 악한 큰 도적아! 천상천하에 너 같은 놈 몇이런가. 업연이 벌써 다해 훌훌 털고 떠났으니 동쪽 집에 말이 되든 서쪽 집에 소가 되든. 哀哀宗門大惡賊 天上天下能幾人 業緣已盡撤手去 東家作馬西舍牛 향곡(香谷)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가장 절친한 수행의 동반자였던 성철(性徹)은 그 슬픔을 한 편의 게송으로 이렇게 표현했다. 그 내용이 과연 성철이었기에 가능한 파격의 글이거니와 향곡이 어떤 인물인가를 한 눈에 보여주는 문장이 아닐 수 없음이다. 향곡, 결론적으로 그는 우리 선가(禪家)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몇 안되는 큰그릇으로 평가받는 대선
인도는 두 가지 대조되는 전통을 갖고 있다. 하나는 침묵 가운데서 모든 분별과 망식(妄識)을 추구하는 신비적, 명상적(=요가적) 전통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과 만나서 토론하고 논쟁하는 합리적, 논리적 전통이다. 그와 같이 논리적으로 비판하고 논쟁하는 관행 속에서 논쟁법, 논리학(正理學)을 얻는 방법(量論)에 관한 학문이 발달하게 되었다. 유식(唯識) 논서의 하나인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엔 이타행을 하고자 발원한 보살로서 익혀야 할 학문을 다섯 가지(五明)로 열거하는데 그 가운데는 불교학, 의학, 공예 및 기술, 언어학과 더불어 논리학(因明)이 포함되어 있다. 타 학파의 주장이나 견해를 논박하고 불교의 진리를 변론하고 논증하기 위해서는 논리학의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든 고통과 고민은 바로 나 자신을 중심으로 생겨난 것인 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그 원인을 바깥에서 찾고자 하고, 외부적인 것에서 그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려 들기 때문에 오히려 일을 더 어렵게 만들거나 그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나무의 새싹과 열매가 바로 그 나무에서 만들어지듯이, 모든 고통은 자신으로부터 연유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그것을 알고 싶다면 《안반수의경》을 한번 펼쳐보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정신을 집중시켜 마음을 가다듬게 하는 실제적인 수행방법이 가장 체계 있게 설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전은 범어로 naap nasati인데 이를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이라 한문으로
자신이 장애가 있거나 자신의 가족들 중에 장애인이 있다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저 `전생의 업보려니'하고 체념하며 살아가야하는 것일까? 시각장애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불심깊은 사회인으로 또 사회봉사자로 우뚝 선 사람이 있다. 서울맹아학교, 조계사 원심회, 혜광맹인불자회등에서 점자를 지도해 시력을 잃은 이들에게 삶의 새빛을 던져주는 보살생을 묵묵히 행하는 양만석(52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양만석씨는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집밖으로 들리는 탁발스님의 염불소리를 들을 때만큼은 자신도 모르게 삼매경에 빠지곤 했다고 회고한다. 양만석씨는 장애인이라는 `부끄러움' 때문에 별다른 희망없이 살아왔다는 말하다. 20여년전
삼성생명 법인점포지원팀에 근무하는 이춘자씨는 요즘 친구들로부터 달라졌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평범한 직장여성으로 동료직원들과 비슷한 생각, 비슷한 주제로 곧잘 수다를 떨던 그가 갑자기 조용하고 많이 너그러워진 모습으로 점점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씨에게 이런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 유니텔 불교동회에서 개설한 불교교리강좌를 수강하면서부터. 이씨는 매주 교리강좌 담당자가 보내주는 자료를 PC통신으로 받아 불교공부를 하고 있다. 꾸준히 노력한 결과 부처님의 생애와 불교의 기초교리 등을 끝내고 지금은 밀린다왕문경을 공부하고 있다. 이씨는 교리강좌를 수강하며 의심나는 부분은 불교동호회내 자료실에 들어가 부족한 부분을 보충한다. 매주 한차례씩 PC통신을 통
거울이 물건을 비추는 작용을 '조(照)'라고 불렀다는 것은 앞에서 살펴보았다. 이말은 당대의 선사상에 특유한 의미를 갖고 있다. 말 자체는 승조(僧肇)와 대승불전에도 나와 있지만, 당대에 이르러 거울의 철학이 이루어지자 '조'의 일자는 널리 회자되는 선어가 됐다. 마음을 거울에 비유하는 발상은 탁월한 철리(哲理)로 발전해 갔던 것이다. 마음을 발견해가는 거울의 철학, 그것은 남악회양(南岳懷讓)이 그의 법제자 마조도일(馬祖道一)을 일깨우는 장면에서 더욱 극명한 가르침을 던져주고 있다. 남악회양은 거울을 가르치기 위해 벽돌을 사용하는데 마음을 반전시키는 극적효과마저 낳고 있다. 마조가 남악 전법원에서 홀로 정진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좌선에 열중하면 어느 누가 내방해도 맞이하는 법이 없었다.
