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12월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간 이탈리아 청년 프리모 레비는 1년 남짓 모진 학대와 강제노동에 시달리면서 그곳에서 “나이, 사회적 지위, 출신, 언어, 문화와 습관이 전혀 다른 수천 명의 개인이 철조망 안에 갇힌 뒤 그곳에서 규칙적으로 되풀이되고 통제당하는, 만인에게 동등한 삶, 그 어떤 욕구도 충족되지 않는 삶에 종속되는 과정”을 목격하고 체험하고 기억합니다. 아우슈비츠는 한 마디로 말하면 실험장이었습니다. 즉 한순간에 생존을 위한 투쟁 상태에 내몰린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후천적으로 습득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입증하기 위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실험장이었던 것입니다. 저마다 살기 위해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야 하며, 생존본능이 뒤처지는 사람들은 자연도태됩니다. 프리모 레비는
1975년 남부 베트남과 라오스, 캄보디아가 며칠 간격을 두고 공산주의자들의 손에 넘어가자 태국도 매우 불안해졌습니다. 국경 주변에는 공산주의 활동가들과 동조자들이 나라밖에서 무기를 조달하여 군사훈련을 하고 있었고, 산악지역의 가난한 사람들도 동조하고 있었으며, 총명한 태국 대학생들이 공산주의 게릴라들을 지원하기 위해 정글로 몰려오던 상황이었습니다. 정부의 관리와 군 고위장성들은 당시 태국에서 정신적인 의지처였던 아잔 차 스님에게 끝없이 조언을 구하였고 숙고 끝에 태국 정부는 세 가지 원칙으로 반란군에 맞서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첫째, ‘자제’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의 활동 기지가 어디에 있는지 환히 알고 있었음에도 군부는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용서’입니다. 적절할 때마다 수차례에 걸쳐 무조
몸이 아픈 사람은 의사를 보기만 해도 커다란 위안을 얻습니다. 그 이유는 이러합니다.환자는 병을 앓는 순간 단순히 몸이 아픈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익숙한 관계들과 분리된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심한 외로움에 사로잡히는 이때 의사는 환자와 분리되어 떠나간 외부세계를 이어주고 메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환자는 의사를 보며 위안을 얻습니다. 또한 환자는 누구나 앓고 있는 병이라 해도 자신에게 찾아온 질병은 특별하다고 느낍니다. 온전히 유지되어오던 자신의 세계관이 질병으로 금이 가고 파괴될 때 사람은 질병의 위협에 겁을 먹습니다. 의사가 질병의 이름을 알아내어 가리켜줄 때 환자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쉽니다. 자신을 송두리째 위협한 그 녀석의 정체를 알아냈다면 이제 막연한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기
어렸을 때 우리 아버지는 매사에 호되게 야단치고 잔소리를 쏟아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아버지를 떠올리면 항상 나를 맘 졸이게 하고 긴장시켰던 그 긴박감이 먼저 엄습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기억에 또렷하게 남는 일이 있습니다. 내가 상급학교에 진학하면서 학력을 차츰차츰 쌓아 올려가자 어느 날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이지요. “이제 나는 네게 아무 말 안 하련다. 넌 나보다 더 배웠으니까.”그 말씀은 백 마디 잔소리, 천 마디 꾸지람보다 더 무서운 경책이었습니다.그나마 아버지가 이런 표현을 하시는 경우는 딸들을 대할 때뿐입니다. 정작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는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는 유독 아들에게 차갑게 구셨고 끊임없이 뭔가를 요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내가 보기에 남동생도 하느라고 열심
달라이 라마, 람림, 마니차, 포탈라궁, 환생, 밀교, 사자의 서, 입보리행론….티베트를 떠올리면 가장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단어들입니다. 불교가 처음이자 끝인 나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새겨진 티베트에 대한 인상일 것입니다. 수많은 티베트 스님들과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동서양의 수행자들이 지금 세상 사람들의 무지를 일깨우고 행복의 메시지를 던져주느라 분주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전 세계 사람들이 티베트인들의 불우한 정치적 상황에 깊은 우려와 안타까움을 표하면서도 티베트에서 뿜어 나오는 고도의 종교적 경지에 매료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깥에서 보는 티베트와 그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티베트가 과연 같을까요? 외부 사람들에게 티베트는 핍박받으나 깊은 종교적인 인내심으로 견뎌내고 있는 초월의 땅이겠지만,
