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보사찰 통도사는 개산대재일(음력 9월 9일)을 맞아 ‘부도전 헌다 및 두리차회’를 봉행한다. 전국의 차인들에게 사찰 부도헌다의 전형을 재현하고 부도탑에 헌다를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봉행되는 이번 헌다제는 오는 10월 21일 통도사 부도전에서 열린다. 영축총림 통도사 선다회 주최로 열리는 ‘부도전 헌다 및 두리차회’는 전통차례 전승에 이바지하고자 일반 차회가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모집기간은 9월 29일까지이며 참가비는 개인당 3만원이다. 접수는 통도사 포교국으로 전화 또는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 055)384-8380 문경다례원, 칠석 차 문화제 개최 문경다례원(원장 고선희)은 오는 8월 21일 문경새재 야외 공연장에서 ‘제 8회 문경 七夕 茶문화제’를
차는 수천 년의 임상실험을 거친 가장 안전하고 유익한 세계적인 음료이다. 세계적인 차 소비의 성향은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부터 지속적으로 상승하였으며 차생산도 활발하게 발전되었다. 차는 기호음료로써 뿐만이 아니라 정신문화를 추구하는 매개체의 역할도 함께 하였다.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 꽃과 열매의 인연처럼 독자와의 만남을 소중히 하겠습니다.(필자) 또한 기능성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 결과로 현재는 보건기능이 크게 부각되어, 세계적인 건강음료로써도 자리 매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비 방법에서도 RTD(ready-to-drink) 등 쉽게 마실 수 있는 용기의 다양화로 인하여 앞으로도 끊임없이 발전하게 될 것이다. 차산업은 세계적인 산업의 한 부분으로서 각국의 차생산 및 소비를 촉진하고 또한
며칠 전 뉴욕의 타임 광장(Time Square)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어떤 20대 백인 청년이 갑자기 광장 한가운데에 서서 “나는 지금 우주의 중심에 서 있다!” 라고 크게 외치는 것이 아닌가. 우주의 중심? 그렇다면 온 우주가 뉴욕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말인가? 뉴욕이 미국 안에서 경제와 문화의 중요한 도시이고 그 중에서도 맨하탄 타임 광장이 중요한 지점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우주의 중심을 타임 광장이라고 정의를 내리는 것은 나이 어린 미국 청년의 오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가만히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런 오만은 비단 미국인들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중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계 중심의 나라라는 의미로 이름에 아예 가운데 중(中)을 넣었고 , 로마제국은 ‘
길상사 전경. 길상사에는 언제나 걸어서 간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의 언덕길을 내려가서, 성북동 길을 따라 올라가다, 주택가 골목 안으로 가면 넉넉잡아 십오 분 안에 길상사가 나온다. 꼭 걸어서 간다. 길상사를 생각하며 걸으면서 길상사에 대한 마음을 준비한다. 나를 낮추고 다른 것들을 잊으려 노력한다. 길상사에 가면 아무 생각도 없이 개울 소리나 바람 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성북동의 화려한 주택들 사이에 길상사는 은자처럼 앉아 있다. 먼저 마당가 돌 위에 앉는다. 단청 없는 대웅전에는 오늘도 신심깊은 불자들이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있다. 그 뒤의 산에는 부정할 수 없는 계절이 있다. 오늘은 짙은 여름이다. 일주일 전보다 잎들은 초록으로 훨씬 짙어졌다. 살짝 내린 비에
사람 성격은 운전대를 잡아 봐야 알 수 있다고 하던데 맞는 말 같다.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도 운전대를 잡으면 갑자기 급해지는 경우가 많다. 내가 아는 스님도 평소에는 정말이지 그렇게 여유가 있고 차분한데, 운전대만 잡았다 하면 그냥 폭주족 저리가라 하고 질주를 한다. 물론 내 경우도 비슷하다. 운전대를 잡을 때 가장 공부가 많이 된다. 마음이 얼마나 바쁜가, 마음에 얼마나 일이 많은가가 평소에는 숨겨져 있다가 운전대만 잡으면 고스란히 스스로에게 들키고 만다. 그래서 더욱 내면의 뜰을 잘 지켜볼 수 있을 때가 운전을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운전을 할 때는 운전이 어디까지 도착하는 수단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만 운전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도착하기 위해 운전을 하게 되면 내
지난 주 이라크에서 납치된 김선일 씨가 이라크 무장 단체에 의해서 살해됐다는 소식이 나를 한동안 가슴 아프게 했다. 특히 김선일 씨 부모님이 울분을 토하시는 사진을 보면서 마치 내 친지나 가족이 무참하게 살해된 것 같은 슬픔을 느꼈다. 이라크 무장 단체는 자신들의 이토록 광폭학 행위를 ‘지하드’(Jihad)라는 교리로 정당화시키고 있다. 원래 이슬람교에서 말하는 지하드는 심오하고 철학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정치성을 띠면서 이슬람교의 세력을 보호하고 확장하는 것을 방해하는 적에 대한 전쟁을 정당화하는 의미로 해석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대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많은 학생들이 자신은 아무런 종교가 없다고 대답을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들 가운데 자신은 종교적(religious)
