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장기로 암이 퍼져나갔지만, 남편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육체적 고통보다 이제 죽음이 눈앞에 있다는 정신적 고통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었다. 나는 남편의 손을 꼭 잡았다. ‘여보, 한번 놓아보세요. 팽팽하게 잡아당겨져 있는 고무줄, 가슴이 조마조마하고 무서웠던 그 줄이 손에서 놓는 순간 긴장되고 불안했던 마음이 사라지는 것처럼, 당신이 잡고 있는 삶에 대한 애착을 한번 탁 놓아보세요.’(…) 며칠이 지나자 남편의 표정에서 평온함이 느껴졌다.”31년을 함께 산 남편은 그렇게 10개월의 투
올해로 여섯 번째를 맞이한 대한불교조계종 신행수기 공모가 6월4일 시상식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제1회 신행수기 공모에 400여편의 작품이 결집한 것에 비해 올해 열린 제6회 신행수기 공모에는 162편의 작품이 모여 양적인 면에서는 다소 부족해 보이나 올 수상작들의 내용들은 전법을 위한 포교와 전법의 교과서와 같다는 평가를 받기에 손색이 없다. 작품마다 그 속에 담긴 가피와 감동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심사평에서는 신행수기가 이 시대를 대표하는 포교와 소통의 법기(法器)로서 가치가 충분하다는 점도 읽힌다. 해를 거듭하면서 신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교정인들은 부처님 가르침을 받들어 쉬지 않고 정진해 외롭고 고통에 찬 중생들에게 따스한 자비의 마음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그들의 탁한 마음 때를 벗기어 갇히고 닫힌 이들에게 열린 마음을 일깨워 줄 것을 간절히 발원합니다.”수용자들에게 부처님 법을 전하며 이들의 교화를 위해 힘쓰고 있는 불자 교정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를 독려하는 시간을 가졌다.전국교정인불자연합회(회장 류성현)는 6월8~9일 공주 마곡사(주지 원경 스님)에서 ‘제23회 전국교정인불자연합회 수련회’를 실시했다. 6월8일 경내 관음전에서 열린 입
부처님 닮아가는 삶들이 있을까. 기도하고 수행하며 이웃과 나누는 불제자의 삶은 있다. 좋든 싫든 각자의 인연 따라 주어진 조건을 극복하며 부처님을 향해 걸어가는 불제자들이다. 그 어려운 걸음걸음은 누군가의 박수와 갈채를 이끌어냈고, 누군가의 신행 지침서가 됐다. 조계종 신행수기 공모전에 입상한 삶의 조각들이 그랬다.불기 2563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진행된 ‘제6회 조계종 신행수기 시상식’이 6월4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공연장에서 개최됐다. 중앙신도회(회장 이기흥)가 주최하고 법보신문(대표 김형규)과 불교방송(사장 선
불기 2563년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해 열린 제 6회 신행수기 공모에서 이정희 불자의 ‘진흙에서 핀 연꽃처럼’이 대상인 총무원장상을 수상했다. 조계종 중앙신도회가 주최하고 법보신문과 불교방송이 공동주관 한 신행수기 공모에는 총 162편이 접수됐다. 수상작 20편 중에 총무원장상을 비롯해 포교원장상, 중앙신도회장상 등 10편을 지면에 소개한다. 편집자주출근길에 내가 다니고 있는 절 죽림사에 들렀다. 죽림사는 도심 절이지만 대나무와 산으로 둘러 쌓여있어 아늑함이 느껴지는 포교당과 불교대학이 있는 사찰이다. 전생부터 지은 죄업을 참회하는
태어나서부터 나는 고국인 대한민국에 오기 전까지 한 번도 사찰을 방문해본 적도, 가사를 입은 스님들을 만난 적도 없는 그야말로 불법의 불모지에서 살아온 중생이었다. 비록 육조혜능 대사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선종의 5가7종이 꽃을 피운 중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내가 태어난 연변이란 곳은 조선족 교포들이 모여 사는 변방의 산촌으로 변변한 사찰 하나 없었던 곳이었다. 오로지 박사학위를 받아 교수가 되면 앞날에 탄탄대로가 펼쳐지리라는 출세의식에만 젖어 시작한 유학생활이었지만 나는 고국인 이곳 대한민국에서 부처님을 만났다. 어찌 보면 도망치듯
어릴 적부터 계절 알레르기 때문에 밖에도 잘 못나가고 학교도 자주 빠졌다. 그러다보니 친구도 많은 편이 아니었고 늘 집에서 동생과 아니면 장난감과 지냈다. 가까이 살고 계시던 할머니 댁에 가서 친척 형, 누나와 작은 고모와 시간을 보냈다. 작은 고모가 망월사에 처음 데리고 갔던 걸로 기억이 난다.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에 자주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시기가 끝났을 때는 자유롭게 다녔다. 그랬다. 어렸던 나에게 산 끝자락에 있는 망월사는 더 커보였고 더 웅장해 보였다. 절에 가면 마냥 모든 것이 신기했고 너무 편안하고 좋았던 것