“나를 떠나지 말아다오. 우리 손은 서로 묶여 있어. 나는 네 손을 잡고 있어.”7년여의 투병 끝에 어머니는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버지니아에게 어머니는 인생의 모델이었습니다. 지혜롭고 대담하며 유머를 즐기고 인정이 많았으며 게다가 신앙심이 굳건한 분이었기에 어머니는 그렇게 고운 모습 그대로 천국에 이르실 분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70대로 들어서면서 뇌졸중을 일으키다가 파킨슨병을 앓게 되고 급기야 치매 증상까지 보이자 버지니아는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병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어머니에게는 일어나면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를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그야말로 고문이었습니다. 엉뚱한 말을 늘어놓고, 걸핏하면 서운해 하고 분노하고, 뭔가에 쫓기는 듯 불안해
지구상에는 아직도 숱한 민족들이 주권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쿠르드족, 티베트인들, 그리고 위구르족이 그러합니다. 이들은 강성하고 화려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지녔으면서도 지구상에 고아처럼 부평초처럼 숨죽이며 살고 있는 민족입니다. 위구르족의 현실을 확인한 것은 몇 해 전 실크로드 여행길에 우루무치에 들렀을 때입니다. 우루무치 시내를 다니며 위구르인들의 시장과 골목을 둘러보려는데 조선족 가이드가 사색이 되어 말렸습니다. 더럽고 난폭하고 무지한 날강도 같은 위구르인들에게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그러냐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우루무치를 자유롭게 돌아다녀 본 나는 위구르인들의 상냥하고 선량한 분위기가 매우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내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화약고를 철없이 돌아다녔는지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습니다. 위구르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는 파리 센 강변 근처에 백 년 된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라는 서점이 있습니다. 이 서점은 본래 1919년 책을 사랑한 여성 실비아 비치에게서 시작합니다. 에즈라 파운드, 제임스 조이스, 헤밍웨이 등 당대 최고의 작가들이 찾고 사랑한 곳이며, 특히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 초판본을 출간한 곳으로 이 서점은 매우 유명합니다. 하지만 지금 파리에서 만날 수 있는 서점은 실비아 비치의 서점이 아니라 그 건너편에 문을 연 미국인 시인 조지 휘트먼의 서점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실비아 비치가 은퇴한 뒤 10년이 지나 방랑자이며 공산주의자인 조지 휘트먼이 서점을 열게 되는데, 조지는 자기 서점을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전통을 잇는 공간으로 꾸며갑니다. 조지
세상을 불이 활활 타오르는 집과 같다고 보는 것이 불교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불난 집 못잖게 감옥살이로 보는 이가 또 있습니다. 바로 프랑스의 소설가 알베르 까뮈입니다. 그의 소설 는 본래 ‘감옥살이’라는 제목으로 구상되었다고 합니다. 핍박받고 내몰리고 불가항력적인 사건으로 가득 찬 곳이 바로 이 세상이요, 까뮈는 이런 감옥살이 세상을 ‘페스트’라는 무서운 전염병에 걸려서 탈출구가 없는 ‘오랑 시(市)’에 비유하였습니다. 인간은 그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야 할 운명인데, 인간들은 극한상황에 처하면 대체로 세 가지 태도 중 하나를 취한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이 일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피하면 그만이라는 ‘도피적 태도’가 그 첫째요, 이런 재앙은 신의 징벌인데 그럼에도 신의 사랑을 의심해서는
똘레랑스-아시다시피 ‘관용’이라는 프랑스어입니다. 관용(寬容)이라고 하면 ‘너그럽게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이에 해당하는 프랑스어 똘레랑스(tolerance)는 그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프랑스 말 사전에는 “똘레랑스란,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을 뜻한다”(289쪽)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 홍세화씨는 이것을 좀 더 자세히 풀어줍니다.“‘당신의 정치적 종교적 신념과 행동이 존중받기를 바란다면 우선 남의 정치적 종교적 신념과 행동을 존중하라.’ 바로 이것이 똘레랑스의 출발점입니다. 똘레랑스가 강조되는 사회에선 강요나 강제하는 대신 토론합니다. 아주 열심히 토론합니다. 