PC통신 불교동호회가 신행활동의 영역에서 한 단계 발전해 본격적인 불교학자료실를 갖춘 학습공간으로 탈 바꿈하고 있다. 최근 본격적으로 불교학자료를 갖추기 시작한 PC통신 불교동호회는 하이텔, 나우누리 유니텔 등 3개 통신망. PC통신에 들어있는 자료는 경전류, 불교와 인접학문, 타 종교관련 정보, 역대 선사와 고승들의 어록과 법문집 등 기초부터 전문적인 자료까지 불교에 관련된 정보가 다양하게 배열되어 있다. 서로 정보와 자료를교환하는 등 다양하고 질 높은 자료를 확보하면서 참신한 불교강좌가 선 보이는 것도 최근의 추세다. 지난 94년 개설된 나우누리는 초기화면에서 GO BUD→ENTER→ 불교동호회부처님 마을→10번 교리강좌로 들어가면 기초교리 강좌, 소승불교, 대승불교, 밀교, 참선,
기존 관념 깨뜨리는 禪旨 돋보여 反語的 사고 後代 선시 기풍에 영향 분별심을 넘어선 '자유인'의 눈으로 바로본 경계 빈손에 호미들고 물소 등에 올라앉아 다리 위를 지나는데 다리는 흘러가고 물은 흐르지 않네. 석지현 역 〈원문〉 空手把助頭 步行騎水牛 人從橋上過 橋流水不流 이글의 주인공 부대사(傅大士 497∼569)는 속성이 부씨로 위진남북조 시대 양(梁)말 진(陳)초의 재가불자다. 그가 '부대사(傅大師)'로 불리지 않고 '부대사(傅大士)'라 일컬어짐은 출가하지 않았던 그의 신분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높은 법력과 선기(禪機)는 당시 출재가를 막론해 추앙의 대상이 됐다. 그는 24세때 인도스님 '승두타'를 만나 불도에 귀의했
원효불교대학(학장 증악스님) 부설 불교문화센터는 지역 불자들의 신행활동과 문화 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해 다양한 문화강좌를 개설,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10월부터 원효불교대학 개원과 함께 시작된 불교문화센터 문화강좌는 선체조(강사 정경태)와 시민선방(강사 증악 스님)을 통해 자연스럽게 불교를 접할수 있다. 또 다도교실(강사 손필호) 및 사찰요리(강사 박상연, 김수자)도 실시하고 있다. 특히 불자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사찰요리 강좌와 관련 증악 스님은 “수료생을 중심으로 봉사단을 조직, 6개월 단위로 사찰행사나 고아원, 양로원 등을 찾아가 사찰요리를 공양할 계획이며 차후에는 사찰요리 전문점을 개원하겠다”고 말했다. 스님은 또 “국악교실, 찬불가 합창반, 문화유적답사회, 자비
7년 병고 관음기도로 쾌유·일엽 스님 은사로 출가 노인복지 '수행하는 머슴'·90년 성라원 개원 한다면 하는 노장(老壯)으로 통하는 사회복지법인 성라실버타운 이사장 법성 스님. 스님의 별칭은 '수행하는 머슴'이다. 법당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경(經)을 염송하거나 선방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치열한 구도의 길을 걷는 것이 수행자의 본 분사겠지만 스님에겐 성라실버타운 영양사들이 노인들 공양은 잘 챙겨주는지, 큰비로 인해 축대는 무너지지 않았는지, 잔디밭에 잡초는 나지 않았는지 등 성라실버타운 곳곳의 일을 부지런한 '머슴'처럼 살피는 것이 곧 수행이다. 30여 명의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때로는 수행하는 도반처럼, 때로는 오래된 벗처럼, 때로는 자식을 돌보는 어머니처럼 수행의 황혼기를
일반 산중사찰과 다른 가람구조 특색 불교전래 초기 사찰 형식 산지에 맞게 재해석 불갑사는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에 있는 사찰로 백제 침류왕 원년(384)에 인도스님인 마라난타존자가 동진으로부터 도래하여 개창한 절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재 불갑사는 대웅전, 팔상전, 나한전, 명부전, 일광당, 만세루, 사천왕문 등으로 구성된 산간의 작은 절에 불과하나 전성기였던 고려, 조선시대에는 방대한 규모를 가진 사찰이었음을 기록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조영물의 원형을 찾기 위해서는 그 조영물에 관련된 유적이나 유물 혹은 문헌기록과 같은 자료들이 있어야 한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바로 이러한 직·간접적 자료가 빈곤하여 역사성을 가진 조영물의 형식이나 내용을 파악하기