시방 법계에 부처님 아니 계신 곳 없으니 아무리 작고 좁은 절이라도 부처님은 계실 겁니다. 겨울 한 철 나기가 곤란스러워 보이는 절이 보이면 아이들과 함께 올라가서 절을 올립니다. “부처님! 이 절이 잘 되게 해 주십시오”라며 절을 올리고 나면 절의 살림 걱정이 덜 됩니다.부처님의 슬하에서 69년을 살아온 재가불자로서는 약간의 시주와 기도만이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입니다. 삼배를 마친 손자는 묻습니다.“할머니! 부처님은 6년 동안이나 고행을 하셨다는데 왜 저렇게 뚱뚱해요?”“네가 본 부처님 상(像) 만이 부처님이 아니라 여러 시대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혜림님의 첫 돌을 축하합니다.’ 예순 네 살의 나는 50여 봉사자들이 부르는 노래에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한사랑 파주공동체’ 장애인들도 함께 울었다. 2018년 1월31일 심장이식 수술로 새 생명을 받고, 2019년 2월1일 첫 돌을 기념한 잔치다. 철없던 시절,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 알고 천방지축 살아왔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고 집을 떠나 40여년을 방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한 친구와 사소한 의견 충돌로 주먹다짐까지 하게 되었다. 심신
설렘과 긴장으로 잠을 설쳤다. 우리 일행은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도착해 셔틀버스를 타고 백담사 주차장에서 내렸다. 신발 끈과 마음자락을 단단히 묶었다. 여린 새순이 겨우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 계곡에는 생강나무의 노랑 솜꽃이 봄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다. 동행한 분들이 나눠 주는 결연한 웃음의 의미를 말없이 새기면서 걷기 시작하였다. 4월 산바람이 아직도 차갑게 옷 속을 파고들어 늘어진 마음을 잡아주었다. 이번 성지순례는 8월 말이면 긴 교직생활을 끝내고 교단을 떠나 인생 제2막을 시작하는 나 자신에게
‘엄마 자장면 시켜서 함께 드실래요?’딸아이 방문이 열리면서 한 말 한마디에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감정에 휩싸였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딸아이를 보며 되물었다. “뭐라고 뭘 시켜 먹자고?” 다시금 들려오는 딸아이의 소리, ‘자장면 시켜먹자고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알았어. 시켜먹자.” 딸아이 마음이 변할까 생활정보지에서 중국음식점을 찾으며 “부처님 감사합니다. 지장보살님, 관세음보살님 감사합니다”를 수 백 번 읊었다. 딸 나이 40이 넘어 처음으로 한 ‘같이 밥먹자’는 말이었다. 한 집에 살면서 식구들과 함께 밥을 먹은 게
남쪽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을 타고 흐르는 물이 그동안 답답했다는 듯 하얗게 속살을 드러내며 봄소식을 전한다. 수선화·목련도 방긋방긋 미소 짓고, 앞산도 아련한 연록의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나는 불교신자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경전 한 구절 제대로 읽어 본 적 없다. 그저 정월초순, 사월초파일, 백중, 동지 때만 절에 갔다. 1년에 4번 절에 가는 신도들을 보고 우리스님이 웃으시며 말씀하시길 ‘보살님은 무늬만 불자’라 했다.그렇다. 산수가 빼어나다는 배내골에 귀촌해서 신불산 백련사와 인연을 맺은 지 7~8년이 되었지만, 아직 ‘천수
“손톱에 구름이 떴네. 누가 너한테 큰 선물을 주려나보다.”손톱에 갈대 모양으로 흰 스크래치가 나 있었다. 선생님은 불그스름한 손톱 밑 살 위로 비치는 흰 구름은 어디서 쓸려왔는지 몰라도 약간의 보랏빛이 돈다며 손가락에 뜬 구름은 꼭 아미타불께서 내영하실 때 타시는 자색(紫色)구름 같다고 하셨다. 나의 샤미센(비파 모양의 삼현악기) 선생님이시다. 선생님과의 샤미센 수업이 끝나면 으레 구품사(九品寺)로 산보를 나갔다. 종문 가까이에는 죄의 무게를 달아보는 할머니와 염라대왕이 계시고, 그곳을 지나 손을 씻는 우물 뒤편의 안쪽 당에는 지
1988년의 IMF사태를 겪어오면서 세상살이가 참 쉽지 않았다. 그때 나는 불행의 열차에 실려 이승에서 지옥세계로 불리는 교도소에 들어오게 되었다. 20년이란 형량을 선고받았다.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20년형을 받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굴곡진 삶의 의혹을 풀어보려 불교에 입문했고 그것은 ‘행운’이라는 말 말고는 설명이 되질 않는다. 처음엔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 상고도 했지만 불법을 만나 공부하면서 모든 것이 인과에 의해 열매 맺는 것임을 깨닫고 받아들이게 되었다.부산교도소에 잠깐 머물 때, 공장출력을 신청해 부산교도소의