인터넷이나 신문에서 글을 읽고 처음 찾아오시는 분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 잦아졌다. 그럴때마다 정말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열심히 수행하시는 분들을 뵈면서 숙연해지고, 또 경책이 되곤 한다. 공부하는 사람에게 좋은 도반을 얻는 기쁨은 부처님 말씀처럼 ‘깨달음의 반이 아닌 전부’를 얻는 그런 밝은 성찰을 가져다 준다. 그런데 때때로 대화를 나누면서도 마음이 무거운 상대도 있기 마련인데, 주로 대화를 하며 자신의 수행이나 공부를 내세우고자 하며,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사람을 만날 때이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여지길 바라는 마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진실하게 드러내지 않고 덧씌워진 모습을 보이려고 애쓰는 마음이 있는 이상 우리는 부자유하고 걸리는 것이 많아진다. 획일적으로 ‘누구처럼’돼야겠다는
나는 불경에 나오는 많은 보살님 가운데에 보현보살님을 특별히 예경하고 가슴 속으로 흠모한다. 나처럼 공부하는 학승에게는 책에서 배운 것을 행동으로 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항상 말로만 그치고 몸으로 행동하지 않을까 두려워서 그런지 나는 행(行)으로 보여주시는 보현보살님이 참 좋다. 『화엄경』을 읽다 보면 보현보살의 열가지 큰 원(願)이라는 부분이 나온다. 그 가운데 내가 항상 가슴속에 새기는 보현보살의 원(願)이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번째 원인 수희공덕(隨喜功德)이다. 수희공덕이라 하면 ‘남이 지은 공덕을 따라서 같이 기뻐한다’라는 뜻이 되는데 간단하게 보이지만 실제로 수희공덕의 원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특히 살다 보면 자신과 비슷한 능력을 가진 경쟁자나
육주사 전경 김영희와 육주사 부산에서 구낙동대교를 건너 대저 입구에 들어서면 평야 가운데 아름드리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대웅전의 단청이 아름다운 절이 있다. 절 입구 한쪽은 해묵은 탱자나무 가로수가 있고 텃밭에는 토마토랑 배추 등 제철 채소들이 가지런히 자라고 있다. 큰 소나무 한그루가 비스듬히 아치형을 그리며 일주문을 대신하고 그 가지를 휘감은 능소화가 여름이면 주홍빛 꽃비, 그 아래 동백나무에서는 이른 봄마다 붉은 꽃무덤이 쌓인다. 대웅전 앞 용설란 무리의 웅장한 잎새와 분주한 청년부 학생들과 아기승들의 뜀박질 소리와 방문을 연 채 그 모두를 지켜보던 별채 할머니들의 흐뭇한 미소가 배어나는 내 기억 속의 육주사에는 사시사철 꽃향이 날리고 있다. 툇마루에 놓인 스님의
요즈음은 내가 살고 있는 이 도량 주위 자연의 새로운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 돼버렸다. 수많은 야생화들과 나무에서 피어나는 꽃들 그리고 새순이며 약초들 봄나물들이 얼마나 화알짝 신명나게 피어있는지 하루 종일 거닐며 바라만 보아도 도무지 질리지 않는다. 밥 때가 되어 한 십 여분 숲 속에 들어갔다 나오면 그야말로 야생의 온전한 먹거리들이 우리절 두 사람 한 끼니 먹기에 부족함이 없게 해 준다. 씨 한 번 뿌린 적 없고, 가꾸려고 애쓴 적 한 번도 없지만 숲은 스스로 씨를 뿌리고, 가꾸고, 물도 주고, 그렇게 스스로 알아서 건강하게 커간다. 그야말로 숲 길을 걷다보면 먹지 못할 것들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사람들이 몇몇 입맛에 당기는 풀들만 먹거리로, 봄나물로 지정해 놓아서 그렇지 동
스승의 날이 있는 5월 중순쯤이 되면 나에게는 기억이 나는 선생님이 한 분 계시다. 초등학교 6학년 담임 선생님이셨던 이영희 선생님이 그 분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담임 선생님은 30대 후반의 평범한 가정주부같은 모습이었던 것 같다. 우리들에게는 항상 온화하고 다정스런 선생님이셨지만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계실 때는 강한 자기 주장 없이 조용히 뒤편에 앉아 계시면서 다른 선생님들의 말씀을 경청하시는 그런 분이셨다. 그때만 해도 시골에서 서울로 이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때라 내가 다니던 서울 외곽의 초등학교는 학생수가 엄청나게 많았다. 한반에 학생수가 60명씩 되었고 그런 큰 반들이 한 학년에만 15반씩이나 되었다. 6학년이 되자 각 반별로 돌아가면서 1주일씩 주번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주번들은 학교 건물
지금의 내 모습을 살펴보자. 어떤 울타리에 갇혀 있는지, ‘어떠 어떠한 나’로 세상에 드러나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자신 스스로를 ‘어떠 어떠한 나’로 정해 놓고 산다. 제 스스로 울타리를 정해 놓고 그 울타리 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의 본래 모습은 어떻게 정해진 ‘나’ 가 아니라 텅 비어 한없이 자유로운 ‘나’이다. 내 앞에 그 어떤 수식이나 한정도 붙이지 않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롭고 걸림 없는 삶이 찾아온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질 못하다. ‘나’ 앞에 붙는 수식이나 한정들이 나를 옭아매고 있다. 여기 ‘스님인 나’가 있다고 치자. 그런데 그냥 그대로 ‘나’가 있으면 자유로울 일도 ‘스님인 나’라고 한정지어 놓으면 그만큼 우린 ‘스님’이라는 울타리에 갖히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