들꽃 흐드러진 산곡엔 어김없이 미륵이 궁예·꺽정·길산의 恨 풀릴 날은 언제일까 왠지 미륵신앙 고향의 순례 길을 떠날 때면 약간의 흥분이 섞인 설레임을 감출 수 없다. 그러나 그 설레임은 경외심이나 엄숙함에서 나오는 그런 종류는 아니다. 지극한 편안함, 그리고 그 편안함 속에 물씬 배어 나오는 억누를 수 없는 역동감과 애틋함, 슬픔 뭐 그런 것들이 얼기설기 뒤섞여 나오는 비장함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그 푸근하고도 서민적인 얼굴에서 새 세상을 꿈꾸다 처참히 좌절되곤 했던 한(限)까지 읽어내고 나면 시나브로 눈시울마저 뜨거워지는 것이다. 고은(高銀)은 미륵신앙의 원천을 '기원전 석가불교 이후 대승불교가 상투화해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불교를 목표로 해 일어난 일대 종교운동'으로 추정
관음사(주지 우학 스님)는 11월 10일부터 내년 1월 30일까지 3개월간 큰스님 초청 동안거 특강을 실시한다. 이번 특강은 삼중 스님(자비사 주지)의 《금강경》, 무비 스님(승가대학원 원장)의 《증도가》·《법성게》, 근일 스님(부석사 주지)의 《초발심자경문》, 자광 스님(김용사 주지)의 《신심명》 강의로 진행된다. 053)474-8228
관념까지도 포섭한 오도적 세계관 정립 '하화중생' 철저…진제에 임제정맥 전수 향곡과 성철은 둘도 없는 도반(道伴)이었지만 법(法)의 문제에 있어서는 추호의 양보가 없었다. 깨달음의 문제, 즉 돈오돈수(頓悟頓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에 대한 두 사람의 견해는 뚜렷이 달랐는데, 한 번은 이 문제로 두 사람이 멱살을 잡고 싸우는 일이 일었다. "오매일여( 寐一如)의 경지란 없다." "왜 없냐. 니가 모를 뿐이제." "오매일여는 양을 걸어놓고 개고기를 파는 것(懸羊賣狗)과 같은 속임수일 뿐이다." "그럼, 니는 개고기나 처먹어라." "뭐시, 이 중놈이 …." 향곡은 멱살잡이를 하는 중에도 오매일여가 무슨 말뼉다귀 같은 소리냐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고, 성철
문헌부족·학파간 권위의식 연구 장애 논의·연구 토대 마련 등 종단 역할 절실 한국미술사의 정점을 차지하고 있는 석굴암에 대한 논쟁이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논쟁에 불을 지핀 사람은 지난해 단행본 《인물과 사상(1998)》7권 '석굴암을 위한 변명'에서 유홍준 교수가 제기한 광창의 존재와 전실부의 개방, 목조전실의 철거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던 소설가 성낙주씨. 성씨는 최근 다시 월간 《인물과 사상(1999)》7호에서 유홍준 교수에 이어 또 다시 목조 전실의 철거, 광창설(光窓說) 등을 주장한 경주박물관 강우방 관장에 대해 석굴암 주변의 기후 조건과 자연환경을 살피지 않은 관념적인 문제 제기이며, 학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의도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군종장교는 자기 할 일만 하면 됩니다. 누구보다 양심적이고 인격적이며 도덕적이어야 할 군종장교가 남의 종교를 헐뜯거나 비방해서는 안되지요. 특히 교세확장 차원에서 타종교를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결국 공멸하고 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군에서 중요한 것은 종교간 화합을 통한 군정신전력의 강화입니다.” 국방부 군종실장 박성대 신부는 이번에 시행된 군종업무에 관한 규정령이군종 장교간 갈등 소지를 막고 화합의 길로 가는 첩경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 종교단체에서 자신들의 종교의 교세가 확장되도록 기탁을 많이 한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자칫 과열경쟁으로 흐르면서 많은 문제를 발생시킨것이 사실”이라고 말한 박 신부는 “이번 규정령 시행으로 과열경쟁이 근절될