“지난해 법보신문에서 신행수기 당선작을 보고, 저 역시 삶을 되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수기를 썼는데 이런 큰 상을 받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불교를 만나고, 참선 수행을 접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부처님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늘 하심하며 살아가겠습니다.”제6회 조계종 신행수기공모전에서 대상인 총무원장상을 수상한 이정희(청정심) 불자는 “불교를 만나게 된 소중한 인연에 감사하다”는 말로 수상소감을 대신했다. 이씨는 “불교를 공부하면서 남을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나를 되돌아볼 수 있게 됐다”며 “
“불교와 인연이 없던 지역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한국유학은 부처님 법을 만나 삶을 긍정적으로 전환하는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머물지 않고 더욱 정진하는 불자가 되겠습니다.”제6회 대한불교조계종 신행수기 공모에서 포교원장상을 수상한 최옥란(대지) 불자는 불제자로서의 각오를 다지는 것으로 수상소감을 대신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 중인 그는 아픈 어머니와 자신에게 찾아온 병마로 괴로워하던 중 부처님 법을 만나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신행수기에 담았다. 조선족 동포인 그는 “불교를 알게 된 것은 짧지만 너무 많
“어떤 이들에게 공감이 되고 힘이 된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김영관(금강) 불자가 제6회 조계종 신행수기 공모에 접수한 작품은 ‘내 삶은 부처님 품안에서’다. 그는 군복무 중 불행한 사고를 겪은 뒤 뇌병변장애로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안고 있다. 하지만 ‘법화경’ 사경과 108배 그리고 불자장애인모임 보리수아래와의 인연으로 치유해 나가고 있다. 중앙승가대 학인시절 삼보일배로 5대 적멸보궁을 순례한 범종 스님과 인연도 그를 불연으로 이끈 큰 계기였다. 그는 이번 수기에서 기도하고 수행하며 불자장애인들과 교류하면서 차차 마음의 병이 나
“새로운 생명을 받고 다시 태어났으니 나누고 실천하는 불자가 되겠습니다.”제6회 조계종 신행수기공모에서 불교방송사장상을 받은 이상복(혜림) 불자는 심장이식수술로 새 생명을 받은 2018년 2월1일이 자신의 생일이라고 했다. 수상작 ‘제주에서 600km 날아온 희망의 이야기’는 심부전증으로 고생하다 심장이식수술을 받은 자신의 사연을 담담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이상복 불자는 “철없이 천방지축으로 살다 16년 전 우연히 인터넷방송에서 정각사 주지 정목 스님의 목소리를 듣고 부처님 법을 접하게 됐다”며 “수술 전후 몸과 마음이 지칠 때마다
신행수기를 읽으면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응모작을 읽으면서 심사위원들은 큰 감동을 받았다. 해가 거듭할수록 공모작품의 내용이 다양해지고, 특성이 두드려져서 최종심에서는 우열을 가리기 쉽지 않았다. 이번 신행수기의 특성은 응모작 대다수가 불교적 신행이나 불교사상이 글 속에 녹여져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 불교의 수행이 되었다는 증거로서 신행수기의 중요한 조건요소인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모든 문학작품에는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듯 신행수기 역시 사람마다 제각기 피하지 못할 사연이 있고, 나름대로 역경과 고통을
참불선원 신도회는 4월26일 서울 참불선원 법당에서 법보신문 발전기금 500만원을 후원했다. 이날 신도회는 좌선 30분 후 발전기금 전달식을 갖고 불법홍포에 매진하는 법보신문의 노고를 박수로 치하했다.신도회의 후원은 “바라밀 중 으뜸이 보시바라밀”이라고 강조한 참불선원장 각산 스님의 원력과 맥락을 같이 한다. 신도회는 2013년 참불선원 개원 이래 꾸준한 보시행을 이어왔다. 승가교육진흥, 소외이웃, 조계사성역화, 방송포교 등 각 분야에 6년간 4억5000만원을 후원했다. 이외에 봉암사 세계명상마을 건립기금, 태국 아잔간하 스님 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