상대를 설득시키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그러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면서 언어학자인 다니엘 에버렛은 아주 오래 전부터 아마존 오지의 선교를 꿈꿔왔습니다. 그는 길고 긴 연습과 훈련 끝에 가족들을 데리고 1978년 아마존 마이시 강 입구에 위치한 피다한 마을로 들어갑니다. 피다한 마을은 아마존에서도 보기 힘든 폐쇄적인 부족으로서 낯선 문화를 거부하고 그들만의 고유한 언어와 풍습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곳입니다. 그곳 원주민들의 언어를 완벽하게 배워서 복음을 전파하라는 사명을 띤 다니엘은 사람들과 가족처럼 지내면서 그들의 언어를 익혀갑니다. 하루라도 빨리 그들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여 보급하기 위해서 다니엘은 꾸준하게 열린 마음으로 피다한 부족들의 삶 속으로 파고들어갑니다. 그들의 문화를 알지 못하면 그들의 언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본생경(쟈타카)』이나 『백유경』, 『현우경』을 읽는 성인불자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교훈용 경이라는 생각에서입니다. 이미 출간되었거나 앞으로 출간될 아동용 경전도 이 세 가지 경전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들이 아동용으로 ‘전락’해서 어른들에게 무시당하게 된 이유가 뭔지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동물들이 등장하는 우화집(본생경)이라서? 짤막한 에피소드들 끝에 ‘착하게 살아라’라는 교훈을 안겨주는 경(백유경, 현우경)이라서? 만약 이 경전들에 대해서 이런 이유를 들어 성인불자들은 읽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정말 뭘 모르고 하는 말씀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입으로는 고매한 이치만을 되뇌면서도 정작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들에 대해서는 지나치고 말며, 거
서른다섯 살의 그리스 청년.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그는 9월 어느 날 늦은 오후 자살을 하려고 강으로 나갔습니다. 몇 해 전까지는 그래도 사는 보람이 있었습니다. 조국을 침략한 나치독일에게 저항하면서 새로운 세상이 오리라는 희망을 품으며 지냈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걸고 철도역을 폭파하고, 어마어마한 현상금이 걸려 지하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지냈어도 그는 불의를 거부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굳은 마음 하나로 버텼습니다. 마침내 나치독일은 물러갔고 청년의 조국은 해방되었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그리던 새로운 세상은 오지 않았습니다.“모든 이들에게 자유와 평화, 먹을 것을 주는 세상… 그러나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았어… 가졌던 희망은 한낱 물거품이 되고… 환멸만이… 지금은 나도 환멸을 느끼는 사
아프리카 흑인들이 노예선을 타고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항구에 도착한 이후 지금까지 4백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1865년 노예제가 폐지된 이후 미국 사회에서는 더 이상 ‘흑인=노예’가 아니게 되었지만, 백인들의 뇌리에는 ‘흑인이란 도덕심도 없고, 수치심도 모르며, 아무데서나 성교를 해대는 동물 같은 존재이기에 같은 인간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인식이 너무나 깊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1959년 10월28일 마흔 살의 백인 남자 존 하워드 그리핀은 남부 흑인의 자살이 늘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보고난 뒤 차별당하며 살아가는 자의 느낌이 어떤지 알고 싶어졌습니다.‘백인이 남부에서 흑인으로 살아가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할 수도 없는 피부색 때문에 차별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태국은 불교국가입니다. 6천만 명이 넘은 전체 인구 가운데 약 95% 가까운 사람들이 불교신자입니다. 그리고 물가가 저렴하고 멋진 휴양지도 있어서 사람들을 기분 좋게 이완시킵니다. 그래서 수많은 각국의 여행객들은 사찰순례도 하고 해변가에서 여유를 부리거나 카오산 로드 같은 해방구에서 잠시 일탈을 맛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심이 깊은 나라 태국이 관광지로 환영받는 데에는 매춘이 큰 역할을 차지합니다. 태국에는 50만 명에서 약 100만 명의 매춘여성들이 있으며 아주 쉽게 성매매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 세계 남성들이 몰려든다고 합니다. 태국에서 이렇게 매춘이 ‘성업(!)’인 가장 큰 이유는 가난입니다. 농촌 가정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지 못하고 큰돈을 만지지 못합니다. 죽도록 일해도