민영규 《사천강단》, 성본 《중국선종…》 등 큰 성과 이영석 등 석·박사학위 10여편 서여(西餘) 민영규(閔泳珪, 1915∼) 교수는 글을 아껴 쓰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심오한 내용을 평이하고 간결하게 서술하면서도 군더더기 한 점 없기로 정평이 나있다. 일본 다이쇼(大正)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한 후 1945년부터 연희전문교수로 재직한 그는 강화학파를 세상에 드러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초기 선종사의 바른 법맥과 신라불교의 성격 규명에 관한 탁월한 연구성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의 대표적인 저술인 《사천강단(四川講壇)》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90년부터 3년 간 중국 현지답사와 문헌 비평을 통해 초기 선종사의 법맥을 고찰한 것으로, 선종에서 추앙되고 있는 마조
동정 덕암 태고종 종정스님은 대륜대종사 탄신 117주년을 기념하는 다례법 요식을 6월 28일 사간동 법륜사에서 봉행했다. 총무원장 인곡 스님 등 종단 원로 및 중진스님이 동참한 가운데 열린 이날 법요식은 전통다례의식으로 여법히 봉행했다. 덕암 스님은 법어를 통해 "대륜화상의 흥학포교와 불교현대화, 대중화를 위해 헌신해 나가자"고 말했다. 현성 청소년교화연합회 회장 겸 중앙승가대 총장 스님은 7월 3일 오후 2시 경북 사천시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청교련 하동·사천지부 주관으로 열리는 청교련 하동·사천지부 창립기념 법회에 동참한다. 스님은 이날 법회에서 '청소년 불자가 지향해야할 인생관'을 주제로 법문한다. 0595)883-8310 도후 불교방송 이사장 스님은 6월 29일
정신없이 바쁜 아침 출근길. 나직한 목소리로 라디오에 귀기울이게 하는이가 있다. 교통방송 `TBS 칼럼'(오전 8시~8시 5분)의 진행자 박규채씨(57세). 하루를 `옴마니반메훔…' 진언을 통한 기도로 시작하는 그는 잘 알려진대로 믿음깊은 불자다. "어쩌면 전 부처님 덕에 지금껏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5살이 되던 해 겨울, 늑막염과 홍역을 심하게 앓았던 그는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죽음만 기다리고 있었다. 죽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던 그의 어머니는 강원도 안변 산골에 있는 청곡사에서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매일 목욕재계하며 백일기도를 드렸다고.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 꿈에 한 스님이 나타나더니 `그곳에 잉어장수가 올 것이다.'라고 하였단다. 그 때는 `
유가종, 공종은 惡取空·유식사상만이 中道 공 종, 유가종은 二乘·공종만이 一乘法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백년 경에 불교도는 교리와 율법의 이념분쟁에 의하여종단이 분파되기 시작하였다. 소승(小乘)부파가 오백년간 종단을 운영하고 《아함경》을 소의 경전으로 하여 교리와 수행사상을 크게 발전시켰으나 자리이타(自利主義)가 농후하였다. 이때 용수보살(AD 1세기경)이 《반야경》을 소의경전으로하여 반야(般若)와 공사상(空思想)을 널리 보급하며 이타적(利他的)인 대승불교를 정착 시켰다. 그후 AD 4세기경에 무착보살이 《해심밀경(解深密經)》을 소의경전으로 하여 정(定)과 혜(慧)를 함께 수행하고 모든 것은 마음이 창조한다는유가유식(瑜伽唯識)사상을 보급하며 대승불교를 완성시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