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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여운깊은 책읽기] 두 사람만 있으면 생겨나는 것

기자명 법보신문

『거부』/안토니스 사마라키스 지음/최자영 옮김/신서원

서른다섯 살의 그리스 청년.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그는 9월 어느 날 늦은 오후 자살을 하려고 강으로 나갔습니다.

몇 해 전까지는 그래도 사는 보람이 있었습니다. 조국을 침략한 나치독일에게 저항하면서 새로운 세상이 오리라는 희망을 품으며 지냈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걸고 철도역을 폭파하고, 어마어마한 현상금이 걸려 지하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지냈어도 그는 불의를 거부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굳은 마음 하나로 버텼습니다.

마침내 나치독일은 물러갔고 청년의 조국은 해방되었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그리던 새로운 세상은 오지 않았습니다.
“모든 이들에게 자유와 평화, 먹을 것을 주는 세상… 그러나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았어… 가졌던 희망은 한낱 물거품이 되고… 환멸만이… 지금은 나도 환멸을 느끼는 사람… 내 삶에 더 이상 의미가 없어. 그래서 나는 죽음을 택한다.”

그는 강물에 몸을 던지기 위해 높은 교각으로 다가갑니다. 그런데 순간 누군가가 그보다 한발 앞서 차디찬 가을 강물에 몸을 던졌습니다. 우리의 주인공은 자신도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서둘러 강으로 뛰어듭니다. 온힘을 다하여 자살기도자를 건져내고 응급처치를 해주는 주인공의 입에서는 천만뜻밖에도 이런 말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런 짓 하면 안 돼! 알겠어? 삶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 해도, 자네가 조금이라도 덜 불행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 한 사람이 자네를 삶에다 비끄러매는 탯줄이 되네. 고통과 슬픔과 걱정과 번민과 기쁨으로 얼룩진 여기 이곳 일상생활… 그래, 죽음을 택할 수는 없는 거야! 죽음을 택할 권리가 없어!”

간신히 의식을 되찾은 그 사람은 실수로 발이 미끄러졌을 뿐이라며 떠나가고, 애초 사는 의미를 찾지 못해 강에 몸을 던지려던 주인공은 홀로 어둔 강가에 주저앉습니다. 사는 게 아무 의미 없다던 그는 대체 왜 그리 타인을 살리려 몸부림을 쳤던 것일까요? 그는 강 건너 사람 사는 세상의 불빛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조금이라도 덜 불행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면, 두 사람만 있으면, 하나의 의미가 생긴다. 두 사람이 있으면 하나의 ‘거부’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새롭게 거부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합니다. 삐딱한 세상을 거부하고, 생을 포기하도록 하는 유혹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자꾸만 인생이 무의미하다고 버릇처럼 중얼거리는 당신, 바로 옆에 누군가 한 사람만 있다면 삶의 의미는 그것으로 족합니다.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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