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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월결사 인도순례 : 김형규의 성지에서] 3. 인도에 다시 불보살님 가피가

인도는 지금도 사문유관 땅
곳곳에 생로병사 차고 넘쳐
계급·성별·종교적 억압 여전
전법은 무지 일깨우려는 것

불상을 모시고 순례하는 김형규 대표.
불상을 모시고 순례하는 김형규 대표.

인도는 날것 그대로 사문유관(四門遊觀)의 땅이었다. 싯다르타 태자는 카필라성의 동서남북 4문을 나가서 늙고 병들고 죽음을, 그리고 마지막에 당당한 사문을 만난 뒤 출가했다. 아버지 숫도다나왕은 싯다르타 태자가 태어나자마자 붓다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았기에 인생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볼 수 없게 했다. 그러나 인과는 한 치의 어긋남이 없다. 사문유관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생각해 보면 카필라성에서의 삶은 싯다르타 태자만의 것은 아니다. 우리 또한 화려한 카필라성에 살았던 싯다르타 태자와 다를 것이 없다. 산업화 사회에서 죽음은 장례식장에서나 볼 수 있고, 병으로 인한 고통 또한 병원에만 존재한다. 온갖 미디어는 젊음을 찬양하고, 우리는 자신의 늙음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천년만년 살 것처럼 정신없이 살고 있다.

그러나 인도는 어느 곳이나 늙고 병들고 죽는 인생의 무상함이 차고 넘쳤다. 바라나시에서는 갠지스강 줄기 따라 시체를 태우는 연기가 자욱하고, 아픈 몸을 이끌고 구걸하는 사람들과 세상을 다 산 듯한 텅 빈 눈들을 거리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그러나 부처님이 보았던 것은 개인의 윤회뿐이었을까? 순례 내내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은 미래가 없는 사람들의 비참한 삶이었다. 현재는 과거와 같고 미래 또한 결코 달라질 것 같지 않은 삶을 짓누르는 멍에 같은 그들의 희망 없는 나날이었다.

그들은 부처님 당시 사문유관에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 화석이 되어 살아가고 있었다. 타고난 계급과 성별, 종교적 짓눌림 속에서 조상의 삶은 부모에게 이어지고 부모의 비참한 삶은 쳇바퀴처럼 아이들에게 변함없이 이어질 것이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리는 종교적 음악과 알 수 없는 경 읽는 소리가 그래서 싫었다. 그럴 때마다 해 맑은 눈빛으로 순례단을 쳐다보며 미소 짓던 아이들의 삶이 짓눌리는 것 같았다. 부처님 또한 개인의 윤회뿐만 아니라 조상에서 부모로, 아이들로 이어지는 대를 물려가는 핏줄의 비참한 삶의 윤회 고리를 보셨을 것이다.

“인간은 출생에 의해 귀해지거나 천해지는 것이 아니다. 귀하고 천함은 그 사람의 행위에 따라 결정된다.”

부처님은 “누가 가장 성스러운 바라문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종교적 권위와 강요된 계급의 굴레에 짓눌려 있는 사람들에 대한 자비심의 발로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은 성도 이후 45년 인도 전역을 맨발로 돌며 전법을 하셨고 기녀, 천민, 살인자까지 출가를 허용했다. 인도 전역을 휩쓸고 있는 종교적 무지를 일깨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순례단은 목조로 조성된 부처님을 맨 앞에 모시고 순례한다. 부처님을 모시고 순례하는 기회는 대중 모두에게 차별 없이 주어진다. 나 또한 부처님을 모시고 걸었다. 부처님을 품에 안는 순간 고향에 온 느낌이 들었다. 부처님께서 2600년 만에 한국의 불제자들과 함께 고향 땅을 밟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을 품에 안고 걷는 내내 발원했다. 2600년 전 부처님과 제자들의 거룩한 모습을 보며 발심을 했듯이, 한국에서 온 순례단의 모습을 보며 인도인들이 새롭게 발심하게 되기를. 아니 꼭 불연과 이어지지 않더라도 눈빛 초롱초롱한 아이들이 한국에서 온 불자들의 모습을 보며 한국에 호기심을 갖게 되기를. 그래서 그 호기심으로 자신을 둘러싼 제도와 환경과 종교적 권위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새롭게 개척할 향상심을 갖게 되기를. 걸음걸음에 대자대비한 ‘관세음보살’ 염송이 더욱 간절해진다.

김형규 법보신문 대표 kimh@beopbo.com

[1671호 / 2023년 3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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