버스를 타고 지나다 무심코 차창 밖을 내다보는데 참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지나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인파’나 ‘대중’이라는 이름으로 묶어서 바라보면 뭐 그리 의미 있는 존재들은 아닙니다. 그런데 ‘대중’이라는 묶음을 풀어서 한 개인 개인을 짚어보다가 그들의 묘한 존재감이 느껴졌고, 그 느낌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저 목숨이 대체 왜 소중하다는 건가?”왜 소중하냐고?그건, 살아있으니까.너무 진부한 문답인가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가 생명을 귀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그는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 말고는 목숨이 소중하게 다루어져야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 지구에 살아서 꿈틀거리기 때문에, 그 사실 하나만으로 그는 가장 귀한 존재이며 무조건 살려져야 한다는 결론에 도
흑백 사진 속의 남자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머리카락과 수염이 더부룩한 이 남자는 촛불 한 자루를 켜놓고 서류인 듯 보이는 것을 읽고 있습니다. 눈은 긴장된 채 크게 열려 있는데, 진지하고 골똘하게 서류 읽기에 몰입해 있는 모습이 참 인상적입니다. 배경으로 시선을 옮겨보면, 두루마리가 한쪽 벽에 잔뜩 쌓여 있고 얼핏 보아도 뭔가 정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높이 쌓인 두루마리 위로는 희미하게 나뭇가지 그림이 그려진 벽이 보입니다. 20세기 초엽에 프랑스 탐험가 펠리오가 중국 돈황 막고굴에 들어가 3주간에 걸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문헌들을 읽어 내려가는 모습을 찍은 것입니다. 이 낡은 흑백 사진 한 장만 보자면 이 젊은 남자의 몰입은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중국의 입장
서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시에라리온은 18,9세기 흑인노예들이 정착하여 세운 나라입니다. 풍광이 아름답고 여느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비옥한 곳인데다 다이아몬드 산지인 이 나라는 어쩌면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풍요로운 땅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 이권을 노리는 반군들의 잔인한 학살과 그에 맞선 정부군의 공격, 어지러운 정치판과 쿠데타로 이제는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비극의 땅으로 전락했습니다. 업라인(수도 프리타운에서 그 나라의 오지에 사는 사람들이나 풍속들을 일컫는 말) 사람들은 반군과 정부군에게 가장 만만한 먹잇감이었습니다. 통신시설을 갖추지 못한 오지 사람들은 간간이 들려오는 총성에 불안해하면서도 삶의 터전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순식간에 반군들의 기습으로 평화롭던 마을은 그야말
뭄바이를 돌아다니다 잠시 들어간 커피전문점에는 여학생들 몇이 커피와 작은 케이크를 사먹으며 재잘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리창 밖에는 굶주린 기색의 소년이 가게 안을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해맑게 재잘거리는 고운 소녀들과 남루하기 짝이 없는 소년 사이에 앉아서 유리창 안쪽이 진짜 인도인지, 유리창 바깥이 진짜 인도인지 정말로 궁금해졌습니다. 이런 점에서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뭄바이의 세련된 커피전문점 바깥에 서 있던 남루한 소년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 소설입니다. 12월25일 수녀원 정문 앞에 버려진 갓난아기에게는 ‘람 모하마드 토마스’라는 심난한 이름이 붙여집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 그리고 기독교 흔적을 가지고 있는 이름입니다. 종교백화점 인도답게 붙여진 이름이지만 정작
16세기 스위스 제네바를 거머쥔 칼뱅은 그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구교의 교황이나 황제보다 더 무시무시한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였습니다. 그가 숨을 토해내면 온 도시가 회색빛으로 가라앉았고, 그가 도리질을 하면 광장의 화형대에서 시민들이 불태워졌습니다. 그러다 칼뱅의 종교적 견해에 이의를 제기한 어느 신학자가 산채로 화형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펜으로 다른 견해를 펼쳤을 뿐인데 하늘 아래 ‘자기와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못하는 칼뱅은 종교권력의 힘으로 그를 살해하였던 것입니다. 수많은 인문주의자들이 “서재의 문을 닫고 그 안에서 탄식했을 뿐” 아무도 앞에 나서지 못할 때 오직 한 사람, 카스텔리오만이 외쳤습니다. “한 인간을 불태워 죽인 일은 이념을 지킨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을 살해한 것이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